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2001년 1월 23일 섣달 그믐날, 톈안먼(天安門)광장에서 국내외를 놀라게 한 분신자살 사건이 발생하자 신화사(新華社)는 바로 파룬궁을 모함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7일 후 1월 30일, CCTV(중앙TV) 초점방담(焦點訪談)>은 분신자살 프로그램을 방송하여 증오를 더욱 선동했다. 분신자살 동영상에는 사건 현장의 클로즈업 장면이 있었는데 이 화면들은 누가 촬영한 것일까?
초점방담>은 직접 수집한 것이라고 말했다. 초점방담> 분신자살 프로그램의 문자판 웹 페이지 끝에 있는 ‘자료 후기’ 원문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분신자살 사건이 발생한 후 초점방담> 기자는 제일 먼저 분신자살 현장에 도착해서 가장 생생한 첫 번째 재료를 수집했다……”
사건이 발생한 전 과정은 불과 7분이었는데 초점방담> 기자는 구급차보다 몇 분 먼저 도착했다. 초점방담> 분신자살 동영상에는 수평 앵글과 하이 앵글로 근접해서 클로즈업 촬영을 한 이외에 또 멀리 보이는 경치도 있었다. 멀리 보이는 그런 경치는 광장에 있는 감시 카메라에서 온 것이 분명하다. 화면의 오른쪽 아래 모서리에는 “카메라71, 2001년 1월 23일, 몇 시 몇 분’이라는 글씨가 찍혀 있었다. 이 시간은 바로 CCTV 기자가 사전에 내막을 알고 있었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 주었다.
초점방담>은 현장에 급히 달려갈 수 있었는가?
오후 2시 41분, 왕진둥(王進東)이 불을 붙이자 1분도 안 되어 불을 껐고, 그런 후 한 경찰차에 실려 구급센터로 운송되었다. 금방 왕진둥을 처리하고 나자 2시 47분에 또 다른 4명이 불을 붙여, 2시 48분에 3대의 구급차가 서둘러 도착했다.
우리는 왕진둥의 처리 과정을 보기로 하자. 총 6분 중에 첫 1분은 불을 붙이고 껐으며, 6분에 경찰차에 실려 갔다. 왕진둥은 구급차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현장에 출동한 초점방담> 제작진을 기다렸다. 총 6분에서 첫 1분과 끝 1분을 제외하면 중간 4분이 바로 초점방담> 제작진이 임무를 받고 현장으로 달려가 첫 인터뷰를 한 시간이다.
톈안먼의 경찰은 어느 때에 초점방담>에 통지했을까? 첫 1분은 다들 바삐 불을 끄느라 불가능했을 것이고, 제2분에서 경찰 혹은 톈안먼 광장 감시실에서 중앙TV에 전화했을 것이다. 첫 시간에 구급차를 부르지 않고 중앙TV를 불렀다는 이 자체가 바로 상식적으로 생각해 낼 수 없는 행위이다. 어쨌든 전화를 받고 중앙TV는 신속히 초점방담> 제작진에 연락해 인원을 조직한 후(최소한 기자와 파트너 카메라맨, 운전기사도 있어야 한다) 차를 대기시키고 곧바로 톈안먼 광장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톈안먼 광장은 행인들을 조사하고, 섣달 그믐날은 더욱 민감한 날이기에 계엄상태일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초점방담>팀은 증명서를 꺼내 경찰이 심사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 후에도 직접 차를 몰고 사고지점으로 간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멀리 보이는 화면에서 두 대의 경찰차만 있고 다른 차량은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제작진은 반드시 광장 밖에서 차에서 내려 최소한 50미터를 달려가야만 왕진둥이 앉아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한 후 기자는 무엇을 인터뷰하고, 어떻게 인터뷰를 하는지에 대해 똑똑히 알아야만 카메라맨이 촬영할 도구를 꺼내게 된다.
이 일련의 동작은 반드시 4분 안에 완성해야 하는데 그야말로 ‘공포의 4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능할까? 절대로 불가능하다.
중국에서 사전 허락 없이 민감한 지점에서, 민감한 사건에 대해 촬영하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1999년 1월 9일, 베이징 펑타이(豐台) 길목의 화룽(華龍) 조명기구 시장의 화재 현장에서 발생한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자.
초점방담> 기자 리위창(李玉強)과 카메라맨 싱쉬둥(邢旭東)은 화룽 대화재에 관한 회상의 글, ‘대화재가 불태운 열정’(싱쉬둥), ‘6시간 만에 더 잘할 수 있을까’(리위창)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리위창은 대화재가 오전 10시에 일어났고, 그가 점심 12시 20분에 마침 차를 타고 사고지점을 지나가다 본 후 즉시 지도자에게 지시를 요청하자 지도자는 바로 인원을 배치해주어 제작진은 오후 1시 20분 좌우에 현장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싱쉬둥은 “첫 번째 자료를 취재하기 위해서 현장에 더 가까이 가야 했는데, 역시 경찰의 수많은 검문과 저지를 받았다”, “리위창과 내가 돌진해서 현장 가까이에서 촬영을 하고 있을 때 경찰은 우리의 카메라 렌즈를 꺾어 하늘을 향해 고정해 놓았다.”고 말했다.
리위창과 싱쉬둥의 묘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었는가? 1) 화재를 발견한 사람이 초점방담>이 아닌 소방서에 알렸기 때문에 화재 현장에 경찰이 먼저 도착했다. 2) 소방관은 도착하더라도 불을 끄느라 바빠서 초점방담>에 전화하지 않았다. 3) 초점방담> 기자가 우연히 지나다가 발견해서, 지시를 요청하고 제작진이 도착하기까지 꼬박 1시간이 걸렸다. 4) 현장에 접근하려면 경찰의 ‘무수한 검문과 저지’를 돌파해야만 한다. 5) 경찰이 기자에게 촬영을 못 하게 하고, 클로즈업이 사전 허락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
화룽 조명기구 시장의 화재사고에서 기자 리위창의 경험은 정상적이고, 중국 공산당의 관례에 부합된다. 또한, 동일인인 이 리위창도 바로 초점방담> 톈안먼 분신자살 사기극의 주요 기자이자 취재인이다. 그는 ‘공포의 4분’ 안에 ‘통지를 받고, 사람을 배치하고, 톈안먼에 도착해서 경찰의 무수한 질문과 저지를 돌파하고, 수십 미터를 걸어서 불을 붙인 자에게 접근해야 하고, 녹음, 녹화를 근접 촬영해야 하는 자세를 취해야 하는’ 등 일련의 정해진 동작을 완성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전혀 없는 것이다. 만약 화면이 초점방담>의 첫 자료에서 나왔다면 단 하나의 해석만 가능할 뿐이다. 그것은 리위창의 초점방담>팀 사람들이 이미 분신자살자 옆에서 사건이 발생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초점방담>은 사전에 내막을 알았고, 아울러 경찰과 조율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초점방담>이 사전에 내막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4분은 초점방담>이 현장에 가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지만 현장에서 몇 장면을 추가해서 촬영하기엔 4분이면 충분하고도 남는다.
2003년 5월 14일, 밍후이왕에 “중앙TV 초점방담>의 여기자 리위창, ‘분신자살’ 화면이 가짜라고 시인했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공개됐다 “2002년 초, 리위창은 허베이(河北)성 법제교육훈련센터에서 파룬궁 수련생 왕보(王博)를 인터뷰할 때 그곳에서 불법적으로 감금된 대법 수련생들과 이른바 ‘좌담’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파룬궁 수련생 한 명이 그에게 ‘분신자살’ 장면의 여러 가지 의문점과 허점에 관해 물었다. (특히 불에 검게 탄 왕진둥의 두 다리 사이에 낀 휘발유를 담은 플라스틱병이 아무런 손상도 없었음). 모두의 일리 있는 분석 앞에서 리위창은 공개적으로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광장에서 왕진둥 다리 중간의 플라스틱병은 그들이 넣은 것이고, 이 장면은 그들이 추가해서 촬영한 것이다. 그는 또 파룬궁이 분신자살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믿도록 하기 위해서인데 바로 간파될 줄 알았으면 촬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교활하게 변명했다.”
초점방담>기자 리위창이 스자좡 파룬궁 수련생 왕보(王博)를 인터뷰
리위창이 파룬궁을 비방하는 프로그램에서 늘 정면을 보여주지 않는데 이것은 그가 다른 프로그램에 나온 화면이다.
서양 기자가 찍은 동영상일까?
초점방담> 분신자살 프로그램이 방송되자 그 클로즈업 화면은 바로 해외의 의혹을 받았다. 그러나 중앙TV와 신화통신은 클로즈업 화면의 출처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오히려 정치 중심인 베이징에서 멀리 떨어진 ‘양청완보(羊城晚報)’가 당시 톈안먼 광장에 있었던 CNN 기자에게서 압수한 비디오테이프에서 그 클로즈업 화면이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설은 CNN의 뉴스 담당인 이슨 조던(Eason Jordan)에 의해 부인되었다. 이슨 조던은 CNN 카메라맨이 사건 발생 후 거의 즉시 체포되었다고 말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톈안먼 광장에서 외국 기자는 물론 중국인이라도 돌발적인 사건에 부딪히면 마음대로 촬영할 수 있을까? 포즈를 취하자마자 바로 압수당할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 2001년 2월 9일 보도, CNN은 초점방담> 클로즈업 화면이 CNN에서 나왔다는 것을 부인했다.
사실, 우리는 초점방담> 분신자살 프로그램에서 그 클로즈업 장면을 촬영할 때 경찰과의 상호 협조를 보기만 하면 이것은 외국 기자가 촬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왕진둥을 촬영할 때 경찰은 왕진둥의 뒤에서 소화 담요를 들고 어슬렁거리면서 왕진둥이 구호 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앉아있는 왕진둥을 카메라맨이 허리를 굽혀 앉아야 비로소 이런 수평 앵글의 효과를 낼 수 있다. 바닥에 누워있는 류쓰잉(劉思影)이 어머니를 부르는 장면은 위에서 아래로 직접 하이 앵글로 근접 촬영한 것이다. 그리고 의료진이 먼저 흩어져서 이 동영상 촬영을 협조한 후에야 비로소 몇몇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서 어린 쓰잉을 들것에 실었다. 이 화면들은 몇 분 간격으로 발생하여 카메라맨은 특정한 최적의 각도를 자유롭게 골라 천천히 촬영할 수 있었고 게다가 경찰과 의료진의 협조하에 수집한 것이다. 아무런 의혹도 없이, 이런 클로즈업은 외신기자들에게서 나올 수가 없다.
이 영상은 초점방담>의 왕진둥이 구호를 외치는 동영상에서 캡처
이 영상은 초점방담>의 류춘링이 타격을 받아 바닥에 넘어지는 동영상에서 캡처
이 영상은 초점방담>의 류쓰잉이 어머니를 부르는 동영상에서 캡처
초점방담>이 사전에 내막을 알고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설명하는가?
초점방담>은 사전에 내막을 알고 공안 시스템과도 협조하였다. 현장에서 사복경찰이 류춘링(劉春玲)을 때려 숨지게 한 것은 증오를 선동할 수 있는 최대의 비정(悲情) 효과를 만들어 냈다. 더욱이 가장 민감한 톈안먼 광장에서 이 계획이 실행되었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이 최고위층에서 계획된 하나의 음모라는 것을 보여준다.
초점방담>은 분신자살 사기극 프로그램을 이렇게 평가했다. “이 프로그램은 ‘파룬궁’ 투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일으켰다. ‘파룬궁’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선전공작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았고, 이후 파룬궁을 폭로하고 비난하는 프로그램의 스타일을 마련해 중앙 주요 지도자 동지의 호평을 받았다.” 이 ‘중앙 주요 지도자 동지’는 바로 장쩌민일 것이 분명하다. 1999년 7월 20일 파룬궁 박해를 발동한 장본인 장쩌민은 3개월 이내에 파룬궁을 제거하려고 계획하였으나 1년 반 동안의 집중적인 비방과 가혹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파룬궁은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수천수만의 파룬궁 수련생들은 지속해서 청원하고, 현수막을 걸고, 진상을 알려 장쩌민 일당의 정치선전에 대해 사람들이 권태를 느끼게 하였다. 따라서 중공이 수십 년 동안 쌓아온 사람을 괴롭히는 경험이 처음으로 효과를 보지 못하게 되었다. 톈안먼 분신자살 사기극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누가 분신자살 사기극의 배후 주모자인가? 바로 장쩌민 및 당시 정법위 서기였던 뤄간(羅幹)과 그가 조종하는 ‘610 사무실’(파룬궁 박해를 전담하는 게슈타포와 유사한 테러 조직)이다. 초점방담>에 따르면 중앙TV 부국장 리둥성(李東生)은 ‘610 사무실’의 부주임을 겸직하고 있었다. 리둥성은 장쩌민을 따라 파룬궁 박해에 적극적으로 앞장선 인물이다.
초점방담>이 사전에 내막을 알고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설명하는가? 인명을 해치고 거짓말로 세뇌하는 중공이야말로 진정으로 가장 큰 사교임을 증명한 것이다.
원문발표: 2018년 1월 9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19/380577.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