글/청언(淸言)
【명혜망 2006년 12월 30일】고염무(顧炎武)는 학자들이 ‘정림(亭林)선생’이라 존칭하는 인물로 청대 초기를 대표하는 뛰어난 학자이다. 그는 이렇게 뛰어난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자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하늘과 사람을 배우고 궁리함에 확고불변함은 내가 왕석천(王錫闡)만 못하다. 자신을 위해 책을 읽고 깊이 탐구하며 미세한 것을 통찰하는 것은 내가 양설신(楊雪臣)만 못하다. 삼례(三禮)에 정통하고 경사(經史)에 탁월함은 내가 장이기(張爾歧)만 못하다. 조용히 물(物) 밖의 것을 궁구하며 스스로 천기를 얻음은 내가 부산(傅山)만 못하다. 간고하게 배움에 힘쓰고 스승이 없이도 성취를 이루는 것은 내가 이용(李容)만 못하다. 온갖 고초를 다 겪고 때에 맞춰 굽히고 펴는 것은 내가 노안경(路安卿)만 못하다. 널리 듣고 열심히 암기하며 많은 책을 읽는 것은 내가 오임신(吳任臣)만 못하다. 문장이 아름답고 마음이 어질며 후덕함은 내가 주이존(朱彝尊)만 못하다. 배움을 좋아하고 게으르지 않으며 벗들에게 돈독함은 내가 왕굉찬(王宏撰)만 못하다. 6서에 정통하고 잘 믿고 옛것을 좋아함은 내가 장초(張弨)만 못하다.”
이문윤(李文胤)은 고당(杲堂)이란 별호로 알려진 명나라 은현(鄞縣 지금의 절강성 은현) 사람이다. 그는 시문(詩文)에 능해 명성이 높았지만 일찍이 만(萬) 씨 가문의 학문에 크게 탄복한 적이 있다. “순수하며 얻음이 있고 잠시도 유학에서 떠나지 않음은 내가 공택(公擇)만 못하고, 옛 것을 섬기고 믿으며 뜻이 돈독해 분산되지 않음은 내가 계야(季野)만 못하다.”
항세준(杭世駿)의 자는 대종(大宗)이며 절강성 인화(仁和 지금의 항주)사람이다. 그는 학식이 깊고 넓어 건륭시기에 편수(編修)로 임명된 저명한 사학자(史學者)이자 시인이다. 그는 일찍이 자신에 대해 “나는 경학(經學)에서는 오동벽(吳東璧)만 못하고 사학(史學)에서는 전사산(全謝山)만 못하며 시학에서는 여번사(厲樊榭)만 못하다.”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류봉록(劉逢祿)의 자는 신수(申受)이며 청나라 강소성 무진(武進 지금의 상주시)사람이다. 그는 청나라 때의 저명한 경학가로 가경(嘉慶) 19년 진사(進士)에 급제해 벼슬이 예부 주사(主事)까지 이르렀다. 그는 일찍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행실이 돈독하고 효성스러우며 뜻이 곧고 결백함은 내가 장부영만 못하다. 생각이 두루 통하고 황릉을 연구하는 것은 내가 장진예만 못하다. 주역과 예경(禮經)을 정밀히 연구하고 시의적절하게 만물(萬物)을 적시는 것은 내가 장고문만 못하다. 문체가 경건하고 적당함은 내가 손연여만 못하다. 의론이 넓고 민첩하고 활달함은 내가 운자거만 못하다. 널리 고금을 종합하고 없는 듯 빈 듯한 것은 내가 이신기만 못하다. 무리들과 거스르지 않고 광범위하게 적응함은 내가 육소문만 못하다. 학문에 표준이 있고 혼백을 흔드는 듯한 말은 내가 동진경만 못하다. 천지를 수리(數理)로 궁구하고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을 나아감은 내가 동방립만 못하다.”
수시로 겸손할 수 있다면 어찌 자신의 학업(學業)과 덕행(德行)이 날로 새로워지지 않음을 근심하겠는가? 이들 명유대철(名儒大哲)들은 이렇게 뛰어난 성취가 있었음에도 이렇게 겸허하고 호학하는 미덕을 보였다. 이는 조그마한 성취만 있어도 우쭐대며 스스로 당대제일이라고 자만하며 남이 자신만 못하다는 것만 아는 그런 사람들의 얼굴에 땀을 흘리게 한다.
문장발표 : 2006년 12월 30일
문장분류 : 천인사이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12/30/144889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