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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속 세상과 다른 공간 (1)

글/ 샤오거(蕭戈)

[밍후이왕] 중국 전통문화에는 ‘동굴 속에서 막 하루가 지났는데 세상에서는 이미 천년이 지났다(洞中方一日, 世上已千年)’라는 뜻의 ‘동천[洞天: 동굴 속 세상]’이라는 말이 있다.

명산대천에 있는 동굴은 청정해 흔히 수련해 득도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이어야 ‘동천’으로 갈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수련을 위해 사방팔방 헤매며 도를 구했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어떤 사람은 무심결에 동굴 깊숙이 들어가 고인(高人)을 만나 도연(道緣)을 이어갔다.

고서에는 중국인의 시조 황제(黃帝)가 공동산(崆峒山: 현재 간쑤성에 있는 중국 명산, 동굴이 있는 산이라는 뜻)에서 광성자(廣成子)에게 도(道)를 물어 수련 문화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기재되어 있다. 송나라 때 공식 편찬된 ‘태평광기(太平廣記)’에도 ‘동천’에서의 수련 경험이 전면적으로 기록됐고, 송나라 설화집 ‘이견지(夷堅志)’ 등에도 기록된 바 있다.

원나라의 ‘장춘진인서유기(長春眞人西遊記)’에는 도사 구처기(丘處機)의 다음과 같은 글이 기재되어 있다. “8월 초, 선덕주(宣德州)의 원수(元帥)인 이랄(移剌)의 청에 응해 조원관(朝元觀)에 기거했다. 동천 깊숙이 들어가 좋은 벗과 연회를 가지니 편안하고 즐거움이 끝이 없었노라.” 속인에게는 명산대천의 동굴이 그리 신비하게 느껴지지 않겠지만 수도자는 이곳에서 신선들과 연회를 갖는다.

구처기는 또 이런 시를 적었다. “갑신 2월 초하루, 진산(縉山) 추양관(秋陽觀)에서 제사를 지냈다. 도관은 대핵산(大翮山) 남쪽에 있고, 산수는 맑고 수려하며, 소나무겨우살이 연기로 달빛 은은하니 과연 도가(道家)의 장소로구나.” “여러 산이 하나로 이어져 높고도 푸르른데, 뭇 신선이 밤낮 지나다니는구나. 동굴은 깊어 인적 없는데 때때로 암벽 동굴에서 선가(仙歌)가 들려오네.” 구처기는 도가 명산에서 수많은 신선을 만났지만 그곳은 보통 사람이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동굴 속 세상은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동굴 속 세상

‘태평광기’에는 남조(南朝)의 송문제(宋文帝) 원가 26년에 진계(辰溪)현 등(滕)촌에 문광통(文廣通)이라는 남자가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어느 날, 멧돼지가 그의 농지에 뛰어들었고 문광통의 화살이 멧돼지를 명중했다. 멧돼지가 상처를 입고 도망가자 그는 쫓아가다가 결국 어느 동굴 속으로 들어가게 됐다. 동굴이 너무 깊어 문광통은 삼백 보 넘게 걸었어도 끝에 닿지 못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고 수백 채의 집이 나타났다.

별안간 옆집에서 한 노인이 걸어 나오더니 “자네가 내 돼지를 쏜 사람인가?”라고 물었다. 문광통은 “그 멧돼지는 제 작물을 먹었습니다. 이유 없이 해친 게 아닙니다”라고 설명했다. 노인은 “소를 끌고 남의 작물을 밟는 것도 옳지 않지만, 이를 핑계로 다른 사람의 소를 통째로 앗아가는 것은 더욱 옳지 않은 일이네”라고 말했다. 문광통은 노인의 말에 깨달음이 있어서 즉시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노인은 “잘못을 알고 고칠 수 있다면 잘못이라고 할 수 없네. 이 돼지는 운명 중에 이번의 응보를 받아야 했으니 자네는 사죄할 필요가 없네”라고 말했다.

문광통이 노인의 초대를 받고 집으로 들어가 보니 안에는 10여 명의 서생이 있었는데, 모두 머리에 장보관(章甫冠: 유생이 쓰는 관)을 쓰고 있었고 넓은 소매의 홑옷을 입고 있었다. 한 학자가 침상에 앉아 남쪽을 바라보며 ‘노자(老子)’를 강의하고 있었다. 한 동자가 술안주를 내오자 노인은 문광통을 끌고 함께 술을 마시며 즐겼다.

문광통이 행인들을 바라보니 바깥세상과 다를 바 없었지만 환경이 그윽하고 아름다워 정말 신선이 사는 무릉도원 같았다. 그는 그곳에 남고 싶었지만 노인은 허락하지 않았으며 한 동자에게 그를 데리고 떠나게 했다.

문광통은 동자에게 물었다. “이곳은 도대체 어디냐?” 동자는 말했다. “집안의 서생들은 모두 현인이십니다. 그분들은 처음에는 폭군인 하나라 걸왕의 통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곳에 오셨다가 도를 배워 신선이 되셨습니다. ‘노자’를 강의하신 그 분이 바로 하상공(河上公: 한나라 때 사람으로 노자의 주석을 달았음)이십니다. 그리고 저는 한나라 산양군(山陽郡) 사람으로 왕보사(王輔嗣: 왕필, 한나라 말기 삼국시대 사람으로 역시 노자의 주석을 달았음)입니다. 하상공께 ‘노자’ 중의 일부 의문점을 묻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저는 이미 하상공의 문하생으로 120년간 바닥 쓰는 하인으로 일했는데, 이제 겨우 저를 문지기로 삼으셨으니 어느 세월에 도경(道經)의 비결을 얻을지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이 동굴 입구에 이르자 문광통은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떠나기 아쉬워하며 왕보사에게 거듭 작별을 고했다.

문광통이 동굴 밖으로 나오자 자신의 화살이 부식되어 이상하게 생각했다. 마을로 돌아오자 사람들이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신선 동굴 속에서 잠시 머물던 시간 동안 바깥세상은 이미 12년이나 지나갔던 것이다. 집에서는 일찍이 그의 장례를 치른 뒤였다.

다음 날 문광통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다시 그 신선 동굴의 위치를 찾아가 보았지만, 큰 바위 하나가 동굴 입구를 막고 있어서 아무리 해도 뚫을 수 없었다.

(계속)

 

원문발표: 2023년 4월 14일
문장분류: 문화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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