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 ‘신고 포상금’에서 본 중공의 공포 진상
글/ 미명(未名)
[밍후이왕] 최근 중공의 정법위(政法委), 610은 여러 성(省)과 시(市)에서 파룬궁 수련생의 진상 알리는 행위를 탄압하고, ‘사람마다 참여하기’를 부추기기 위해 ‘신고 포상금’ 최고 10만 위안(약 1700만 원) 제도를 운용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중국에는 “비정상적인 일이 일어나면 반드시 요괴가 있다”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해서, 한 가지 일이 정상 범위를 벗어나면 반드시 알 수 없는 목적이 있다는 얘기다. 중공은 현재 전염병 방제, 남방 홍수, 민생구제 등 연이은 큰일에 직면해 있고, 재정도 이미 바닥을 보이는데, 의외로 신고 포상금 10만 위안을 지급한다고 한다. 이것은 무슨 꼼수를 부리는 것일까?
요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 보기로 하자.
세계가 깨어나고 있다
2019년 6월, 홍콩 ‘반송중(反送中, 중국 송환 반대)’ 사태에서 중공은 수만 발의 최루탄을 쏘고, 2000여 명이 ‘자살’당하도록 조작했다. 그리고 우한 폐렴이 세계로 확산하여 현재까지 전염병 감염자가 2000만 명을 돌파했다. 바이러스가 우한에서 왔다는 것은 전 세계가 모두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공은 책임을 모면하려고 전염병 발생 상황을 은폐하고 있다.
생명의 대가는 세계의 구석구석, 모든 사람의 마음에까지 와닿았다.
이른바 ‘인명관천(人命關天, 사람의 목숨은 하늘이 관장하는 것이어서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어떠한 이익과 물질이든 고귀한 생명에 비하면 보잘것없다는 것이다. 거짓말이 무기가 되면 진상은 드러나지 않고, 온 세상이 불안하다. 지금은 한동안 확산세가 주춤해졌지만 정말 2차 대유행이 현실화하면 세계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지난해 홍콩 ‘반송중’ 사태에서 중공의 폭력에 대해 프랑스 방송사들은 2019년 11월 11일에 발표한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기념하는 기사를 언급했다. “만약 세계가 붕괴한 유형의 베를린 장벽이 중국에서 무형의 장벽으로 변하고, 더 사악한 인터넷 방화벽으로 변한 것을 보지 못한다면” 그 어떤 자유에 관한 언사(言辭)도 “모두 빈말에 불과해 실제와 동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올해 중공 바이러스(우한 폐렴)가 세계를 휩쓸고 있는 것에 대해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50년 동안 미국은 대중국 접근 정책이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공을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도록 지원한 것은 중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전환할 수 있다는 기대 하에 지원한 것인데 모든 것이 실수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중공은 미국뿐 아니라 인류 전체에 위협이 되고 있다”며 “중공의 박해를 받은 모든 중국인과 연합해 중공의 행위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는 다른 반격 작전을 고려하고 있다”며 중공을 대할 때는 먼저 “의심하고 그다음 사실 확인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코로나 사태 중에서 한동안 침묵하던 유럽도 ‘홍콩판 국가보안법’으로 중공이 홍콩을 위험한 지역으로 끌고 가는 것을 더는 구경할 수 없게 되자 영국, 독일, 프랑스는 모두 홍콩과의 범죄인 인도조약을 중단했다. 이것은 중공에 대해 견해를 밝힌 것이나 다름없다.
세계 많은 나라의 중공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1년 전 홍콩 ‘반송중’ 사건에서 많은 중공 관리가 도처에서 나쁜 짓을 했다. 1년이 지난 지금 홍콩의 반송중 탄압에 참여한 중국과 홍콩의 11명 관리들의 여권 번호와 주민등록번호, 주소가 모두 공개됐다. 이것은 전례 없는 기록으로, 이 11명은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게 된다.
1년 전 위챗의 사용자는 10억 명에 이르러 거의 모든 중국인을 포함했다. 1년 뒤, 중국인이 전염병과 관련해 퍼뜨린 거짓말은 세계가 전염병 상황을 오판하게 만들어 세계 각지에 막대한 피해를 줬다.
국제사회의 압력에 직면하자 중공은 대외에서 약세를 보이지만, 대내에선 더욱 흉포한 본질을 드러냈다. 경제 방면에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경제내순환(經濟內循環)으로 바꾸어 사실상 북한식 쇄국 정책을 실시했다. 전 국민을 대가로 국제사회의 책임추궁에 대항하고, 이데올로기 방면에서는 언론을 탄압하고, 정의의 목소리를 봉쇄하기 위해 계속 광기를 부리고 있다.
중공은 박해로 더 많은 사람을 묶어 놓으려고 망상하고 있다
중공은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대결 회피’, ‘솔직한 대화’, ‘관계 회복’, ‘협력 유지’ 등 ‘중미 관계 프레임’을 조정했다. 하지만 사실 중공은 이번에 세계가 정말 깨어나, 수십 년 전처럼 다시 한번 관용을 베풀어 나쁜 일을 하도록 조장할 기회가 전혀 존재하지 않음을 모두 알고 있다.
“죽기 전에는 희생양을 끌어와야 한다”, “하루라도 속일 수 있으면 하루를 속이고, 한순간을 속일 수 있으면 한순간을 속인다” 이것이 바로 중공의 현재 심태이다. 중공은 대외에서 다시는 과거처럼 ‘큰돈 뿌리기’와 ‘은탄외교(銀彈外交, 자국의 국익을 위해 경제력을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을 말함)’로 길을 열지 못한다. 중공은 내부를 향해 보루를 세우고 진상을 봉쇄하며 서민을 끝까지 기만한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중공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진상(真相)이다.
웨이보든, 위챗이든, 틱톡이든 또 어떤 사이트, 신문과 간행물이든 중공은 수천 수백 개의 ‘키워드’ 검열 제도 아래에서 중공이 민감한 정보로 간주하는 것은 어떤 것도 모두 차단하고 삭제한다.
그러나 거리와 골목길, 번화가 공원에서 평범한 노인, 젊은이, 직장인들이 하나둘씩 진상을 알리고 복음을 전하고 있다. 공산 붉은 악마의 철의 장막 아래서 그들은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중생을 구하고 있다. 21년 동안 밤낮을 멈추지 않고, 오로지 진상을 알리고, 인심을 구할 어떠한 기회도 놓치지 않고 있다.
2020년 7월 20일, 세계 각지의 미국·캐나다·영국·프랑스·독일·일본·한국 등 수십 개 국가에서 사람들은 각성하고, 21년 동안 ‘진선인(真·善·忍)’의 진리를 고수해온 파룬궁 수련생들을 성원했다. 30개 국가에서 온 606명의 초당파 의원들은 공동으로 연합성명에 서명하고, 중공이 21년 동안 파룬궁 수련단체를 체계적이고 잔혹하게 박해함을 즉시 중지할 것을 호소했다.
1999년 7월 20일, 중공 장쩌민 집단은 파룬궁에 대해 미친 듯한 박해를 했다. 밍후이왕에는 실명으로 박해받아 사망한 사람은 4000여 명이고, 수십만 명이 불법적으로 납치·감금·판결·세뇌·노동교양을 당했다고 했다. 이런 혹독한 환경하에서 파룬궁 수련생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진상을 알렸다. 사람들에게 인류를 파멸시키는 공산 유령의 실정을 알리고, 10여 년 동안 이미 3억 6천만 명의 사람들이 중공의 당(黨)·단(團)·대(隊) 조직에서 탈퇴했다면서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재앙에서 멀어지도록 권유했다.
2020년 하반기에는 거의 매주, 매일같이 세계가 ’중공을 확실하게 인식’한 소식과 경제 관계에서 이데올로기까지 단절한 소식, 그리고 중공 고위층에 대한 개인 청산(清算), 정밀 타격에 대해 전해지고 있다. 죄악이 깊다는 것을 알고, 멸망에 직면한 중공은 청산이 다가오자 몹시 두려움에 떨고 있다.
깡패의 논리는 언제나 빼앗고 점유하는 것인데, 깡패가 지갑을 열고 돈을 주려고 할 때 그것은 가장 위험한 일임이 틀림없다. 중공 정법위, 610 등 부문들이 소위 ‘고액 포상금’을 이용해 분배 식으로 임무를 지시했다. 7월 22일, 산둥 가오미(高密)시 경찰은 38명의 파룬궁 수련생과 가족을 납치했다. 6월 18일, 허베이 탕산(唐山)시 펑룬(豐潤)구 경찰은 30여 명의 파룬궁 수련생을 납치했는데 68세의 한위친(韓玉芹)은 그날 박해로 사망했다. 7월 19일과 21일에는 베이징 경찰이 10여 명의 파룬궁 수련생을 납치했는데 대부분 90년대에 태어난 젊은이였다.
현실 속에서 상당히 많은 공검법(공안·검찰·법원)과 파출소, 국보대대는 이미 진상을 알고 있어 파룬궁 수련생과 관련된 일을 이지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약간의 이익과 권력을 위해 사람의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고 있다. 이것은 중공이 이익으로 유혹해 더 많은 사람을 박해에 참여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멸망하기 전에 희생양을 찾고 있는 것이기에 사람들은 각성해야 한다.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 박해자가 작은 카메라로 파룬궁 수련생을 촬영할 때 하늘의 카메라도 악인의 행위를 촬영하고 있다! 어느 것도 빠뜨릴 수 없고 어느 것도 벗어나지 못한다.
불법(佛法)은 자비롭다. 하지만 불법은 동시에 불가침의 위엄도 지니고 있다.
원문발표: 2020년 8월 18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8/18/41062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