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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환난을 같이하다(患難與共)

글/홍의(弘毅)

【명혜망 2006년 10월 21일】당송 8대가 중의 한 사람인 류종원(柳宗元)은 산문을 잘 썼고 류우석(劉禹錫)은 시에 능했다. 두 사람은 서로 좋아하는 좋은 벗이었다. 당(唐) 순종(順宗) 영정(永貞)년간에 둘은 같이 왕숙문(王叔文) 집단의 정치 개혁에 참여하였다. 나중에 개혁운동이 실패하여 류종원은 소주(邵州, 지금의 호남성 소양시)자사로 강등되었다. 또 그곳에 부임하러 가던 도중에 다시 영주(永州, 지금의 호남성 영주시)사마(司馬)로 강등 당했다.

부임지에 도착하니 류종원은 머물 곳이 없어서 잠시 용흥사(龍興寺)에 있었는데 생활이 간고하여 류주(柳州)에 온지 반 년 만에 모친을 병으로 잃었다. 류종원은 낭주[朗州, 지금의 호남성 상덕(常德)]으로 강등 당한 류우석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내가 집을 멀리하고 토지가 황페하고 돌림병이 판치는 곳에 부임해 오니 산림과 호수 사이에 있어 억압감이 심하고 가난하고 가슴이 답답하여 단지 온 마음을 시와 문장을 짓는데 집중했네.” 류우석은 곧 편지를 보내 자신의 낙관적인 정서로 류종원을 고무하고 위로해주었다. 십년이 지남 후 둘은 다시 장안으로 불려갔다.

원화(元和) 십년,류종원은 또 류주(柳州 광서성 류주시)자사로 좌천당했고 류우석 또한번 파주(播州, 지금의 귀주성 준의시)로 좌천당했다. 류종원은 파주가 황량하고 편벽한 지방이라 조건이 지극히 어렵다는 것을 알고는 황제[당헌종(唐憲宗)]에게 상소를 올렸다.

“파주는 조건이 열악하여 사람이 살 곳이 못됩니다. 류우석은 아직 노모가 계셔 아들의 공양이 필요하고 저도 그가 이런 곤경에 처해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려 그의 모친을 뵐 면목이 없습니다. 제가 만약 그를 대신해서 파주로 가지 않는다면 류우석 모자를 다시는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폐하께옵서 대신 저를 파주에 가게 하시고 그를 류주로 보내주실 것을 간청하는 바입니다.”

이런 진정한 환난의 정(情)은 조정의 많은 대신들을 감동시켰고 어떤 사람이 나서 류우석을 위해 청을 올렸다. 나중에 황제는 류종원의 요구를 허락하지는 않았지만 류우석에게 살 길을 열어줘 그를 연주(連州)로 부임하게 했다.

이처럼 동양의 전통 문화는 우정을 아주 중시하는데 유가에서는 이를 ‘삼강오륜’의 하나로 인정한다. 친구사이에 서로 인정하고 이해하는 외에 도의적으로도 서로 돕는 책임이 있었다. 어떤 정황에서도 친구에 대하여 언제나 충직하고 절개가 있어야 하는데, 특히 친구가 어려움에 닥쳤을 때는 더욱 손을 내밀어 도와줄 의무가 있고 상대방을 도와 곤경에서 벗어나게 하고 환난을 같이 해야 한다. 이렇게 환난을 같이 하는 우정은 도의에 대한 존중인 동시에 고귀한 인격의 체현이기도 하다.

문장발표:2006년 10월 21일
문장분류 : 【천인사이】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10/21/140714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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