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산저우
[밍후이왕] 1999년 4월 25일이 지난 지도 21년이 된다. 그때 평화 상방(上訪-청원)에 대한 기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지만 4.25 평화 상방의 정신은 영원히 퇴색되지 않을 것이고 4.25의 선량함과 순수함은 천지에서 영원히 빛날 것이다.
대학시절 외국인 선생님은 수업할 때 대화식, 일깨워주는 식으로 글을 가르쳤다. 중공(중국공산당)의 교육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주입, 필기, 시험, 점수 따기로 그럭저럭 졸업한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시스템 아래에서 성장한 사람은 설정해놓은 일방적인 궤도에서 달리는 것 같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필사적으로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인데 중국인은 듣기 좋게 분투라고 말한다.
한번은 외국인 선생님이 우리를 데리고 캠퍼스 복도에서 얘기를 나누었다. 학생들은 매우 기뻐했고 화제도 많았다. 그 외국인 교사는 매우 젊었는데 나는 지금도 그의 얼굴이 기억난다. 당시 그가 말한 한 화제를 나는 이해하지 못했고 매우 놀랍기도 했다. 그는 매우 진지하게 신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다. 나도 매우 진지하게 그에게 한 가지 질문을 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나는 그때 그의 믿음을 추구하려는 것은 아니었고 그가 어떻게 멍청하게 세상에 정말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가소로운 제재를 발굴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하나님이 정말 존재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미소를 짓고 나를 보며 가볍게 천천히 의심할 여지없이 말했다. “네, 당연히 존재합니다.” 그의 눈빛과 미소는 말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어 순간 나는 그와 한 궤도에 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원래 그를 비웃으려던 마음이 갑자기 사라졌다. 나는 할 말이 없어 더 캐묻지 않았다.
나는 여태껏 내가 걸은 이 궤도를 의심한 적이 없다. 형제자매, 동창생, 친구들이 모두 이렇게 걸어왔다. 성적이 좋으면 ‘유망하다’라고 하면서 장래에 좋은 직장을 구해 평생 근심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물론 좋은 아버지가 있으면 장래 일자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 이런 궤도에 있지 않은가?
하나님과 신은 누구신가? 어찌 이런 궤도가 나올 수 있는가? 아무튼, 어릴 때부터 커서까지 누구도 이런 말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때 중국인은 외국인이 신앙을 가진 것에 대해 일반적으로 외국인은 잘 살고 할 일이 없어 정신이 공허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 설은 납득되지 않는다. 나는 대학교의 의기소침한 동년배 학생이 돈을 빌려 주량을 비기고 무단결석하면서 ‘더우디주(鬥地主-카드놀이)’를 하는 것을 보았다. 이것이 웅장한 이상과 포부인가?
1980년~1990년대 중국 사회에는 다양한 기공 열풍이 유행했다. 나는 병을 제거하기 위해 많은 기공을 연마하면서 중국의 전통 불가, 도가 서적을 널리 섭렵하고 스스로 공법을 연마했다. 한 대학 부교수가 나에게 파룬궁(法輪功)을 추천했다. 그녀는 파룬궁을 배우지 않았지만, 파룬궁에 관심이 많았다. 1995년 말, 나는 인연이 닿아 사존의 지난(濟南) 설법 동영상을 보았다. 나는 대학교에서 느꼈던 그 외국인 교사의 인생 궤도가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꼈다.
당시 동창생 중에 4명이 파룬궁을 연마한 거로 기억한다. 우리는 평소 접촉하지 않았고 각자 환경에서 수련하고 좋은 사람이 되며 신체 단련을 했다.
나는 중공의 정치가 무엇인지, 중공이 어떻게 정치를 이용하여 정신신앙(正信信仰)을 매복 공격하고 모함하는지를 몰랐었는데 ‘4.25’를 겪으면서 알았다.
1999년 4월 중공 과학원의 건달 과학자 허쭤슈가 톈진교육대학 잡지에 게재한 청소년이 기공 연마에 적합하지 않다고 강조한 글에는 파룬궁을 헐뜯는 내용이 있었다. 당시 문장 제목을 보고 나는 이 이른바 거물급 과학자가 조사나 해보고 청소년이 기공을 연마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것인지 생각했다.
당시 우리 연공장에는 많은 연공인의 자녀도 함께 파룬궁을 연마했는데 효과가 매우 좋았다. 거짓말하고 게으르던 아이가 연공한 후 버릇을 고쳤고, 울고 보채며 부모에게 매달리기 좋아하던 아이에게 ‘진선인(眞·善·忍)’ 세 글자를 알려주었더니 매우 신기하게 나쁜 성격을 고쳤다. 가장 신기한 것은 4살짜리 장난꾸러기가 조심하지 않아 문틈에 손이 끼워 멍이 들었는데 아이 어머니가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라고 알려주었다. 아이가 얌전하게 따라 외웠는데 매우 빨리 나아 아파하지도 않았고 아무런 후유증도 남지 않았다.
당시 나는 중증의 기관지염과 위장병이 있었는데 대법을 수련한 후 매우 빨리 완쾌됐다. 직접 겪은 일이기에 자신을 속일 수 없다. 톈진 파룬궁수련생은 허쩌슈의 파룬궁 모독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해 톈진교육대학에 갔는데 톈진 공안에게 체포되었다. 나중에 체포된 수련생 가족이 톈진 공안에 이치를 따지러 찾아갔을 때 경찰은 이 일은 베이징 중앙을 찾아가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파룬궁 수련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진선인’ 세 글자를 믿고 이행하기에 모두 매우 순진하고 선량하다. 자기의 억울함을 말하고 파룬궁을 수련하게 된 원인과 어떤 혜택을 보았는지 등의 상황을 반영하려면 베이징에 가야 한다고 하여 그냥 베이징으로 갔다.
아마 4월 23일 아니면 24일이었을 거다. 한 연공장의 수련생이 나에게 톈진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를 말해 주고 국가에 상황을 반영하러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파룬궁이 이렇게 좋고 사부님께서 돈 한 푼 받지 않고 우리 병을 치료해주셨는데 소위 과학자가 어찌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함부로 해서 되겠는가? 그럼 나는 실상을 반영하러 가야겠다고 말했다.
4월 25일 나는 혼자 자전거를 타고 집에서 출발했다. 그날 날씨는 화창했다. 거리가 좀 멀긴 했지만,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즐거워 힘든 줄 몰랐다. 일을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속으로 정부 공무원을 만나면 있는 그대로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믿지 못하겠으면 조사하라 하고 직접 겪은 파룬궁이 좋은 사실을 말하려 했다.
푸유제(府右街)에서 약 1km 떨어진 곳에 왔을 때 공공버스에서 많은 수련생이 내리는 것을 보았다. 아마 교외나 허베이, 톈진에서 온 것 같았다. 동행임을 알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몰려서 떠들지 않았고 버스에서 내린 후 여전히 다그쳐 걸어갔다. 노인, 젊은이가 있었고 아기를 안은 여성도 있었다.
푸유제 근처에 도착한 후 나는 안쪽 골목에 자리를 찾아 자전거를 세웠다. 오전 9시경, 푸유제에서 베이징대학 의학부까지 거의 사람들로 가득했다. 사람들은 주요 거리를 비켜섰기에 도로는 완전히 막힘이 없었다. 현장에는 경찰이 벌써 수련생들의 바깥쪽에 서서 수련생을 지켜보고 있었다.
1999년 4월 25일, 1만 명이 넘는 파룬궁 수련생의 베이징 평화 상방
온종일 현장은 매우 조용했다. 옆에 선 수련생이 가끔 속삭이고 있었고 적지 않은 수련생이 ‘전법륜(轉法輪)’을 들고 조용히 읽었다. 경찰들은 긴장한 상태에서 호기심을 가졌고 나중에는 홀가분하게 서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혁명하러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 것 같았다. 그 후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어 나는 불법적으로 노동교양을 받았다. 같이 노동교양을 받은 파룬궁수련생 한 명은 1999년 ‘4.25’ 당일 현장에서 우리를 지켜보았던 경찰이었다. 그는 서로 안면이 없고 또한 사회 각 분야의 사람들이 이토록 조용하고 이성적이며 평화적인 데 대해 놀라웠다고 했다. 나중에 그는 주동적으로 ‘전법륜’을 찾아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저녁에 수련생들이 흩어진 후 땅에는 종잇조각 하나, 경찰의 피웠던 담배꽁초 하나 없이 수련생들이 다 주웠다.
나중에 중공이 놀라워하고 최고위층이 놀랐다는 말을 들었다. 이 사람들의 조직의식, 규율 관념이 이렇게 강하고 고도로 일치한 데 대해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것이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잠재적인 이유가 되었다. 힘이 너무 강해 탄압하지 않으면 중공에 불리하다고 생각하고 좋은 사람이 너무 많고 힘이 너무 강하면 중공에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중공의 논리다. 누가 바르고 누가 사악한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수련인에게 규율 관념이란 가소로운 개념이다. 우리 수련인은 심성을 중시하고 도덕성이 고상하고 곳곳에서 항상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 수련인의 눈에는 적이 없고 오로지 구도될 중생밖에 없다. 수련 단체로 놓고 말하면 조직의식이란 더 언급할 나위가 없다. 중공 체제는 투쟁만 중시하기에 도덕성이 타락되었다. 하나의 단체라 하더라도 산만한 ‘환자’처럼 각자 제멋대로 하기에 ‘조직의식, 규율 관념’ 등 매개물이 있어야만 동작이 일치될 수 있다.
그날 푸유제에서 나는 파룬궁 동창생 4명 중 한 명을 만났다. 나는 매우 기뻐 이 동창생과 간단하게 두어 마디 하고 각자 자기 위치로 돌아갔다. ‘4.25’ 이후 나는 또 다른 한 동창생도 그날 중난하이로 간 사실을 알았다. 우리 세 사람은 사전에 상대방이 간 것을 다 몰랐고 사전에 연락도 하지 않았는데 어디에서 온 조직의식이고 규율 관념인가?
대도무형(大道無形), 이것은 중공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더러운 권모술수와 흑후(黑厚-철면피) 정치만 알고 그것의 부패한 정권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1억에 달하는 좋은 사람을 고도로 조직의식이 있는 계급의 적으로 가상하고 서슴없이 칼을 빼 들었다.
1999년 4월 26일에도 각지 파룬궁수련생이 끊임없이 베이징으로 다그쳐가 중국 정부에 파룬궁 진상을 알렸다는 말을 들었다. 그 후 중공중앙 량반(兩辦-중앙판공청과 국무원판공청)은 ‘정부는 몸을 건강하게 하는 각종 연공 활동을 금지한 적이 없다’는 통보를 발표하여 풍파가 가라앉은 것 같았다.
그러나 3개월도 되지 않아 장쩌민과 중공은 서로 결탁하여 1999년 7월 20일에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발동했다. 동시에 중공은 역사에 낙인을 찍었다. 2004년 11월 ‘9평 공산당’이 발표되면서 ‘천멸중공(天滅中共-하늘이 중공을 멸하다.)’의 시대가 도래했다.
중공에 어떤 환상도 품지 말아야 한다. ‘4.25’ 평화 상방에 대한 중공의 모독과 비방에서 우리는 중공의 본질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역사적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오늘날 우한폐렴 전염병이 전 세계에 퍼져 세계 각국은 중공이 이번 전염병을 은폐한 범죄와 각종 비인도적인 행위를 똑똑히 보게 됐다. 공산당을 겨냥해서 온 이번 전염병 위기는 최후에 중공 악마와 한 무리가 된 모든 생명을 완전하고 깨끗하게 청산할 것이다.
중공의 사악함을 똑똑히 보고 중공을 탈퇴하고 중공 사악을 멀리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사람, 모든 국가와 민족의 급선무다.
원문발표: 2020년 4월 22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4/22/40413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