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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수련이야기】묘장왕(妙莊王) 딸의 수련전기(1)

【명혜망 2004년 10월 20일】“하늘의 부처, 예를 들어 당신들이 알고 있는 여래, 보살은 사실 모두 하나가 아니다. …(중략)… 우리 이 공간은 대략 10년 좌우에 그들은 하나씩 바꾼다. 그러나 어떤 세계에서 시간은 아주 오래 지나갔다. 더욱 큰 공간 속의 구체적인 공간의 시간은 오히려 아주 빠르고, 10년이 일부 공간에서는 이미 수만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태 속에서 부처, 보살을 더 이상 오랫동안 머물게 할 수 없었다. 하늘에는 규정이 있다. 일정한 층차 속에서 무슨 신이든지 간에 일정한 시기가 되면 모두 바꾸었다. 목적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며 그들이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과거에 인간세상의 일부 기재 중에는 또 이러한 기재가 있는데 다만 사람들이 어찌된 영문인지 모를 뿐이다. 여러분은 모두 관음보살이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역사상 부동한 기재가 있다. 예컨대 남해관음보살이라는 보살이 있는데 묘장왕(妙庄王)의 딸이 관음보살로 수련 성취되었다고 하고, 또 인도의 쌍마동자(雙馬童子)가 관음보살로 수련 성취되었다는 등등등등은 모두 진짜이다. 다만 똑같은 하나의 생명이 아닐 뿐이다. ‘관음보살’이란 장엄하고 수승(殊勝)하며 대자비한 각자의 원시(原始)형상과 변하지 않는 자비의 이름과 호이다. 매 번마다 관음보살 하나가 수련하여 올라갈 때, 그녀는 지상에서 그녀의 장래에 자신을 이어나갈 사람을 선택하기 시작하는데 그 사람을 도와 그녀 자신과 똑같은 자비를 닦게 한다. 역시 그렇게 높은 층차이고, 역시 그렇게 큰 위덕이며, 역시 그렇게 큰 고생을 겪을 수 있으며 그렇게 큰 위력이 있을 수 있다. 그 사람이 원만했을 때, 그는 그녀를 제도해 올라와 그를 대체하게끔 하였다. 매 하나의 불, 도, 신은 모두 이러하였다.”(《북경국제교류회 설법》)

“만약 삼계와 인간의 역사상의 일체가 모두 우주의 정법을 위하여 배치된 것이라면, 그럼 역사란 단지 대법을 위하여 역사 과정 중에서 중생과 인류 및 사람의 사상방식과 문화를 육성했을 뿐이다. 이리하여 대법이 널리 전해질 때 사람의 사상으로 하여금 능히 법을 이해하고 무엇이 법이고 무엇이 수련이며 무엇이 중생을 구도하는 것인가 하는 등등과 각종 수련형식을 알게 하였다. 만약 이렇다고 한다면, 역사상의 일체 수련과 신앙 그것은 우주가 장래에 세간에서의 정법을 위하여 문화를 다져놓은 것이 아닌가? 무엇이 사람이 신으로 되는 길인가? 하늘의 신들은 내가 사람에게 하늘로 올라가는 한 부의 사다리를 놓아주었다고 모두 말하고 있다. (《역시 방할하노라》)

아래는 묘장왕의 딸 묘선(妙善)공주가 관음보살로 수련성취된 전기이다. 청나라 사람이 문자로 기재한 것에서 발췌하였다. 참고로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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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탁주 세 잔 양정(凉亭) 소연(小宴), 꿈속에서 밝은 구슬이 품에 떨어져

이야기는 주(周) 나라 말년에 해당하는데, 당시 중원 각국은 서로 정벌하고, 전쟁을 치르느라 서로 연결되지 않았고, 편안히 잠들 수 없었으니 바로 정토(淨土)가 없었다. 그 당시 서방에는 흥림국(興林國)이 있었는데 마침 태평 성세를 만나 기후도 아주 좋았고 나라와 백성이 태평 무사했다.

이 흥림국을 이야기하자면, 서역에 있는 모든 나라들 중에서, 우뚝 독립한 대국이라고 할 수 있으며 각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다. 그러나 지리적인 원인으로 인해 중원과는 전부터 왕래가 없었고, 쌍방은 단절되어 있었다. 양국 중간에 하나의 산이 가로막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수미산(須彌山)이라고 불렀다. 이 산은 하늘에 닿을 정도로 높았고, 넓이가 수 천리에 달하며, 서북 고원에 가로 놓여 있어서 마치 자연적인 경계선과 같았다. 당시, 교통이 불편했기에, 중원 사람들은 비록 이 명산을 알고는 있었지만, 단지 이 산이 깊고 험준하며 기후가 몹시 추워 산 위에 쌓인 눈이 삼복더위에도 녹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감히 모험을 무릅쓰고 가보려고 하지 않았다. 흥림국은 바로 수미산 서북쪽에 있었기에, 교통이 막혀 있을 당시 자연히 중국과는 서로 통하지 않았다.

이 흥림국은 서방의 모든 부락 가운데, 역사가 가장 유구하고 개화도 비교적 일렀으며, 또한 3만 6천리의 국토를 차지하며 수십만 명의 인민을 보유하고 있었다. 자연히 당대에 패권을 차지하고 유아독존하여, 작은 부락들은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재위에 있던 국왕은 파가(婆迦)였으며, 연호가 묘장(妙莊)이었다. 그는 현명한 군주로, 수십만 인민을 통치했으며 남자는 밭을 갈고 여자는 베를 짜며 각각 생업에 안주하게 하였다. 재위 십여 년 동안, 흥림국을 부유하게 하고 국민이 늘어나게 다스려, 날로 번성해갔다. 묘장왕은 한 나라의 군주로서 생활이 편안하고 부유하며 지위가 존귀하고 영화로운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왕후는 보덕(寶德)이라고 했는데, 현명하고 어진 부인으로 묘장왕과는 서로 매우 존중하고 사랑했으며, 가정에서도 화목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그러나 천하에 완전무결한 일은 없는 법. 사람의 인생이 제아무리 부귀하다해도, 본질적으로 결함이 없을 수 없다. 묘장왕은 귀한 왕이고, 부유하여 천하를 가졌지만 단지 한 가지 일만은 국왕의 위력으로도 빼앗거나, 돈으로 살 수 없었다. 바로 슬하에 두 명의 공주만 있었고 태자가 하나도 없었다. 묘장왕은 이미 60여 세로, 왕위를 계승할 사람이 없었기에, 자연히 아들을 바라는 마음이 깊었다. 옛말에 ‘자식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권력으로 낳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고 했다. 그가 설사 번뇌할 지라도 결국 아무 소용이 없었다. 희망과 초조, 근심 속에 세월은 하루하루 지나갔다. 봄이 가고 가을이 오며, 후다닥 몇 년이 흘렀다.

때는 바야흐로, 묘장왕 17년 여름, 어화원(御花園) 연못에 있는 흰 연꽃(白蓮)이 바람을 안고 피어나 그 향기가 안개처럼 은은히 수면에 떠다녔다. 보덕 왕후는 며칠 동안 묘장왕이 걱정하며 시들해 있다고 생각하여, 연못의 양정(凉亭)에 주연을 베풀어, 묘장왕을 청해 술을 마시며 근심을 없애고자 했다.

두 부부는 정자에서 상석에로 좌정하고 어여쁜 궁녀[官娥彩女]들이 반을 나누어 술을 따르고 음식을 가져왔다. 묘장왕은 마음속으로 비록 아들 문제가 편안하진 않았지만 보덕 왕후의 호의를 깊이 이해하고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즐겁고 기쁜 얼굴로 웃었다. 한쪽에서는 연못에 만발한 백련이 들쑥날쑥 피어 있고, 청록색 연 잎이 받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청아하고 사랑스러웠다. 미풍이 지난 곳이 가볍게 흔들리는 것이 마치 수줍은 듯 말하려고 하는 표정 같았다. 간간이 그윽하고 우아한 맑은 향기가 바람 가운데 전파되어 마음속 깊이 스며들어 감동을 주었다. 묘장왕은 이러한 환경에서 별천지에 왔다고 느껴져 매우 재미있었다. 마음속의 근심은 이미 맑은 바람에 흩어졌다.

이대로 보덕 왕후와 서로 잔을 돌려가며 마시고, 마음을 열며 말하고 웃기 시작했다. 보덕 왕후는 그가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기뻐하며 직접 술병을 들고 술을 따랐으며 또 무희들에게 연회에서 춤과 노래를 하도록 명했다. 이렇게 한바탕 놀고 나니, 벌써 밝은 달이 서쪽으로 기울었다.

묘장왕은 과음을 하여, 자신도 모르게 옥체가 비틀거렸다. 주흥이 올라 연회를 철수하라고 명하고, 궁녀에게 기대어, 보덕 왕후를 끌고 바로 침궁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 깨어났을 때, 이미 날이 훤하게 밝아 있었다. 보덕 왕후는 이미 몸치장을 끝내고는, 묘장왕이 몸을 일으키도록 시중들어 세면을 시킨 후, 한편으로는 음식을 마련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묘장왕에게 말했다.

“소첩이 어제 밤 기이한 꿈을 꾸었는데, 왕께서는 길한지 흉한지 아시겠습니까? 꿈에 어느 곳에 갔는데, 해변 같은 곳으로 온통 끝없이 하얗고 끝없이 파도가 출렁이고 있어서 매우 두려웠습니다. 막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쿵’ 소리가 울리더니 바다에서 황금색 연꽃이 피어올랐습니다. 처음 물에서 나올 때는, 크기가 일반 연꽃과 다름이 없었고 수면과도 아주 가까웠습니다. 뜻밖에도 이 황금색 연꽃이 오히려 더욱 자라고, 더욱 크게 꽃을 피워, 금빛도 날로 생화(生花)를 눈부시게 했으며 눈조차 뜰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눈을 감았는데, 다시 눈을 떴을 때 황금색 연꽃이 사라졌습니다. 바다 가운데 우뚝 솟은 것은 멀쩡한 신산(神山)으로, 산 위에는 가물가물 거리는 수많은 중첩된 누각과 귀한 나무와 진귀한 조류, 천용(天龍)과 백학(白鶴)이 있었습니다. 이 수많은 경관은 도대체 거리가 멀어 갑자기 나타났다 갑자기 사라져서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중간 산봉우리에서 7층의 탑이 솟아올랐습니다. 탑 꼭대기에는 밝은 구슬[明珠] 하나가 단정하게 놓여 있었는데 오색의 기이한 빛과 광채를 내뿜어 매우 장엄했습니다.

제가 신이라는 것을 알아 봤을 때, 그 명주(明珠)는 갑자기 유유히 하늘로 떠올라 눈 깜짝할 사이 막 떠오른 태양으로 변했습니다. 점점 해안으로 가까이 다가오더니 이윽고 제 정수리 위에 높이 걸려 있었습니다. 또한 ‘쿵’ 소리가 울리자, 그 떠오른 태양이 제 품 속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저는 놀라서 재빨리 손발을 움직여 도망가려고 했지만 두 발은 마치 뿌리를 내린 것 같았습니다. 저는 자신도 모르게 필사적으로 애쓰다가 마침내 깨어났습니다. 멀쩡하게 침대 위에서 잠을 자는데, 어디에 무슨 바다요 산이요, 모든 경관이 있단 말입니까? 여기에 이르러, 모든 것이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왕이시여 제 꿈이 길몽입니까 아니면 흉몽입니까?’

묘장왕은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몰래 즐거워하며 보덕 왕후를 위로하며 말했다. “부인이 꿈에서 본 것은 분명 불국 극락세계의 실제 모습이오. 범인(凡人)들에게는 드문 일이니, 자연히 대 길조요. 다시 말해 그 명주는 분명 불가의 사리이며 떠오르는 태양으로 변한 것으로 양을 상징하오[陽像]. 부인의 품 안에 뛰어 들었으니, 두말할 것도 없이 회임의 징조요. 부인이 이런 꿈을 꾸었으니, 이번 회임에는 분명 사내아이를 낳을 것이오. 정말로 경사스런 일이오!“

보덕 왕후는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했다. 이 일이 궁중에 두루 소문이 났고, 궁궐 위아래도 모두들 큰 희망을 갖게 되었다.

보덕 왕후는 이날부터 회임의 징조가 점차 드러나기 시작했다. 2-3개월의 시간을 거쳐, 복부는 뚜렷하게 팽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회임 이후, 몸은 오히려 매우 건강했으며, 단지 한 가지 문제라면 무릇 생선이나 육류와 같은 비린내 나는 음식은 한 입도 먹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평소에 매우 즐겨먹던 것도 비린내가 나는 것이면 보자마자 구역질을 했고, 억지로 조금 먹더라도 반드시 쓴 담즙까지 함께 토해냈다. 이것 역시 임산부에게 흔히 있는 일이라서 모두들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고, 또한 뱃속에 또 다른 오묘함이 있을 줄 몰랐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어느덧 다시 겨울이 다 지나가고 봄이 왔다. 보덕 왕후의 산달이 날로 가까이 다가왔다. 묘장왕은 확실히 이번에는 분명 남자 아이를 낳을 것이라 생각하고 매우 기뻐하며, 서둘러 먼저 경축할 일을 준비했다. 온 궁의 상하가 각자 바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묘장 18년 2월 19일에 이르러, 묘장왕 파가는 정원에서 아름다운 봄 풍경을 감상하며, 정신이 멍해져 환상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한 궁녀가 분위기를 깨뜨리며 면전에 달려와 아뢰었다. “왕후께서 진시(辰时) 삼각(三刻)에 공주님을 출산하셨습니다. 이름을 지어 주십시오.”

묘장왕은 여자 아이를 낳았다는 말을 듣고는 마음의 기쁨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단지 자신의 전생 수행이 투철하지 못하여 이렇게 된 것이라고 탓할 수밖에 없었다. 즉각 궁녀에게 물었다. “왕후께서는 평소와 같이 평안 하시더냐?” 그 궁녀는 말했다. “삼가 아뢰옵니다. 왕후께서 생산하실 때, 수많은 기이한 색의 새들이 궁궐 나무에 모여들어 울면서 마치 신선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 같았습니다. 방안에서도 기이한 향이 자욱했습니다. 얼마 후 셋째 공주님을 생산하셨습니다. 지금 왕후 마마와 공주님 모두 평안하시고, 왕후마마의 정신도 원기 왕성하십니다. 공주님의 울음소리도 우렁찼습니다.”

묘장왕은 이 말을 듣고, 학이 나무에 모여들고 기이한 향이 방을 에워싼 것을 생각하며 보덕 왕후가 회임 했을 때의 꿈을 기억했다. 설령 이 아이가 다소 내력이 있다 할지라도, 태어날 때 숙근(夙根)을 가졌는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는 곧 ‘묘선(妙善)’이라는 두 글자로 공주의 이름을 지었다. 왜냐하면 위의 두 공주의 이름 때문이었다. 한 명은 묘음(妙音), 한 명은 묘원(妙元)으로, 모두 자신의 연호 묘장의 첫 글자로 항렬을 지었다. 곧 직접 금전주필(金箋朱筆)로 써서 궁녀에게 보냈다.

바로:

오로지 선이라야만 묘하다 칭할 만 하니, 아이가 태어남에 혜근(慧根)이 있도다.
(惟善堪稱妙,兒生有慧根.)

문장발표 : 2004년 10월 20일
원문위치 :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4/10/20/86970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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