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공산주의의 최종 목적’ 서문
러시아에서 세계 최초로 공산 정권이 생겨나 지금까지 꼭 100년이 지났다. 이 짧은 한 세기 동안 공산주의로 인한 희생자는 1억 명에 달했다. 공산당은 처음부터 신에게서 인간을 빼앗는다는 기치를 내걸고 “구세주는 없다”, “낡은 세계를 짓부숴버리자”는 구호를 외쳤다.
그렇다면 공산주의는 어디서 왔고 공산당은 왜 이 우주에 생겨난 것일까? 공산주의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 최후는 어떠할까?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놓고 많은 해석이 있었는데, 이제 그 수수께끼를 풀어야 할 때가 됐다.
공산주의의 본질은 ‘악령’으로, 그것은 ‘증오’와 우주 저층의 부패물질로 이뤄졌다. 그 악령은 인류를 혐오하며 인류를 파멸시키려 한다. 그것은 인간의 육신을 죽이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데, 육신의 죽음은 생명의 진정한 죽음이 아니며 원신(元神, 영혼)은 윤회·환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도덕성이 극도로 타락하면 원신은 무한한 고통 속에 철저히 소각되는데 이것이야말로 가장 두려운 생명의 진정한 죽음이다. ‘공산 악령’은 인류를 바로 이런 영원한 심연 속에 빠뜨리려 한다.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주의 진영도 빠르게 해체돼 냉전이 종식되자 공산주의 이념은 힘을 잃은 듯했으며 남은 공산 국가들도 위태로워 보였다. 하지만 실상은 공산주의 사상과 요소가 본 모습으로 혹은 둔갑한 채 여전히 전 세계에서 위력을 떨친다는 것이다. 비단 중국·북한·쿠바·베트남 등 기존 사회주의 국가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나 공화의 기치를 내걸고 사회주의를 실시하는 아프리카와 남미 여러 국가, 공산주의의 심각한 침투를 자각하지 못하는 유럽과 북미 민주국가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폭력을 통한 세력 확장이든 조용한 침투든 공산 악령이 인간을 훼멸시키는 방법은 결국 하나, 창세주께서 최후에 인간을 구하기 위해 다져주신 문화를 파괴하는 것이다. 인간이 이런 문화를 잃는다면 인간의 기준을 잃는 것이며, 신의 눈에는 단지 인간의 탈을 쓴 짐승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인간은 도덕의 통제를 잃고 급속히 타락하며, 창세주께서 이 세상에 내려와 제시하시는 하늘의 계시를 이해하지 못해 재앙이 덮칠 때 구원 받을 기회를 잃게 된다. 이는 바로 생명의 가장 큰 액운인즉 영원히 소멸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이 공산 악령의 최종 목적이다.
우리는 신이 만든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공산주의의 최종 목적>을 썼다. 이 책은 문화와 도덕 파괴로 인류를 파멸시키려는 공산 악령의 거대한 음모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폭로했다.
민족마다 종말에는 신이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다는 전설이 있다. 인류는 이미 우주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공산 사교(邪敎)는 이때 인류의 구원을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우리는 그것의 사악한 최종 목적과 수법을 철저히 밝혀, 인류가 본성과 양심의 판단으로 공산 사교를 버리고 평화롭게 그것의 조직을 해체하며 그것의 사악한 요소를 체계적으로 없앰으로써, 인류의 신기원을 맞게 하는 것이 매우 절박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중화민족의 높은 도덕성과 부강번영을 바라는 이들께 이 책을 바친다!
인류의 운명에 관심을 두는 이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2017년 11월 18일
<9평>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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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의 최종 목적-중국편
제1장중심국가와 신전(神傳)문화
목차
1. 중심지국(中心之國)
2. 신전(神傳)문화
3. 천추(千秋)의 기틀
4. 거대한 포용력
5. 재앙에도 불멸하다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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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파란만장한 5천년 역사에서 휘황찬란했던 여러 문명은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러나 유독 중국 문명만은 대대로 이어져 만방이 우러러보는 태평성대를 열었고 ‘천조상국(天朝上國)’으로 존대 받았다. 중국 문화는 동아시아에 지대한 영향을 주어 대(大)중화 문화권을 형성했으며, 실크로드의 개척과 4대 발명품은 유럽에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고 신대륙 발견을 가능케 했다.
중화민족은 그러나 시련도 겪었다. 특히 근대에 이르러 내우외환이 끊이지 않았으며 20세기 중반에는 공산당이라는, 서쪽에서 온 유령이 정권을 찬탈했다. 그들의 학살, 문화 파괴와 환경 훼손은 백성을 도탄에 빠뜨렸고 자연은 생기를 잃게 했으며 찬란했던 중화문명도 빛을 잃고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왜 중국공산당은 정권을 장악한 후에도 각종 정치운동을 일으켰고 유례없는 문화대혁명을 일으켰을까? 왜 중국인과 중국 문화를 적대시하며 말살하려 했을까? 왜 중국은 지난 세기에 공산주의 악령이 가장 심하게 통제하고 박해하는 대상이 되었을까?
우리는 공산주의가 어떠한 사상이나 학설이 아니며 위기에서 출로를 찾던 인류의 실패한 시도도 아님을 처음으로 밝힌다. 그것은 악마이며 ‘공산 악령’이라고도 부른다. 공산 악령은 증오와 우주 저층 공간의 각종 부패물질로 이뤄졌고 그것의 최종 목적은 인류를 파멸시키는 것이다.
공산 악령이 인류를 파괴하는 가장 사악한 수법은 창세주가 중생을 구하기 위해 이룩한 신전(神傳)문화, 즉 중화전통문화를 파괴하는 것이다.
1. 중심지국(中心之國)
4천여 년 전에 발생한 지구적 대홍수는 이번 인류를 거의 궤멸 상태에 이르게 했다. 모든 민족은 저마다 대홍수를 기억하고 있으며 당시 극소수만 살아남아 씨앗처럼 인류를 새롭게 번성시켰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중국 역사에서 때는 마침 요(堯)임금이 다스리던 시기였다. 대홍수는 중국도 마찬가지로 많은 높은 산을 집어삼켰지만 중화민족은 대부분 살아남아 상고 시대의 찬란한 문명을 보전했다. 현대인이 지금도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는 태극·하도(河圖)·낙서(洛書)·주역·팔괘 등이 당시 남겨진 것들이다.
기록에 따르면, 요 임금은 하늘에 제를 지내다 “대홍수로부터 백성을 구하라(古今樂錄>)”는 신의 계시를 받았고 이후 대우치수(大禹治水)의 기적이 시작됐다. 요·순(舜)·우 시대는 중화민족이 대홍수에서 벗어나 소생하던 시기였다. 오늘날까지 중화민족이 살고 있는 터전은 당시 우 임금이 산과 강을 다스려 마련한 것이다.
이는 신이 중화민족에게 내려준 은총이다. 신의 보우가 없었더라면 중화민족은 세계의 여느 민족과 마찬가지로 그 무서운 재앙을 피할 수 없었다. 신이 여러 민족 중에서 중화민족을 선택해 신전(神傳)문화, 즉 반신(半神)문화를 내려준 것은 장래의 대사를 위한 배치였다.
중국의 여러 왕조는 저마다 국경선이 달랐다. 사실 ‘중국’은 지리적 개념이 아닌 ‘중심지국(中心之國)’이라는 의미다. 이 역시 신이 중화문화의 특별한 지위와 특성, 구조 및 구성 요소를 고려해 지은 것이다.
중국은 유일무이하게 신이 선택한 중심지국으로, 말세에 인류를 구원하는 법이 여기서 전해지도록 계획됐다. 그러므로 중국의 모든 것, 표면의 자연환경과 인구 분포부터 심층의 역사 발전과정과 문화 정립, 각종 종교와 수련 법문에 대한 인식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신이 체계적으로 배치한 것이다.
기나긴 중국의 역사에서, 창세주는 성왕(聖王)·문인·승려·도사·무림고수·모사·장수 등으로 환생해 비범한 사람들을 거느리고 신주(神州)의 자손들에게 생활 터전을 열어주고 도덕 기준을 정해주셨다. 또 사상의 깊이를 더하고 정통 문화를 다지며 법률과 체제도 세워주셨다. 그래서 중국은 조대(朝代)마다 천자(天子)·백성·문화·복식·풍속 그리고 특징과 의미가 서로 달랐다. 이렇게 다양한 조대가 줄지어 등장해 찬란히 빛나고 사방 곳곳으로 퍼져나가 온 세상이 우러러보니 이로써 방대한 5천년 신전(神傳)문화가 완성되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영웅 인물도 수없이 많았다. 진시황, 한 무제, 제갈무후(제갈량), 당 태종, 칭기즈칸, 쿠빌라이, 명성조(明成祖, 영락제), 강희제 등 성황명신(聖皇名臣)들은 국토를 확장하는 한편 주변 국가·민족과 연을 맺으며 중화전통문화를 널리 전파했다.
진나라와 한나라 시기에는 6국을 통일하고 서부 지역을 개척했으며, 북벌로 오환(烏桓)을 평정하는가 하면 의(義)로써 남만을 굴복시켰다. 위진남북조 시기에는 의관남도(衣冠南渡, 남방 대이동)와 오호(五胡, 북방 소수민족)의 중원 유입이 있었다. 수당오대(隋唐五代)에는 주변 민족들이 번(藩)·조공·화친(和親)·유학·통상과 기타 형식으로 중원과 소통했다. 북송과 남송 시대에는, 거란족과 여진족이 굴기하면서 요-송과 금-송간에 전쟁이 벌어졌다. 그 후 칭기즈칸이 몽골 초원을 통일하고 유라시아 원정에 나섰다. 명성조는 바다를 통한 대원정을 명령했다. 이같이 놀라운 업적은 겉보기에 무질서하지만 사실은 매우 질서가 있고, 우연 같지만 사실 필연이었다.
신은 세상의 어느 중생도 빠뜨리지 않으셨고 중화전통문화가 전 세계로 뻗어가게 배치해 모든 사람이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보편적 가치를 갖도록 기반을 다지셨다.
이처럼 신주(神州)의 큰 무대에서는 연극이 바쁘게 펼쳐졌고, 무대에 오른 이들과 관객 모두 연극에 깊이 빠져들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펼쳐진 이런 연극의 스토리와 그 속에 담긴 심오한 뜻은, 신주 자손들의 핏속에 깊이 녹아들었고 5천 년간 이어진 역사 기록으로 후세에 전해져 상대적으로 높은 도덕 수준을 유지시켰다.
2. 신전(神傳)문화
중화전통문화는 하늘과 이어졌다. 예부터 중국인은 ‘하늘’을 현대인이 이해하는 ‘자연’ 그 이상으로 생각했다. 하늘은 살아 있는 생명이었고, 천지 만물은 ‘조화(造化)’ 즉 조물주에 의한 피조물이었다. 그 조물주는 우주 천지를 주재하는 천제(天帝)나 호천상제(昊天上帝)로 불렸고, 민간에서는 노천야(老天爺)라 불렀다. 중국인은 자신들이 사는 땅을 신주(神州)로, 황제는 천자(天子)로 불렀다. 그리고 도덕성을 회복해 천국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사람이 된 근본 목적이라고 여겼다.
천지 만물은 신의 뜻, 즉 천의(天意)를 따르니 이를 천도(天道)라 했으며, 신의 뜻은 천상(天象)을 통해 드러났다. 중화 문화에서 천제는 재앙을 내려 천의를 어긴 이에게 경고했고, 이덕배천(以德配天, 덕으로 하늘의 뜻을 따름)하는 이는 상서로운 일로써 칭찬했다. 하늘은 또 성황(聖皇)과 현자를 인간 세상에 내려보내 사람들에게 천상(天象)을 통해 천의를 알 수 있게 가르쳤다.
역·계사상(易·系辞上)>은 “하늘이 상을 내려 길흉을 드러내면 성인이 이를 본받는다(天垂象, 見吉凶,聖人象之)” “황하에서 하도가 나오고 낙수에서 낙서가 나오자 성인이 이를 법칙으로 삼았다(河出圖, 洛出書, 聖人則之)”라고 했다. 다시 말해 성인이 하늘의 뜻에 따라 천상을 알려줌으로써 사람들의 사상·신앙·행위부터 인간이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인륜·행위규범·법률·제도 등이 형성되게 했고, 이로써 ‘천문’이 ‘인문’이 되었는바 이것이 바로 중화문명의 근원이다.
중화 문명을 해석하고 백성을 가르쳤던 ‘성인’들은 신(神) 혹은 반신(半神)이었다. ‘성(聖)’자가 보여주듯, 그들은 천명(天命)을 알고 인문을 개창한 반고(盤古)·여와(女媧)·복희(伏羲)·신농(神農)처럼 신이었거나 황제(黃帝)·요·순·우처럼 사람의 몸으로 신의 일을 했던 성왕이었다.
고서 기록에 따르면, 중국인이 ‘인문의 시조’로 추앙하는 헌원황제(軒轅黃帝)는 백성을 깨우치는 사명을 완수하고 도를 얻어 비승하여 하늘로 돌아갔다. 이는 인간이 신으로 되돌아가는 수련 문화를 남긴 것이었다. 후세 사람은 헌원 황제가 입었던 의관을 교산(橋山)에 묻고 황제릉을 만들어 오늘날까지 모시고 있다.
그 후 역대 왕조에서도 신들은 계속 세상에 내려와 화하(華夏) 민족의 황제가 되어, 유구한 세월에 걸쳐 한 걸음 한 걸음 중화신전문화 체계를 구축하고 풍부하게 했다. 중화문화는 신의 지혜로 만들어졌기에 박대정심(博大精深)한 내포가 있고 천기와 기적으로 가득하다.
3. 천추(千秋)의 기틀
대홍수 이후 요·순·우 세 성군은 연속 세상에 내려와 천지사시(天地四時)의 운행 질서를 규범화하고 수토를 다스렸으며 음양을 조화롭게 하는가 하면 요마를 제거해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또한 덕으로 천하를 다스려 도덕을 핵심으로 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문화체계를 세우는 등 거대한 신주 무대를 구축했다.
인간과 신이 공존했던 하나라와 상나라 시기에는 많은 신선과 진인(眞人)이 일반 사람과 어울리면서 인간에게 각종 문화와 기예를 전수하는 한편 인간의 도덕성과 사상의 내포를 규범화했다.
서주, 동주에서 진나라에 이르기까지 80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춘추오패(五霸)와 전국 칠웅(七雄)이 일어났다. 당시 진시황은 천시, 지리와 인화를 모두 얻어 강산을 통일하고 중국의 첫 전통 황조(皇朝)를 세웠다.
한 무제는 국토를 확장하고 남정북전(南征北戰)하며 한나라의 위풍을 서역에 떨쳤다. 나라 안에서는 제도를 완비하고 수천 년간 이어온 한(漢) 문화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나라 밖에서는 서역으로 통하는 길을 개척해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 중화문화를 가져다줬다. 그로부터 청나라 개국 전까지 2천 년 동안, 중국에는 진나라와 한나라의 체제와 범식이 계속 이어졌다.
당 태종 이세민은 뛰어난 지혜와 용맹으로 군웅을 누르고 중원을 평정해 천하를 통일했으며, 중화 5천년 문명을 최절정에 이르게 했다. 당나라는 황제가 천하를 다스리면서 온 세상에 위엄을 떨쳤고, 해납백천(海納百川)의 배포와 위풍당당한 풍모를 갖추고 유례없는 찬란함과 강성함을 고금에 자랑했다!
13세기 초에는 칭기즈칸과 그의 황금씨족이 서역 정벌에 나서 유라시아 대륙을 휩쓸면서 유럽 구도의 기틀을 마련했고 이르는 곳마다 화하문명을 전파했다. 그때부터 유럽은 수백 년 르네상스 시대가 열려 문명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원나라 초대 황제 쿠빌라이 칸은 원나라 제국의 100년 역사를 중원 무대에 올렸을 뿐만 아니라, 한나라와 당나라보다 훨씬 넓은 국토로 세계무대를 하나로 만들면서 전 세계 구도를 새로 짰다.
명성조, 청나라 강희제 등 명군들은 어질고 높은 덕을 갖춘 동시에 문무가 뛰어나 사방의 오랑캐를 복종시켰다. 또한 해상 원정, 몽골·러시아 정복 등을 통해 전 세계를 제패하며 온 천하가 찬란한 중화문화의 영향을 받게 했다.
중국 왕조의 이런 명군들은 역사를 개창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닦았으며,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으면서 중화전통문화가 지속해서 뻗어 나가 중국과 세계 문명에 휘황함을 가져오게 했다. 중국 각 조대는 모두 신의 보살핌 아래 질서 있게 인간이 갖춰야 할 문화적 저력과 사상 깊이를 갖도록 기반을 다지고 완비했다.
4. 거대한 포용력
세계의 대다수 민족 문화는 그 민족의 주요 종교 신앙에 기반을 두고, 대부분의 종교 신도들은 자신이 신앙하는 신이 유일하고 진정한 신이며 다른 신앙은 이단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서양 역사를 보면 종교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 학자는 세계 각 나라의 전쟁은 근본적으로 종교 갈등에서 비롯됐다고까지 말한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교회와 절이 같은 거리에 마주하고 있어도 아무 마찰이 없었고, 역사상 심각한 종교 전쟁도 없었다. 중원에 유입된 몽골족과 만주족 등 소수민족은 중화전통문화의 혜택을 받았으며 그들 문화의 정수도 중화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중국 문화의 거대한 포용력이다.
우주의 신 중에는 부처가 있고 도(道)가 있으며 기타 형식의 신도 있다. 그래서 중국 문화는 지속적으로 ‘불·도·신(佛道神)’의 개념을 다졌고 수련의 방법을 깨우쳐주는 동시에 ‘도(道)·덕(德)·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 등 사람의 도덕과 윤리, 각종 보편적 가치를 형성했다.
모든 민족의 문화에는 창세주께서 말세에 사람들을 구원하러 오실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 할 때, 창세주께서 모든 민족과 다양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구하려면 거대한 포용력을 가진 중화문화를 선택해 종말에 사람을 구원하는 법을 전할 것이라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이런 문화는 우선 생명의 근원과 문화 신앙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종말에 사람을 구원하는 천법(天法)을 모두 이해하게 하고, 한편으로는 이런 문화에서 최후의 천법을 전함으로써 각자의 종교에 집착하는 사람들도 받아들일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물론 다른 각도에서 말하면, 이처럼 거대한 포용성, 풍부하고 박대(博大)한 문화는 창세주가 오래전부터 체계적으로 계획해 놓으신 것이다. 그것은 점진적으로 구축되고 발전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진 것이며 말세에 모든 세상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5. 재앙에도 불멸하다
중화전통문화는 신의 보호 아래 수천 년 동안 번성하면서 19세기 중반까지 대대로 계승됐다. 하지만 서양 문명은 산업혁명에 따른 기술 우세와 무력으로써 수천 년간 볼 수 없었던 국면 변화를 일으켰다. 그때부터 중화의 대지는 혼란에 빠졌고 서쪽에서 온 유령이 그 기회를 틈타 침입하면서 중국 문화는 처참하게 파괴되고 위태롭게 되었다.
공산당은 오랫동안 고심하여 계획했는바, 각종 정치운동과 10년에 걸친 문화대혁명, 각종 폭력적 탄압, 종교 부패 조장, 신앙 말살과 이에 더해 당(黨)문화와 무신론 주입 교육을 실시했다. 이 때문에 젊은이는 이미 불·도·신(佛道神) 신앙이 무엇인지 모르게 됐고, 기성세대는 학살과 탄압에 겁먹어 침묵했으며, 전통건축물·고적·사원·골동품·문물이 훼손되고 신과 인간의 관계는 더욱 약화됐다.
하지만 유교·불교·도교 같은 종교가 파괴되었어도 인간이 신의 부름을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신이 다져 준 중화전통문화의 저력과 끈질긴 생명력은 이 시기에 충분히 드러났다.
문화혁명 이후 중국인은 신앙을 잃고 정신이 공허해졌으며 문화생활도 전무했다. 하지만 라디오방송에서 양가장(楊家將)> 삼국지> 수호전> 등 고전 명작을 방송하자 한 회라도 빠뜨릴세라 열중하며 청취했다. 그로 인해 길거리는 한산할 정도였고 경찰도 순찰할 필요가 없었다. 이는 수천 년간 축적된 신전문화가 사람들 마음속 정념(正念)과 오래된 기억을 다시 일깨워줬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왜 그처럼 삼국지의 ‘의(義)’에 감탄하는가?
사람들은 ‘의’자를 들으면 즉시 삼국시대의 의를 떠올린다. 무수한 후세 사람은 유비·관우·장비가 맺은 형제의 의(義)를 추앙하고 본받았으며, 의(義)를 위해 이(利)를 버리고 의(義)를 위해 생명을 버리는 그들의 성품과 이야기는 널리 회자했다. 제갈량은 죽을 때까지 혼신을 바치며(鞠躬盡力, 死而後已) 유비를 보좌해 후세 충신의 본보기가 됐으니 천고에 제일가는 현상(賢相, 어진 재상)이라 할 수 있다. 위무제(魏武帝) 조조는 낮에는 무책(武策)을 강구하고 밤에는 경전을 읽으며 승전의 전략을 구상해 북방을 통일했다. 조조는 유비가 영웅임을 알아보고 ‘매실을 안주 삼아 술자리를 폈지만’ 어려운 상황에 있던 유비를 죽이지는 않았다. 또 약속을 지켜 관우를 풀어줬으며, 황제와 신하의 의(義)로 천하의 민심을 얻었다. 위·촉·오 삼국이 100년 동안 해석해낸 의(義)는 전체 화하 5천년 전통문화가 인간의 도덕, 품행을 규범화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양육랑(楊六郞)과 악비(岳飛)의 충(忠)에도 그처럼 감동하는가?
북송의 양육랑은 삼관(三關)에서 적을 대파하여 위용을 떨쳤고, 남송의 백전노장 악비는 한 번도 전쟁에서 패하지 않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악비는 황룡부(黃龍府)를 치고 강산을 수복하려다 간신 진회(秦檜)에 의해 풍파정(風波亭)에서 처참히 살해됐다. 양육랑과 악비의 영웅 이야기는 누대로 전해져 후세 사람들을 가르쳤다. 글을 몰라 역사서를 읽을 수 없는 백성도 이야기나 연극을 통해 간신을 미워하고 충신을 존경하며 입으로 전한 덕분이었다.
중화 5천년 역사의 부침 속에서 연출된 수많은 역동적인 드라마와 감동적인 이야기는 사람에게 선과 악, 옳고 그름, 진짜와 가짜, 충신과 간신을 구별할 줄 알게 했고, 중화 자고의 호연지기를 유지하게 했다. 또한 세인의 사상과 정신, 의식과 혈맥에 각인시켜 중국공산당 정권의 극심한 탄압과 기만에도 그들 마음속 희망이 사라지지 않게 했다.
맺음말
이 세상 70억 인구는 사람마다 종교를 믿고 사람마다 신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창세주께서는 한 사람도 놓치지 않으려 하신다. 하지만 사람들은 최소한의 도덕을 갖춰야만 사람이 될 자격이 있다. 세계의 많은 종교에서 신이 사람에게 도덕의 하한선을 지키며 신의 재림을 기다릴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인간의 도덕성이 붕괴 직전에 이르면 궤멸의 재앙이 덮치게 된다. 그때는 신만이 천지를 주재하는 그 거대한 손으로 상황을 역전시키고, 종말의 위험에서 선량한 사람들을 구원하실 수 있다.
신이 인간에게 다져 놓으신 문화와 도덕적 기반은 이러한 부활의 길을 닦아 놓은 것이다. 이는 세인에게 가장 큰 위험이 닥쳤을 때 신이 계시한 천기를 알아듣고 구원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므로 이를 파괴하는 것은 곧 인류를 파멸하는 것이다.
공산당은 끊임없는 정치운동을 통해 의도적으로 중화전통문화를 말살했는바, 이는 도덕이 타락하는 위험한 상황에서 모든 출로를 막아놓은 것이다. 세인이 이러한 문화를 잃고, 이 문화의 영향과 가르침으로 갖추게 된 도덕과 품행을 잃는다면 인간을 구하시는 신과 신이 전하신 법을 이해하지 못해 결국 최후의 기회를 잃을 것이다.
중화전통문화는 창세주께서 종말에 중생을 구하기 위해 중국에서 직접 이뤄놓으신 문화이다. 바로 여기에 중화전통문화의 특별한 배치와 목적이 있다.
<9평> 편집부
<대기원 전재>
원문발표: 2017년 11월 25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1/25/35710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