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대법제자구술, 동수대필
【명혜망2004년1월16일】어렸을 때 부모님은 우리 여덟 자식들을 키우시느라 가정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나는 집에서 넷째로서 늘 집안일들을 해야 하였고 언제나 배도 못 불리고 반나절씩 일을 하여야 했다. 외할머니 집은 생활형편이 좋았기에 문화대혁명시기 어머니는 상처도 많이 받고 이웃들의 구설수에도 많이 올랐었다. 아버지는 성미가 급하여 늘 나를 때리곤 하였다. 어머니는 나를 역성들어주느라 늘 나 때문에 얻어맞곤 하였는데 때로는 머리가 터지기도 하였다. 내가 19살 때 나는 뇌막염에 걸렸었는데 아버지도 병환에 계셨지만 어머니는 나를 구하기 위하여 나를 병원에 입원시켜 놓았다. 퇴원하여 나왔을 때에는 아버지가 이미 세상을 뜬 뒤였다. 24살에 결혼하여 온 시집은 우리 집보다도 조건이 더 나빴다. 시집에서는 감히 많이 먹지도 못하였다. 그리고는 일하러 나가야 했고 이렇게 하다 보니 신체는 말이 아니었다. 애를 낳고 3일 후에는 밭에서 밭일도 해야 했었다. 그리하여 산욕열에 걸려 혈압도 낮아지고 사지도 나른하고 늘 토하고 3, 4일씩은 드러누워 밥도 못 먹곤 하였다. 몸이 좋지 못하니 성격도 점점 난폭해지고 이웃사람들과 싸우는 일은 늘상이라 마을에서도 잘 싸우는 사람으로 소문이 났었다.
97년 동수에게서 마을의 어떤 사람들은 파룬궁을 수련하고 또 연공장까지 있다는 소문을 듣고 나는 그 연공장으로 가보려고 결심하였다. 제일 첫날 연공 할 때 사부님께서는 나의 신체를 조정하여 주셨다. 세 번째 날에는 너무 어지러워 하늘 땅이 빙빙 돌듯하더니 10분쯤 지나자 곧 나아졌다. 집에 돌아와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일하고 연공도 하였다. 연공 하여 한달 후 병은 모두 나아졌고 몸은 한결 가벼워서 무엇을 하여도 힘들지가 않아 늘 거리를 청소하였다. 출근하는 길거리에 돌덩이나 벽돌이 있으면 주어서 행인들의 발길에 걸리지 않도록 하였다. 잡부로 있을 때에는 4층이나 되는 높은 건축발판위에서 벽돌을 받는 일을 하여도 조금도 어지럽지가 않았다. 나는 원래 이웃사람들과 말도 하지 않았었지만 지금은 내가 적극적으로 그들과 말을 건네곤 하였으며 모순들을 없애고 이웃 사이에 화목하게 지내게 되었다. 시간이 있을 때면 나는 사부님의 《논어(论语)》《홍음(洪吟)》경문 등을 외웠고 대법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였고 대법의 요구에 따라 일을 처사하였다. 한번은 마을에서 땅을 분배하게 되었는데 다 재고 나서보니 다른 사람이 우리 집 땅을 한 미터 넓이만큼이나 되게 한 이랑을 차지한 것을 발견하였다. 연공 하기 전 같았으면 나는 벌써 그 사람과 한바탕 싸웠을 것이다. 누구도 나를 깔보거나 또 이렇게 손해를 보면 절대 안 되었으니까. 그러나 이번에는 나는 내가 연공인 이므로 예전처럼 처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대대의 책임자를 찾아가서 그들더러 얼마만큼이나 차이가 나는지 재어 본 다음에 다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라고 하였다. 이때 나는 사부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수련의 고(苦)는 속인으로서는 알 수 없고,다투고 싸우는 것을 복으로 간주하거늘;수련하여 집착을 없애나니,고거감래(苦去甘来)라 진짜 행복이니라。”(《洪吟》[迷中修]) 대대에서는 다 재고 난 뒤 돈으로 보상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돈을 가지지 않겠다고 거절하면서 속으로 요만한 이익으로 다른 사람들과 따지면서 실리를 캐면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99년 7.20 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하자 연공하는 환경이 없어지고 동수들은 모두 자기 집에서 연공 하게 되었고 나는 고민하던 끝에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이렇게 좋은 공법을 하지 못하게 하다니, 이상하였다. 파룬궁이 사람들더러 좋은 사람이 되도록 하였고 병을 없애고 신체를 건강하게 한다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 이었고 또 파룬궁이 없으면 나의 전신의 병은 나아질 수도 없고 나 또한 다투기를 좋아하던 사람으로부터 남을 많이 생각해 주는 사람으로 변한 것, 이런 나의 변화가 철 같은 사실이고 또 하나의 좋은 예증이 아닌가? 나는 대법을 위하여 바른 도리를 말해야 한다. 나는 대법을 위하여 증명을 서야 한다.
99년 10월 8일 나는 천안문에 가서 호법을 하였다. 집에는 돈 한 푼도 없었기에 20원을 빌리고 신은 너무 낡았으므로 다른 신을 더 지녔다. 호법을 하겠다는 마음만으로 차에 앉아 천안문으로 갔는데 경찰이 나보고 뭘 하러 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다, 래신래방국을、장쩌민을 찾아 법륜대법이 좋다고 말하러 왔다!”라고 하자 그럼 가자, 내가 너를 데리고 가마하고는 나를 천안문 파출소로 데리고 갔다. 저녁 7시 좌우 지방 경찰서에 전화를 하더니 나를 지방 경찰서에 보냈다. 경찰이 나에게 물으면 나는 그에게 진상을 말하였다. 나는 원래 어떤 병이 있었는데 파룬궁을 수련한 후 모두 나았다, 나의 성격도 원래보다 좋아졌다……밤11시 좌우, 경찰은 또 나를 구류소에 보냈고 또 나를 심문하였다. “북경으로 뭘 하러 갔는가?”, “호법하러 갔다. 대법은 좋다!” 이렇게 나는 구류소에서 15일간 협박당하였다. 넷째 날 연공을 견지한 것이 악경 뚜(杜)××에게 발견되자 그녀는 미친 듯이 연속 열 몇 번이나 나의 귀뺨을 때렸다. 그녀가 때리면 나는 《논어(论语)》를 외웠다. 때리면 때릴수록 나는 더 외웠고 더욱 화가 치민 악경은 내 손을 뒤로 하고 수갑을 채워놓았다. 두 시간 후 수갑을 풀었는데 어깨나 손은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경찰서에서 금방 나를 풀어주자 이튿날 저녁에는 몇몇 악경들이 나를 파출소로 데리고 가더니 어떤 작은 방에다 하루 밤과 이튿날 반나절 동안을 잠가 가두고 수갑도 풀어주지 못하게 하였다. 악경들은 또 “파룬궁을 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 “하겠다!”고 하자 또 나를 구류소 8호 여자 감방에 27~8일간이나 가두어 놓더니 대법을 수련할 것을 견지한다고 하자 불법으로 1년 반의 노동교양을 시켰다.
노동교양소에서 연공을 못하게 하자 2000년 2월 8,9일, 나는 절식을 하는 것으로 사악의 박해를 제압하기 시작하였다. 절식 8일간 후 악경들은 그것을 발견하고 나를 침대의 난간에 7, 8시간 동안이나 수갑으로 채워놓았고 절식 73일 후에는 체중이 약 50근 좌우에 달했다. 노동교양소에서는 책임을 질까봐 소장은 나를 병원으로 보내서 검사를 받게 한 후 집으로 돌려보냈다. 나의 신체는 박해를 받아 사지가 무력해지고 정신이 흐리멍덩하고 혼자 생활하기도 어려워서 식구들의 손길이 안 가면 안 될 정도였다. 남편은 매일 일하러 나가야 했고 집의 생활을 위하여 도처로 뛰어다녀야 했다. 애들은 한창 공부를 할 때이지만 나를 돌보느라 심신의 부담은 크고 또 생활해 나가기도 지치고 힘겨워 갖은 고생을 겪고 있다.
문장발표: 2004년1월16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4/1/16/6505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