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 2004년 9월 17일】
윈난(雲南)성 인민검찰원 귀중:
나는 장쥐팡(張菊芳)의 남편 탕쩌성(唐澤生)으로 아내를 위해 제소한다.
장쥐팡은 여자이고, 53세이며 쿤밍(昆明)시 첸진(前進) 목제가구공장의 퇴직 노동자이다.
1999년 7월 22일 오후, 장쥐팡은 시(市) 정부에 청원하러 갔는데 목적은 정부로 하여금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선량한 국민이며 파룬궁은 사람을 가르쳐 좋은 사람이 되게 하는 공법이라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서였다. 반시간도 안 되어 갑자기 몇몇 경찰들이 오더니 그들을 버스에 태워 시산(西山)구 제1 중학교로 데려가 심문을 한 후, 또 룽산(龍山)구 간부학교로 싣고 와서는 밤 12시가 넘도록 괴롭히다가 그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7월 23일, 중앙 텔레비전에서는 파룬궁을 모욕, 날조하며 비방하기 시작하였다.
1999년 10월 28일 오전 10시 경, 우화(五華) 공안국의 경찰이 와서 집을 수색하고 대법 책, 연공 테이프 등을 몰수해 갔으며 나아가 장쥐팡을 우화(五華) 공안분국에 끌고 가서 밤 10시까지 심문한 다음, 아들에게 그의 어머니를 집으로 데려가라고 하였다. 이튿날(10월 29일), 밤 9시 경, 당지 호적경찰, 주민위원회 사람들이 우리 집에 와서 장쥐팡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파룬궁을 수련하지 말라고 하였으나, 장쥐팡은 이렇게 좋은 공법을 연마할 것이라고 말했다. 언제까지 수련할 것인지를 묻자 장쥐팡은 죽는 그 날까지 수련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들이 듣고 나서 몹시 화가 나 계단을 내려가려고 할 때, 장쥐팡의 직장 보위과 사람도 올라오면서 장쥐팡이 대답하는 말을 들었는데 일단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갔다. 밤 9시경 몇몇 경찰이 와서 장쥐팡을 타이허(太和) 파출소에 데리고 가 48시간 감금하였다. 그러고는 장쥐팡의 직장 보위과 과장에게 와서 데리고 가라고 하였으며 또 나의 아들에게는 그녀가 외출하지 못하도록 보증을 서라고 하였다. 10월 31일부터 주민위원회와 장쥐팡의 직장 보위과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를 일주일 내내 감시하게 하다가 판룽(盤龍)구 사람이 심문을 한 후에야 감시를 해제하였다.
1999년 12월 22일 오후 2시 경, 장쥐팡은 한 친구의 집에 있었는데 경찰이 갑자기 들이닥쳐 그녀를 파출소로 끌고 갔다. 밤 1시가 넘도록 괴롭히다가 그녀를 판룽구 제1 구치소로 보냈으며 5개월 감금한 후, 2년 판결로 윈난(雲南)성 여자 노교소(勞敎所)로 보냈다.
나는 판룽(盤龍) 공안국의 경찰에게 따졌다. 무엇 때문에 파룬궁을 수련하지 못하게 하는가? 파룬궁은 “쩐,싼,런(眞,善,忍)”을 중하게 여기고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며,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심태를 잘 가늠하게 하고 일을 잘 하도록 가르친다. 이렇게 좋은 공법을현재 권력자는 무슨 이유로 사람들이 배우지 못하게 하는가? 그릇된 이치로 인민을 다스리며 마구 죄명을 씌어 선량한 백성들을 감금하고 있다. 나는 또 말하기를 나의 아내는친구 집에 갔다가 당신들에게 잡혀갔는데 그녀가 그 무슨 치안(治安)을 교란했단 말인가? 그녀는 길거리에 있은 것도 아니고 친구 집에 있었는데 무슨 일을 했기에 사회치안을 방해했다고 하는가? 당신들은 사회의 치안을 교란한 죄로 그녀를 체포했는데 천리(天理)가 용서치 않을 것이다! 판룽(盤龍) 공안국 경찰은 ‘당신이 불복하려면 쿤밍(昆明)시 노동교양 위원회에 가서 제소 하세요’ 라고 말했다. 나는 쿤밍(昆明)시 노동교양위원회를 찾아가서 나의 아내가 어디에 갇혀 있는지를 물었다. 그들은 또 나에게 만약 불복한다면 재심의(再議)를 신청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말하기를 만약 도리를 따질 곳이 있다면, 나의 아내는 당신들이 죄가 없는 사람을 모함한 것이어서 불법적으로 감금당하지 않았을것인데, 내가 어디에 가서 제소를 한단 말인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누구도 나의 물음에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장쥐팡은 2000년 5월 15일 오후에 윈난성 여자 노교소 1대대로 보내졌는데 문에 들어서자마자 장씨 성인 사람의 구둣발에 차였다. 노교소의 경찰이 나의 집에 왔을 때 나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한 나라에 선량한 국민이 없고, 원만한 가정이 없고, 법을 지키는 국민이 없고, 무사히 지내며 즐겁게 일하는 환경이 없다면 이 나라는 어떤 모양이겠는가. 당신들은 평화로운 우리 가정을 해체시키고 또 죄명을 머리에 뒤집어씌우고 있다. 나의 아내는 무고하며 죄가 없다. 나는 비록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지만 “쩐, 싼, 런(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선량한 사람으로 되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 없다.
2001년 5월 24일, 윈난(雲南)성 여자 노교소 웨이(魏)씨 성의 부소장, 양씨 성의 과장과 장쥐팡의 직장 보위과 사람이 또 그녀를 세뇌반에 보내어 강제로 전향(轉化)시키려고 하였다. 나의 아내는 “쩐, 싼, 런(眞,善,忍)”을 신념으로 하고 있는데 또 어디로 전향한단 말인가? 가짜, 사악, 쟁투, 부패한 데로 전향하란 말인가? 정말 너무나 사악하다.
2001년 7월 28일, 장쥐팡은 윈난(雲南)성 여자 노교소의 양씨 과장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에서 “쩐,싼,런(眞,善,忍)”을 신념으로 하는 것은 잘못이 없으며 파룬궁 수련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밝혔다.
2003년 3월 어느 날 오전, 장쥐팡은 마춘(馬村) 채소시장에서 파룬궁 진상자료를 배포하다가 현지 공안에게 붙잡혔다. 공안은 수갑을 채운 그녀를 끌고 집으로 와서 대법자료,녹음테이프, 녹음기를 빼앗아 갔으며 또 장쥐팡을 관두(官渡) 파출소에 데려갔다. 아무 것도 심문해 내지 못하자 그녀를 쿤밍시 제1 구치소(看守所)로 보내 한 달 반 감금하였다.
2003년 5월 9일, 관두 공안국의 경찰은 장쥐팡을 윈난성 여자 노교소에 보냈다. 노교소 총 본부 병원에서 신체검진을 할 때, 그녀의 체온은 37.5도였다.그때가 바로 사스 방지기간이어서 노교소에서는 감히 받지 못하였다. 경찰은 또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2004년 7월 13일 오후 5시 경, 장쥐팡은 판룽 강변에서 쿤밍시 관두 공안분국에 의해 체포되어 밤사이에 윈난성 여자 노교소에 보내졌다. 이튿날 7월 14일, 나는 집 문에서 쪽지 한 장을 발견하였는데 쪽지에는 나에게 마춘 파출소에 가서 장쥐팡의 물건(집 열쇠 등)을 가져가라고 쓰여 있었다. 그날 오전 나는 파출소에 갔다. 파출소 사람들은 나에게 관두(官渡) 구 610에 전화를 하라고 했다. 내가 관두 610에 전화를 하자 610 사람은 나로 하여금 장쥐팡에게 옷을 가져다주라고 했다. 내가 그들에게 왜 장쥐팡을 체포 했는지를묻자 그들은 지난해 사스 때문에 감금하지 않은 것을 지금 다시 집행하는데 내년 5월까지 라고 했다. 7월 20일, 나는 노교소에 장쥐팡을 보러 갔으나 노교소에서는 엄격히 관리해야 하므로 만날 수 없다고 했다. 8월 20일, 나는 다시 장쥐팡을 보러 갔는데 경찰의 감시 하에서 10분간 면회하였다.
법을 잘 지키면서 사는 사람을 경찰은 마음대로 체포하고 마음대로 집행하는데 인권은이미 어떠한 지경에까지 짓밟히고 있는가? 나는 아래와 같이 요구한다.
1. 관두(官渡)공안국이 불법적으로 체포하며, 인권을 짓밟고 침해하는 범죄행위를 엄히 추궁하고 즉각 사람을 석방할 것.
2. 우화(五華) 공안분국의 불법적인 가택수색, 심문, 구류 등의 범죄행위를 엄히 조사하고 몰수해간 일체의 대법 물품들을 그대로 되돌려주며 아울러 공개적으로 사과할 것.
3. 판룽(盤龍) 공안분국 관련인의 법적 책임을 엄히 조사 처리할 것.
4. 관두(官渡)구 610 요원의 법적 책임을 추적 조사할 것.
5. 본 소장 사본을 아래 부문에 보낸다.
관두(官渡) 공안분국, 우화(五華) 공안분국, 관두(官渡)구 610, 윈난(雲南)성 여자 노교소, 타이허(太和) 파출소, 판룽(盤龍)구 제1 구치소, 쿤밍(昆明)시 첸진(前進) 목제가구 공장, 쿤밍(昆明)시 제1 구치소, 쿤밍(昆明)시 노동교양위원회.
제소인: 탕쩌성(唐澤生)
문장완성: 2004년 9월 16일
문장발표: 2004년 9월 17일
문장갱신: 2004년 9월 16일 20:12:30
문장분류: [천인사이]
원문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4/9/17/844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