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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 파는 노인

글/ 바이롄(白蓮)

[밍후이왕] 설 명절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후 아파트 단지 부근에 새로 채소와 과일 파는 노점이 열렸다. 나는 곧 노점 노인이 아주 싫어졌다. 목소리가 유별나게 높아 호객할 때 그야말로 목이 쉬고 힘이 다 빠질 지경으로 외쳐댔다. 더욱 사람을 혐오스럽게 한 것은 자기가 파는 채소를 너무 과장하는 것인데 설령 오이 한 개를 파는데도 너무 지나치게 과장했다.그가 나에게 준 인상은 농민의 소박함이란 없고 온 목소리가 살려고 발버둥 치는 것 같았다.

이 노인이 싫었던 탓으로 그의 채소가 확실히 싱싱했지만 그래도 사지 않고 먼 곳을 에돌아 마트에 가서 샀다.주말에 9급 태풍이 불었는데 집에 먹을 채소가 없어 별 수 없이 사러 나갔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바람은 아파트 안에서 듣던 것보다 더 심했고 황사가 얼굴에 부딪혀 아팠다. 그래서 생각했다. ‘노점 노인이 있으면 그의 것을 사야겠군.’ 잇따라 자신을 부정했다. ‘이렇게 큰 바람이 부니 아마 그는 가게를 열지 않을 거야. 마트에 가자.’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어슴푸레 날리는 황사 속을 꿰뚫고 바라보니 뜻밖에 그 노인이 노점을 열고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것을 발견했다.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원래 노인은 허리를 구부리고 채소 과일을 담는 큰 광주리 뒤에 섰는데 손에는 헌 솜이불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채소를 다 팔고 노점을 닫으려는 걸까?’‘아이고! 아무래도 큰 바람을 맞고 마트에 갈 수 밖에 없구나.’ 나는 좀 풀이 죽어 그냥 앞으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그 노인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꽃과 가시가 달려 있는 싱싱한 오이요!” 귀에 익은 목소리는 여전히 이전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상품을 과대평가하는 말투였다.

하지만 오늘 듣기에는 그다지 짜증나지 않았다 노점 앞에 다가가 처음으로 그의 상품을 눈 여겨 보았다. 그의 채소나 과일은 확실히 매우 싱싱했고, 게다가 잎사귀 채소는 마트에서처럼 분량을 늘리려고 물에 씻은 것이 아니었다. 보아하니 ‘듣기에’ 그다지 소박해 보이지 않는 노인은 그래도 비교적 실재적이었다.필요한 채소를 샀더니 노인은 그 기회에 나에게 과일도 팔려 했다.

노점의 사과, 바나나 같은 것을 나는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바로 물었다. “뒤에 이불을 덮은 건 뭔데요? 수박인가요?”(나는 다른 사람이 수박, 딸기 같은 남방에서 온 비계절 과일을 솜이불을 덮어 보온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노인이 허허 웃었다. “수박이라구요? 이건 수박보다 더 진귀하답니다.” 나는 호기심이 부쩍 일었다. “그럼 뭔가요” “제 마누라죠.” 채소 파는 노인이 말하면서 이불을 제치자 내가 수박인 줄로 알았던 사람 머리가 노출됐다.

자주 빛 두터운 털모자 아래로 누렇고 부은 얼굴이 나타났다.노인은 이불을 덮고 잘 여며 주었다. 나는 이미 거스름돈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사람은 병이 몹시 심한 모습이었다. 내가 막 말을 꺼내려 하는데 노인은 앞질러 말했다. “집에 두고 오자니 그녀가 언제 갈지 알 수 없어 데리고 나왔죠. 그녀가 숨이 멎는 걸 볼 수……” 노인의 그 영리한 혀가 갑자기 떠듬거렸다.“치료할 방법이 없나요?” “말기랍니다. 채소나 많이 팔아 그녀에게 진통 주사나 맞혀주면 정성을 다 한 셈이지요. 이 병은 우리 가난한 백성이 앓을 병일까요? 집을 팔아 화학약물 치료를 했지만 다 빠진 머리칼이 아직 나지도 않았는데 또 암이 전이됐어요.” 노인은 나에게 줄 거스름돈을 찾는 한 편 한쪽으로 말했는데 목소리는 호객할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나는 손을 흔들면서 도망쳤다. 나는 내가 평소에 누적했던 많은 것들이 대번에 무너지는 감을 느꼈다. 나는 그렇듯 자신만 옳다고 여겼고 언제나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으로 일체 부딪친 사람과 일을 판단했다. 자신은 좋은 교육을 받아 지능이 높고 감성 지수가 높으며 견식이 넓어 ‘세상일에 훤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나는 채소 파는 노인을 보아낼 줄 몰랐고, 나는 그의 표면만 보았으며, 자신의 관념으로 색안경을 걸치고 사람을 보면서도 또 스스로 자신은 얼마나 고명하다고 여겼으니 나는 얼마나 편협한가! 표면만 보고 위치를 바꿔 놓고 생각하지 못했으며, 진정하고 침착하게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않았는데 이는 중상층 계층 사람이 세상일을 판단하는 폐단과 얼마나 흡사한가!한 친구가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늘 만나는 수련자가 그에게 ‘천멸중공(天滅中共: 하늘이 중국공산당을 소멸함)’을 말하면서 그가 어서 삼퇴해 평안을 지키기를 바란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이런 수련자들에게 “뭘 바라는 거지? 돈을 주는 사람도 없고 잡히면 또 갇혀야 하는데 너무 어리석어”라고 말했다. 일찍이 나도 친구가 하는 말이 이치가 없는 건 아니라고 여겼다. 하지만 채소 파는 노인의 일이 나를 반성하게 했다. 냉정하게 파룬궁을 이해해야 할 게 아닌가? 자기만 옳다고 여기는 것 역시 고집스러운 게 아닐까? 우리는 한 사람, 한 가지 일을 진정으로 알기 전에 단지 자신의 이른바 경험이나 독단적인 선전에만 의거해 결론을 내리고 다방면의 정보에 따라 이지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는데 이는 정보가 폭발하는 시대에 우물에 앉아 하늘을 보는 격이 아닌가?더 많이 생각하면 예지가 더 많아질 것이다.

원문발표: 2017년 5월 17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5/17/34829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