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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비의 시로 본 지극히 진실하고 선한 충(忠)의 경지 (5)

글/ 밍신(明心)

[밍후이왕] 천백 년간 중화의 자손들은 대대로 남송 시대 악비(岳飛)의 ‘정충보국(精忠報國)’ 사적(事蹟)을 전하며 칭송하고 우러러보았다. 악비가 금나라와 맞서 적을 섬멸하고 여러 차례 출중한 전공을 세우며 중원을 보위한 것은 사람들 귀에 익숙하고 또 상세하다. 희곡부터 평전까지, 소설부터 영화까지 서로 다른 시대에 각양각색의 표현 형식이 있었다.

‘시로 그 뜻을 말하는 것’은 중국의 오래된 전통이다. ‘악무목집(岳武穆集)’, ‘전송사(全宋詞)’에는 악비가 남긴 일부 시문을 수록했다. 이런 시(詩), 사(詞), 상소문, 기록 등 통해 시인이 표현하는 심지와 백성의 마음을 담아내는 초연한 포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

(전문에 이어)

‘혜해 스님에게 보냄(寄浮圖慧海)’

湓浦廬山幾度秋 長江萬折向東流
분포 여산은 몇 번이나 가을 지났는가, 장강은 굽이쳐 동쪽으로 흐르네

男兒立志扶王室 聖主專師滅虜酋
대장부가 왕실 보위의 뜻 세우니, 성주(聖主)의 군대는 적의 두목 사로잡아 섬멸하고

功業要刊燕石上 歸休終伴赤松遊
공덕 업적을 연석 위에 새긴 후 귀휴하면 마침내 적송(赤松)과 함께 유람할 수 있네

丁寧寄語東林老 蓮社從此著力修
동림사 노승에게 간곡히 전하노니, 연사(蓮社)는 이때부터 힘써 수행하리라

악비의 고향 산천인 분포(湓浦)와 그곳에 있는 여산(廬山)은 세월이 유유하고 구불구불한 장강은 천천히 동쪽으로 흐른다. 대장부는 마땅히 원대한 포부로 천하를 평정해야 하고 공덕과 업적을 연석(燕石, 원래 연산의 돌이나 후에는 공덕비를 지칭) 위에 기록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관직에서 물러나 휴식을 취하고 적송(赤松)과 함께 유람할 수 있다. 이 일을 여산 동림사 주지에게 알리며 수련에 뜻이 있는 사람들과 응당 전심전력 수행할 것이다.

시인은 ‘적송’의 고사를 활용했다. 남북 정벌 전쟁과 중원 보위는 과정이지 목적이 아니다. 시인이 진심으로 바라는 바는 무엇일까? 바로 적송자(赤松子) 신선과 유람하는 것이며, 아울러 수련에 뜻을 둬 ‘연사(蓮社, 불교 수행 단체)’와 마음을 다해 수행하는 것이다.

사서(史書) 기록은 이렇다. “적송자는 신선의 호칭으로 신농 시기 우사(雨師)였다.” 이백은 시 ‘고풍(古風)’에서 일찍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적막한 옛 신선, 알고 보니 적송이네”. ‘부풍호사가(扶風豪士歌)’에서는 “장량은 적송을 쫓지 않았고 다리 옆 황석은 내 마음 아네”라고 썼다. 이백과 적송의 인연은 매우 깊어 그는 자주 시구에서 언급했다. ‘송왕옥산인위만환왕옥(送王屋山人魏萬還王屋)’에서는 “신선은 동방에서 태어나 호탕하게 운해(雲海)를 희롱하네, 금화안(金華岸)에 돛 내리고 적송 있었다면 불렀을 텐데”라고 썼다. ‘제옹구최명부단조(題雍丘崔明府丹灶)’에서는 이렇게 썼다. “엽현에서 연단 다 마쳤으니, 영주(瀛洲, 신선이 살았다는 동해 속의 신산)로 적송과 함께 돌아가리.” 북송 시인 소식은 일찍이 ‘금산묘고대(金山妙高台)’에서 말했다. “나는 비차(飛車) 타고 동쪽으로 적송자를 방문하고 싶네. 봉래(蓬萊, 신선이 산다는 황해 가운데 섬)는 갈 수 없는데, 약수(弱水, 신선이 살던 곳 주위에 있었다는 물 이름)가 3만 리나 되기에.”

옛사람들은 시로 그 뜻을 표현하는데, 적송자와 함께 유람하고 진(眞)을 닦으며 도를 향해 천계(天界)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나타냈다. 이는 중화 신전문화(神傳文化)의 유달리 아름답고 찬란한 한 부분이다. (계속)

 

원문발표: 2022년 7월 24일
문장분류: 천인(天人)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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