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중팡츙(鐘芳琼)
【명혜망 2004년 7월 20일】
제4부 불법적으로 노동교양을 받다
머리말: 강제 노동수용소에서 수용된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자문자답한다.: 중국에서 제일 큰 사교가 무엇인지 아는가?–강제 노동교양이다!
제1장 진상은 감출 수 없다
길 잃음(迷失)과 귀정(歸正)
2000년 7월 28일 내가 쓰촨성 즈중난무스 여자 강제 노동수용소에 끌려간 후에 경찰은 마약 중독자 한명을 시켜 내 곁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감시하기 시작하였다.
강제 노동수용소에 있는 죄인들은 반드시 감옥 규칙 35조를 외워야 한다. 나는 법을 어긴 적이 없다는 이유로 규칙 외우는 것을 거절하였다. 이 때문에 경찰은 나의 수면을 박탈하였으며 암암리에 나를 감시하는 자들에게 압력을 가하였다. 나를 감시하는 자들도 이 일에 말려들어 같이 잠을 자지 못하게 된 것이다. 경찰은 ‘유다’까지 파견하여 ‘세뇌’를 시도하였으며 나를 다른 파룬궁 수련생과 말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3일 후 나는 나와 같이 산에 간 대법제자들이 모두 5중대를 떠나 7중대(파룬궁 대대)로 간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외롭고 도움을 받을 곳이 없어진 것이다. 그 때 나는 아직 법의 이치에서 모든 것을 깨닫지 못하였으며 사람의 관념을 가지고 생각하기를 다른 사람이 나보다 교육도 많이 받고 수련한 기간도 길며 전부터 견정한 마음으로 걸어 왔다는 이유로 다른 수련생들이 하는 것이 정확한 것이라고 인식하였다. 이리하여 나는 본심에 어긋나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사람을 따라서 ‘회개서’를 썼다. 8월1일 나는 7중대에 가게 되었다. 비록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매일 사부님의 경문을 외우면서 겉과 속이 다른 생활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 동안 마음속으로는 매우 고통스럽고 정신이 아득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이 기간에 나는 나와 같이 연공장에 있던 왕쉬쯔(남, 28)의 사건을 들었다. 그는 북경에 가서 청원한 탓에 불법으로 강제노동을 받게 되어 멘양(綿陽) 신화수용소에 있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독방에 있거나 아니면 구타를 당하거나 전기 고문을 받거나 모욕을 받아야 했다. 경찰은 심지어 다른 범인을 시켜 강제로 똥오줌 먹이기도 하였다. 왕쉬쯔는 8개월이나 견지하면서 쩐(眞), 싼(善), 런(忍)에 대한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2000년 8월에 박해 받아 세상을 떠났다.
밤에 잠이 오지 않아 이부자리에서 뒤척이면서 불안한 마음으로 3개월을 보냈다. 참 고되고도 긴 3개월 이었다. 사부님의 새로운 경문 는 길 잃은 나의 표지가 되었다. 나는 틀렸다는 것을 알고 바르게 시정하여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많은 동수(특히 청두 동수)들과 서로 토론하고 연구하기 시작하였는데, 대부분 엄정성명을 썼고 견정한 마음으로 수련하겠다고 표명하였다. 나도 2000년11월25일에란 제목으로 문장을 써서 엄정성명을 발표하였다. 내용은 “내가 전에 쓴 본심에 어긋나는 모든 글은 무효이다.” 였다. 그리고 나는 내가 수련하여 온 과정을 써서 수용소의 우(吳)소장, 관리과의 리쯔챵(李自强) 과장, 7중대 중대장 리쥔(李軍), 그리고 대법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날 나는 대장 장샤오팡(張小芳)으로부터 대회에서 지적을 받았다. 아울러 즉각 두 명의 마약 중독자가 24시간 나를 감시하였으며 다른 동수와 말하는 것을 금하였다. 더는 펜을 들어 문장을 쓰지 못하게 하였고 강제 노동 기간도 3개월 추가 되었으며, 이러한 조치로 나로 하여금 이미 자유를 잃은 환경에서 또 자유를 잃게 하였다. 감옥살이가 더욱 가중된 셈이다.
2001년 4월 경에 펑쥬위는 방송국의 기자들과 7중대를 인터뷰하는 일이 있었다. 나는 그때 마침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는데 펑쥬위가 나를 불렀다. 그는 기자들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이 사람이 바로 중팡츙입니다. 이전에는 사업하는 분이었는데 참 능력이 대단했어요.”라고 하였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카메라며 마이크는 이미 내 앞에 놓여 있었다. 펑쥬위는 이어서 “중팡츙! 전에 한동안 ‘전화’하지 않았어? 그런데 왜 또 번복하는 것이지?”라고 물었다. 나는 “내 마음속에서는 전혀 ‘전화’한 적이 없으며 그런 개념도 없다. 어떻게 변하라고 하는가? 착한 사람을 악한 사람으로 변하라고 하는가? 나는 줄곧 파룬따파가 좋다고 여겨 왔는데 오로지 비인간적인 정신적 육체적 시달림을 이겨내지 못하여 어느 순간에 진실을 말하지 못한 것뿐이다. 지금 잘못을 뉘우치고 즉시 시정하려 하고 있으며 계속 진실만 말하려고 한다.”라고 답하였다.
위선적인 연기
2001년 구정이 돌아왔다. 청두시 노동교양 관리국은 강제 노동수용소에 와서 모든 수용인원을 위문하는 공식적인 행정 업무를 수행하였다. 대회가 끝나고 몇몇 작은 소그룹로 나누어 좌담회를 열었다. 소그룹마다 둘러 앉아 얘기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 모두 같은 고향 사람이니까 어떠한 어려움이 있으면 말해 주세요. 책임지고 해결하여 줄께요.”라고 하였다. 나는 “ TV에서 나의 일을 인용하여 부실적인 보도로 대중을 기만하는 내용을 보도하였다. 나는 진상을 밝히려고 사실을 밝히는 문장을 써서 보냈는데 불법으로 강제 노동수용소에 오게 되었다. 나는 억울하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노력해 왔고 진실을 말하는 것도 죄가 있는가? 나는 집에 돌아가야 한다.”라고 하자 그들은 매우 놀란 표정으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어느 구에 있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청화구’라고 답하였다. “돌아가서 꼭 물어 볼께요.”라고 그들은 말했다. 그러나 결과는 회답이 없었고 무소식 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번 좌담회 비디오 촬영한 것을 TV를 통해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정부가 파룬궁 수련생에 대해 대단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할 것이다. 어떻게 따뜻한 보살핌을 주고………
경찰은 장기적으로 ‘사오(邪悟)’한 사람을 시켜 나를 찾아와서 말을 나누게 하였는데 그들은 항상 ‘고층차’에서 수련하고 있는 것으로 위장 하였으며 사악하고 그릇되게 깨달은 자신들의 이치를 주장하면서 나를 미혹시키려고 시도하였다. 그들은 사람을 교체시켜가면서 대법을 모욕하고 사부님을 비방하는 방법으로 내가 수련을 포기하기를 바랬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약 듣지 않으면 끝없는 비웃음과 모욕하는 말을 듣게 된다.
사부님은 란 문장에서 “여러분 생각해 보라. 현재 이 하나의 큰 검증은 바로 사부가 계시지 않을 때 대법이 어떠한가, 수련생이 어떠한가의 큰 심사(大考核)이다. 사부가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어찌 당신들이 어떻게 가서 하라고 더 알려 줄 수 있는가? 또한 그것들이 사악한 사람을 통제하여 사람의 일체 마음, 일체 집착에 대하여, 전면적이고도 빠짐없이 와해식으로 대법과 제자를 검증하고 있다.” 라고 하신 적이 있었다. 나는 속으로 법을 외우면서 그들의 사악한 사기극에 흔들리지 않았다.
공산당은 좋다?
경찰은 우리들에게 “공산당은 좋다”라는 노래를 부를 것을 요구하였다. 나는 부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그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나는 입을 벌릴 수가 없었다. 온 몸이 떨리고 목이 막혀 갑갑하여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여기까지 들어 온 것이 아닌가? 공산당이 좋아서 나처럼 쩐, 싼, 런(眞, 善, 忍)을 믿는 사람들을 강제로 여기에 잡아들여 ‘전화’하려는 것인가?
대장 장쏘팡은 내가 ‘공산당이 좋다’라는 노래를 부르지 않는 것은 공산당을 반대하는 것이라고 몰아 세웠다.
살아있는 광고
매번 말할 기회가 있으면 나는 말하였다. TV와 신문에서 발표한 것은 모두 대법을 모욕하고 옳고 그름을 뒤집어 놓은 수작이며, 나는 나를 예로 들어 대법을 모욕하고 대중을 기만하는 것은 더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지적하였다. 나는 TV에서 내가 대법을 배운 후에 혈관에 암이 생긴 것도 나았다는 사실을 방영하지 않고 파룬궁을 연마하여 혈관에 암이 생겨 일어나지도 못하고 누워 있다고 허위 선전을 하면서 내가 나가서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여기에 가두어 놓았다고 말하였다.
나는 중대에서 ‘파룬따파 하오(法輪大法好)’라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광고가 되었다. 이 사실은 나중에 간수로 하여금 이를 악물고 욕을 하게 할 정도였다. “입 닥쳐 결국 너는 움직이지 못하는 날이 올거야…..”
제 2장 대법입자
감금되다
2001년7월 나와 다른 10명의 견정한 대법 수련생들은 작은 방에서 같이 감금 생활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장기적인 감시와 인신공격을 받으면서 한 발자국도 방문을 넘지 못하게 되었다. 아침6시부터 시작하여 밤10시30분 까지 하루 종일 군인이 앉아 있는 자세를 유지 하면서 두 눈은 수평으로 앞을 보고 허리를 굽히지 못하며 두 손은 무릎에 놓아야 하였다. 앉은 자세에서 눈을 감지 못하며 말하는 것은 더욱 심하게 금지하고 엉덩이를 걸상에서 떼지 못하게 하였다.
우리는 거의 50도가 넘는 고온의 환경에서 지내야 했다. 나는 동수 이광칭의 옷이 땀에 젖어 마른 적이 없는 것을 보았으며 너무 습한 환경이라 곰팡이까지 난 것을 발견하였다. 다른 동수 황리싸는 온몸에 난 옴으로 참기가 어려웠으며 손을 대지도 못하여 옷에는 피와 황색 이물질이 섞여 분간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후에 그녀는 박해 받아 세상을 떠났다. 물까지 주지 않았다. 일주일에 물 한번 주는 것으로 머리 감고 샤워하고 빨래를 해야 했다. 물을 주었다는 표시만 한 것이다. 매일 고온으로 인해 몇 사람이 혼미상태로 들어가는 까닭에 간수는 저녁에 인원 파악을 하고는 문을 닫을 수가 없었다.
“대법제자가 무엇 때문에 사악에 의하여 잔혹하게 시달림을 받고 있는가 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 대법에 대한 바른 믿음(正信)을 견지하기 때문이며, 그들이 대법 중의 한 입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내가 9월에 9중대에 가기 전까지 지속되었으며 남아 있는 동수들은 계속 그러한 환경에서 견지하여 나갔다. 뿐만 아니라 눈으로 동수들이 비인간적인 박해를 받는 것을 보면서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것이다. 예를 들면 나와 같은 난무스 여자 노동 수용소에 있는 파륜공 수련생 주샤(여, 32)의 경우이다. 수용소 7중대 중대장 장쇼팡의 지시에 의해 두 명의 마약 중독자가 그녀의 입을 막고 모래땅에 눕혀 끌고 다녔다. 그들은 CCTV 감시 범위에 들어서면 그녀를 풀어주고(CCTV를 피하기 위하여) 말하고 웃는 척하다가 CCTV의 촬영범위를 벗어나면 다시 묶어 끌고 다녔다. 몇 명이 돌아가면서 2명씩 짝을 지어 교대로 계속 진행하였다. 그녀의 등과 다리는 온통 모래였고 피와 살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장쇼팡은 비록 그녀의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방식으로 계속 시달림을 주었다. 그는 열 몇 명의 ‘유다’를 시켜 그녀에게 달려들어 머리를 잡고 손을 비틀고 침을 뱉고 위에 올라서서 때리도록 하였는데 그들이 지쳐 맥이 빠져서야 그만두었다. 그 결과 그녀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였다. 장쇼팡은 마지못해 의사를 불러 살에 들어간 모래를 제거하라고 하였지만 불가능한 일 이었다. 그녀는 결국 고액의 치료비용까지 부담해야 했다.
1년6개월의 불법 강제 노동교양과 10개월 동안 연속 3차례의(삐현 펑주 신진 세뇌반) 세뇌를 한 결과, 잔혹한 박해와 비인간적인 시달림으로 그녀는 정신이상이 되었다. 정신과 육체 모두가 인간의 한계를 넘는 잔혹한 핍박을 받은 것이다. 실로 2003년 9월에 펑주에서 세뇌를 하였을 때 그녀는 이미 시달림으로 인해 환각, 헛소리,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다. 그러나 악인 허휀후는 그녀를 집에 돌려 보내는 것에 동의하지 않고 계속 세뇌를 하였다. 이러한 박해는 그녀의 병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어 장기적으로 환각, 환청, 헛소리를 하게 했다. 무의식 중에 창문을 때리고 대소변을 아무데서나 보며…… 이런 상황에서 외부의 압력을 받고 악인은 부득불 2004년 4월 2일 그녀를 집에 보냈다. 지금 주샤의 정황은 아직도 집에서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하며 완전히 어머니(70세)에 의지해야 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이와 동시에 또 문화대혁명 중에서 박해를 받아 정신이상에 걸린 그녀의 아버지를 돌봐야 했으며 4살 난 아이까지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이미 온갖 시달림에 최선을 다한 상황이라 더 이상 생활을 유지하여 나갈 힘이 없었다. 그녀의 남편 왕스린도 대법제자여서 지금 세 번째 불법으로 멘양신화 강제 노동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다.
장펑칭(여, 50), 경찰에 의해 불법으로 1만 여 위안의 벌금을 낸 후 또 불법구류를 당한 후에 불법으로 강제 수용소에 오게 되었다. 수용소에 있는 동안 그녀는 장기적으로 7중대장 장쇼팡에게 전기봉으로 전기 고문을 받았으며 양말로 입을 막아 나무에 매달아 놓은 적이 많았다. 십자가 형태로 문을 등지고 두 손을 양 창문에 매달아 놓은 때도 많았다. 어느 하루 호위대에 있는 남자 경찰이 땅에 눕혀 놓고 밧줄로 목을 졸라 생명을 잃을 뻔한 적도 있었다. 또 한번은 7-8명이 달려들어 그녀의 머리, 팔, 다리, 목 등을 고정시키고 호박국을 강제로 먹였는데 호박 덩어리가 목에 걸려 내려가지 않았다. 한 순간 숨이 넘어갈 뻔하였다. 장평칭은 2002년 5월 석방되어 집에 돌아갔다. 집에 간지 얼마 되지 않은 2003년 8월경 진상자료를 배포하다가 불법으로 피현 구치소에 납치되어 갔는데 그곳에서 이름 모를 약물을 주사하여 정신이상이 되어 기억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심지어 박해를 심하게 받아 다리도 정상적인 보행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비록 2004년 1월에 석방되어 집에 다시 돌아갔지만 지금도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에 또 불법납치로 행방불명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감옥에 있는 경찰이나 간수, 범인에게 비열하고 잔혹한 각종 수단으로 시달림을 받고 있다. 어떤 사람은 춘절 당일 호위대 경찰에게 심하게 맞고 비가 오는 상황에서 나무에 매달려 중도에 의식을 잃은 적이 있었다. 경찰의 지시를 받은 마약 중독자가 강제로 화장실에 끌고 가 피 묻은 화장지를 입에 강제로 넣는가 하면 옷을 벗겨 나체로 거울 앞에 서있게 하고, 모욕을 당하거나 몽둥이로 얻어맞아 의식을 잃은 일이 종종 발생하였다. 물고문을 하였는데 벽돌로 문을 막고 그 안에 물을 채운 다음 대법제자를 강제로 밀어 넣어 그 속에 있게 하였다. 혹은 강제로 음식을 먹이려고 이빨을 강제로 뽑은 일도 있었으며, 지속되는 무더위 속에서 대법제자를 구타한 다음 두 손을 묶고 두꺼운 이불을 덮은 후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다. 경찰이 고압 전기봉으로 지속적으로 전기고문을 가한 경우도 있었다. 30여세 여자 수련생이 강제적인 ‘전화’에 굴복하지 않자 800번 이상의 일어서고 앉는 동작을 반복하게 하여 바지가 찢어져 살이 보일 정도였다. 이 수련생은 벌을 받고 1주일이 지난 후에도 걸음을 걸을 수가 없었으며 화장실에서 가도 앉지를 못했다……
한번 또 한번, 파룬궁 수련생들은 선(善)한 마음으로 감옥의 경찰과 범인들을 감화시켰다. 부단히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 주었고 많은 경찰은 파룬궁은 전혀 TV나 매체에서 선전한 것처럼 나쁜 것이 아니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자 경찰은 공적인 장소에서 그저 겉으로만 우리에게 흉악한 표정을 지을 뿐 사적인 장소에서는 우리에게 “우리도 파룬궁 수련생이 좋은 사람이라고 알고 있어. 그러나 우린 다른 사람(장쩌민)이 주는 돈을 받지. 우리는 다른 사람 손에 쥔 총처럼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가 없고 그저 상부의 지시에 따라서 할 뿐이야.”라고 말하였다. 비록 경찰들도 수련자를 박해하여 죄를 지었지만 이들을 시켜 진정으로 대법을 모욕하고 온갖 혹형으로 수련자에게 시달림을 주며 심지어 대법제자의 생명을 앗아가는 진정한 원흉은 장쩌민이다.
정념으로 마굴에서 뛰쳐나오다
9중대는 파룬궁 수련생과 마약 중독자가 섞여있는 중대이다. 그곳에서 매일 경찰은 두 명 이상의 마약 중독자를 시켜 수련생을 감시하면서 대법을 모욕하는 문장을 읽게 하고 일주일에 한 번 강제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도록 했다. 나는 계속하여 TV에서 전에 보도되었던 것이 대법을 비방하는 보도라고 주장하면서 다리에 있는 상처를 그들에게 보여 주었다. 마약 중독자들은 이 사실을 듣고 모두 파룬궁이 억울하다고 여겼으나 마음속으로만 알고 겉으로는 나타내지 않았다.
어느 날 후 간부는 내게 말하기를 “중팡츙, 그저 ‘전화’하지 않아서 그렇지 개인적으로 말하면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어쩌면 그렇게 생각이 통하지 않는가? 너무 고집 부리지 말고 ‘전화’하기만 하면 집에 보낼게.”라고 하면서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전화자’를 시켜 삼박 삼일 동안 나에 대한 ‘전화’공세를 강화하였다. 그들은 “전화’하지 않으면 어떻게 나가? 아니면 여기서 날아 나갈 참인가?”라고 하였다. 나는 “누가 나를 여기에 가두었다면 바로 그가 날 원상태대로 복귀시켜야 해! 착한 사람은 죄가 없으니까?”라고 답하였다. 경찰은 “지금 파룬궁 수련자를 반혁명으로 몰고 있는데 ‘전화’하지 않으면 모두 신쟝에 보내어 황무지를 개간하게 하고 종신 감금이야.”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압력과 협박에 견디다 못해 ‘전화’한 수련생이 집에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마음속으로 ‘난 당당하게 수련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심지어 총살형을 받아도 난 진실만 말할 것이고 사부님을 배신하지 않고 대법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을 지켜 나갈 것이다.’라고 생각하였다. ‘전화’하지 않는 수련생은 한 명도 놓아 주지 않을 뿐더러 심지어 1년 이상 더 구속하였다. 그 후로 나는 매일 법을 외우기 시작하였으며 매일 을 외우는 외에 기억에 남는 경문 40여 편을 두 번 외우고 나서 잠을 잤다.
대법의 지도 하에서 정념으로 마굴을 벗어나다
2001년 9월30일, 이 날은 나의 만기 석방의 날에서 3개월이나 더 구속 당한 날이다. 오후 3시 경 경찰은 갑자기 나더러 짐을 싸라고 하였다. 나는 신쟝에 가서 종신토록 황무지를 개척하면서 감금 생활을 하게 되는가 하여 모든 물건을 챙겼다. 대문을 나서 완낸창 파출소 경찰 위따핑과 사무실 사람이 보이자 집에 간다는 것을 눈치 챘다. 나는 따라온 수용소 간부에게 “내 짐을 9중대에 넘겨주세요. 집에 가는데 이렇게 많은 짐은 필요 없어요.”라고 하자 옆에 있던 위(魏)경찰도 차에 짐을 실을 자리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간부는 “이미 가지고 나온 물건은 다시 돌려보내면 안되지.”라고 하였다. 나는 알았다. 내 짐을 중대에 돌려 보내면 다른 대법제자들은 내가 집에 갔다는 것을 눈치 챌 것이 아닌가? 경찰은 기타 견정한 대법제자를 속이지 못할 것이 아닌가?
어디를 가더라도 여전히 수련한다
차에서 위경찰은 내게 물었다. ‘중팡츙 아직도 수련을 계속하는가?’ 나는 ‘한다.’라고 말하였다. 차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수련을 계속하는 것을 못 마땅히 여겨 비웃었다. “교훈이 아직도 적어? 좀 깨어나야 하는 것 아니야? 지금 우리 사무실에 이주임이 새로 왔는데 돌아가서 천천히 말하여 주지.”라고 하였다. 가는 길에서 나는 강제노동 수용소에 있는 경찰이 어떻게 대법제자를 박해하고 나를 박해하였는가를 알려주었다. 대법의 아름다움, 신비함, TV, 신문에서 어떻게 파룬궁을 모욕하였는가를 말해주고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수련이야기를 알려 주면서 그들이 옳고 그름을 분명히 가리고 사기에 넘어가지 말라고 권유하였다. 경찰은 “강제 노동수용소에 보냈더니 ‘전화’는 커녕 더 견정해졌네! 이번에는 돌아와서 우리를 ‘전화’하네. 우리도 당신처럼 강제 노동 수용소에 들어가라는 건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강제노동 수용된 것은 오로지 진실만 말하고 착한 사람이어서 간 것인데 당신들은 이런 일이 정상이라고 보는가? 냉정한 마음으로 다시 생각하여 보라.”라고 권유하였다.
저녁 8시 경에 파출소에 도착하였다. 나는 간단한 서류절차만 밟고 집에 가는 줄 알았는데 경찰 위따핑이 말하기를 “소장이 퇴근하였으니 오늘은 여기서 쉬고 내일 소장이 오면 해결 합시다.”라고 하였다. 나는 견결히 반대하여 나서며 “아니오. 난 집에 가야 합니다. 난 이미 자유의 몸입니다. 죄가 없는 사람을 보고 왜 여기에 있으라고 하는 것 입니까?”라고 묻자 위경찰은 “죄가 있다는 것이 아니고 그저 여기서 하루 밤 있으라고 하는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나를 강제로 파출소에 머무르게 하였다.
나는 혼자서 음습하고 좁은 공간에서 지내야 했다. 아침이 되자 나는 연공을 시작하였다. 출근 시간이 되어 소장은 랑모모를 데리고 카메라를 가지고 오더니 위경찰과 같이 방에 들어 왔다. 나를 보자 “사람은 예쁘게 생겼는데 어떻게 여기에 와서도 계속 연공을 하는가?”라고 했다. 나는 “연공인은 어디를 가거나 시간만 있으면 연공을 합니다.”라고 하자 그는 “그럼 오늘 아침에 연공한 것을 다시 한번 보여 줄 수 있나?”라고 물었다. 나는 연공 시범을 보여 주었다. 옆에 있던 사람은 사진을 찍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들이 이것을 증거로 삼아 계속 박해하려고 하는지를 몰랐다.
제3장 여파가 가라앉지 않다 (餘波未平)
다시 구치소에 들어가다
오후가 되자 위따핑은 나를 구치소로 압송하려고 하였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난 아무 죄도 없으니 가지 않을 것이다. 집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였는데 무슨 이유로 다시 구치소에 들어가라고 하는가. 당신들은 법을 어기고 있다. 나는 당신들을 고소할 것이다.”라고 하자 웨이다핑은 “고소하려면 구치소에 가서 하시오.”라고 하였다. 나는 또 한번 웨이다핑에 의해 쥬루춘 구치소에 압송되었다.
구치소에서 나는 당직 경찰에게 말하기를“ 나는 상소를 제기하려 합니다. 나는 노교소에서 오늘 만기 석방되었는데 집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파출소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나를 강제로 여기에 데려왔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자 경찰은 “오늘은 국경일이어서 모두 휴가를 갔으니 3일 날 돌아오면 다시 얘기합시다.”라고 하였다. 나는 “국경일, 99년 국경일에도 나는 여기에 있었어요. 이 몇 년 동안 모든 명절날을 난 모두 감옥에서 보냈어요. 왜 그랬는지 아세요? 오로지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진실을 말한 탓에 열 한 번이나 불법으로 구속되었고 심지어 감옥살이 까지 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강제 노동을 받게 되었는지 아세요? 그것은 TV에서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않고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여 반신불수가 되었다.’라고 선전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당신들이 제일 잘 알고 있어요. 그것은 내가 노교소에 가기 전에 여기서 열 번이나 구류되었기 때문이죠. 당신들은 당사자 입니다. 결국은 내가 쓴 한편의 문장 때문에 강제 노동 수용을 하게 되었죠. 당신이 말해보세요 억울한가, 억울하지 않겠는가를. 장(江)씨 집단은 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두려워할까요?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어요?”라고 하자 경찰은 그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힘들게 3일을 기다렸다. 아침에 경찰이 감방을 검사하러 왔는데 나는 그에게 “나는 상소를 제기하련다”고 말했다. 나는 직접 상소장(申訴)을 양**소장에게 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양**는 내게 이렇게 알려 왔다. “전화를 하여 완년창 파출소에 물어 봤는데 국경일 휴가가 8일까지라고 하니 8일까지 기다리시오.”라고 하였다.
사악이 수단을 다 써도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다
8일 오전 소장 양**의 호출을 받고 나는 소장 사무실에 갔다. 사무실에는 파출소에서 온 경찰 위따핑과 사무실 주임 이챵쥔, 그리고 주민위원회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나에게 수련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쓸 것을 요구하면서 쓰면 즉시로 집에 돌려보낸다고 하였다. 나는 “이렇게 좋은 공법을 무슨 이유로 수련하지 않겠어요? 각서를 쓰려했다면 2년 전에 벌써 썼지요. 이제 와서 뭘 쓰겠어요? 당신들은 나를 안지 이미 2년이 되었는데 나와 파룬궁에 대해 모두 일정하게 알고 있으리라 믿어요.”라고 하자 그들은 “당신은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이 다 좋아!”라고 하였다. 나는 “이것도 파룬궁을 배우고 나서 좋아 진 것 아닌가요? 그럼 당신들이 말해 보세요. 파룬궁이 도대체 어디가 나쁜가?”라고 하자 그들은 “어찌됐던 정부가 나쁘다고 하면 나쁜 것이지 뭐, 우리는 정부의 말을 들을 거야.”라고 하였다.
내가 각서를 쓰지 않는 것을 알고 그들은 즉시로 떠났다. 나는 그들을 붙잡고 그들과 같이 집에 가겠다고 하면서 죽어도 여기에 있지 않겠다고 하였다. 소장 양**는 이런 상황을 보고 나를 만류하면서 “중팡츙, 인내성 있게 15일만 기다려, 며칠 남지 않았으니까.”라고 말했다. 바로 사부님이 에서 말씀한 것처럼“사악 그것이 어떻게 악독한가 만을 보지 말라. 지금 그것은 이미 있는 술수를 다 쓴 것으로 단지 성질을 규정(定性)하는 것을 끊임없이 승급시키는 것과 여론에서 가짜를 조작해 내고 변태적인 심리로 줄곧 그런 수련생들을 핍박하여 무슨 회개서(悔過書)를 쓰게 하고 무슨 싸인을 하게 할 뿐이다. 가짜이고 사람의 마음을 개변 시키지 못할 줄 번연히 알면서도 왜 기어코 이처럼 하는가? 왜 기어코 당신더러 그 싸인을 하라고 하는가? 왜 당신이 기어코 연마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야만 비로소 당신을 풀어주는가? 이쪽에서 연마 한다면 유죄판결을 하고 저쪽에서 연마하지 않는다고 한마디 말을 하면 사람을 풀어줄 수 있는데 이 차이가 너무나 큰 것이 아닌가? 정상적인가? 정상적이 아니다. 그건 아주 뚜렷하지 않는가? 바로 당신더러 떨어지게끔 하고 바로 당신더러 그 한 마디 말을 하게끔 하는 것이다.”
10일 오전 9시쯤에 갑자기 나를 찾았다. 나는 또 무슨 일이 생겼겠지 라고 생각하였다. 문 앞까지 가서야 경찰 위따핑을 보았다. 그는 나를 보고 “가서 짐을 챙겨 집에 갑시다.”라고 하였다. 나는 감방으로 돌아가 짐을 정리하였다. 같이 있었던 두 대법제자는 나를 보고 “ 15일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요?”라고 묻자 나는 “원래부터 불법인데 규칙상으로 하면 하루도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 것이야.”라고 대답 했다. 후에 그 중 한 여자 아이 펑소윈이 강제 노동 수용소에 잡혀 들어갔는데 매우 견정하게 나서서 사악을 저지하였다고 들었다. 그녀는 청두전자과학기술대학(成都電子科技大學)를 졸업하였다.
신분증 풍파
내가 집을 산 후 바로 불법 노동 수용소에 들어간 탓에 집에 관한 문서를 처리하지 못하였다. 내 어머니는 9살 애를 데리고 살면서 여기에 관하여 알지 못해 그때까지 방치하여 두고 있었었다. 집문서를 정리하려면 신분증이 필요하였는데 내 신분증은 처음으로 북경에 갔을 때 경찰서에서 몰수 하였으며 파출소에 가서 다시 발급을 받아야 했다.
11월, 나는 호적이 있는 룽탄스(龍潭寺)파출소에 가서 담당 경찰 랴오유량을 찾았다. 그는 만나자마자 “지금 어때요?”라고 물었다. 나는 “지금 집에 돌아와서 많이 나아졌고 오늘 와서 신분증을 재발급 받아서 등기를 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럼 이 일에 대한 인식을 써 오세요.”라고 하면서 종이와 펜을 주었다. 나는 앉아서 진지하게 써내려 갔다. : 파룬궁은 나에게 건강과 생명을 주었다. 그러나 장(江)씨 집단의 박해를 받아 2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게 되어 집에 있는 어머니와 아이는 갖은 고생을 다하였다.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좋다. 법륜대법(法輪大法)는 유례없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다! 나는 더욱 견정하게 수련을 하려고 한다. 이런 내용을 써내려 갔다. 그는 이것을 보고 노발대발하여 말했다. “이런 인식이면 지금이라도 감옥에 다시 집어넣을 수 있어.” 나는 즉시 일어나 위엄있게 말했다. “당신이 문제 삼을 일이 아니야! 당신 같은 경찰들은 진실을 들으려 하지 않는데 내가 거짓말하는 걸 들어야만 당신 마음이 편하겠어?” 저는 계속 정념으로 저지하였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더니 나중에는 “그럼 이것을 개인 파일에 보관하여 둘게요…..”라고 하였다.
등기소(辦證中心)에 갔더니 직원이 말하기를 아직도 많은 신청서와 서류에 도장을 찍어야 한다고 했다. 다음날 나는 또 룽탄스 파출소에 갔다. 전에 있던 랴오 경찰은 회의를 하고 있어 나 더러 사무실에 가서 도장을 찍어도 된다고 하였다. 나는 사무실로 가는 도중에 계속 발정념을 했다. 사무실에 들어서서 인사를 하고나서 자신을 소개하고 온 목적을 말했다. 그들은 듣고 놀란 표정으로 “당신이 바로 중팡츙인가? 당신 때문에 우리가 수많은 반성문을 썼고 늘 상사의 비평을 받았는데 오늘 처음으로 본인을 보네.”라고 하였다. 나는 내가 법을 얻은 후로 몸이 좋아진 사실과 강제 노동 교양소에 들어간 원인을 알려 주었다. 그들은 나의 말을 듣고 동정하면서 “당신은 참 능력도 좋은 사람이야. 이런 능력으로 돈을 많이 벌어서 우리 사무실에 좀 기부하여 보기에 좀 좋게 하면 좋지 않는가? 지금 당신의 상황을 봐 너무 그렇지 않아? 돈도 없고.”라고 했다. 저는 “그렇지! 만약 내가 장(江)씨 집단의 박해를 받지 않고 운수사업을 계속했다면 이 몇 년 사이에 운수 사업이 많이 발전하여 수십만 위안 버는 것은 문제없지요.”라고 답하였다. 신청서를 쓸 때 나는 사실대로 적으려고 했다. 그들은 “북경에 가서 청원을 하다가 주민등록증을 몰수당했다고 하면 안 되고 잘 못하여 물에 빠졌거나 불에 태웠다고 쓰세요.”라고 말 했다. 나는“사부님은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어요.”라고 하였다. 옆에있던 누군가가 “이것만 보더라도 난 파룬궁이 좋다고 생각해!”라고 말하였다. 결국 아주 순조롭게 신분증을 받고 돌아왔다.
(다음에 계속)
문장 완성: 2004년 7월 16일
문장 발표: 2004년 7월 20일
문장 갱신: 2004년 7월 22일
문장 분류: [인심과 인과]
문장 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4/7/20/7956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