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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청원 사건, 불후의 도덕 기념비

글/ 란신(藍馨)

[밍후이왕] 17년 전인 1999년 4월 25일. 사전 계획도 없었는데 1만 명이 넘는 파룬궁(法輪功) 수련생들이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 국무원민원실 맞은편에 모여들었다. 이들은 낮 동안 조용히 청원하다가 저녁이 되자 다시 조용하고 질서 있게 흩어졌다. 수련생들은 떠나갈 때 경찰이 버린 담배꽁초까지 모두 치워 휴지 한조각도 남기지 않았다. 한 경찰은 깨끗한 길바닥을 가리키면서 동료 경찰에게 말했다. “무엇이 도덕 수준이 높다는 것이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도덕 수준이 높다는 것입니다!”

당시 파룬궁 수련생들이 국무원민원실로 청원 간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톈진교육대학이 출간하는 정기간행물 ‘청소년과학기술박람’에 불량 과학자 허저슈(何祚庥)가 파룬궁을 비방한 글이 게재되자 파룬궁 수련생들은 톈진교육대학에 찾아가 내용 정정을 요구했다. 그런데 4월 23일, 톈진 경찰은 평화롭게 청원하는 파룬궁 수련생들을 폭행하고 그중 45명을 체포했다. 수련생들은 무고하게 체포된 수련생들을 석방할 것을 톈진시 정부에 요구하러 갔다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사건은 베이징 당국이 직접 지시한 것으로 현지 공안국은 아무런 결정권이 없었다. 톈진 경찰은 “베이징으로 가십시오. 베이징에 가야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어 4월 25일, 1만 명이 넘는 파룬궁 수련생이 베이징 중난하이 국무원민원실 앞에 모여 든 것이다. 그날 주룽지(朱鎔基) 국무원 총리는 직접 수련생 대표를 만나고 톈진 공안국에 체포된 사람들을 모두 석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일이 잘 해결되자 수련생들은 저녁 때 쯤 자발적으로 해산했다. 4.25사건의 평화적인 해결은 정부와 국민 간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열어놓은 것으로 국제적인 찬사를 받았다. 17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더욱 냉정하게 그 역사적인 사건을 분석해 볼 수 있게 되었는데, 그것은 파룬궁 단체가 비범한 도덕적 용기와 진선인(眞善忍)의 이념을 견지한 것으로 이 난세의 ‘도덕 기념비’라고 말하기에 충분했다!

많은 중장년 파룬궁 수련생들은 3반, 5반, 반우파, 4청, 문화대혁명 등 중공이 벌였던 정치운동을 모두 겪었기 때문에 중공의 독재와 사악함을 알고 있으며 그들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청원을 떠나기 앞서 유서까지 써놓았다! 많은 사람들은 파룬궁 수련생들이 박해 받으면서 현재까지도 여전히 수련을 견지하고 대중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묻는다. “정말 박해가 두렵지 않은가? 죽음이 두렵지 않은가? 그렇게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이 문제에 대답하기 전에 먼저 ‘4.25청원’ 당시 파룬궁 수련생들이 주룽지 총리 및 민원실 관계자들에게 제기한 3가지 요구를 보기로 하자.

첫째, 불법 체포된 톈진 파룬궁 수련생들을 석방하라.

둘째, 파룬궁 서적의 합법적인 출판을 허용하라.

셋째, 합법적인 수련환경을 보장하라.

지난 17년 동안은 물론, 최근 1, 2년 사이 많은 파룬궁 수련생들이 박해 원흉 장쩌민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며 최고인민법원과 검찰원에 고소장을 제출했는데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요구를 제기했다.

첫째, 파룬궁 창시자 리훙쯔(李洪志) 선생에게 사과하고 명예를 회복시켜 줄 것.

둘째, 수감된 모든 파룬궁 수련생들을 석방하고 명예를 회복시켜 줄 것.

셋째, 파룬궁 서적과 영상물의 국내 출판을 허용할 것.

넷째,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방해 없는 수련 환경을 보장해 줄 것.

다섯째, 박해 원흉 장쩌민과 그 수하들을 처벌할 것.

여섯째, 잔인한 박해로 인한 신체와 정신, 재산 손해를 국가가 배상할 것.

이 두 사건에서 파룬궁 수련생들이 제기한 요구만 보아도 다음과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파룬궁 수련생들은 단지 안정적이고 자유로우며 교란 없는 수련 환경을 요구할 뿐 속세의 정권, 명리에 대해서는 구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파룬궁 수련생들이 청원과 박해 중에서 요구한 것을 보기로 하자.

1999년 ‘4·25청원’ 당일, 수련생들은 자발적으로 질서를 지키고 정숙을 유지하며 구호도 외치지 않았다. 쓰레기도 깨끗이 치웠는데 경찰들이 버린 담배꽁초도 주어서 비닐 봉투에 넣어가지고 갔으며 어떤 수련생은 심지어 수련생들이 사용했던 인근 화장실까지 청소해 놓았다.

같은 해 7월 20일, 대규모 박해가 시작되자 일부 지역에 큰 비가 내렸는데 어떤 수련생은 아내가 가져다 준 우비를 근무 중인 경찰에게 주었다. 또 파룬궁 수련생들이 불법 수감된 곳에 어떤 억울한 일로 함께 갇힌 경찰이 있었는데, 그가 늘 가슴이 답답해하자 환기할 때 하나 밖에 없는 창가를 그에게 양보해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게 해주었다.

이로부터 알 수 있지만 평화로운 환경에서든 박해 받는 환경에서든 자신을 잊고 남을 배려한 수련생들의 이야기는 수없이 많다. 앞에서 말한 몇 가지 사례는 파룬궁 수련생들은 개인의 득실을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더욱 많은 사람들이 파룬따파(法輪大法)로부터 혜택 받고 중공 사당의 거짓말과 사악함을 분명하게 알게 하려는 목적뿐임을 설명한다. 20만 명 이상이 박해 원흉 장쩌민과 그의 수하들을 고소한 것 역시 박해를 저지하고 인간의 도리를 되찾자는 것이지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다.

수련하기 전 많은 수련생들은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종일 주색에 빠져 있기도 하고 사회의 부침 속에서 몸부림쳤으며 명리를 다퉜다. 또 정을 위해 살면서 만신창이 되어 심신이 지쳐 버리거나 병마의 고통 속에서 신음했고 어떤 사람은 연애와 가정과 삶의 위기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사는 것이 죽느니만 못한 그런 상황은 직접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파룬궁을 만난 후 단기간에 병이 낫고 파룬따파의 법리로 마음속의 미혹을 풀었다. 그들은 자신이 겪은 고생은 모두 원인이 있고 인생의 의의는 개인의 욕심을 충족시키고 명리정(名利情) 가운데서 오르내리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고 더욱 좋은 사람이 되어 같지 않은 경지에서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도달한 사람이 되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 사람들은 심신이 건강하고 긍정적이다. 만약 노인이라면 인자하고 이타적일 것이고 어린이라면 신체가 건강하고 지혜로울 것이며 젊은이라면 책임감이 강할 것이다.

이는 그 어떤 인간의 수단이나 방법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그처럼 거대한 변화를 겪은 사람에게 파룬궁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라고 하는 것은 수련 전의 상태, 즉 심신이 피로하고 다투고 싸우면서 심지어 죽기보다 못했던 상태로 되돌아가라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가능하겠는가? 더구나 그가 파룬궁을 수련하면 전반 사회의 도덕 수준이 제고 되고 경제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는데 어찌 수련을 포기하겠는가? 그들에게 신앙을 포기하라고 하는 사람 혹은 조직이 어떤 목적인지는 자명하지 않은가!

중국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는 말이 있다. 한 사람이 생명의 진정한 의의를 알게 되면 죽음은 아무 것도 아니다! 더구나 오늘날 파룬궁 수련생들은 생명의 의의를 알고 진정한 혜택도 받았다! 그러므로 믿음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바꾸게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중공의 박해가 막 시작됐을 때 우리 가두의 당 서기가 나에게 한 말이 생각난다. “현재 사회에 왜 각종 기공이 왜 이렇게 많은가? 근본 원인은 중국공산당이 너무 부패하기 때문이다! 중공이 너무 부패하고 너무 나쁘기 때문에 진선인(眞善忍)을 믿는 민중을 적으로 삼았다.” 최근 낙마한 저우융캉 전 정법위 서기,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 링지화 전 중공중앙 판공청 주임, 궈보슝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 쉬차이허우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을 비롯한 각급 관리들은 모두 부패 관리들이다. 그들은 공금횡령, 권력과 여색의 거래로 한 지역을 망치고, 백성을 억압하여 나라를 망쳤다. 그들의 손에는 파룬궁 수련생의 선혈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눈물도 묻어 있다. 주택 강제철거, 부실공사, 독이 든 백신, 수질오염 등 민생 문제는 중공의 거짓, 사악, 폭력 등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탄압 초기, 일부 선량한 사람들은 “중공은 독재 기구를 총동원해 박해하는데 당신들은 빈손으로 며칠이나 버티겠는가?”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지난 17년 동안 파룬궁은 넘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대선대인(大善大忍)의 진상 알리기는 갈수록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공검법 관계자들도 진상을 알고 박해 저지에 나서고 있다. 어떤 법원은 변호사의 무죄 변호에 따라 파룬궁 수련생에 대해 ‘무조건 석방’ 판결을 했고, 어떤 직장의 당 서기는 진상을 알게 된 후 파룬궁 수련생이 박해 받지 않도록 보호해 줬으며, 많은 일반인들도 진상을 알리는 파룬궁 수련생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지지해주었다. 해외에서는 100여 개 국가와 지역에 파룬궁이 전해졌고 ‘전법륜(轉法輪)’ 등 파룬궁 서적은 30여 개 어종으로 번역 출판되었으며 누구든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다.

장쩌민을 우두머리로 한 중공이 지난 17년 동안 저지른 박해 만행은 결국 천리(天理)와 도덕 그리고 법률의 징벌을 받게 되었다. 그동안 파룬궁 박해에 참여한 관리들이 중병에 걸리거나 돌연사하거나 부패 문제로 체포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박해 원흉 장쩌민도 조여 드는 포위망 속에 있다. ‘당원’이란 호칭은 이미 부정적 단어가 되었다. 중공 매체들도 많은 당원들이 평소 자신의 당원 신분을 드러내기 꺼려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한편, ‘전민탈당’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어 지금까지 2억3천만 명에 이르는 중국인이 ‘대기원시보’ 탈당사이트를 통해 3퇴 성명(당․단․대 조직에서 탈퇴)을 하여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했다.

파룬궁 수련생의 자비와 큰 인내심으로 중공 사당의 탐욕과 사악한 독재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갖은 거짓말이 폭로된 것도 이 때문이다. 파룬궁 수련생들은 생명의 진실한 의의를 알기 때문에 중공 폭정을 두려워하지 않고 잔혹한 박해 속에서도 여전히 중국인과 전 세계인들에게 진상을 알릴 수 있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1999년 4월 25일 청원 장소에 배치됐던 경찰들은 파룬궁 수련생들이 질서를 지키고 담배꽁초마저 주워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는 모습을 보고 ‘도덕 수준이 높다’고 찬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17년이 흘렀다. 파룬궁 수련생들의 무사무아하고 비범한 도덕적 용기는 자신의 믿음을 확고히 지켰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인권도 지켜냈다. 그들이 인류와 미래에 남겨준 것은 불후의 ‘도덕 기념비’가 아닐 수 없고, 이 일체는 1999년 4월 25일 베이징 청원 사건 당일부터 이미 남김없이 보여주었다!

이 글은 1만 명 파룬궁 수련생이 베이징에 청원 갔던 4.25사건 17주년에 바친다.

문장발표 : 2016년 4월 25일
문장분류 :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4/25/32710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