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청(丹靑)에 대한 견해
글/ 아르노 H.
[밍후이왕] 예술계에서는 늘 예술이 일종의 수련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예술가들은 대부분 인생에서 느끼고 깨달은 것과 정신적 여정을 습관적으로 작품에 투영하며, 예술 창작을 자신들의 감정을 표현하는 일종 수단으로 삼는다.
하지만 예술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은 자신들이 언급하는 ‘수련’은 일종 비유나 수사일 뿐이고 전통적 의미의 수련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전통 예술의 근원을 파고들어 보면, 예술이 일부 수련방법이나 종교이론과 대단히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연관은 예술 소재와 작품 용도에 국한되지 않고 많은 단계에 포함되어 있으며, 심지어 회화에 사용되는 안료와 기법까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앞서 발표한 ‘전통 색채의 신비’에서 저자는 불가(佛家)의 황금색, 도가(道家)의 자주색 등 몇 가지 전통 색채를 간략히 소개했다. 이러한 예는 전통 색채와 수련문화 사이의 밀접성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미술 이론과 구체적 실천 속에서 수련 문화가 도대체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오늘 우리는 다른 각도에서 그것들 배후의 깊은 의미를 말해보자.
단청(丹靑)에 대해
중국 전통문화는 넓고 심오한 신전문화(神傳文化)에 속한다. 미술도 신전문화의 중요한 부분으로서 마찬가지로 넓은 내포를 가진다. 회화는 고대 중국에서 ‘단청(丹靑)’이라고도 불렸는데, 이 명칭은 사실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 사람들은 이에 대해 여러 견해를 갖고 있고 각자의 수준에 따라 각기 다른 인식이 존재한다. 전통문화에서는 사물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다차원적이고 입체적인 시공 구조이므로 층층의 체계가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먼저 세계의 미술 영역에 존재하는 일반적인 몇 가지 인식을 간단히 이야기해 보자. 일반적으로 단청은 원래 고대의 ‘단(丹)’과 ‘청(靑)’ 두 가지 광물 안료를 가리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속적으로 단은 주홍색(약간 노란 빛이 도는 부드러운 빨간색), 청은 일종의 파란색(제작 공정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가리키며,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들은 간단히 빨강과 파랑 두 가지 안료라고 이해할 수 있다. 고대 중국 회화에서 이 두 색깔이 일상적으로 사용됐으므로 단청은 회화 예술의 대명사가 됐다.
사실 전통 예술을 조금 아는 사람은 중국 고대 회화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된 색이 이 두 가지에 국한되지 않았고 ‘오방정색(五方正色)’이 습관적으로 사용된 것을 알고 있다. 즉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의 오행에 대응하는 백(白), 청(靑), 흑(黑), 적(赤), 황(黃)의 오색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앞서 언급한 ‘전통 색채의 신비’를 자세히 읽어 보시기 바람) 또한 많은 경우 흑백을 주된 색으로 삼은 것도 검은색의 활용을 강구한 것이다. 따라서 일부 사람들은 단청이라는 명칭이 색상 자체에 더 중점을 둔 것으로 생각한다. 색상의 차갑고 따뜻한 대비 측면에서 보면 단은 따뜻한 색이며 청은 시원한 색이다.
현대 색채학과 광학 연구에서는 삼원색 개념이 통용된다. 빨강(Red), 초록(Green), 파랑(Blue) 3색을 서로 다른 비율로 겹치게 하면 사람의 눈으로 볼 때, 다양한 주파수의 가시광선에 해당하는 많은 색감이 형성되어 풍부한 빛깔이 생겨난 것처럼 될 것이며, 바로 전문 분야에서 늘 이야기하는 ‘RGB 색상 모델’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빨강, 초록, 파랑의 세 가지 빛은 ‘삼원색’으로 정의된다.
자연광의 스펙트럼에서 녹색광은 빨강과 파랑 사이에 있는 반면, 빨강과 파랑의 스펙트럼은 더 멀리 떨어져 있다. 따라서 색채학 관점에서 빨간 쪽의 색은 난색계통에 속하고 파란 쪽의 색은 한색계통에 속한다. 이런 식으로 빨강과 파랑 두 가지 색깔로 전체적인 색채 개념을 잘 개괄할 수 있다.
현대 의학에서는 인간의 눈 안에는 색을 감지할 수 있는 몇 가지 원추세포가 있고, 각각 황록색, 녹색, 보라색 빛에 가장 크게 반응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RGB 모델은 현 단계에서 인류가 색채를 표현하는 하나의 편리한 방법일 뿐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사실 이것은 인간의 눈에 있는 민감한 원추세포의 반응이 색채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도 아니고, 자연계 빛의 진실한 색채를 나타내는 법칙도 아니며, 인류가 현존 기술을 바탕으로 인위적으로 정해놓은 것이다.
미술에서의 색의 삼원색과 위에서 언급한 빛의 삼원색은 다른 것이나 원리는 같으며, 이는 상당한 정도의 주관성은 물론 기술적 한계가 있다. 수십 년 전 미술계에서 표준으로 받들었던 ‘빨강, 노랑, 파랑’ 삼원색 이론은 오늘날 미술 교과서에서 이미 ‘마젠타(Magenta), 옐로우(Yellow), 시안(Cyan)’ 체계로 대체됐다. (참고: 여기서 시안은 현대적 개념의 파란색이며, 고대 단청의 청색과 같은 색이 아님) 왜냐하면 이른바 원색은 이론적으로 다른 색과 섞인 것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마젠타와 옐로우를 혼합해 빨강을 얻을 수 있고, 시안과 마젠타를 혼합해 파랑을 만들 수 있지만, 반대로 빨강, 노랑, 파랑으로는 마젠타와 시안을 만들 수 없음을 발견했다. 이에 따라 기존의 빨강과 파랑은 원색에서 중간색으로 강등됐다.
그런데 새로운 안료 삼원색의 등장으로 오랜 세월 의존해 온 색채 이론이 붕괴를 앞두고 있다. 새로운 세 가지 색깔을 원래의 중간색, 혼합색, 보색 이론 체계에 대입하자니 아귀가 맞지 않게 된 것이다. 안료 영역에서 마젠타와 시안이라는 새로운 보색 관계는 분명 시각적 기능에 부합하지 않고, 파랑과 노랑은 보색을 이루며 녹색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신구 ‘삼원색’ 체계에 각각의 역사가 있지만, 적지 않은 문제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양쪽 지지자들은 각자의 주장을 꺾지 않고 의견이 분분하다. 따라서 전문가가 이런 규칙을 쓸 때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삼원색’ 같은 개념이 단지 인위적으로 정의한 규칙일 뿐 진리가 절대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세부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이런 상황은 온통 뒤섞여 혼란해졌다. 왜냐하면, 역사 발전에 따라 문화도 오늘날 과학기술과 마찬가지가 됐기 때문이다. 분야가 갈수록 세분되고 종횡으로 복잡하게 얽히는 데다 완전히 정확하지도 않은 지식이 점점 상세해지며, 이론이 마치 세세한 곳까지 확장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갈수록 좁아지다가 심지어 이미 지엽적인 문제에 이르렀다는 뜻이기도 하다. 필자가 보기에는 문화, 예술 연구를 함에 있어 책의 바다에 빠져 온갖 고생을 해가며 본말을 뒤집기보다는, 지혜로운 본성이 자연스레 깨닫는 바에 따라, 큰 국면에서 보고 예술의 시작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원래의 모습을 찾음으로써 예술의 길을 전통으로 되돌리는 편이 낫다.
(계속)
원문발표: 2021년 9월 29일
문장분류: 문화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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