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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들의 기억력을 상실케 했는가?

글/ 랴오란(了然)

[밍후이왕] 수많은 파룬궁수련생은 중국공산당 악도의 고문과 약물 박해를 당할 때 흔히 기억력을 잃어버린다. 유형상에서 대체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한 가지는 고문 ‘아오잉(熬鷹: 수면박탈 고문)‘ 중 조성된 기억력 상실이고, 다른 한 가지는 약물을 통해 기억력을 상실하게 하는 것인데 상당히 보편적이다. 우리 구체적인 사례에 따라 탐구해 보자.

1. 아오잉+참혹한 매질이 기억력 상실을 초래

허베이성 제4감옥 5감시 구역에서는 2002년 2월 26일, 악경(惡警: 악독한 경찰)이 파룬궁수련생 류후이민(劉會民)을 면회실에 납치해 강제로 날마다 장시간 나무 의자에 앉힌 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장둥성(張東生), 정샹첸(鄭向前) 이 두 망나니를 시켜 돌아가며 세뇌를 시켰다. 목적을 이루지 못하자 두 사람은 악경을 동원하여 박해했다. 저녁에 네 악경은 류후이민을 위협 공갈하면서 강건책과 유화책을 동시에 썼지만 모두 그를 동요시킬 수 없었다. 그러자 류후이민을 무대 방송실에 가둬 넣고 ‘아오잉’ 고문과 구타를 가했으며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하고 물과 음식을 금지했다. 겨울에 솜옷을 입지 못하게 하고 바지에다 배설하게 하고는 바지를 씻어서 젖은 채로 입게 했다. 나무 의자를 뒤집어 의자 다리에 앉혔다. 잠을 자지 못하게 하고 졸면 마른 수건으로 눈알을 문질렀다. 악경 장중린과 죄수 왕두밍은 직접 류후이민을 때려 늑골을 부러뜨렸고 무릎으로 명치를 찔러 하마터면 죽일 뻔했는데 박해는 결국 그의 기억력을 상실시켰다.

3월 27일 이후에 와서야 그는 사유능력을 회복했다. 하지만 그 한 단락 기억은 계속 공백이었고 이후에 그를 지키던 죄수가 그에게 이런 진상을 알려주었다.

‘아오잉’ 고문을 당한 수련생의 말에 따르면 사람을 장시간 자지 못하면 머리가 흐리멍덩한 상태에 처하게 되며 심지어 온통 공백이 되는 데 그 사이에 겪은 일체를 아마 모두 기억하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류후이민처럼 아오잉을 당하는 동시에 잔혹한 구타를 당하면 사람의 의식은 텅 비게 된다. 그가 기억력을 상실한 사실이 이 점을 충분히 설명한다.

2. 약물박해가 기억력 상실 초래

파룬궁수련생이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은 일종의 정신 신앙이다. 그러나 중국공산당 악도는 오히려 그들을 정신병이라고 모욕하며 심지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서류에다 또 ‘필요시 약물개입을 할 수 있으며, 의료 방식과 임상시험 방침으로 과학적인 전향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고 써넣었다. 결국 이런 정책이 있기에 악도들에게 파룬궁수련생 박해 규정이 생긴 것이다.

(1) 감옥의 약물 박해로 기억력 상실

전 윈난성 광학측정기 공장(현재 북방 광학전자 유한회사로 개명) 퇴직 직원이며 쿤밍시 하이커우 문화촌 14단지에 사는 장징루(張靜如) 노인은 1944년도 생이다. 2008년 1월 8일. 그녀는 윈난성 제2여자감옥에 납치됐다. 감옥경찰 왕쿤거(王昆鴿)는 그녀가 확고한 신앙이 있어 전향되지 않는다며 그녀를 위협하면서 말했다. “전향하지 않으면 4년 후 당신은 정신이 희미해질 것이다!” 어떻게 그녀의 정신을 희미해지게 하는가? 원래 악도가 취한 것은 독약을 넣는 방식이었다. 그녀 밥에 몰래 독약을 넣었는데 그녀는 먹은 후 머리가 찌르는 듯 아팠고 반 시간 후에는 졸려서 눈을 들 수 없었으며 귓속도 아팠는데, 서서히 그녀는 기억력이 뚜렷이 저하되는 것을 느꼈다. 식욕이 없었고, 전신이 얼음같이 차가왔으며, 왼쪽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흘려내렸고, 눈빛이 흐리멍덩했으며, 잇몸에서 피가 났고, 전신이 무기력하고 체중은 감옥에 올 때의 54kg에서 42kg으로 줄었다. 이후 감옥에서는 그녀를 병보석으로 석방해 치료받게 했는데 병보석 ‘증명서’에는 오히려 파룬궁 수련을 하여 초래된 정신장애라고 모함했다.

지린성 눙안현 양수린향 파룬궁수련생 양수메이(楊淑梅)는 2011년 3월 2일 납치당했다. 이후 지린성 여자감옥에 압송돼 장기적으로 침대에 묶여 독극물 주사를 맞고 나무의자에 앉는 등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양수메이는 지금 예전에 알게 된 사람만을 기억할 수 있을 뿐 최근 일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점심에 그녀에게 아침에 무슨 밥과 반찬을 먹었느냐고 물으면 그녀는 기억하지 못한다. 사유도 혼란이 나타났고 말할 때도 발음이 분명하지 않고 아주 느리다. 가족과 한담할 때면 한 가지 문제를 반복해서 물어보고 또 물어보지만 결국 잊어버린다. 또 다른 사람에게 반복적으로 그녀에게 인상 깊었던 일을 반복해서 말한다. 누가 그녀에게 이 3년간 누구를 알게 됐냐고 물었으나 그녀는 기억하지 못했다. 유일하게 인상 깊은 것이란 그녀가 감옥에서 장시간 침대에 묶여 독극물 주사를 맞은 일이다.

산둥성 라이양시 퇀왕진 싼칭촌의 한 보통 농가에서 태어난 류쯔민(柳志梅)은 17살에 ‘산둥성 제일’의 성적으로 칭화대학 화학 공정계에서 추천을 받아 공부하게 됐다. 그러나 그녀는 파룬궁 수련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12년 불법 형기를 선고받고 산둥성 여자감옥에 수감됐다. 2008년 11월 13일, 류쯔메이 부친이 그녀를 감옥에서 마중했다. 기차에서 류즈메이는 부친에게 나오기 사흘 전에 신체검사를 했는데 검사결과 그녀 뒷 치아에 구멍이 나서 주사를 맞아야 한다면서 구멍 하나에 주사 한 대를 맞아야 하는데 한 대당 거의 6백 위안이 든다고 했으며 이후에는 무료라면서 돈을 받지 않고 주사를 맞았다고 했다.

그러나 집에 도착한 후 사흘 만에 루쯔메이는 갑자기 정신이상이 나타났고 게다가 갈수록 심해졌다. 그녀는 초조하고 불안해했으며 헛소리를 하고 춤을 추며 어깨는 달리는 자세를 하고는 끊임없이 오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온 밤 자지 않았고 어떤 때는 하루 겨우 두 시간만 잤다. 기억력을 빠르게 상실했고 두서없는 말을 했으며 날마다 6~7병의 보온병 물을 대량으로 마셨고 오줌을 싼 이불에서 자면서도 지각이 없었다. 루쯔메이의 치아에는 구멍이 없었다. 친구들은 모두 류쯔메이가 출옥하기 전에 맞은 독극물 주사로 발작이 초래된 것이라고 여겼다. 감옥에서 말한 ‘구멍’은 주사를 놓기 위한 구실에 불과할 뿐이었다.

(2) 노동교양소의 약물과 고문 박해로 초래된 기억력 상실

랴오닝성 다롄시 파룬궁 수련생 쑨윈(孫韞)은 공인회계사, 자산평가사 자격시험에 합격했다. 2008년 마싼자(馬三家) 노동교양소에 납치돼 노동교양 1년 반을 당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단식 항의를 했던 이유로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을 당했는데 음식물에는 대뇌 중추신경을 파괴하는 약물을 넣어 기억상실증이 나타났다. 머리가 저리고 감각이 무뎠으며 온종일 흐리멍덩하고 기억력이 쇠퇴하고 반응이 굼뜨며 또 어지러운 증상이 나타나 메스껍고 토했다. 이후에 노동교양소에서 나온 후 그녀는 이 죄악을 해외에 폭로했다.

2012년 6월, 쑨윈은 재차 마싼자 노동교양소에 불법 납치당해 노동교양을 당했다. 마싼자 악경은 약물로 자신을 박해한 것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순윈을 잔혹하게 박해했다. 악독한 경찰 장레이(張磊)는 전기봉으로 그녀의 손을 충격할 때 그녀가 피하는 것을 보고 그녀의 한 손을 침대에 묶어놓고 강제로 수를 세게 했다. 장레이는 또 그녀의 관자놀이, 이마 주위, 그리고 허벅지에 전기 충격을 가했다. 전기충격을 당할 때 몸의세포마다 바늘로 찌르는 듯 참을 수 없이 아팠고 심장은 손으로 움켜 잡은듯해서 거의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약을 주입했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을 본 장레이는 화가 치밀어 전기봉으로 그녀 입을 있는 힘껏 충격해 입술이 터져 피가 멈추지 않고 흘렀다. 악경은 순윈을 위협하면서 약물 박해를 당한 일을 말하지 못하게 했다.

2012년 10월 하순, 순윈은 더욱 잔혹한 박해를 당해 손발이 얼음처럼 차갑고 전신이 마비됐다. 온종일 흐리멍덩하고 늘 졸음이 왔으며 반응이 늦었고 기억력이 뚜렷이 저하됐다. 악경 장레이는 오히려 “파룬궁을 연마하더니 바보가 됐어. 공인회계사가 숫자 셀 줄도 몰라”라고 비웃었다.

(3) 구치소의 약물 박해로 초래된 기억력 상실

전 무단장(牡丹江)시 물자국 직원이며 무단장시 시성(西聖)가 시위원회 상무위원 아파트 1-502에 살았었고 지금은 미국에 있는 파룬궁수련생 위정제(于貞潔)는 여러 번 납치당해 시달림을 받았다. 그녀는 미국 뉴욕시 퀸즈 플러싱 공립도서관 분관 앞 기자회견에서 폭로했다. “수감 기간 그들은 전기봉으로 제 얼굴, 목, 몸을 모두 전기로 지졌고 음식물 주입을 강행할 때 제 이를 부러뜨렸습니다. 저를 장시간 옥상에 달아매 기절했고 이후에는 또 정체불명의 약물을 주입해 제 배와 허리가 해산할 때보다 더 아파서 기절했습니다. 의사가 제 눈을 뒤집을 때 저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는데 바보 같았습니다. 이후에야 저는 그들이 저에게 신경파괴 약물을 주입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4) 정신병원의 약물 박해로 초래된 기억력 상실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수련생에게 약물을 사용해 박해했으니 파룬궁수련생을 정신병원에 납치해 정신병자로 ‘치료’하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안후이성 허페이(合肥)시 강철그룹 회사 컴퓨터실 조작원 장위롄(張玉蓮)은 2001년 7월 허페이 여자노동교양소에 납치당했다. 들어간 지 며칠도 안 돼 6명 감옥경찰이 장위롄을 허페에시 제4인민병원 6구역(정신병원)에 압송했다. 당일 저녁 한 남성 의사가 그녀에게 주사한 대를 놓은 후 또 강제로 링거도 놓았다. 그런 후 그녀에게는 메스껍고 머리가 아픈 증상이 나타났고 지각을 잃었다. 깨어났을 때는 이미 며칠이 지났다. 그녀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이란 관자놀이에 전기 충격을 한 번 받고 코로 음식물을 한 번 주입 당하며 한 번 결박당한 것밖에 다른 것은 기억할 수 없었다. 한 달 반 후 노동교양소에서는 가족에게 그녀가 정신분열증에 걸렸다는 통지를 보냈다.

파룬궁수련생이 정신 병원에 납치돼 가서 박해를 받은 실례는 너무나 많다. 헤이룽장 쐉청시 눙펑 중학교 음악교사 푸야오(付堯)는 여러 번 납치됐다. 2004년 4월 24일, 푸야오가 한창 점심을 먹는데 갑자기 뛰어든 눙펑 파출소장 쉬환웨이, 눙펑 중학교 교장 푸싱민, 초중부 교장 가이준뱌오, 학교 보위과 간사 장바오후이, 체육조조장 푸즈청 등 사람에게 납치돼 하얼빈시 다오와이구 훙웨이로 217호에 있는 하얼빈시 제1 전문병원(정신병원)에 압송됐다. 병원에 이른 후 네 사람이 그를 억지로 침대에 묶어놓고는 약물로 그를 세뇌시킨다고 했다. 여의사 룽잉이 그에게 정체불명의 약물을 주사한 후 그는 지각을 잃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푸야오가 다시 깨어났을 때는 이전의 많은 기억을 상실했다. 푸야오는 정신병 환자로 되어 철문 철창으로 된 검은 방에 갇혔고, 날마다 성이 룽씨인 의사가 그에게 억지로 주사를 놓았고 약을 먹였다. 푸야오가 기억을 잃은 지는 장장 7년이나 됐다.

7년 후 푸야오가 서서히 기억을 회복한 후 그는 폭로했다. “저는 병원에 21일 있었고 날마다 강제로 주사를 맞았는데 약성이 제 체내에서 극히 큰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매 번 약성이 발작할 때면 저는 곧 머리가 어지럽고 눈에서 불꽃이 튀며 피거품을 토했고 불면하고 환각이 생겼으며 아예 휴식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태가 한 달 남짓 계속됐습니다. 저는 오늘까지도 그들이 저에게 쓴 약이 무슨 약인지 모릅니다.”

푸야오는 또 그가 알고 있는 세 명의 파룬궁수련생이 박해로 사망당한 상황도 폭로했는데 그 중 한 명은 그가 있는 학교의 역사 교사 왕진궈(王金國)였다. 왕진궈는 쐉청 제2구치소에서 박해로 두 신장이 극도로 쇠약해 졌다. 그 때 학교 주임 가이준뱌오는 교장 자오위안다의 지시 하에 왕진궈에게 치료를 해준다는 이유로 왕진궈를 병원으로 보냈다. 푸야오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들이 좋은 마음을 품지 않았음을 알고 친척 방문이라는 이유로 병원에 가서 조사했습니다. 과연 제 짐작처럼 왕진궈에게 주사한 약은 극히 시커먼 독약이었는데 그들은 검은 천으로 덮고서는 빛을 보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양진궈는 홀로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얼굴은 붓고 표정은 흐리멍덩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난 이 독약을 맞고 싶지 않아. 하지만 방법이 없어요. 나는 자유가 조금도 없어요. 그들이 나를 여기에 연금시킨 것은 나를 죽이려는 겁니다.’”

(5) 세뇌반의 약물 박해로 초래된 기억력 상실

간쑤성 란저우시 파룬궁수련생 둥슈란(董秀蘭)은 올해 68살이다. 2007년 7월 재차 납치돼 란저우 궁자완 세뇌반에서 2년 박해를 당했다. 2009년, 둥슈란은 고열이 나고 십여 일 기침이 나면서 머리가 어지러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세뇌반 악경 무쥔은 친훙샤에게 지시하여 생강탕을 달여 둥슈란에게 주면서 말했다. “따뜻할 때 마시면 곧 나아요.” 몽롱한 가운데 둥슈란은 마셨다. 당시 생강탕은 쓰고도 짜릿한 게 무슨 맛인지 알 수 없었고 먼저번에 마신 생강탕과는 맛이 달랐으며 눈앞이 새카맸고 구토했다. 둥슈란은 친훙샤와 다투기 시작했다. “나는 당신과 원수진 일도 없는데 왜 나를 해치려는 거죠?” 친훙샤가 말했다. “ 난 몰라요, 내가 한 일이 아니에요.” 평소에 둥슈란이 전향하지 않는다고 줄곧 욕설을 퍼붓던 무쥔이 이번에는 오히려 둥슈란 감방에 와서 히죽거리며 물었다. “누님, 생강탕을 마시니 기침이 나았죠!” 둥슈란이 그에게 반문했다. “당신들은 왜 나를 이렇게 박해하는 거죠?” 무쥔이 대답했다. “나는 호의로 당신 병을 치료하려 했는데요.” 말을 마치고는 즉각 가버렸다. 이후에 둥슈란은 집에 돌아온 후 눈이 흐릿하고 기억력을 상실했다.

역시 이 세뇌반이다. 란저우 파룬궁수련생 왕차이샤(汪彩霞), 웨푸링(岳普玲)은 2012년 5월 이곳에 납치돼 온 후 강제로 링거 주사를 맞았다. 왕차이샤는 괴로워 누울 수 없었고 손발이 말을 듣지 않았으며 마구 잡아 쥐었다. 세뇌반 경찰이 누르면서 영양액이라고 속였다. 줄곧 8일간 맞았는데 그때로부터 줄곧 기침하고 식사할 수 없었으며 손발이 열이 나고 온몸이 뜨겁다가 이후에는 또 차가워졌다. 바람이 두려웠고 땀이 그치지 않았으며 정신이 흐리멍덩했다. 집에 돌아온 후 머리가 어지럽고 늘 기억력이 상실되고 사유가 늦었다.

웨푸링도 당시 괴로워 미친것처럼 자신을 억제할 수 없었고 초조해 마구 자신을 꼬집었다. 7일째 이르러 웨빙링은 온몸이 떨렸고 뜨거웠다. 또 하루 지나자 모샹양(牟向陽)이 와서 무슨 반응이 있는지도 물었다. 정체불명의 링거를 맞은 후 웨푸링은 괴롭다 못해 자신의 정서를 통제할 수 없어 소리 내 통곡했고 사람을 보면 꼬집었으며 그치지 않고 울었고 현기증이 났다. 세뇌반 경찰 원징과 쿵칭잉이 달랬다. “얼른 ‘삼서(역주: 수련 포기각서 따위)’를 쓰면 집에 갈 수 있어요.”

웨푸링은 집에 돌아온 후 사유가 혼란하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한 달 후 이가 아프고 이에서 흘러나온 핏물에는 고약한 약 냄새가 났다. 5~6일 후에는 피가 흐르지 않고 약 냄새도 적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눈길이 흐릿하고 기억을 잊었으며 잠만 잤는데 한 번 잠이 들면 몇 시간이 돼도 깨어나지 못했다.

(6) 실종기간 약물 박해로 초래된 기억력 상실

2010년 6월 27일 아침 7시반 경, 산둥 웨이팡시 한팅구 허탄진 농민 왕싱궈(王興國)는 야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길에서 창이시 국보대대 및 두창 파출소에 납치당해 7~8일간 실종됐다. 6월 28일 오전, 가족들은 허탄 민정소에 와서 사람을 데려가라는 통지를 받았다. 그의 형이 민정소에서 왕싱궈를 데려왔는데 그는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했다. 눈길이 멍청하고 얼굴이 검푸르며 많이 말랐다. 그에게 무엇을 물어도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으며 창이시에서 일한 시기를 전부 기억하지 못했다. 잡히기 전에는 줄곧 아주 좋아서 얼굴이 희고도 불그스레하고 기억력도 아주 좋았는데 지금의 그는 생존 능력을 거의 잃다시피 했고 집을 나서면 집마저 찾지 못했다.

어느 날 왕싱궈가 갑자기 한 가지 일이 생각나서 말했다. “경찰이 제 눈을 막고 저에게 주사를 놓았어요.” 그의 머리를 보니 두 개의 주사 자국이 있었는데 붉은 색을 띠었고 아직도 아팠다. 그가 이창에서 잡힌 기간 악경에게 독극물 주사를 맞았다는 것이 분명했다.

(7) 소송기간 약물 박해로 초래된 기억력 상실

하얼빈시 둥리구 파룬궁수련생 장하이샤(張海霞)는 2014년 6월 18일 아침 7시가 넘어 납치됐다. 8월 24일, 샹팡구 법원은 하얼빈 제2구치소에서 장하이샤에게 재판을 했다. 개정할 때 장하이샤는 남에게 업혀 나왔고 몸은 몹시 허약했으나 정신을 또렷했다.

10월 10일, 판사 궈샹시가 샹팡구 리밍 법원에서 장하이샤에 대한 제2차 재판을 주도했다. 이번에 장하이샤는 아주 이상했는데 가족과 변호사를 알아보지 못했다. 12월 11일에 가서 왕위진 변호사가 장하이샤를 면회했을 때 장하이샤의 정신은 여전히 흐리멍덩한 채 여전히 변호사를 몰라봤다. 하지만 그녀 팔뚝에 분명히 주사자국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변호사는 장하이샤가 정체불명의 약물을 주입당해 기억력 상실, 정신이상이 초래됐다고 확신했다. 원래 80kg이던 체중이 말라서 50kg도 되지 않았다. 12월 23일 오전, 왕위진 변호사는 재차 장하이샤를 면회한 후 가족에게 묘사했다. “장하이샤의 지금 모습을 보면 몹시 걱정됩니다. 먼저보다 더 많이 말랐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저를 알아보지 못하고 눈길은 암담하고 빛이 없으며 조금도 생기가 없습니다.” 그녀는 왕 변호사에게 말했다. “저는 살인방화도 하지 않았는데 저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요?” 왕 변호사가 말했다. “판사가 당신을 보러 오면 당신이 겪은 일을 말하세요.” 장하이샤가 말했다. “좋아요, 전 당신 말을 듣겠어요. 저는 그들이 더는 저에게 주사를 놓지 말기 원해요. 그렇지 않다간 저는 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거예요.”

무엇 때문에 소송기간 파룬궁수련생에게 약물 박해를 감행하는가? 중국공산당 관리들이 두려워하는 것이란 바로 파룬궁수련생의 신앙에 대한 견지이다. 그들도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재판은 불법임을 알고 있으며 그들은 또 파룬궁수련생이 법정에서 법에 따라 자신을 변호함으로서 그들의 억울한 판결에 방해를 조성할까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정신약물로 박해를 가하는 것이다.

이러할 뿐만 아니라 중국공산당 악당은 또 흔히 파룬궁수련생을 변호하는 변호사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박해를 감행한다. 우리 아래의 이 사례를 보기로 하자.

2011년 4월 8~9일 어느 날, 파룬궁수련생 변호를 준비 중이던 베이징 인권변호사 진광훙(金光鴻)이 갑자기 납치당했다가 10여일 후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진광훙 자신마저 자신이 4월 8~9일 실종 당했음을 기억하지 못하고 단지 길에서 걸어가다 갑자기 사람에게 붙잡혀 구치소에 갇혔고 이후에는 정신 병원에 압송돼 강제로 주사를 맞고 약을 먹었으며, 잔혹한 구타와 음식물 주입을 당했다는 것만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부분적인 기억을 상실했고 실종 기간의 상황은 기억하지 못했다. 내막을 아는 사람이 밝힌데 따르면, 진광훙의 실종 기간에 관련 당국은 일부 조치를 취해 그에게 당시 기억에 문제가 나타나게 했다. 진광훙은 어느 부서 사람에게 잡혔으며 상대방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전부 기억할 수 없었다.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해 기억력을 상실하게 하는 것은 한 방면으로는 죄악을 덮어 감추려는데 있고 다른 한 방면으로는 책임을 떠밀기 위한 것이다.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해 정신병자로 만들고는 파룬궁을 연마해 그렇게 됐다고 모함하는 것이다. 그들을 박해하여 정신병자로 만드는 과정에 수련생들의 기억력 상실이 초래된다.

인위적으로 타인의 기억을 상실케 하는 것은 얼마나 악독한 혹형과 죄악인가! 중국공산당의 파룬궁수련생 박해는 전대미문의 참상이다!

문장발표: 2015년 1월 3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3/30263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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