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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뺨을 때리거든 왼뺨을 내밀어라’와 반(反)박해

글/ 어우양페이(欧阳非)

[밍후이왕] 파룬궁(法輪功) 수련생의 반(反)박해를 어떤 사람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성경의 한마디 말 ‘누가 당신의 오른뺨을 때리거든 왼뺨마저 돌려 그가 때리게 하라’를 빌어, 기독교 신자가 얼마나 ‘사랑’을 하는지에 대해 설명을 하고 파룬궁(法輪功)은 왜 이렇게 하지 못하고 반(反)박해를 하는지 질의했다.

많은 사람은 일방적으로 ‘사랑’이란 말을 사용해 일찍 기독교 신자가 걸어온 간고한 역경을 희미하게 했다. 기독교 신자는 고(古) 로마에서 300년의 참혹한 박해를 겪었다. 만약 일찍 기독교 신자의 ‘불복종’, ‘정면으로 대항하다’, ‘신앙을 견지’, ‘진상을 똑똑히 밝히다’, ‘반(反)박해’가 없었다면 기독교는 일찍 없어지거나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초기의 기독교 신자의 반(反)박해를 한 이야기를 이해하면 아마 여러분이 오늘 파룬궁(法輪功) 수련생의 반(反)박해를 더욱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파룬궁(法輪功) 수련생의 반(反)박해와 초기의 기독교 신자의 반(反)박해는 다른 점이 없다. 단지 시대가 변하고 직면한 권력이 다를 뿐이지 반(反)박해의 구체적인 형식은 다르지 않다.

로마황제가 기독교 신자를 박해한 제일 큰 특징의 하나는 바로 ‘공개적’인 것이다. 기독교 신자는 경기장에서 사자의 먹이가 되고 혹은 산채로 태워 죽였다. 로마황제는 국민 앞에서 공개적으로 단체로 구경을 하게 했다. 이것은 당시 로마 법률이 죄인을 사형에 처하는 흔히 있는 방식이며 기독교 신자를 위해 전문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중공이 파룬궁(法輪功)을 박해한 제일 큰 특징의 하나는 ‘은폐성’이다. 밍후이왕(明慧網)에서 폭로한 중국대륙에서 온 대량의 자료에는 불법 감금된 파룬궁(法輪功) 수련생은 강제적으로 세뇌를 당하고 많은 수련생은 고문의 시달림에 불구가 되고, 미치고, 사망을 했다. 심지어 중공은 폭리를 얻기 위해 수많은 수련생을 생체장기적출 했다. 이렇게 큰일이지만 사회는 마치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로마황제의 ‘경기장’과 중공의 ‘노동수용소’의 구별은 하나는 공개적으로 사람들이 구경을 하게하고 하나는 전문적으로 암암리에 음험하고 악독하게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신도들이 박해를 당한 직접 원인은 모두 신앙을 견지하였기 때문이다. ‘견지’는 바로 반(反)박해의 제일 유력한 무기다. 초기 기독교 신자도 파룬궁(法輪功) 수련생과 유사한 강제적으로 전향을 당하는 참혹한 현실에 직면했다. ‘국가의 적’이며 박해를 당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리하여 초기의 기독교 신자는 로마황제와 소위 ‘정면으로 대항’하기 시작했다. 이런 반항은 줄곧 300년을 지속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에 이르러 ‘밀라노 사면령’을 선포해서야 비로소 박해가 끝났다.

기독교 중에는 순교자 퍼피튜아(Perpetua)와 펠리치타(Felicity)의 전고(典故)가 있다. 퍼피튜아는 북 아프리카에서 온 22살의 로마의 귀부인이다. 그녀에게는 젖먹이 아이가 있다. 펠리치타는 그녀의 노예며 이미 8개월이 된 임신부였다. 그녀들은 모두 기독교 신자였다. 그러나 퍼피튜아의 부친은 로마교 신자였다. 그녀는 체포되고 줄곧 사형을 당한 전날 저녁까지의 조우를 이렇게 기록했다. 퍼피튜아의 부친은 혈육의 정으로 그녀의 결정을 개변하려고 설복했다. “딸아, 만약 네가 나를 아직도 아버지라고 부르려거든 이 아비를 불쌍히 여기렴.”, “백발의 아비를 불쌍히 여기렴. 너의 어린 아들을 불쌍히 여겨라.” 그러나 퍼피튜아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공원203년 그녀는 펠리치타와 기타 몇몇과 함께 세베루스(Septimius Severus) 황제에 의해 투기장에서 야수에게 죽임을 당했다.

중공의 강제적인 전향과 세뇌도 이러하지 않은가? ‘가정을 상관하지 않는다.’, ‘혈육 간의 정을 고려하지 않는다.’, ‘타인을 연루하다’, ‘정면으로 대항 한다’ 등등 누명을 파룬궁(法輪功) 수련생의 머리에 씌워놓고 모함을 했다. 신앙과 혈육 간의 정은 모순이 되지 않는다. 죄는 가해자에게 있다. 단지 권력이 두려워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피해자를 책망하는 것이다.

무고하고 선량한 이를 박해하려면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먹칠을 해야 한다. 고 로마 역시 이렇게 했다. 그들은 기독교의 경서 중에서 단장취의(斷章取義)하고 기독교 신자들이 신을 모실 때 영아를 죽이고 그 피를 마시고 그 살을 먹는다고 모함을 했다. 기독교 신자는 습관적으로 서로 형제자매라고 부른다. 반대자는 그들이 난륜이라고 묘사했다. 로마의 엘리트들은 또 기독교는 ‘치명적인 미신’, ‘이해할 수 없는 신앙’이라고 고발했다. 로마황제 네로는 로마 성의 연속 5일간의 큰 불이 기독교인이 한 짓이라고 전가했다. 기독교 신자는 방화범이며 한 무리의 갖은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이라고 묘사해 이것으로 증오를 선동하고 민중의 분노를 일으켜 박해할 구실로 삼았다.

이런 거짓말은 장쩌민과 중공이 파룬궁(法輪功)을 비방한 것과 어찌 이처럼 비슷한가. 초기 기독교 신자는 그대로 내버려두었는가? 아니다. 만약 거짓말을 폭로하지 않았다면 국민은 더욱 기독교 신자를 증오하고 정부의 박해는 뜻대로 목적을 달성한다. 이와 같다면 기독교는 어찌 생존할 수 있겠는가?

각종 비방에 직면해 기독교 신자 중 일부 학자는 용감히 일어나 거짓말을 폭로했다. 그들을 ‘호교론자(Apologist)’라고 부른다. 저스틴(Justin), 테르툴리아누(Tertuliano), 아테나고라스(Athenagocas), 클레멘트(Clement), 이그나티우스(Igantius), 폴리캅(Polycap) 등이 책을 저술하여 기독교를 반대하던 그 사람들의 말은 거짓이고 추호의 근거가 없다는 이론을 정립하기 시작했다. 기독교를 반대하는 지식분자는 고의적으로 허위 날조를 해 교회를 모함했다고 지적을 했다. 오늘의 말로 하면 이 호교론자의 행위는 ‘청원’하거나 ‘진상을 알린 것’과 비슷하다.

이 ‘호교론자’는 ‘진상을 똑똑히 밝히고’ 또 박해자가 숭배하는 신은 진정한 신이 아니며 마귀라고 공개적으로 지적을 했다. 클레멘트(Clement)는 많은 로마인이 집에 전시를 한, 신을 숭배한 물건은 모두 마귀에게서 온 비자연적인 격정(unnatural passions of the demons)이라고 했다. “그들은 침실에 (방탕한) 장식 그림을 걸어놓고 방탕을 종교로 보고 있다…… 이런 것은 바로 오만한 신학이며 이것이 바로 당신들의 신의 지시이며 당신이 함께 부도덕적인 일을 하게 했다.” 저스틴(Justin)은 말했다. 기독교 신자는 하나의 무서운 비밀을 발견했다. 배후에 로마 지방 법관의 권리를 지탱하는, 특히 황제의 권력을 지탱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악마였다. 그것은 파괴와 인류를 훼멸하는데 목적이 있으며 사람이 진상을 보지 못하게 하는 사악한 세력이다. 저스틴은 황제에게 공개편지를 써 로마 신권에 관련된 정부측 선전에 직접 도전을 했다. 그는 하나의 비밀 신분——로마신은 타락한 천사(fallen angels)라고 제시했다.

역사상 바른 믿음에 대한 박해는 표면으로 보기에는 권력을 소유한 통치자가 전제정치와 사리(私利)를 수호하기 위해 그 공민의 신앙자유를 유린하고 있다. 사실 심층의 실질을 보면 사람은 신과 대적을 하지 못하며 또한 그럴 담력과 재주가 없다. 진정한 원인은 다른 공간의 변이된 사악한 세력의 요소, 사악한 마가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며 사람을 조종하며 인간세상의 나쁜 사람을 이용하기에 사람의 바른 믿음에 대해 박해를 개시하는 것이다.

초기 기독교 신자는 박해에 반항하는 과정에서 이 한 점을 인식하고 비로소 명확히 로마제국의 종교와 신권에 도전을 하고 배후의 악마를 폭로했다.

파룬궁(法輪功)에 대한 박해는 보기에는 최초 제안을 한 장쩌민과 중공이 서로 이용해 파룬궁(法輪功)을 박해한 것 같다. 그 실질은 로마황제가 초기의 기독교 신자를 박해한 것과 같으며 배후에 그 권력을 지탱하는 악마처럼 중공의 ‘진선인(眞善忍)’을 신앙하는 파룬궁(法輪功)을 박해한 것 역시 중공 배후의 공산악령과 우주 중의 패괴된 세력이 인간세상의 무뢰한과 인간쓰레기를 통제해 바른 믿음을 박해한 것이다. ‘대기원시보’가 2004년 11월 19일에 발표를 한 ‘9평 공산당’은 공산당이 백여 년간 범한 죄악을 폭로하고 그 배후의 사악한 영을 지적했다. ‘9평 편집부’는 2017년 11월 19일에 ‘공산주의 최종목적’을 발표해 공산주의의 본질은 하나의 ‘사악한 영(靈)’이며 그것은 ‘증오’ 및 저층 우주중의 패괴된 물질로 구성되었으며 그것의 최종 목적은 바로 사람의 도덕을 파괴해 인류를 훼멸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다시 ‘오른뺨을 때리거든 왼뺨을 내밀어라’를 말해보자 ‘오른뺨을 때리거든 왼뺨을 내밀어라’는 틀렸는가? 아니다. 노자는 ‘덕(德)으로 원한을 갚다’를 말하고 불교는 ‘내가 지옥에 들어가지 않으면 누가 지옥으로 들어가겠는가’고 했다. 예수는 또 ‘당신의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했다. 중국인에게는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을 먹어도 대꾸하지 않는다.’가 있고 파룬궁(法輪功)의 ‘진선인(眞善忍)’에도 하나의 큰 참음(忍)이 있다. 이런 요구와 ‘반(反)박해’는 모순이 되는가? 모순되지 않는다. 이것은 개인의 이익이 손해를 받을 때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문제며 개인 수련과 경지의 요구이다. 일상생활에서 개인의 득실을 따지지 않고 타인을 생각하는 이것은 수련인의 도덕이 고상한 체현이다.

신앙과 정의가 사악한 세력의 탄압을 받았을 때 이것은 개인 득실의 범위를 초월한다. 절의 화상은 세상과 다투지 않고 속세를 떠난 사람이다. 그러나 만약 누가 그들의 절을 부수면 그들 역시 몽둥이를 들고 그 교(教)를 수호하고 절을 수호한다. 공자 역시 ‘덕으로써 원한을 갚아라.’고 말했다. 바로 정직한 방식으로 규칙을 파괴한 사람을 대하고 사회의 정기(正氣)를 바로 잡으라는 것이다. 예수는 불법으로 붙잡히고 심문을 당할 때 한 관리가 손으로 그를 때렸다. 이때 그 광경은 예수가 법을 전한 정당성을 겨냥한 것이며 예수는 ‘오른뺨을 때리거든 왼뺨을 내밀어라’를 하지 않고 그 관리를 훈계했다.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입증하라. 바른 말을 하였다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파룬궁(法輪功)의 ‘참음(忍)’도 똑같이 연약하거나 압력을 참고 견디어 내는 것이 아니며 원칙이 없이 사악한 생명의 악행을 방임하는 것이 아니다. ‘참음(忍)’이 가리킨 것은 개인의 영욕, 득실을 참는 것이며 도의와 양심을 참는 것이 아니다. 일단 한 사람이 개인의 영욕과 득실을 도외시하면 자연히 감당하고 용기가 있고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 되며 정의와 권리를 수호할 수 있다. 박해에 직면하면 ‘반(反)박해’를 할 수 있다.

‘반(反)박해’의 과정 본신은 바로 하나의 사회의 도의와 정기를 수호하는 과정이다. 만약 사악이 당신에게 포기하라고 하면 포기하고 심지어 사악을 도와 다른 사람에게 포기하라고 권고하면 그것은 사악 본신과 어떤 다른 점이 있는가? 솔직히 말하면 침묵과 협조는 공범자이다. 파룬궁(法輪功) 수련생의 ‘반(反)박해’는 그들 자신 신앙의 권리를 위해서다. 그러나 또한 사회와 인류에게 희망을 가져오기 위해서다.

 

원문발표: 2018년 9월 28일
문장분류: 시사평론>시사반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9/28/37508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