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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의 ‘배은망덕’을 말해보자

[밍후이왕] 중국에서 주쯔칭(朱自清)과 그의 산문(散文)작품 ‘연못의 달빛(荷塘月色)’을 얘기하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주쯔칭의 아들 주마이셴(朱邁先)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는 1936년에 비밀리에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에 가입했고 1938년에 중공 창장국(長江局, 임시로 장강 연안 지대에 설치해 각 성의 중공 발전을 관할하는 기구)의 허락을 받고 국민혁명군 제31군에 들어갔다. 1949년 그는 구이베이(桂北) 국민당 군정 요원(軍政人員)을 대표해 중공 구이린시 정부와 공산당에 항복하겠다고 얘기했고 결국 일이 성사되었다.

1949년 말, 주마이쎈은 ‘봉기(起義)’ 신분으로 광시 군정대학에 들어갔고 1950년 졸업 후에는 구이린 쑹보중학교에서 강의했다. 하지만 1950년 12월 ‘반(反)혁명 진압’ 운동 때 그는 체포되었고 후에 후난 신닝현으로 압송되었다. 이듬해 11월 신닝현법정은 그를 ‘스파이’라고 판결함과 동시에 즉시 사형선고를 집행했다.

국민당 중장 부사령관이었던 펑쾅가오(彭曠高)는 항복 후 해방군 서남군구 고급 참모가 되었고, 다른 중장 부사령관 차오마오(曹冒)도 중공에 투항한 후 제2고급보병학교 교사가 되었다. 그 외에 소장 부군단장 정쏀청(曾憲成)도 서남 군구군정학교에 들어가 학습했다. 부대를 이끌고 투항한 관병에 대해서는 과거의 잘못을 묻지 않는다는 중공의 약속으로 보면 1950년 반(反)혁명 진압 운동 시기 그들은 전혀 탄압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모두 ‘반혁명’이라는 죄명으로 후베이 본적으로 호송된 후 처형당했다.

1949년에 공산당에 항복해서 1951년 반혁명으로 총살당하기까지 2년밖에 안 된다. 토끼를 다 잡은 후 사냥개를 죽이는 속도가 너무 빨라 중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문화대혁명 시기 중공은 베이징에서 강제 관할을 집행할 역할이 필요했다. 상사의 의도를 잘 알아채고 비위를 잘 맞추어 고위층의 좋은 평가를 받던 전 난징 군사구역 모군 부정치위원인 류촨신(劉傳新)이 이때 자진해 나섰다. 그는 베이징 권력기구를 철저히 개편하려는 위의 의도를 잘 알아채고 바싹 쫓았다. 일련의 행동을 취하여 1천여 명을 ‘특무·반역자·삼반분자(三反分子: 반 모택동, 반당, 반사회주의)’로 정해 놓았다. 이렇게 그는 아주 빨리 승진하여 베이징 시위원회 상무위원, 베이징 정법위원회 서기, 베이징 공안국 국장까지 올라갔다.

문화대혁명 기간에 그는 베이징 공안국에서 대권을 독차지했고 그 누구도 감히 그의 말을 거스르지 못했다. 가볍게는 비판받거나 다시는 중용하지 않았고, 엄중하면 농촌에 내려보내거나 노동교양을 시키거나 심지어 감옥에 넣기도 했다.

1976년의 ‘4·5(톈안먼 사건)’ 단체 운동 중에서 그는 모든 경찰력을 조직해 앞장서서 광장에 있던 민중을 탄압했고 기술탐측 수단을 이용해 지지 세력을 찾아내고 단서를 쫓았다.

하지만 문화대혁명이 곧 종결될 때 가장 날뛰던 사람이 가장 호되게 떨어졌다. 1977년 1월 27일 그는 베이징 공안국 국장 직무에서 해직당하고 조사받았으며 같은 해 5월 18일 자신이 곧 숙청당할 거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현장 목격자 말에 따르면 당시 그는 얼굴이 창백해지고 아무 말도 못 했다고 한다. 이튿날 그가 자살했다는 깜짝 놀랄 소식이 전해졌다.

그는 비록 죽었지만 그의 아래에 소속된 지도부 멤버들도 모조리 처벌받았다. 2인자였던 군사관제위원회 부주임 왕겅인(王更印)과 부국장 단춘린(單春林)은 격리조사를 받았고, 나머지 부국장 세 명도 정직 조사받았다.

1977년 11월 류촨신이 있던 시기에 배치했던 793명 군대 간부들도 모두 베이징 공안국에서 철수했고, 그중 17명은 비밀리에 총살당했는데 그 어떤 공개적인 심판 절차도 없었다. 관련자 증언에 따르면 군대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내부 청산을 진행했는데 대부분 군인을 윈난으로 압송해간 후 비밀리에 총살했다고 한다. 그리고 가족들에겐 공무로 순직했다는 통지를 보냈다.

베이징 공안 계통의 이 한차례 처분 중에서 가족들에겐 공무로 순직했다고 알려주었지만 노동교양 계통에 있는 경찰들은 모두 어찌 된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건 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당시 류촨신을 따라 문화대혁명 중에서 광적으로 무고한 자들을 박해한 사람들은 결국 본인이 굴러떨어졌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중공의 버림을 받아 목숨을 잃기도 했다.

자고로 한 번 좌절하면 그만큼 교훈을 얻는다고 한다. 하지만 중공이 역사 진상을 덮어 감추고 당원들을 체계적으로 세뇌했기에 몇십 년 전에 발생했던 배은망덕하고 잔인한 사실에 대해 사람들은 깨끗이 잊어버렸다.

파룬따파는 1992년부터 전해지기 시작했고 진선인(眞善忍)은 중화 대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고층의 베이징 고관부터 하층의 일반 백성까지 모두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고 파룬따파는 고덕대법(高德大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1999년까지 만 7년 동안 정상적인 사유를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 파룬궁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고, 이것이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는 불가대법(佛家大法)이라는 걸 알 것이다.

1999년 7월부터 장쩌민 집단은 파룬궁 수련 단체에 대해 광적인 박해를 시작했다. 장쩌민은 높은 자리와 좋은 대우로 문화대혁명 시기 류촨신과 같은 보시라이(薄熙來), 저우융캉(周永康) 부류의 사람들을 이용해 파룬궁 단체를 잔인무도하게 박해했다. 십여 년 동안 보시라이, 저우융캉은 파룬궁 탄압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고속 승진했고 한때 권력을 손안에 쥐고 제멋대로 휘둘렀다.

하지만 장쩌민, 저우융캉, 보시라이와 같은 사람들의 부풀어 오른 권세욕이 새로운 중공의 권력 체계와 저촉될 때 중공은 내부적으로 또다시 한때 잘 나가던 이런 고관들을 떨어뜨린다. 파룬궁을 박해한 원흉 저우융캉과 보시라이는 일찌감치 투옥되었을 뿐만 아니라 박해에 참여했던 일반 간부들도 대량으로 처벌당했다.

이런 사람들이 붙잡히고 판결받는 것이 겉으로 볼 때는 탐오 부패나 기타 원인인 것 같지만 사실 붙잡힌 것이 전부 장쩌민 시기에 승진한 사람들이다. 이건 중공 관리계층의 공개적인 비밀이다. 이런 크고 작은 관원들은 모두 파룬궁 박해 중에서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악랄한 수단을 쓴 ‘적극 가담자’였다. 밍후이왕에는 그들이 파룬궁 수련자를 박해한 한 장 또 한 장의 자료가 있다.

밍후이왕 통계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18년까지 19년 동안 파룬궁 박해에 참여하여 조사 처벌받은 중공 간부는 3672명에 달한다고 한다.

25명이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그중 공안국 7명, 사업기관 6명, 각 급 관원 6명, 검찰원과 법원 2명, 노동교양소와 세뇌반 2명, ‘610(파룬궁 박해 전문조직)’ 1명, 말단 요원 1명, 정법위원회 1명이다.

유기 징역을 받은 사람이 881명으로서 그중 공안국 245명, 각급 관원 212명, 사업기관 100명, 선전교육 98명, 검찰원과 법원 94명, ‘610’ 요원 47명, 말단 요원 36명, 노동교양소와 세뇌반 29명, 정법위원회 1명이다.

그 외 무기징역 83명, 쐉구이(雙規, 사법 기관이나 기율 검사 위원회가 비리 혐의로 조사받는 간부에 대하여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문제에 대해 진술을 하게 하는 것) 157명, 사형 집행 유예 44명, 경고나 과실 처분받은 사람이 159명, 해직·면직·강직을 당한 사람이 961명, 처벌 중인 사람이 1362명이다.

지금까지도 법관, 검찰관, 경찰, 국가보안대대 요원들은 여전히 파룬궁에 관해서는 법률을 따질 필요가 없다고 소리친다. 납치, 불법 개정, 그 어떤 증거도 없이 판결을 내리는 일이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또 어떤 경찰은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내가 파룬궁을 붙잡았는데 여태 아무 일 없지 않았냐?”고 말한다. 아직 무사한 것은 마침 당신에게 남겨둔 기회일지도 모른다. 착한 마음을 품으면 좋은 결과가 있지만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나쁜 사람을 도와 나쁜 짓거리를 하면 다음 차례가 바로 당신일지도 모른다.

파룬궁이 무고하게 억울함을 당한 지 이미 20년이 된다. 전 세계가 파룬궁 수련자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고 파룬궁에 대한 중공의 박해는 이미 등유가 마르듯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아직도 중공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이여,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생각하며 자신에게 빠져나갈 길을 남겨두길 바란다. 더는 중공의 부장품이 되지 말기를 바란다!

 

원문발표: 2019년 9월 9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9/9/39263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