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 2004년 9월 27일] 1994년 6월 21일, 나는 다행스럽게도 지난 황팅(濟南皇亭) 체육관에서 사부님께서 설법하시는 것을 경청할 수 있었다. 나는 잊을 수 없는 그날을 회상하면서 깊은 감회와 동수들이 알려준 일부 정경들을 써내려고 한다.
1. 고생은 자신이 감당하시고 자비를 수련생들에게 보내주시다.
강의를 시작한 이틀째 되던 날 오후, 사부님께서는 수련생들과 함께 황팅체육관에서 사진을 찍으셨다. 사진을 찍는데 두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하나는 그날이 하지(夏至)라 날씨가 너무 더운 것이었다. 지난은 너무 무더워 불가마라고 소문이 난 곳으로, 그날 예상 기온은 37도였는데, 오후 제일 무더울 때 사진촬영을 했을 뿐만 아니라 마당 안의 햇볕에 지지는 듯한 콘크리트 계단에서 진행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과거 기타 기공반에는 일반적으로 백 명에서 이백 명, 적으면 몇십 명 정도밖에 안 되어도 한 번 사진을 찍으려면 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나마 빨리 사진을 찍어야만 한 시간 내에 끝낼 수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몇천 명이나 되는 인원이었다. 저녁에는 사부님께서 설법을 하셔야 하는데 남은 시간이 겨우 네 시간도 안 되었다. 그러니 회의를 돕는 수련생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한단 말인가?
이때 사람들 앞에 커다란 모습이 나타났다. 바로 사부님의 모습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여러 사람들이 줄서는 것을 지휘하고 계셨다. 사람이 많아 통제도 잘 안 되고 시간이 긴박한 상황이었지만 사부님께서는 확성기조차 사용하시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큰소리도 내지 않으셨다. 다만, 쉴 새 없이 수신호로 사람들을 좌우 전후로 이동하게 하였다. 그 당시 나는 사부님을 어찌 저런 일을 하도록 배치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설법을 하러 오셨고 국가적으로 여러 차례 검증하여 표창을 받고 승인을 받은 초고급 대사라 할 수 있는데, 원칙대로라면 함께 사진을 찍을 때 사부님께서는 응당 전문가들이 계시는 에어컨과 음료와 빈틈없는 서비스가 있는 곳에 계시다가 여러 사람들이 줄을 다 섰을 때까지 기다려 중간 빈자리에 오셔서 앉으시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찌는 날씨에 사람을 태울듯한 콘크리트 계단의 열기 속에서, 사부님께서는 땀에 흠뻑 젖은 여러 사람들을 지휘하여 줄을 잘 서게 했다. 그리하여 빠른 지휘 하에 단번에 사진을 찍어 나갈 수 있었다. 그런 다음 사부님께서는 ” 다음 팀도 빨리 찍읍시다.”라고 말씀하셨다. 어느 한 제자가 선생님께서는 저녁에 또 강의를 하셔야 하는데 이처럼 피곤해서 되겠는가 하고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오후 시간 내내 단체 사진이 끝날 때까지 이렇게 무더운 날씨 속에서 바쁘게 보내셨다. 그렇게 하시고도 저녁에는 제시간에 설법을 하셨을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에게 천천히 식사를 할 수 있게끔 여유시간을 주셨다. 베이징(北京), 싼둥(山東)과 뚱베이(東北) 등지의 노수련생들은 경험이 있어 얼른 밥을 먹고 먼저 가서는 담벽 구석 등 좋지 않은 곳을 먼저 차지하고 앉아 좋은 자리는 신수련생을 위해 남겨두었다. 예닐곱 살 되어 보이는 한 남자애는 당연한 듯 제일 뒤 인도 옆의 좋지 않은 자리에 앉아있었다. 나는 그에게 “여기 자리가 있으니 네가 앉으렴” 하고 말했다. 그 아이는 “나는 노수련생이에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그의 어깨만 다독였는데 감동하여 목 메인 소리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사부님께서 강의를 시작하셨다. 그러나 실내가 너무 더워 많은 사람들은 부채질을 하기 시작했다. 사부님께서는 ” 여러분 부채를 내려 놓으셔도 됩니다.”라고 하셨다. 조금 후 미풍이 얼굴을 스치며 불어왔다. 사부님의 자비를 감수한 수련생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2. 상징적인 수업료
사부님의 설법반은 수업료가 특히 낮았다. 그동안 나는 여러 차례 기공반을 조직하는 일에 참가했으며 여러 번의 기공반의 강의를 들었는데, 내가 알고 있는 정황은 사회상 기공반의 수업료는 1주일 과정에 120~200위안을 받으며 더 많이 받는 곳도 있다. 사부님은 10일 강의에 50위안, 어떤 때는 더 할인하였다. 무엇 때문에 수업료가 이처럼 적은가. 당연히 강의 내용이 높지 못해서가 아니다. 비록 나는 이 우주대법이 내포한 내용을 똑똑히 꿰뚫고 보지는 못하지만 사부님께서 단도직입으로 말씀하신 ” 진정하게 고층차로 사람을 이끌다.” , “사람을 제도함이라 당신은 진정으로 수련하게 된 것이고 다만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것뿐만이 아니다.”(《전법륜》中) 이것이 곧 장기간 수련계에서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층차를 뛰어 넘을 수 없던 것을 해결한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몇 마디 말씀으로 천기, 비밀 중의 비밀, 현관, 묘유주천, 천목 등 많은 것을 갈파하셨다. 그리하여 천하를 다 다니시면서 도를 구하지 못했던 사람들로 하여금 경탄을 금할 수 없게 하셨고 탄복의 극치를 자아내게 하셨다. 대법 수련자들은 손에 대법을 받쳐 들고 눈물을 흘리면서 “그 전에는 쇠로 만든 신발이 떨어지게 걸어다녀도 찾을 곳이 없었는데 지금은 사부님께서 대법을 문 앞까지 보내주셔서 전혀 힘들지 않고 얻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미 부단히 법을 학습하고 심성을 닦은 제자들은 이 《전법륜》책은 값으로 가늠할 수 없는 천법(天法)임을 깊이 알고 있었다. 속인의 물건과 어떻게 비할 수 있단 말인가! 오직 사부님의 자비로 하여 수련생들의 부담을 경감하게 하기 위하여 수업료를 제일 낮은 데까지 내려놓은 것이다. 대법제자는 물론 대법제자가 아닌 사람도 이는 상징적인 수업료라 말했다.
3. 어머니의 몸을 정화하여 주신 이야기
나는 이번 사부님의 설법반에 원래는 한 동업자와 함께 참가하기로 약속되었었다. 그래서 준비하여 온 입장권은 내가 보관하였다. 그런데 강의를 듣기 며칠 전 동업자는 자동차사고로 사망하였다. 갑자기 찾아온 이 재난은 사람들을 하여금 비통에 잠기게 했다. 그러나 비통 끝에 사람들의 운명을 개변시키는 수련의 기연(機緣)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됨을 느꼈다. 그런데 그 한 장의 수강증이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나에게로 되돌아왔다. 마지막 되돌아 왔을 때는 강의를 시작하기 3시간 전이었다. 나는 가능한 인연이 있는 사람이 이 입장권을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일찍이 회의 장소에 가서 입장권을 처리하려고 하였다. 이 일을 처리하기 전에 나는 반드시 먼저 어머니께 한 번 가봐야 했다. 나의 어머니는 80여 세로, 우리 형제들은 윤번으로 저녁에는 어머니를 돌봐 드려야 하는데 그날 저녁은 나의 차례였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간단히 밥을 지어 먹으면서 강의를 듣는 문제를 이야기했다. 또 어머니에게 그 입장권이 여러 나라를 돌아보았던 과정을 이야기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순간 어머니가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병이 너무 중했다. 심한 심장병, 심부전, 신장기능 부전으로 병원에서는 이미 위독하다고 통보를 내린 상태였다. 반드시 의사의 지시에 따라 침대에 가만히 누워서 휴식해야만 하였다. 때문에 강의를 듣는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짧은 한마디 말에 의해 사태가 변할 줄은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어제 저녁 내가 꿈을 꾸었는데 당승(唐僧) 차림을 한 사부가 나에게 연공을 가르쳤다. 여윈 남자애를 데리고 왔더라.”라고 말했다. 나는 삽시간에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부처를 믿고 부처를 공경했으며 마음이 선량하고 고통을 이겨내셨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이것이 고인(高人)의 점화가 아니란 말인가. 우리는 토론하여 어머니께서 한 번 가서 강의를 듣는 것을 시험해 보자고 결정했다. 나는 동수에게 부탁하여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는 택시를 빌려서 어머니와 함께 황팅 체육관으로 달렸다. 강당에 들어서서 어머니가 사부를 보는 순간 나의 손을 꼭 잡으며 “이분이 곧 내가 꿈에서 본 그 사부님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어머니의 눈물이 이미 입가에까지 흘러내리고 있음을 보았다. 목소리마저 모두 변하였다. 어머니의 신체가 지탱할 수 없을까봐 강의 중 나는 마냥 근심이 되었고,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걱정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사부님의 말씀을 몰두하여 들었는데 조금도 위독한 환자 같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가 연분이 대단히 크다고 생각했다.
나의 깨달음이 너무 부족하고 또 번거로운 게 두려워서 둘째 날 사부님께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사진을 찍을 때, 어머님을 모시고 가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는 더 있을 수 없는 기회를 잃게 되었다. 삼일째 되던 날은 정원 문앞에까지 와서 차에서 내릴 때 동수들이 어머니가 너무 힘들어 하시는 것을 보고는 어머니를 업고 한 구간 걸었다. 그러나 얼마 안가 더 업고 갈 수가 없어서 우리 두 사람이 어머니를 부축하여 가는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심장병 외에도 심한 풍습, 관절의 통증으로 하여 걸을 수 없었다.
온몸이 부은데다가 6살 때 전족을 하였었기 때문에 무거운 머리에 비해 다리가 부실한 상태였다. 우리 두 사람이 어머니를 부축하여 앞으로 움직였는데 너무 힘들어 거의 지탱할 수 없는 정도였다. 그러나 더욱 근심스러운 것은 어머니께서 강의를 들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일어나는 것마저 어머니에게는 매우 힘든 일인데 정말 그의 심장이 사부님의 강의를 받아낼 수 있을지를 알 수가 없었다. 이때 나는 이런 모험을 하지 말아야 했는데 만일의 사태를 상상키 어렵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정말 후회가 되었다. 그런데 머리를 드는 순간 갑자기 사부님의 그 커다란 모습이 나의 앞에 나타났다. 온건하게 걸어오시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함께 사부님을 불렀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대답하시지 않고 마치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 것 같았다. 사부님은 걸으시면서 주목하시는 눈길로 우리 어머니의 신체를 보시는 것이었다. 걸어 지나 가신 후 우리는 머리를 돌려 사부님을 보았다. 사부님은 또 같은 눈길로 어머님의 등 뒤를 보고 계셨다. 그리고는 빠른 걸음으로 강당에 들어가셨다. 이때 정원 안에 있던 수련생들은 이미 모두 강의실에 앉아있었는데 오직 사부님께서만 혼자서 정원에 계셨던 것이다. 무슨 일이 있구나. 급한 일이 있구나. 나는 많이 생각할 사이 없이 강의실에 들어갔다.
다음날 어머니 신체는 매우 큰 변화가 나타났다. 소변량이 많이 증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피오줌이 나왔다. 어머니는 소변을 본 후 전신이 가벼워졌고, 증세도 없어졌으며 부은 것도 가라앉았다. 이때 나는 비로소 문득 어제 사부님께서 어머님의 신체를 정화해 주셨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사부님께서 강의하실 때, 여러 사람들에게 신체를 정화시켜 주시는데 왜 급하게 어머니에게만 단독으로 하셨을까? 자비하신 사부님께서는 어머님의 병이 위험하고(그때 어머니는 수시로 심장이 갑자기 멈출 위험성이 있었음) 와서 강의를 듣기도 매우 힘들었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어머님을 따로 정화시켜 주셨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매일 앞당겨 회의 장소에 오셨기에 만약 우리가 앞당겨 갔더라면 사부님께서 어머님의 신체를 정화해 주실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매일 수련생이 퇴근한 후 바삐 우리 집에 오는 것을 기다려서야 비로소 어머님을 부축하여 가야했기 때문에 그냥 일찍 가기란 무리였다. 오히려 사부님께서 정원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다가(오직 강의하시기 전 약간의 시간을 이용할 수 있었음) 우리가 문에 들어서면 급히 오셔서 정화해 주시곤 하셨다. 사부님께서는 아무 말도없이 하셨기 때문에 우리들마저도 느낄 수 없었다. 어머님의 신체에 격렬한 변화가 있을 때에야 비로소 알아차렸다. 사부님께서 강의시간에 하시는 것은 이미 어머니에게 도움이 안 되는 것이라 강의하기 전 아주 잠깐 동안의 시간을 이용하셨음을 알게 되었다.
사부님께서 제때에 오셨기에 어머니 생명은 비로소 구원될 수 있었고, 동시에 어머니의 신체를 근본적으로 정화시켰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후에 두려워 온몸에서 식은땀이 났고 마음속에는 사부님에 대한 감격으로 충만하였다. 자비하신 사부님께서는 일체를 통찰하시고 어머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명을 빼앗아 갈 뻔한 재앙을 선해시키셨다. 사부님께서는 “사실 나는 당신 자신들 보다도 더욱 당신들을 귀중히 여깁니다!”라고 하셨는데 여기에서 이미 입증되었다. 사부님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당신이 배우려고 한다면 나는 곧 당신에 대해 책임질 수 있습니다”라고 하셨다.《미국 제 1차 설법》
4. 악담으로 남을 해치는 일에 부딪혔을 때
어느 날은 사부님과 한 제자가 작은 음식점에서 국수를 드셨다. 식당주인이 국수를 들고 왔을 때, 사부님은 낮은 소리로 “이 국수에 소금을 너무 많이 넣은 것 같군요.”라고 한마디 말씀하셨다. 주인은 듣자마자 화를 내면서 “당신은 흠을 잡으려고 하는가, 먹어 보지도 않고 당신이 어떻게 소금이 많다는 것을 아는가?”라고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아무 말도 없이 국수를 드시기 시작하셨다. 식당 주인은 마치 자기가 옳은 것처럼 훈계를 늘어놓았다. 사부님께서는 다 드실 때까지 한마디 말씀도 하시지 않으셨다.
제자가 그릇을 거두어 주인에게 가져다줄 때, 사부님께서 쓰셨던 그릇 밑을 손으로 찍어서 맛을 보고는 주인에게 “확실히 소금을 많이 넣었습니다. 너무 짠데요.”라고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 모범을 보여주셨다. 그렇기 때문에 그토록 태연하셨다.
5. 석불사(石佛寺) 문을 지키는 노인의 이야기
사부님께서는 어느 하루 석불사에 가셨다. 소식이 빠른 일부 보도원과 수련생들이 급히 서둘러 가서 사부님을 만나 뵈려고 기다렸다. 오랫동안 기다려도 사부님께서는 오시지 않으셨다. 점심때가 되자 여러 사람들은 사부님께서 오시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각자 돌아갔다. 그들이 금방 가자마자 사부님께서 오셨다.
우선 사부님을 먼저 본 사람은 절에서 문을 지키는 노인과 그의 어린 손자였다. 사부님과 그 노인은 서로 인사를 나눈 후 이야기를 하였다. 후에 사부님께서는 파룬궁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면서 그에게 소개해 주셨다. 노인은 “나는 나이가 많고 배운게 없어 수련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부님께 본인과 전 가족들의 심병(心病)을 말했다. 그것은 그의 손자의 일인데 그 애는 머리가 좋지 않아서 학교에 가기 싫어하고 점점 더 보통 아이들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친절히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사탕 하나를 꺼내 주었다. 그 애는 기뻐하면서 먹었다.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지키는 노인의 집에서 기쁜 소식이 전해져 왔는데, 손자가 완전히 변했다는 것이었다. 총명해졌으며 학교에 가기를 좋아하고 말도 잘 들으며 성적도 좋다는 것이었다.
문지기 노인은 ” 이 파룬궁 사부님의 마음씨는 너무 좋습니다. 사탕 한 알로 우리 손자를 변하게 하였습니다. 사부님께서 가르치시는 파룬궁은 꼭 좋은 공법일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때부터 노인은 마을의 많은 사람들을 인솔하여 파룬궁을 수련하였다.
문장 완성: 2004년 9월 26일
문장 발표: 2004년 9월 27일
문장 갱신: 2004년 9월 27일 10:36:34
문장 분류: [천인사이]
원문 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4/9/27/8515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