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파룬궁 수련생
[밍후이왕] 나는 어려서부터 무신론의 영향을 받았다. 배운 것이란 무신론 교과서이고, 들은 것이란 무신론의 선전이며, 사회에서 접촉한 것이란 모두 무신론의 것이었다. 불(佛), 도(道), 신(神)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므로 어려서부터 세상에는 신이 없다고 여겼다. 신을 모시고 신을 믿는 사람은 미신을 믿는다고 여겼다, 중화민족의 어떤 전통 문화도 미신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신은 객관적인 존재로서 다만 당신에겐 그를 볼 능력이 없을 뿐이다. 파룬따파를 배운 후 나는 서서히 관념을 개변했고 세계관에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했다.
많은 과학자가 신이 있다고 여긴다
유명 과학자 뉴턴은 만년에 이르러 말했다. “나의 업적을 신의 위대한 창조와 비해 보면 나는 단지 해변에서 자갈과 조개를 줍는 어린애에 불과합니다. 광대한 진리의 바다는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뉴턴의 벗이자 유명한 천문학자인 핼리는 혜성의 궤도를 추산해 냈고 이 혜성은 이후에 핼리 혜성으로 명명됐지만 그는 오히려 우주 중의 일체 천체는 신이 창조했다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한번은 뉴턴이 태양계 모형을 만들었는데 중앙은 도금한 태양이고, 주변 네 개의 각 대행성은 각기 자기 위치를 비추었으며, 배열이 가지런해 크랭크를 당기기만 하면 각 행성은 즉각 자기 궤도를 조화롭게 비추면서 돌아가는데 아주 미묘했다. 하루는 핼리가 방문을 와 이 모형을 보고는 오랫동안 갖고 놀고 나서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누가 만들었는지 물었다. 뉴턴이 말했다. “이 모형은 설계한 사람도 만든 사람도 없네. 단지 우연히 각종 자료들이 한데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지.” 핼리가 말했다. “어쨌든 만든 사람이 있을 것이고 게다가 천재적인 사람일 거야.” 이때 뉴턴은 핼리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이 모형은 정교하긴 하지만 진정한 태양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네. 자네는 틀림없이 누가 만들었다고 믿고 있지만 이 모형보다 몇 억 배나 더 정교한 태양계는 전능하신 신이 고도의 지혜로 창조하신 것이 아닌가?” 핼리는 이때서야 문득 크게 깨달았고 신의 존재도 믿게 됐다. 뉴턴은 또 말했다. “하나님은 만물을 다스리시고 이미 했거나 할 수 있는 일을 알고 계시네.”
유명 과학자 아인슈타인 역시 유신론자이다. 누군가 그에게 세상에 신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책상에 놓인 커피, 과일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작게는 커피, 컵 등 물건도 일종의 힘으로 배치해야 하는데, 그럼 생각해 보세요. 우주는 얼마나 되는 천체를 갖고 있겠습니까? 또 매 하나의 천체마다 모두 일정한 궤적에 따라 빈틈없이 운행하고 있는데 이런 운행의 힘을 배치하는 것이 바로 신입니다.” 세계의 수많은 과학자는 모두 신의 존재를 믿는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데카르트, 케플러, 패러데이, 줄 등은 모두 유신론자다.
중국 전통문화는 신의 존재를 나타내
중국을 또 신주(神州)라고 부르며 중국이란 세계 중심에 있는 나라임을 의미한다. 중국의 오래된 전통 문화는 신이 전한 문화다.
1. 중국의 한자를 예로 들어보자. 어떤 이는 중국 한자는 5천 년 역사가 있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6천 년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고고학에서는 중국 문자가 8천 년 역사가 있음을 발견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떻게 말했든 중국은 원시사회 때에도 있었다. 원시사회는 아주 낙후해서 참고 자료가 없고, 서적이 없으며, 사람은 사냥으로 살았고, 유동성이 아주 컸는바, 다시 말해서 비문명 시기에 처했다. 그들은 어떻게 이 같이 풍부한 문자를 창조했을까? 예를 들면, 도(道), 법(法), 이(理), 덕(德), 인(仁) 등 이런 글자는 사실 일찍부터 단순한 글자가 아니었다. 강희(康熙)자전에 4만 4천 9백 8개 글자가 있다. 중국에는 그렇게 많은 박사 교수가 있지만 그 함의를 전부 인식하고 알 수 있는 사람이 몇 사람 안 된다. 지금은 교육이 이렇게 발달했지만 중국 원시시대의 사람을 따라가지 못한다. 이건 불가사의한 것이 아닌가? 이렇다면 중국의 한자는 신이 사람을 도와 창조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
2. 서예로부터 말해보자. 중국 서예는 신이 전한 오래된 중국 문화이며 바둑, 악기, 그림과 나란히 네 번째인 ‘예(藝)’ 이며, 중국 문자의 구조미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전통 예술이다. 그 내포는 넓고 깊으며 그림의 경지, 시의 정감, 음악의 선율, 무용의 운미, 무술의 풍채, 사람이 되는 철학을 포용했다. 이른바 무색이면서도 현란한 그림이 되고, 무성이면서도 음악의 운율이 있는 것이다. 세계 많은 문자 가운데서 오직 중국 한자만이 천상의 문자와 대응할 수 있고 또한 한자만이 서예를 파생해 낼 수 있다.
3. 한자를 갑골문으로부터 계산하면 3천여 년의 시련을 겪으면서 진(眞), 초(草), 예(隶), 전(篆), 행(行), 해(楷) 등 수많은 서체를 형성했다. 중국 서예 예술은 상나라(은나라) 시대로부터 시작해 상나라의 소박하면서도 예스러움, 진한의 화려함, 위진의 우아한 자태, 수당의 흥성, 송원의 풍채, 명청의 번영, 근대의 광활함까지 발전을 이뤘다. 서예는 세월과 더불어 광명정대하게 유구한 역사를 지나왔다. 동양 예술의 핵심인 중국 서예는 중화민족의 기질, 서예의 점과 선, 흑과 백을 체현했으며, 천변만화 하는 대자연의 태도와 형상을 응집했고, 서예가의 정감과 지혜를 나타냈다. 서예는 국수(國粹)이며, 중국 역대의 왕조 시대에는 모두 서예를 공부하는 매 사람의 필수과목과 수양으로 여기는 중요한 구성 부분이었다. 바로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글자는 그 사람과 같다’이다.
4. 우리 다시 중의학을 말해보자. 중의학이라는 제목은 너무 커서 우리는 단지 경락학설 중의 혈(穴) 문제만 말해보자. 침구라는 이 과학을 서양 사람은 처음에 인정하지 않았고, 경락 중의 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현대 과학은 피부의 전기 저항을 측정하거나 광선 등의 방법으로 혈자리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현대과학으로 말하면 ‘경락을 어떻게 발견했는지’가 확실히 수수께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해부해서도 보지 못하고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 의서 중에는 확실히 아주 일찍부터 기재가 있었다. 이를테면 ‘황제내경’에서는 ‘경맥(經脈)은 인체의 심부(深部)에서 순행하는데, 갈라져 나와 횡(橫)으로 흐르는 것은 낙맥(絡脈)이고, 낙맥(絡脈)에서 갈라져 나온 것은 손락(孫絡)이다(經脈爲裏,支而橫者爲絡, 絡之別者爲孫)라고 했다. 경(經)이란 경로라는 뜻으로서, 세로로 통한 통로에 속한다는 것이고, ‘락(絡)’이란 그물이란 뜻으로서 경맥의 갈래에 속하며, 가로세로 엉켜 전신을 순환한다. ‘경’과 ‘락’ 두 글자에는 연계, 연락이란 뜻이 있고 그것들은 신체 안에서 한데 연계돼 경락 계통을 조성한다. ‘황제내경’의 유래와 연대에 대해 다양한 논란이 있긴 하지만 그가 책으로 만들어 진 것은 적어도 2천 년 역사가 있다는 것만은 모두 인정하고 있다. 이로부터 볼 때 경락학설은 유래가 오랜 것이다. 경락학설은 침구 치료 방면에서 이렇듯 효과 있고 간단하게 실행 가능한데, 오늘날 세계에 있는 이렇듯 많은 의학박사, 의학전문가 치고 몇 사람이나 경락학설을 해석할 수 있는가?
5. 다시 중국의 역법을 말해 보자. 중국 역법은 정말로 절정의 과학이다. 일 년 사계절 24절기는 매우 정확하다. 중국 최초의 역법은 헌원 황제가 반포한 것이라고 한다. ‘하늘의 도를 보고 하늘의 행함을 본받으면 이를 극진하다고 하는 것이다.(觀天之道,執天之行盡矣)” 이는 ‘황제음부경’ 머리말 첫 마디이다. 하늘을 본다는 것, 지금은 망원경 등 첨단 기기가 있어 하늘을 볼 수 있지만 5천년 이전에는 하늘을 보는 기기가 없었다. 우리 현대인은 도수 높은 천문경으로도 얼마 되는 하늘도 보지 못하는데 5천년 이전의 원시사회 사람이 어찌 하늘을 그렇게 정확히 볼 수 있으며, 24절기를 그렇게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었을까?
현대 사회에 나타난 기적
미국에 마술사 데이비드 카퍼필드라는 사람이 있다. 2001년 10월 7일, ‘디트로이트 프리프레스(Detroit Free Press)’ 신문이 데이비드의 특별한 쇼를 보도했다. 데이비드는 2001년 2월, 독일의 복권 결과를 예견한 후 결과치를 공증하고 블랙박스에 봉인하고는 사람을 시켜 밤낮 지키게 했다. 10월 13일 복권 결과가 발표된 후 독일 방송국 사람은 7개월 넘게 잠가두었던 블랙박스를 열었다. 그 결과 7개 숫자와 당첨 숫자가 완전히 일치했다. 이것이 얼마나 불가사의한가! 데이비드는 또 수많은 기적을 행했는데 중국의 만리장성을 뚫고 나가는 마술도 펼친바 있다.
다시 또 중국 기공의 한 가지 예를 들기로 하겠다. 80년대 기공 붐이 일 때 상하이에서 특이공능(초능력) 대회를 열었다. 그 때 논란이 아주 많았는데 무신론자들은 미신이라면서 대회를 열지 못하게 했다. 이 일이 당시 중국공산당 총서기였던 후야오방에게 반영됐다. 후야오방은 실사구시하는 사람이어서 테스트를 해보았다. 그는 직접 몇 개 글자를 쓴 후 직접 봉투에 봉하고는 그의 비서에게 상하이 대회장에 보내게 했다. 봉인을 열지 않은 상황에서 특이공능자로 하여금 안의 글자가 무엇인지 써내게 했다. 과연 써낸 사람이 있었다. 비서는 원래 편지와 답변을 모두 후야오방에게 가져왔다. 후야오방은 편지 봉투를 개봉한 흔적이 없는 것을 자세히 확인한 후 답변이 완전히 맞다고 했으며 이후 기공에 대해 지시를 내렸다. “제지하지 말고, 선전하지 말며, 쟁론하지 말라.” 이것이 바로 ‘삼불(三不)’ 정책이다. 종이를 사이에 두고 글자를 알아내는 것을 속인의 재주라고 할 수 있는가?
우리 다시 시안 진시황 병마용 발견을 말해보자. 1974년, 중국 고고학 전문가가 시양(西楊)촌에서 병마용의 실마리를 발견한 후(생산대에서 우물을 팔 때 병마 머리 두 개를 파냈음) 보름 넘게 고고학 탐사를 한 후에도 병마용의 변두리조차 만져보지 못했다. 하루는 고고학 고찰대가 일을 마치려 하는데 70여세 백발이 성성한 혈색 좋고 신선의 풍채가 도는 노인이 고고학 전문가 청쉐화(程學華)에게 말했다. “자네 날 따라 오게.” 약 200미터쯤 가서 노인이 멈춰서더니 얼굴에 웃음을 띠고 말했다. “병마용 구덩이는 바로 이곳에 있네.” “뭐라고요? 농담하시는 건 아니겠죠?” “믿고 안 믿고는 자네에게 달렸네.” 노인은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이들은 헤어졌다. 저녁에 청쉐화는 잠들 수 없었다. 노인의 말을 믿자니 뭘 보고 믿는단 말인가? 안 믿자니 국무원에서 파견한 고고학팀이 실마리가 있는 상황에서 두 달 반이나 탐사했지만 종적이 보이지 않아 그야말로 궁지에 빠졌을 때였다. 그럼 노인의 말대로 탐지해 보자. 다음 날 그는 노인이 가리켜주던 위치에 반신반의하면서 시추했다. 과연 도자기 조각이 올라왔다. 계속 서쪽으로 시추해 나가니 도용(陶俑)의 종적이 발견됐다. 노인의 말이 실증된 것이다. 1년 후 전체 병마용 구덩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이 증명하다시피 그 노인이 가리킨 위치는 완전히 정확했던 것이다. 그럼 그 노인은 누구인가. 성씨는 무엇이며, 어디 사람인가? 그가 어떻게 아는가? 지금까지도 아는 사람이 없다. 만약 속인이라면 그는 또 공로가 있다고 수상을 신청할게 아닌가? 이런 것이 모두 신의 기적이 아닌가?
신을 믿는 좋은 점
세상의 유명 대학은 절대 대부분이 모두 종교에서 창설된 것이며, 수많은 뛰어난 인재들을 양성했다. 1977년 ‘과학기술 영재-미국 노벨상 수상자’ 중 통계에서, 1901년 노벨상을 성립한 이래 미국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286명 과학자 중 73%가 모두 기독교 신자이고 19%가 유대인이었다. 특히 물리학상, 화학상, 생물의학상 수상자는 거의 전부가 신을 믿었다. 2002년 2월 23일 미국 부시 대통령이 칭화대에 와서 연설할 때 한 학생이 그의 종교 신앙을 물었을 때. 그는 미국의 95% 사람에게 모두 종교가 있다고 답했다. 다른 한 가지 항목의 조사에서 나타난 것으로는, 17-19세기 300년 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300명 과학자 중 242명이 신을 믿었다. 20세기 영국, 프랑스, 미국 3국 과학자들 중 90%가 모두 기독교 신자였다. 1926년, 프랑스에 74명 과학자가 있었다.(그들은 모두 과학회 회원임) 그 중 단 한 사람만이 기독교를 찬성하지 않았지만 그는 신을 반대하지는 않았다. 다시 중국을 보자. 그렇게 많은 이런 저런 명문대가 있지만 이렇게 여러 해 되도록 졸업 후 중국 대륙에 남아 사업한 사람 치고 노벨상 수상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공산당은 무신론을 선양하기 때문에 과학상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무신론을 선양하는 나라는 모두 가난하다. 예를 들면 동독은 당시 공산국가여서 무신론을 선양하고 서독은 신을 믿었기에 서독은 동독보다 부유했다. 북한은 무신론을 선양하고 남한은 신을 믿기에 남한은 북한보다 부유하다. 중국 대륙은 무신론을 선양하지만 대만은 신을 믿는다, 총체적으로 보면 대만이 대륙보다 부유하다.
사실 당신은 오직 마음을 차분히 하고 생각해 보라. 우주는 그렇듯 크고 천공의 별은 모래보다 더 많은데 아래에는 받쳐주는 것도 없이 모두 달려 있으나 모두 규칙적으로 운행한다. 외력이 없이 규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가? 이런 지혜와 힘을 가진 것이 신이 아닌가? 중화민족 역사가 그렇듯 유구하고 신은 사람을 도와 그렇게 많은 찬란한 문화를 창조해 주었고, 불, 도, 신을 쓴 책은 그렇게 많으며 신의 행적은 그렇게 많은데, 무신론 하나가 신불(神佛)의 존재를 덮어버렸으니 이것이야말로 중국인의 최대 치욕이다! 무신론을 선양하는 것은 가장 큰 죄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은 심법으로 자신을 단속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악한 짓이란 다 하는데 사회도덕이 크게 떨어져 사회에 엄청 큰 피해를 빚어낸다. 열망이 있고, 뜻이 있으며, 자신과 후대에 복을 마련해 주려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어서 모든 죄악의 근원인 무신론을 포기하고, 신불을 믿고, 신불을 존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인즉, 이것이야말로 총명한 사람의 선택이다!
원문발표: 2017년 4월 6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4/6/34525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