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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 <질풍경초 (疾風勁草)> (2)

글/중팡츙(鐘芳琼)

제2부 새로운 삶

머리말 : 법을 얻은 후 나는 처음으로 무엇이 무병 상태에서 온몸이 가벼운가를 체험했다.

제1장 연을 맺다

– 사저(師姐:동문여자선배)의 변화

1998년 8월, 운전 기사인 사저(나보다 한 살 연상임)가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싸허보(沙河堡)의 한 남자 수련자는 원래 대머리 였는데 수련 후 머리카락이 모두 자라났고, 랜화춘(蓮花村)의 한 할머니는 수련 후 흰 머리카락이 모두 검어졌단다. 너도 파룬궁을 수련하렴.” 이라고 나에게 말했다. 나는 “연공 하는 것은 퇴직한 노인들이나 하는 일이지요. 나야말로 그건 하지않겠어요.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먹고, 입고 싶은 것 있으면 입다가 죽으면 그뿐인데요.”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자신의 친한 친구가 수련하지 않는 것을 몹시 안타까워했다. 매주 토요일 저녁이면 나는 그냥 사저네 집에 가서 그 남편과 또 그녀의 남편 직장의 친구 두분들과 함께 마작을 했는데, 때로는 밤을 지새곤 했다. 그러나 사저는 혼자서 책을 보았는데, 나는 그녀가 이렇게 크게 변한 것이 이해 되지 않았다.

제 3 순환 도로(三還路) 건물 보수를 시작하자, 나의 장사도 바쁘게 되었다. 사저의 남편은 메이산(眉山)의 사료 공장에서 지배인으로 임명되어 “삐야오쯔”(標致)세단승용차까지 배정 받았다. 사저는 남편을 도와 차를 운전하였다. 겨울이 되니 장사는 더욱 바빴다. 우리들 각자는 모두 바삐 움직였다. 그들은 청두(成都)로 돌아오는 기회가 매우 적었다. 설 전에 사저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왔는데, “내가 너에게 줄 설 물건을 사놓았다. 모두 메이산(眉山) 특산물인데 네가 한번 와서 가져가려무나.”라고 했다. 내가 그의 집에 갔을 때 발견한 일이다. 그전에는 온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하여 자식에게까지 “못난 어머니”라고 불리 웠던 사저였는데, 얼굴위의 주근깨는 온데 간데 없어지고 윤기가 돌고 있었다. 나는 호기심이 동하여 “어느 미용원에 가서 피부를 바꾸었어? 효과가 너무 좋은데”라고 말했다. 그는 “바꾸지 않았어?”라고 말했다. 나는 “그러면 어느 미용원에 가서 미용을 했어? 무슨 피부 보호제를 발랐는데?”라고 연속 물었다. 그녀는 “미용도 하지 않았고 그 무엇도 바르지 않았어.”라고 했다. 나는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만져 보았다. 그녀는 “믿지 못하겠으면 내가 찬물로 얼굴을 씻고 올 테니 네가 보아라.”라고 하고는 즉시 얼굴을 씻고는 나에게 보였다. “그런데 어떻게 되어 단번에 피부가 이토록 좋아질 수가 있어?”라고 나는 물었다. 그는 “파룬궁을 수련해서이지.”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반감이 일어나 사상상에서 저촉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당신들 파룬궁은 천상은 있고 지상은 없다고 억지를 한다지?”라고 풍자해서 말했다. 그녀는 더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비록 입으로는 이렇게 말했으나 실제 자신의 눈으로 본 사실이어서 승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피부는 확실히 좋게 변해 있었다.

집에 와서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6년 동안 나는 얼굴의 황갈색 반점 때문에 매주마다 끊임없이 미용을 했다. 청두(成都) 한의원에서 한약도 많이 복용 했을 뿐 아니라 대량으로 국내외 이름난 건강음료도 먹었다. 예를 들면 춘부로(春不老), 진주가루(珍珠粉), 샌니레이더(仙尼雷得) 등등 이다. 심지어는 아름다워지기 위해 반점이 있는 곳에 미국의 정화소(精華素) 미용을 한 후, 여러 차례 침을 맞았으며 만원에 달하는 거액의 돈을 썼다. 그러나 모두가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10년간이나 보아왔던, 그녀의 얼굴에 넓게 깊이 박혀있던 주근깨가 어찌하여 몽땅 없어졌단 말인가?

– 대법이 미혹을 타파하다.

나는 호기심을 품고 사저를 찾아갔으나 입을 열기가 거북스러웠다. 그녀는 나의 이런 심사를 보고는 곧 나에게 이홍지 선생님의 설법비디오 하나를 주었다. “당신이 매일마다 절을 하며 머리가 터지도록 절을 해도 소용이 없고 향을 한줌 한줌씩 피워도 소용이 없다. 당신이 진정으로 확실히 당신의 그 마음을 수련 해야만 된다.” 사부님께서 하시는 이 말씀을 들을 때 나는 단번에 수수께끼가 풀린 것처럼 똑똑히 알게 되었다. 원래 내가 그처럼 많은 돈을 쓰고서, 시간을 허비해 가면서 향을 피우고, 불상 앞에서 절을 한 것이 모두 헛수고였으니,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고 말해도 이상할 게 없다. 나는 줄곧 이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다. 나는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행복하고 아름다움이 가득한 가정이 있게 하기 위하여 일체의 희망을 신과 부처에 기탁 했었다. 나는 일찍이 돈을 내어 고향 마을 관음당(觀音堂)에 불상 하나를 세웠으며, 특별히 승용차 한대를 전세 내어 전문업을 하는 노인 한 분을 모셔와서 찐탕현(金堂県)의 동자원(童子園)에 봉안되어있는 보살에 금색칠을 하게 하였다. 청두(成都)의 사원과 러산(樂山)의 대불상에 향을 피우고 불상에 절하러 갔을 뿐만 아니라 또 특별히 차를 몰고 스찐사(石勁寺)에 가서 고급향을 피웠고, 칭청산(靑成山) 바이웬사(白元寺)에 가서 거사들과 함께 희사하는 공덕과 신불의 보호를 기원하였다. 허난성(河南省) 하오산 소림사(篙山少林寺)에 갔었고, 산시성(陝西省)의 천하제일 험한 화산(華山)에도 가서 신의 강림과 부처의 영통을 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의 희망은 비누 거품마냥 한번 또 한번 사라지고 말았다. 그 어떤 하나의 신과 불도 나를 보호하여 병마에서 빠져 나오게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전 생활 따라 그대로 절망 속에서 나날을 보내야만 했었는데…… 알고 보니 바깥에서 찾으려고 하면 모두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며 다만 자신에 의존하여 마음을 닦고 쩐, 싼, 런(眞, 善, 忍)을 수련해야만 하는 것이었구나! 나는 사부님이 말씀 하신 것이 매우 도리가 있다고 느껴져, 한번 시도해 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나는 또 자신은 신분이 있고, 지위가 있는 사람인데 주민 할머니들과 함께 땅바닥에 앉아서 연공 한다는 것이 보기가 너무 고상하지 못하고 얼굴이 깎이는 것으로, 만일 낯익은 사람을 보면 어떻게 하겠는가?고 생각했다. 생각 끝에 일요일까지 기다렸다가 사저가 돌아온 후 다시 차를 몰고 그의 집 가까이에 있는 연공장에 가서 그와 함께 연공 하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일요일이 되어 내가 연공장에 가보니 적어도 백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눈을 감고 서서 연공 하고 있었는데 동작들이 정연하고 우아했다. 노인과 어린이들이 있는가 하면 점잖고 고상한 젊은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사저 모자는 시종 찾지 못했다. 나는 또 차를 몰고 그의 집까지 가서 그를 찾았다. 대문 어귀에서 급히 연공장으로 향하여 달려가는 그들을 만났다. 연공장에 간 후 사저는 한 남성분더러 나를 가르치게 하고는 곧 연공 하러 갔다. 나는 당시 많은 의문을 제기 했는데 그는 인내하면서 모두 해석해 주었다. 후에 그는 나에게 “당신이 거주하고 있는 부근의 신화공원에도 여러 개 연공장이 있습니다. 공원의 앞문, 뒷문, 공원 안에도 있으며 뒷문에 있는 성화 초등학교 화원 내에도 있습니다. 가십시오. 그들은 모두 무료로, 기뻐하며 인내력 있게 당신을 가르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 집으로 돌아가는 느낌.

1999년 3월 5일 아침 6시 반이 되자 나는 제 때에 신화공원 앞문 연공장에 도착했다. 리제(李姐, 이씨 언니)가 나를 데리고 동공(動功)을 연마하였다. 후에는 또 나에게 가부좌를 가르쳐 주었다. 내가 앉아서 얼마 안되었는데 두 다리가 부풀면서 아팠고, 마음도 아파서 참기 어려웠다. 두발은 마치 자색의 가지와 같았고, 아파서 머리와 얼굴에도 땀방울이 굴러 떨어졌다. 내의도 땀에 흠뻑 젖었는데 정말로 괴로웠다. 이때 나는 참아야 한다는 사부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줄곧 억지로 참았다. 조금 지나자 나는 내가 하나의 매우 청정한 한 사원 밖의 큰 평지에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몸에는 가사를 입고 있었는데 가사는 번쩍번쩍 큰 빛을 발산하고 있어 아름다움이 절정에 달했다. 아! 이 사원이 곧 나의 집이구나. 몇 천년, 몇 만년 동안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구나 라고 나는 느껴졌다. 집에 돌아온 심정은 격동으로 그칠 줄 몰랐다. 감동의 눈물은 끊임없이 흘러 내렸다. 나는 눈물이 흐르지 못하게 억지로 참았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쑥스러워서였다. 그러나 어떻게 해도 마음에서 솟구치는 격동을 누를 길 없었는데, 결국에 이르러서는 소리 내어 흐느끼기 시작했다……

연공 음악이 끝났다. 내가 눈을 뜨고 보니 사람들은 모두 떠나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두 다리에서 아직도 무슨 물건이 멈추지 않고 돌고 있음을 느꼈다. 이때 몇몇 할머니들이 다가와서 관심 있게 말하기를 “다리가 몹시 아프면 내려 놓으시고, 울면서까지 연공 하지 않아도 되요.”라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방금 본 정경을 말했다. 그들은 모두 “당신은 근기가 좋습니다. 천목이 열린 것입니다.” 라고 했다. “무엇이 천목 입니까? 나는 오늘 처음 와서 연공 합니다. 책조차도 아직 없는데요?” 나는 또 그들에게 “나의 다리에는 줄곧 무엇이 돌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파룬(法輪)이 돌고 있습니다. 당신의 다리에 병이 있었습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당신들이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묻고는 마음속으로 ’당신들은 정말 점쟁이 보다 더 영험하구나, 나는 전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찾아가 점을 쳐 보았으나 종래로 이처럼 영험하지 못했는데’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파룬이 당신의 신체를 조정하여 주고 있습니다. 어디에 병이 있으면 그는 모두 조정해 주지요.”라고 했다. 그들은 나에게 다리를 내려 놓으라고 하였지만, 파룬이 여전히 돌고 있기에 다리를 내려 놓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나에게 발바닥을 서로 대립시키지 말라 하여 나는 겹치지 않게 하였다. 그러나 파룬은 여전히 돌고 있었다.

그날 나는 즉시 대법책을 얻어 집에 돌아와서는 손에 놓기 아쉬워하면서 읽었다. 그때부터 나는 더는 게으르게 늦잠을 자지 않았으며, 다시는 마작놀이를 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 6시 반이면, 꼭 연공장에 가서 연공 했고, 연공이 끝나면 그 길로 출근했다. 하는 일들을 잘 안배하여, 시간만 있으면 책을 보았는데 밤늦게까지 보곤 했다. 심지어 승용차에 있는 유행 가곡 음악테이프를 모두 사부님의 설법 테이프로 바꾸어 버렸다.

제2장: 대법은 나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었다.

– 신기함을 체험하다.

3월8일. 나는 진작에 아들 애의 선생님 멍위룽( 蒙玉蓉 )과 그녀의 대만 친구, 나의 큰 어머니와 함께 스즈산장(狮子山庄)에 가서 놀기로 약속 했었다. 그런데 이날 아침 일어나니, 얼굴이 바싹 조여지고, 열이 나서 매우 불편한 감을 느꼈다. 하여 즉시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 보았는데, 그 순간 나는 그만 당혹하여 눈이 동그래지고 말았다. 나의 온 얼굴이 부은데다가 붉기까지 하였는데 마치 관공(関公- 관우에 대한 존칭) 같았다. 이를 어떻게 한담? 나는 찬물로 얼굴을 씻어 보았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시간은 이미 11시가 다 되었지만 나는 문 밖으로 나갈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큰 어머니는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멍 선생님 일행은 진작에 스즈산장에 도착 하여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사저의 핸드폰을 눌렀다. 나는 “보세요, 언니가 나더러 法轮功(파룬궁)을 수련하라고 해서 했는데 수련하여 얼굴을 부어 오르게 했어요. 약속한 사람들은 이미 나를 더 기다릴 수 없는 지경인데, 나는 문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요” 라고 했다. 사저는 그 즉시로 ”좋은 일이다. 사부님께서 너의 신체를 조정 해주고 있는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더는 다른 방법이 없자 체면상 할 수 없이 억지로 그들을 만나러 갔다. 절반쯤 갔을 때 큰 어머니가 “너 오늘 분을 발랐느냐? 얼굴색이 이다지도 보기 좋으니 말이다” 라고 물으셨다. 그녀는 나의 얼굴이 열이 나고 있음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가 이렇게 물으니 나도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얼굴의 증상에 대해서 내가 감각이 있는 이외에, 그녀들은 다만 약간 불그스레한 것으로 보았을 뿐 임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튿날, 내가 사무실에 들어서자, 리제( 李姐-이씨 성의 언니 )가 나를 보더니 즉시 물었다.
“정말이지, 사람들은 기쁜 일을 만나면 정신이 상쾌해 진다니깐, 샤오중 (小鈡 ) 오늘 너의 얼굴은 어찌 이처럼 이쁠 수가 있어, 무슨 좋은 일 있었어?” 나는 ”法轮功(파룬궁)을 수련하고 있어” 라고 했다. “法轮功(파룬궁)이 이처럼 좋단 말이야! 우리도 가서 수련해야지……” 라고 했다.

일주일 후 얼굴의 증상은 없어졌다. 더욱 신기한 것은, 얼굴에 몇 년간 미용 하여도 효과가 없었던, 오래되어 짙어진 겉표면의 황갈색 반점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 천상에 한 무리 선녀가 오가다
이때 나는 法轮功(파룬궁)에 더 큰 신심을 가지게 되었다. 게다가 사부님이 책에서 하신 매 한마디의 말들을 더욱 굳게 믿게 되었다. 그러던 중 십 여 년 간 나의 마음속에 묻혀있던 또 하나의 수수께끼가 풀리게 되었다. 24살 되던 그 해 어느 하루 저녁, 나는 고철을 가득 실은 해방화물차(解放貨车)를 몰고 청두(成都)에서 두짱앤(都江)까지 왔다. 차가 투쵸우(土橋)지역에서 달리고 있을 때 이라, 대략 이른 새벽 4시경쯤 되었을 때다. 나는 선녀들이 떼를 지어 하늘에서 날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나는 호기심에 가득 차 한참 보다가 생각했다. 너희들은 어떻게 줄곧 나의 앞에서 날고 있는 거니? 아예 내가 차를 좀더 빨리 몰아보자, 누가 더 빠른가를 보자 하여 나는 가속페달을 더욱 세게 밟았다. 그들은 여전히 나로부터 그만큼 가까이 떨어져 있어서 나는 곧 또 생각했다. 아예 내가 차를 좀 천천히 몰아 보자 하여 가속페달을 늦추니 차가 천천히 달리었다. 그런데 그 선녀들은 여전히 나와 그만한 거리를 사이에 두고 날았다.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되었다. 옆에 앉은 물건 주인을 불러 깨웠다. “이 사장님, 빨리 보세요, 하늘에 떼를 지어 선녀들이 날고 있어요.” 그는 잠기가 가득찬 눈으로 몽롱하게 말했다. “어디에?”, “사장님 어서 보세요, 하늘에 저렇게 많고 많습니다. 아직도 날고 있어요, 사장님 보이지 않으셔요?” 정말 유감스러웠다. 그는 그처럼 눈을 크게 떳으나 그토록 아름다운 선녀들을 하나도 볼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이 모든 것들은 진실로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다만 일반 사람들로서는 볼 수 없을 뿐이었다.

– 온 집안이 이득을 얻다.

직접 몸으로 法轮功(파룬궁)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체험한 후 나는 일심으로 나의 아들과 어머니가 이 아름다운 공법을 배우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들은 나의 권고를 듣더니 기뻐하면서, 나를 따라 수련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가 많은 공력을 들여서야만 비로서 수련의 문에 들어섰다. 나는 “어머니, 우리 함께 가서 法轮功(파룬궁)을 수련합시다. 내가 어머니에게 1억되는 돈을 드린다 해도 어머니 더러 法轮功(파룬궁)을 수련하게 하는 것만 못 합니다. 한 사람이 한 평생 병이 없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어머니, 보십시오, 저는 연공 한지 일주일 만에 과거 만원을 넘게 써서 치료해도 안되던 얼굴의 황갈색 반점이 전부 없어졌습니다. 이것을 어머니는 친히 보셨지요?” 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나도 法轮功(파룬궁)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法轮功(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 늦게 자야 하지, 또 포룬(抱轮)하려면 반 시간 씩이나 서 있어야 하니 그야말로 살아서 고통을 받는 격이다. 나는 지금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누려야겠다.” 라고 했다. 어느 일요일 저녁 식사 후 아들이 “외할머니, 우리 같이 가서 연공 해요.” 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나는 안 간다. 너희들이나 가거라.” 라고 했다. 아들은 할머니의 팔을 잡아 끌면서, “가세요. 할머니가 가서 해 보고 좋다고 느껴지면 계속 하시고, 아니면 그만 두셔요. 여하튼 돈 한 푼도 낼 필요가 없는데요.” 라고 했다. 이렇게 되자 어머니는 거절 하기가 미안하였다. 손자는 그를 끌고 연공장으로 갔다.

연공장에 가니 연공하는 분들이 어머니를 매우 친절히 맞아 주었다. 그들은 손을 잡고 몸소 연공동작을 가르쳐 주었다. 어머니는 글을 모르기에 우리가 책을 읽는 것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9시가 넘자 단체 법 학습이 끝났다. 나는 차를 몰아 아들을 학교 선생님 집에 데리고 갔다. 어머니는 혼자서 집으로 돌아가셨다. 그녀가 발을 씻고 잠을 자려고 준비 하는데 갑자기 뇌혈관 병이 재발했다. 하늘과 땅이 빙빙 돌았고, 집 마저 따라서 돌아 가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발을 씻은 물마저 버릴 수가 없었다. 그녀는 급급히 침대에 누워서 내가 돌아가서 약을 찾아 주기를 기다렸다. 내가 집에 돌아가서 어머니의 이 말씀을 듣고: “좋은 일이에요. 어머니는 매우 인연이 있으세요. 사부님께서 어머니를 책임지기 시작하셨어요. 이미 어머니의 신체를 정화 시키기 시작하고 있거든요.” 라고 말했다. 나는 곧바로 어머니에게 을 읽어 드렸다. 읽고 있으니 그녀는 잠이 들었다. 밤중에 깨어나 보니 어머니의 몸은 모두 회복되어 병 증상이 모두 없어졌다. 그녀는 의아해 했다. 괴상하구나, 어제 저녁 그처럼 심하던 병은 과거 같으면 반드시 주사를 맞고 약을 먹어야 했단다. 영양주사도 10일 내지 반 달간 맞아야 비로소 회복이 가능한데 이번에는 어찌 되어, 딸이 책을 읽어 주는 것을 한참 듣고 나니 병이 완전히 나았단 말인가? 나는 이 선생님을 만나본 적도 없고 그가 나의 맥을 짚어 본 적도 없는데 이 병이 어떻게 나아 졌는가? 法轮功(파룬궁)은 정말 신비롭구나. 만약 직접 체험하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이 나에게 무엇을 말해도 나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말씀 하였다.

그때로부터, 어머님은 경건하고 정성스럽게 法轮功(파룬궁) 수련을 했다. 그는 수련 하는 것이 돈을 벌기보다도 나으며, 돈은 백병을 치료할 수 없다고 느끼셨다. 그리하여 그는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연공장에 갔다. 연공한지 한 달이 지나자 어머니의 모든 병은 치료를 하지 않았는데 모두 나았다. 더욱 신기한 것은 50여 년간, 길을 걸으면 절룩 거리던 왼 발이 신비하게도 절룩 거리지 않았으며, 길을 걷는 것이 정상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여러 사람들은 그녀를 본 후, 모두 法轮功(파룬궁)이 좋다고 했다. 하여 시골에 있는 두 딸, 남편, 사돈집 사람들 등등 모두가 法轮功(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7.20 이후 어떤 사람들은 두려워서 수련하지 않았다. 더욱 사람들로 하여금 불가사의하게 한 것이 있다. 어머니가 연공한지 두 달이 되던 어느 날 갑자기 배가 아파하더니 토하기 시작했다. (마치 에서 이야기 한 것과 같았다.) 토한 것은 모두 검은 색이었는데 매일 토하기만 하고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심지어 벌레 두마리까지 토했다. 이미 5일간 토했다. 어머니는 생각하셨다: “사부님, 이렇게 토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면 너무 더러워 합니다. 만약 설사하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했다. 괴상하기도 했다. 그가 이렇게 생각하자 기적이 나타났다. 오후쯤 되자 과연 토하던 것이 설사로 변했다. 설사한 것 역시 모두 검은 색이었는데 또 7일간 설사했다. 7일간 밤낮 어머니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도 배가 고프다는 느낌이 조금도 없었다. 다만 입술이 건조하여 껍질이 좀 일어났을 뿐이었다. 어머니는 찬물로 입술을 적시곤 했다. 8일째 되던 날 더는 설사 하지 않았다. 약간의 미음을 좀 먹고 싶다 하였고, 곧 죽을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그날 나는 차로 그녀를 연공장에 까지 모셔갔다. 그녀는 서서 한 시간 동안 동공을 다 했을 뿐만 아니라 가부좌도 한 시간 했는데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연공과 법 학습을 통하여 한 주일 사이에 어머님의 신체는 완전히 회복 되었고 얼굴색도 좋아졌다. 내외(內外)풍습통, 좌골신경통, 담결석, 증세가 심한 맹장염, 뇌 혈관병 등이 치료하지 않았는데 모두 나았다.

아들도 수련을 시작한 후 매우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가 어렸을 때는 “여윈 원숭이” 라고 들 했다. 그러나 수련을 거쳐 ‘통통하게 살찐 꼬마’ 로 되었다. 어렸을 때 아들애는 성실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국어 시험에서 65점을 맞았다. 아들애는 그 시험지를 나에게 보이면 훈계를 당할까 봐 두려워 틀린 것을 고쳐 놓았다. “X”를 “V”로 고치고 65점을 100점으로 고쳐 놓았다. 수련을 시작한 후로는 더는 속이는 일이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 애가 성실하고 귀엽게 변했다고 했다. 이번 시험에서 그 애는 그 반의 수석을 차지했다. 그 애 역시 이 모든 것이 대법의 위력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 그 애에게 쩐, 싼, 런( 眞, 善, 忍 )에 따라 하라고 요구 하셨기 때문이다.

– 세계적으로 고칠 수 없는 혈관 종양이 사라졌다.

두 달 후, 사저(師姐)가 나에게: “쇼중(小鈡), 너는 연분이 그토록 좋으니 오른쪽 하지 혈관종양도 다 나을 수 있을 거야” 라고 말했다. 그가 이렇게 일깨워 주어서야 나는 비로서 깨달았다. 나는 아들애를 선생님 집에 전학 시키고 매일 회사 일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시간에는 대법 책을 읽고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보며 연공 하였다.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는 매우 늦어서야 잠을 잤다. 몹시 바삐 돌아가니 그 병마저 잊어 버렸다. 돌이켜 생각 해 보았다. 이 두 달간 나는 밤 늦게까지 앉아 책을 보았고 종전과 마찬가지로 운전했다. 그런데 어째서 혈관을 뽑아낸 부위가 부풀어 오르지 않았는가? 뇌혈관 병도 반응이 없지 않은가? 그래 나의 이런 병들이 모두 나았단 말인가? 그렇다! 연공을 해서이다! 파룬궁을 수련해서이다!! 사부님의 파룬궁이 나의 병을 낫게 하였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격동되어 더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파룬궁이 나를 구하였고, 파룬따파(法輪大法)가 나에게 두 번째 생명과 처음으로 건강을 주었으며, 파룬따파(法輪大法)가 나로 하여금 마음이 옥같이 아름답게 맑아지게 하였음을 느끼게 했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무병 상태에서 전신이 가벼워 짐이 어떠한 것인가를 체험했다

– 옥같이 깨끗한 마음

병이 없어지니 정신상 압력도 없어져 기분도 좋았다. 늘 웃음을 담고 있으니 얼굴색도 밝았고 말투도 상서로웠다. 어머니는 웃으시며 나에게 말씀하기를 “만약, 좀 더 일찍이 파룬궁을 수련 했더라면 좋았을 걸, 말을 잘못하여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없었을 텐데,” 라고 하셨다. 아들은 말하기를 “어머니의 성격이 좋아졌다.”고 하였다. 친구들도 “우리는 전에 네가 너무 독선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좋게 변하였니? 지금 너와 접촉 해보니 너 이 사람이 너무 좋다고 느껴지는구나. 사장의 허세도 없고, 붙임성도 매우 좋구나.” 라고 농담 삼아 말하였다. 나는 “파룬궁이 나를 개변시켰어” 라고 말했다.

참으로 파룬궁은 너무도 아름답다. 또 너무도 신비롭다. 나는 꼭 수련을 견지해 나갈 것이다. 그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나의 모든 친인, 친구들 에게 알려주어 그들도 모두 파룬궁을 수련 하게끔 하겠다!

제 3장 홍법

그리하여 나는 파룬따파(法輪大法)에 관한 간단한 소개와 선생님께서 제남에서 하신 설법 테이프, [전법륜>> 책 20여권을 가지고 연공장의 두 보도원, 또한 젊은 동수, 세 명의 꼬마 대법제자, 그리고 어머님까지 모시고 내가 직접 차를 몰고 홍법하러 고향 마을인 잰양(簡陽)으로 향하였다. 나는 격동된 심정을 누를 길 없어 마음 속으로 외쳤다: 고향에 계시는 여러분, 대법이 당신들을 구하러 왔습니다! 당신들은 절대 이 만고에도 없는 기회를 놓쳐 버리지 마세요. 우리 일행은 큰 언니 집에 도착했다. 이웃 사람들이 모두 와서 우리와 만났다. 내가 그들에게 연공 하는 것을 배워주려고 고향에 왔다고 명확하게 말하자 그들도 매우 기뻐하면서 서로 이 소식을 전하였다. 이튿날 오전, 우리들은 사람이 많이 집중되는 큰 길옆의 한 편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연공 동작을 가르쳐 주었다. 배우는 사람도 20여 명이나 되었으며,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아주 많았다. 우리는 대법의 아름다움을 그들에게 이야기 했다. 여러 사람들도 모두 파룬궁이 좋다며 서로 전해 가면서 말했다.

돌아온 후 나는 일분이라도 지체할세라 파룬궁의 신비로움을 이모에게 알렸다. 이모도 수련 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나는 북경에 전화를 걸어 군에서 고급 장관으로 계셨던(이미 퇴직 했음.) 작은 아버지께 수련을 거쳐 나의 혈관종양이 완전히 나아진 아주 큰 희소식을 알렸다. 그는 이 소식을 듣고 파룬궁에 깊은 감격을 표시했다. 그리고 그도 수련 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더러 연공장을 찾아 가시라고 했다. 며칠 후 나는 또 전화를 걸었다. 그는 연속 며칠 연공장을 찾아 보았는데도 찾지 못했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나는 “아침 일찍 공원에 가서 찾으세요. 낮에는 모두 출근하러 갑니다.” 라고 말했다.

– 시련이 닥치려고 하다.

며칠이 지나 이미 6월 말일이 되었다. 나는 또 작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그가 연공장과 연계 되었는가를 알아 보았다. 그는 “지금 이미 나라에서 파룬궁의 수련을 금지 시켰다. 당원과 군인은 파룬궁을 수련하지 못 하도록 되었다” 라고 하고는 사부님에 대한 좋지 못한 말까지 하면서, “내가 보기에 너도 수련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이미 수련하여 병이 다 나았으면 되었다. 네가 지금 이 정도에까지 걸어 올 수 있는 것만도 매우 쉬운 일이 아니다.
나라에서 수련하지 말라고 하니 수련하지 말아라.” 라고 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무슨 말을 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다만, 마음이 말 할 수 없이 아팠다.

작은 아버지는 나의 마음속에 가장 문화가 있고, 가장 사리를 똑똑히 알며, 가장 식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일반적으로 무슨 큰일이 있으면 나는 모두 그에게 묻곤 하였다. 만약 그의 말씀이 도리가 있다고 느껴지면 나는 그의 말을 들었다. 그러나, 이번만은 나의 심정이 몹시 모순 되었다. 이 일은 예삿일이 아니다. 반드시 나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당신이 나쁘다고 말하나 손수 실천한 것으로서 이것은 생동한 현실 입니다. 당신이 나쁘다고 말하나 내가 처음 연공 할 때에는 책마저 없었는데 천목으로 본 다른 공간의 광경은 [전법륜>> 책에 쓴 것과 꼭 같았습니다. 당신은 나쁘다고 말하지만 나의 혈관종양과 뇌혈관 병이 어떻게 하여 나았습니까? 당신이 나의 병이 나았는지 낫지 않았는지는 보지 못할 수는 있지만 나의 얼굴에 넓게 깊이 퍼져 있던 황갈색 반점이 없어진 것은 볼 수 있지요, 이것은 사람마다 모두 볼 수 있는 현상이지요. 그렇다면 어찌 다른 사람이 나쁘다고 하여 같이 나쁘다고 할 수 있습니까? 본 것은 확실하지만 소문은 믿을 수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2일간 반복되는 사고를 거쳐 나는 많고 많은 것을 생각했다. 나는 수련을 포기 하려고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나는 포기할 수가 없었다. 대법이 너무나 좋기 때문이었다. 나는 계속 수련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생으로 바꾸어온 장사에 누가 미칠까봐 두려웠다. 하여 나는 한번 또 한번 가슴 아프게 울었다. 최후에는 마(麻)처럼 얽힌 사유 속에서 실마리를 찾아 냈다: 어떠하든지를 막론하고 나 역시 견정하게 수련해야 한다.

그즈음에 연공장에는 보도원이 늘 여러 사람들을 모아놓고 [홍음 ( 洪吟 ) >>중에 있는 시 세수를 암송하였다.

: “중생을 제도하리라 품은 마음, 스승을 도와 세상에서 행하네. 나를 도와 법륜을 돌리나니, 법은 이루어 천지간에 행하네.”

: “대법이 몸을 떠나지 않거니, 쩐, 싼, 런(眞, 善, 忍)이 마음속에 있네. 세상에 대나한을, 귀신도 굉장히 두려워하네.”

: “태어나 바라는 것 없고, 죽어 애석할 것 없네. 망령된 생각을 탕진하거니, 부처로 수련되기 어렵지가 않노라.”

여러 사람들은 한차례 아주 큰 시련이 곧 닥쳐올 것임을 희미하게 감지했다.
(계속 이음)

문장완성: 2004년 7월 16일
문장발표: 2004년 7월 17일
문장갱신: 2004년 8월 8일
문장분류: [인심과 인과]
원문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4/7/17/795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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