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에 대한 침묵은 공모와 같으므로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내야 양심을 지킬 수 있다
글/ 화젠(華劍)
[밍후이왕] 미국 보스턴 홀로코스트 기념관 밖의 비석에는 유명한 글이 새겨져 있다. “처음 그들이 공산주의자들을 추살 할 때 나는 침묵을 지켰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유대인을 추살 할 때 나는 침묵을 지켰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조합원을 추살 할 때 나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조합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천주교도를 추살 할 때 나는 침묵을 지켰다. 나는 신교도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나를 상대했을 때 아무도 나서서 나를 위해 말해주지 않았다.”
이 글이 도심에 보존되어 있는 이유는 바로 시시각각 사람들을 일깨워주기 위해서다. “침묵은 잠시 침묵한 자의 통행증이 될 수 있지만 결국 침묵하는 자의 묘비명이다” 그러므로 큰 시시비비 앞에서는 정의의 목소리를 내야할 뿐 중립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중립의 대가
‘청사고(清史稿)’ 열전36의 ’강희조실록(康熙朝實錄)‘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강희제는 만 14세인 강희6년에 친정을 시작했지만, 당시 조정은 여전히 사리를 꾀하는 오배(鳌拜)의 전횡으로 국정이 좌지우지되었다. 오배는 조서를 빙자해 2호 보정대신(輔政大臣) 수크 사하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언관(言官)의 상주(上奏, 임금께 아뢰어 올림)마저 금지시키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 패거리들이 조정 곳곳에 자리 잡고 위세를 부리고 있었으므로 여러 관원들은 속으로만 분노할 뿐 감히 드러내서 말하지 못했다.
당시 개국 대신인 알필륭(遏必隆)의 지위는 오배에 대항할 수 있을 만큼 높았다. 강희의 선제 순치가 알필륭을 보좌대신으로 배치하여 오배 보다 높은 지위에 배치한 것은 바로 오배를 견제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강희제가 친정 후 특별히 알필륭을 일등공신에 봉하고 태사직에 앉혀 대신들 중 관직이 가장 높아 졌다. 그렇게 황은이 망극한 은혜를 입고도 알필륭은 황제와 오배 사이에서 중립을 유지하며, 오배의 악행(惡逆)에 눈감고 관용으로 일관하게 되어 결국 나쁜 일을 조장하게 만들었다. 그는 직접 상주하여 탄핵하지도 않았고, 말리거나 타이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때맞춰 오배에게 동조하기까지 했다.
강희8년 소년에 불과한 강희는 오배와 그 일당을 일거에 제거한 뒤, 알필륭도 체포했다. 강희제는 알필륭이 두 왕조의 은총을 받고 있었음에도 오배가 여러 명의 대신을 독단적으로 살해하고, 황제까지 핍박하는 것을 보고도 간여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응징이었다. 알필륭이 독선전일 뿐만 아니라 선과 악의 정사(正邪) 앞에서 침묵하며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은 악에 동조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알필륭은 체포되어 구금된 지 1년 뒤 감옥에서 병사했고, 오배도 역시 옥사했다.
이 역사적인 이야기는 “중립이 안전한 명철보신(保身)으로 보이지만, 실은 자신을 여러 방면으로 버림받게 방치하는 참으로 위험한 것”임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미국 28대 대통령 윌슨은 “중립은 부정적인 단어“라고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전역이 전장으로 변할 때 룩셈부르크, 벨기에, 네덜란드 등의 국가가 중립을 선언하며 전쟁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나치 독일은 그들 국가들의 ‘중립적 환상’을 제일 먼저 무쇠발굽으로 짓밟아버렸다. 당시 스위스도 중립을 선언했지만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2차 대전 당시 스위스는 나치독일의 유대인의 금을 사들이며 유대인 난민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지금도 국제적인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당시 힘이 있던 미국도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가 중립을 선언한 일명 ‘먼로주의 선언’ 원칙에 따라 태평양전쟁에서 중립을 지키다가,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공격을 받고 윌슨 대통령은 즉각 선전포고로 중립의 입장을 바꿨다.
악의 평범성: 복종성 중립
유대인의 유명 정치사상가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의 개념을 제시했다. 그녀는 강권 체제하의 죄악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했는데, 하나는 강권통치 자체가 ‘극악한 악’이며, 또 하나는 피통치자 또는 참여자의 ‘평범한 악’으로 눈에 똑똑히 보이는 악행을 저지하지 않거나 직접 가담하는 것이라고 했다.
1962년 6월 1일 나치의 대표적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이 교수형에 처해졌는데, 그는 재판 때 거듭 “자신은 톱니바퀴 한 축의 일부분으로 전동 작용에 따라 움직였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독일계 뉴욕출신 한나 아렌트는 재판정에 직접 참관해 취재 후 기사를 송고한 기자로 유명하다.
그녀는 아이히만의 법정방어진술을 보고 ‘악의 평범성’이란 철학적 사고를 하게 되었다. 권력과 체제에 아무런 생각 없이 순종하거나 유지하는 ‘중립성’이 바로 그것이다. 개인을 체제에 완전히 동화시키고, 체제의 배치에 복종하고, 체제 자체에 내재된 반도덕적 행위를 암묵적으로 수용하거나, 양심에 흔들려도 체제의 선전교육과 인정(認可)에 의해 자신을 스스로 변호함으로써 도덕적 죄의식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심리상태를 말한 것이다. 그러나 살인은 생명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원칙이 있다. 그러므로 아이히만이 자신을 어떻게 변론하더라도 정의의 징벌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중공사당 통치하에서 ‘악의 평범성’을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소위 ‘문화대혁명’이 바로 전형적인 사례다. 전통문화가 파괴되자, 지식인들은 양심과 전통을 잊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일반 민중들도 기꺼이 공범자가 되었다. 지금 우마오(五毛), 샤오펀훙(小粉紅 중국내 젊은 네티즌), 학생 밀고자, 차오양 따마(차오양구에 있는 어머니 자율방범대) 등등의 사람들은 사익의 만족을 위한 동기로 삼는다. 그들은 끼니를 때우거나, 적극적으로 진출하거나, 취업을 추천하는 등의 대가를 못 이기 척 하거나 또는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중공사당에 의지하고 복종하면서도, 자신이 정의와 대립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생각해보지 않는다.
사람마음은 ‘중립’ 속에서 가라앉고, 사회는 복종으로 망하고, 가짜와 악과 투쟁이 난무하여 인심이 흉흉하다. 결국 누구도 스스로를 지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결국 사람마다 서로를 해치게 된다.
2018년 10월 28일 충칭(重慶)에서 버스 한 대가 양쯔강(長江)에 추락해 운전자를 포함한 15명이 사망했다. 사고원인은 한 여성승객이 정류장을 지나친 것을 뒤늦게 알고 차를 세워 달라고 하자, 운전자가 버스정류장이 아니면 정차할 수 없다며 거부함에 따라 다투게 되었고, 쌍방이 물러서지 않고 치고받고 싸우다가 버스가 추락한 것이다. 사건조사발표에 의하면 그들이 5분간 싸우고 있을 때 승객 중 누구도 나서서 말리지 않았다. 승객은 모두 파멸돼가는 행위를 보고도 무관심하게 중립을 지키며 바라본 구경꾼이 된 것이다. 5분 동안에 단 한 명이라도 나서서 말렸더라면 그런 사고는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런 재앙을 피할 수 있겠는가. 바로 정의를 위해 소리를 내야한다. 복종하는 중립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중공의 잔혹한 통치 하에서 감히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용기이고 훌륭한 일이다.
90년대 우한(武漢)에서 출생하고 성장한 도룡(屠龍-가명)은 고민 끝에 스스로 선택했다. 그는 ‘미국의 소리’ 방송에서 “우한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당국자들의 지시에만 따르려고 했던 자신의 생각을 확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상의 벽을 넘을 줄 몰랐으므로 해외의 친구들이 진실을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이미 지금쯤은 시체가 되어 시체소각로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도시가 봉쇄된 나날의 많은 일들을 떠올리면서 “그들이 북경의 하위계층 사람들을 퇴거시킬 때, ‘나는 하층민이 아니므로 퇴거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고, 홍콩인들의 처지는 동정이 가지만 나는 거리로 나가지도 않을 것이고 항의도 안 할 것이니 나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전염병 사태가 고향에서 발생했고, 내 주변의 많은 친지들이 이미 전염병을 앓고 있고, 또 사망했기 때문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더는 중립을 취하지 않는 스위스, 중공에게 핵폭탄과 같은 타격
사악이 목적을 이루는 것은 선량함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가 탄생한 이래 전 세계에 가져다 준 것은 기근, 학살, 강권주의였다. 중공사당의 100년 홍조가 중화문화를 거의 다 파괴했다. 오늘에 이르러 생체에서 장기를 적출하고, 우한 폐렴을 은폐하고, 홍콩자치를 파괴하고, 서방 사회에서 도둑질하고, 서방의 정치재계 인사들을 세뇌하고 포섭해서 부패시키는 등 온갖 해악을 저질렀다. 사악한 중공에 대한 중립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한 폐렴이 심각한 국가와 지역은 중공에 ‘중립’과 ‘일국양제’의 태도를 취했기에 나타난 결과다.
큰 시비 앞에서 정사대결이 있을 때 중립과 중간 입장이란 없다. 하늘이 중공을 멸하는데 누가 중립을 지키겠는가?
미국을 비롯한 서방사회는 갈수록 중공의 사악한 본질을 철저히 인식하여 연거푸 큰 타격을 입혔다. 미국은 중공과 홍콩관리에 대해 제재를 가하고 해외자산을 동결시켜 연속적인 피해효과를 촉발시켰다. 항상 중립적이던 스위스도 11월에 스위스 은행을 포함한 스위스 기업들이 중공을 겨냥해, 인권침해 국가와는 거래를 금지하는 정책의 가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한다고 공고했다. 국민투표 결과 인권침해국가와 거래를 중단하게 될 경우 중공사당에게는 핵폭탄 급의 피해가 될 것이다.
2019년 8월, 중공사당 전국정협위원인 자캉(賈康) 재정부 재무소장이 발표한 정보에 의하면, 2019년 4월 17일 비밀보안을 자랑하는 스위스은행이 100여 명 중국인이 스위스은행에 예치한 금액이 7조 8천억 위안(약 1조 3천억 달러)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비밀 미공개정보를 공개하는 기구인 위키리크스(Wikileaks)는, 중공고위관리가 스위스 은행에 약 5000개의 계좌를 갖고 있으며, 3분의 2가 중앙고위공무원이라고 밝힌 바 있다. 부총리 급, 은행장, 부장부터 중앙위원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두가 계좌 하나씩을 갖고 있다. 스위스 국민투표가 통과되면 중공권력자 5000개의 계좌와 수조원의 돈이 전부 동결된다. 일부 평론가들은 중공고위직들에게는 스위스의 제재가 미국의 제재보다 더 두려움에 떨게 한다고 말하면서, 중공의 세계 침몰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억만금의 자산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1950년 9월 14일 중공과 스위스가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래 지금까지 이미 70년 가까운 수교 역사가 있고, 2019년 중공과 스위스의 양자무역액은 318억 달러에 달했다. 주로 스위스에서 전기기계제품, 화학약품, 광학기기, 의료장비, 시계류 등을 수입해 수입액이 양자교역액의 85.7%를 차지했다. 그러나 스위스는 이제 이익 앞에서 양심을 선택했다. 2020년 8월 2일 스위스 이그나시오 카시스(Ignazio Cassis) 외교장관은 현지 신문 손탁스블릭(Sonntagsblick)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중공의 인권유린과 홍콩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은 국제적으로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스위스는 이미 개방의 길을 벗어난 중공에 대해 세계가 좀 더 강력하게 대응해 주기를 바란다. 중공이 자신의 노선만을 고집한다면 서방세계는 더욱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다.”
스위스의 변화는 중공에게 핵폭탄과 같은 타격이다. 중공 고위관리의 해외 재산이 위험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스위스도 친공(親共)에서 타공(唾共-공산당을 처서 쓰러트림)으로, 중립에서 중공을 버리는 쪽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것은 정사의 천칭위에서 중공이 완전히 균형을 잃고 통제력을 잃은 것이고, 천멸중공(天滅中共)의 방향으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천멸중공에서 누구도 비켜갈 수 없다. 하늘에 순응하여 정의로운 선택을 해야 세계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
원문발표: 2020년 8월 17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0/8/17/41057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