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 2006년 9월 6일】
공자는 “나는 행복하도다. 내게 허물이 있으면 사람들이 반드시 아는구나(丘也幸,苟有過,人必知之.)”라고 말했다. 성현(聖賢)이라야만 비로소 허물을 듣고 기뻐하며 비평의견을 마주하고 자신의 행운으로 여기며 진심으로 상대방에게 감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잘못을 발견하여 제때에 고쳐 바로잡아야만 비로소 도덕과 수양을 제고하고 자신을 완벽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자규(弟子規)》에서는 “모르고 잘못을 하는 것을 일러 착오(錯)라 하고, 알면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일러 악(惡)이라 한다. 착오를 고칠 수 있으면 허물이 없지만 덮어 감춘다면 허물이 더 늘어나게 된다.(無心非,名為錯,有心非,名為惡。錯能改,歸於無,倘掩飾,增一辜.)”라고 했다.
내가 이 문장을 이해하기로는 과실(過失)이 나타났을 때 무의식적으로 한 것인지 아니면 선하지 못한 마음을 품고 의도적으로 악한 일을 한 것인지 분석해야만 한다. 또한 일을 덮어 감추지 말고 단점을 변호하지 않으며 성심으로 허물을 고친다면 절대 무원칙적으로 자신과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바로 근본을 바로 잡고 근원을 깨끗이 한다는 것인데 병의 뿌리를 찾아내어 근본에서부터 마음을 바로 잡고 집착을 없애야 한다.
내가 (남의 말을) 들었다거나, 참아냈다거나,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으며 철저하게 마음에서부터 노력하여 증에 맞게 치료해야 한다. 만약 법리(法理)에서 뚜렷하지 않다면 다그쳐 법공부를 하고 주동적으로 동수들과 교류하여 법에서 제고해야 한다. 만약 마음이 바르지 못해 조성된 것이라면 곧 마음을 바로잡고 이기적인 망념을 없애야한다. 만약 자신을 다스림이 엄격하지 못했다면 일사일념(一思一念), 일언일행(一言一行) 중에서 자신을 바로 잡아야 한다. 자고이래(自古以來)로 성현(聖賢)은 잘못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하지만 고칠 수 있으며 아울러 자신을 반성하고 자책하여 허물을 고치는데 인색하지 않아 물이 흘러가듯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여 동일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 정말이지 옛날 속담에 “성현이 아니라면 누가 허물을 고칠 수 있으랴(人非聖賢,孰能無過.)”, “잘못이 있어도 고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선은 없다(錯而能改,善莫大焉.)”는 것과 같다.
송(宋)나라 때 서(徐) 선생이 있었다. 그가 처음 안정(安定) 선생을 뵈었을 때 머리가 조금 비딱했다. 안정 선생은 곧 아주 엄숙하게 “머리는 똑바로 해야 하나니 기울어져서는 안 되느니라.”라고 말했다. 서 선생은 즉각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깨달았으며 아울러 “머리를 똑바로 해야 하며 기울어져서는 안 된다고 하시면 그럼 마음 또한 어찌 바로잡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이후 서 선생의 마음은 조금도 기울어지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세상에서 처세하면서 몸을 닦는 비결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그는 곧 ‘정직(正直 바르고 곧음)’이란 두 글자를 써서 질문한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송나라 때의 대 문장가인 증공(曾鞏)은 왕안석(王安石)과 친분이 두터웠다. 신종(神宗) 황제가 증공에게 “그대가 보기에 안석의 인물됨이 어떠한고?”라고 묻자, 증공은 “안석의 문장은 한나라 때 대문장가인 양웅(楊雄)에 못지않지만 사람이 인색하기 때문에 양웅을 능가하지는 못하옵니다!” 황제는 “안석의 인물됨이 부귀나 재물을 중시하지 않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인색하다고 하는 것이오?” “신이 말씀드리는 소위 인색함이란 안석이 비록 일을 추진함에 용감하고 쌓은 업적은 많지만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고치고 바로 잡는 데는 인색하다는 뜻이옵니다!”
신종황제가 증공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생각에 동의한다고 표시했다. 왕안석은 뛰어난 재주와 학문으로 천하에 명성을 날렸으나 잘못을 덮어 감추고 외고집으로 신법(新法)을 추진했기 때문에 결국 창생(蒼生)과 백성을 해치고 후세에 악명을 남겼다.
어떤 수련인은 주동적으로 자신의 집착을 찾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지적해주어도 여전히 애써 감춘다. 설사 승인한다 해도 뉘우치고 고칠 생각을 하지 않으며, 고친다고 해도 질질 끌면서 반복한다.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원하는 것이 아니며, 스스로 반성하고 스스로 질책하지 못하며, 자신을 다스리는데 엄격하지 못하고 허물을 고치는데 인색하다면, 이런 태도가 과연 자신에 대해 책임지는 것일 수 있겠는가? 정진(精進)할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는 누가 우리를 나쁘게 말하더라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셨다. 여기에서는 여러분들에게 이 말씀의 내포가 아주 깊으며 표면에만 머물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려는 것이다.
문장발표 : 2006년 9월 6일
문장분류 : 【천인사이】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6/9/6/137027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