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칭얜
[명혜망2006년8월26일] 서한 때 동해군 얜현 (오늘의 둥얜청현)에 위공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일찍이 현에서 옥사, 군결조 등의 관직을 맡았다. 그는 안건에 대해 공정하게 판결했으며, 백성을 불쌍히 여겨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했다.
동해군에 한 효부가 있었는데 젊어서 과부가 되어 자식이 없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동안 그녀는 변함없이 시어머니를 존경하고 극진히 모셨다. 시어머니는 그녀를 매우 불쌍히 여겨 재가 시키려 했지만 그녀는 고집스레 말을 듣지 않았다. 이에 시어머니는 늙고 쓸모없는 자신으로 인해 며느리를 묶어 둔다고 생각하여, 며느리가 좋은 임자를 찾아 가라고 목매달아 자살을 했다. 그런데 할머니 딸이 관부에 신고를 하여 효부가 할머니를 살해했다는 것이었다. 관부에서는 곧장 사람을 파견하여 그 효부를 잡아갔고 효부는 자신의 청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관사는 혹형으로 자백을 강요하여 효부는 끝내 억지로 죄를 승인했다. 위공이 이 일을 알게 되어 태수에게, 그 부인은 10여년 동안이나 시어머니를 공손히 모셔왔으므로 사람을 죽일수 없다고 알려 주었으나, 태수는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면서 말을 듣지 않았다. 아무리 해도 어쩔 수 없게된 위공은 판결서를 부여안고 부아에서 통곡을 하였다. 후에 그는 병을 핑계로 부아에서 사직하고 말았다.
그 효부는 태수 등에 의해 시어머니를 모살한 혐의로 처형되었다. 효부가 억울하게 죽은 후 현중에는 3년동안 계속해서 큰 가뭄이 들었다.
후에 새로 태수가 부임해 와 가뭄이 든 원인을 물었다. 위공은 효부의 일을 그에게 알리면서 “그 효부를 죽이지 말아야 했나이다. 허지만 전임 태수는 다른 사람의 말은 아예 듣지를 않고 자기 고집대로 결단을 내렸나이다. 아마 재화는 이로부터 생긴 것 같소이다” 그리하여 새로 온 태수는 몸소 효부의 묘지에 가서 제를 지내고 비석을 세워 그녀의 효행을 칭찬하였다. 결과 하늘에서 큰 비가 내리게 되었고 그 해 현의 농사는 대풍이었다.
위공은 재임 기간동안 공정무사하고 선량 연민했기에, 범죄자들조차 그의 판결에 탄복하였고 그를 미워하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심지어 그를 위해 사당을 지어 주면서 그에 대한 존경과 기념을 표했다.
한 번은 위공의 대문이 망가져 수리하려 하였다. 이에 위공은 수리하는 사람에게 “말 네필이 끄는 고개차가 통과할 수 있도록 대문을 조금 높게 세우시오. 나는 몇 년간 안건을 심사하면서 많은 음덕을 쌓았을 뿐만 아니라 종래로 억울한 안건을 만들지 않았으므로 나의 후손들은 필히 흥성 현귀 할 것입니다.”
과연 위공의 말대로 위공의 아들 위정국은 후에 승상이 되었고, 손자 위용은 관직이 어사 대부로서 삼공이라 불렀고 아울러 전세를 부여 받았다.
문장발표 :2006년8월26일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6/8/26/136440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