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정저우(鄭州)는 버티라”는 말, 더는 하지 마라

글/ 루신(盧新)

[밍후이왕] 한 차례 재난 때마다 우리는 중공 관리의 무능함과 무책임함을 보았다. 지하철에 물이 들어와도 상부의 지시 없이는 운행을 멈추지 못한다. 정저우(鄭州)와 허난(河南)성의 기상국이 모두 10차례 적색경보를 발령했지만 작업중지 명령이나 휴교령이 없었다. 허난성 궁이(鞏義)시에서는 기상국 국장이 홍수에 떠내려갔다 구조되었지만 현지 기상국은 연속 10시간 동안 기상 정보를 발표하지 않았다.

더욱 용납하기 어려운 것은 생명에 대한 냉담함이다. 정저우 지하철 5호선의 추모의식 생화가 가림막으로 둘러싸였는데, 다들 속으로 무엇이 두렵냐고 묻는다. 재난 속에서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명백해졌다. 중공의 재난 미학(美學)에 더는 현혹되면 안 되고, “인민이 제일이다”, “싸워서 이겨야 한다”라는 이런 거짓말을 더는 믿어선 안 된다. 많은 사람이 재난을 겪고 나서 자기 생각을 남겼는데 아래에 몇 가지만 발췌했다.

“정저우는 버티라”는 말, 더는 하지 마라

“원촨(汶川)은 버티라”부터 “우한(武漢)은 버티라”, “정저우는 버티라”까지 당신이 현장 밖에서 힘내라고 외칠 때, 생각해보았는가? 아침에는 멀쩡한 사람이 출근해서 밤에 물에 빠져 죽거나 아니면 차가운 시체 주머니 속에 있다면 누가 버틸 수 있겠는가? 나는 1만 가지 믿을 만한 이유가 있는데, 당신은 가족이 조난을 당해도 땅에 주저앉을 것이다. 당신이 버텨주고 있는 것은 주인마님의 가마이고 성문 앞의 깃발이다. 그들이 재난 중의 원혼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재난 중에서 왜 늘 ‘닭 피’를 찾는가?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단결된 중국인들은 종래로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난흥방(多難興邦, 나라에 재난이 많으면 백성들이 분발하여 국가를 부흥시킨다는 뜻)”, “중화민족은 싸워 이길 수 있다”라는 말을 자주 볼 수 있다. 사실 이것은 모두 극도의 냉혈한 같은 말이다. 중공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인민의 재난은 늘 건강한 몸에 필요한 닭의 피였던 것 같다.

재난은 거창한 서사(敘事)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의 진실한 처지이고, 모든 개인과 가족의 슬픔으로서 고통의 몸부림과 절망의 외침, 그리고 죽음을 가져온다. 이런 불행을 그들은 전혀 언급할 가치도 없어한다. 이런 ‘재난 미학’, ‘재난 성공학’은 사람을 현혹시킬 뿐 아니라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중화민족은 싸워서 이길 수 있다”라는 말은 더더욱 당(黨)의 말인데 모든 ‘당과 국가’가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수십년간 지진이 발생하고 1만 명이 코로나에 감염되어도 올림픽을 개최하지만, 일본인은 이런 공허한 구호를 외치지 않는다. 호주에서 반년 동안 큰 불이 나도 나라는 망하지 않고, 인도에 전염병 사태가 매우 심각해도 버티고 있지 않는가? 재난 중에서 주저앉은 나라는 어디에도 없는데 중공만이 이렇게 자화자찬하고 있다.

오늘 나는 더 이상 감동받고 싶지 않다

이번 폭우 속에서 시련과 불행을 겪은 매 사람의 고통은 심각하고 진지한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나 그들의 가족이 아닌 재해에 맞선 영웅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예전에 나도 감동을 많이 받았지만 이번에는 감동받고 싶지 않다. 나는 거창한 서사에 빠지는 집단감정이 매우 두렵다. 불행히도 희생된 사람들에 비해 우리는 운이 좋다. 끊임없이 감동에 빠져드는 것은 천박한 것이다. 만약 재난 속에서 또 ‘전 세계에서 내가 가장 대단하다’는 이런 오만함과 자부심을 외친다면 더욱 수치스럽다.

틀에 박힌 말이 다하면, 결국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7월 19일, 정저우시 당서기 쉬리이(徐立毅)는 베이자커우(北甲口) 등지에서 현장 점검을 한 후, 홍수 대비를 지도 감독하기 위해 마지막에 반드시 ‘중대 수리공정’을 차질 없이 확실하게 실시해 ‘5불(五不, 댐이 무너지지 않기, 제방이 무너지지 않기, 도로가 끊어지고 다리가 무너지지 않기, 산사태가 나서 사람이 죽거나 홍수가 나서 땅이 잠기지 않기)’ 목표를 수립하라고 요구했다. 아주 익숙한 틀에 박힌 말이 아닌가? 요구가 많지만 사실 인민에게는 매우 공허하다.

사실이 증명하다시피 중국 관료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우한 사태부터 정저우 수해까지가 이 점을 말해준다. 이것은 어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중공의 본질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중공에 대한 어떠한 환상도 영원히 환상일 뿐이다.

홍수 충격에 부숴진 허풍

중공은 “534억 위안(약 9조 489억원)을 들여 스펀지 도시를 건설하면 200년에 한 번 닥치는 홍수를 막을 수 있다“라고 허풍을 떨었다. 지금은 46년(1975년 이후 지금까지), 해마다 닥친 홍수를 막지 못하면서 하늘 탓만 하고 있다.

7월 24일 ‘삼퇴(三退, 중공의 3대 조직 탈퇴 성명)’를 한 장라이푸(張來福)는 “공산당은 인민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는 사악한 집단이다. 나는 지금 각성했다. 내가 한 맹세를 지우고 중국 인민들과 함께 서 있겠다”라고 말했다.

중공의 거짓말은 100년을 연출했다. 우리 모두 재난에서 교훈을 받아들여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여 더는 거짓말에 속지 말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8월 3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8/3/429098.html

ⓒ 2025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