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윈판
[밍후이왕] 최근 두 가지 소식이 국내외적으로 민중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나는 중공 정협 부주석 수룽(蘇榮)이 조사를 받고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공중앙상무위원 류윈산(劉雲山)이 해외에서 파룬궁(法輪功) 수련생들에게 포위당해 황급히 도주한 사건전말의 소식이다.
수룽이 조사받게 된 것에 대한 민간여론의 초점은, 그가 큰 호랑이 저우융캉(周永康)과 연관된 것 이외 또 다른 사건을 떠올리는데, 그가 몇 년 전 해외에서 소송에 휘말려 황망히 도주해 다니다가 귀국한 사건의 소식을 다시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2004년 11월, 간수(甘肅)성위서기를 역임했던 수룽이 우방궈(吳邦國)를 따라 아프리카의 잠비아를 방문했을 때의 사건이다. 11월 4일 파룬궁수련생들은 잠비아 고등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는데, 수룽이 파룬궁수련생들을 모살하고 혹형을 감행한 범행을 저지른 범인이라고 고발한 것이다. 당일 잠비아 고등법원은 피고 수룽에게 법원의 질의문건을 전달했고, 법원은 계속해서 5일 수룽에게 본국을 떠나지 말고 반드시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법정명령을 내렸으며,동시에 잠비아 출입관리국에 수룽의 출국을 금지시키라고 명령했다. 13일 잠비아 고등법원은, 규정된 기간 내에 수룽이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아 형법 제1항 법정 무시죄를범했다고 판단하여 수룽을 제소했다. 잠비아 사법당국은 긴급 체포령을 내려 검거에 나서면서 경찰관을 파견하여 수색을 단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룽은 출국금지처분을 받은 즉시 이미 숨어버렸다. 잠비아 경찰은 즉각 수룽의 수배령을 내려 체포에 만전을 기하면서 검거되는 대로 재판에 회부하려고 시도했다.
수룽은 잠비아 지형이 생소하고 언어의 소통도 안 되는 처지라, 잠비아 경찰의 수배령이 내려지자 중공대사관의 은밀한 협조를 받아 황급히 잠적했으며, 10여 일 숨어 다니다가 인근 짐바브웨로 밀입국한 다음 다시 남아프리카로 잠적했다가, 11월 15일 밤 겨우 항공편으로 중국에 돌아갔다.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초기, 지린(吉林)성위 부서기로 있던 수룽은, ‘성위 파룬궁문제처리 영도소조장’이란 직책으로 지린성내의 파룬궁 박해행위를 주재했다. 수룽의 파룬궁에 대한 태도는 매우 분명한바, 파룬궁수련생들을 (직장에서) 해고시키고 세뇌시켰으며, 체포하고 혹형을 가하는 등등의 죄악을 지휘하고 또 직접 참여했다. 그가 한 발언 중에 “투쟁의 형식은 여전히 복잡하다. 이번 보고는 아주 필요한 것으로 대단히 시의적절하다. 지린성은 이번 이 기회에 전력을 다해 교육하고 전화시키는 사업을 잘 해야 한다.”고 말했고 “파룬궁을 섬멸하라!”, “파룬궁과의 투쟁에서 전면적인 승리를 거두자!”고 강조했다. 그는 이처럼 장쩌민을 바짝 따라 파룬궁을 박해했으므로 쉽게 승진하여 직위도 높게 올라갔다. 그는 칭하이(青海)성위서기를 역임하다가 다시 깐수와 장시로 전근되어 성위서기를 역임했으며, 급기야 2013년 전국정치협상위원회 부주석으로 승진했다.
수룽은 해외에서 소송을 당해 궁지에 몰려 도망을 다녔으면서도, 그는 귀국해서 (반성도 없이) 여전히 파룬궁박해를 중단하지 않았다. 물론 수룽의 입장에서 말하면, 중국으로 돌아오면 만사대길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는 중국에서 지난날의 죄악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파룬궁박해에 전력을 다한 공로로 파룬궁박해 원흉인 장쩌민과 저우융캉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그가 제일 안전하다고 느낀 중국에서 죄수가 될 줄은 아마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수룽이 조사받는다는 소식이 보도됐으나, 그의 죄행과 죄목은 보도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장과 저우와 한통속이 되어 나쁜 짓을 한 것은 안다. 그가 저지른 죄악 중 파룬궁을 박해한 중죄가 가장 주된 부분인 것이다. 이 사건을 법률적인 각도에서 본다면 이는 마땅하고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 측면에서 볼 때 중국인들이 늘 말하는 “죄지은 자는 결코 법망을 벗어나지 못한다.”라는 하늘의 법칙에 부합된 것이다. 수룽이파룬궁을 박해하면서, 처음엔 외국의 법률제재만을 의식하게 되어 마치 법률제재를 벗어난 것 같았지만, 실질적으로는 그가 천법(天法)의 징벌을 면하지 못하였고 다만 방식이 바뀌었을 뿐이다. 중국인들은 “선악에는 보응이 있고, 단지 시간이 안 되었을 뿐이다. 때가 되면 전부 갚게 된다.”고 한 것으로 볼 때, 이것은 완전히 (하늘의) 보응에 부합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현재 죄수가 된 보시라아와 저우융캉 같은 자들의 말로는 모두 유사하다. 이 악인들도 해외순방 시 이미 그런 소송을 당했으며, 파룬궁수련생들의 비난 항의 속에서 몰래 도망쳐 왔던 자들이다. 물론 아직 보응을 받지 않은 중공의 고위층 간부들도 있지만, 그들도 언제 감금될지 모르는 처지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들도 저우유캉, 보시라이, 수룽 등처럼 해외에서 파룬궁수련생들이 항의하는 모습을 보기만 하면 놀라서 도처로 숨어 다닌다. 중공중앙상무위원 류윈산(劉雲山)의 현재 처지가 이 점을 잘 증명하고 있다.
류윈산은, 2014년 6월 12일부터 15일까지 핀란드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는 12일 아침 핀란드 총리실 빌딩 앞에서 파룬궁수련생들을 만났다. 파룬궁수련생들은 류윈산의 사진과 “류윈산을 법에 의해 처벌하라”, “파룬궁박해를 중지하라”, “파룬궁수련생 생체장기적출을 중지하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들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본 류윈산은 총리실 빌딩 후문으로 빠져나갔다.
그러나 그가 국회의사당에서 정부요원들을 만날 때 더 장엄한 항의 장면에 부딪쳤다. 류윈산은 자신의 범죄행위를 폭로한 몇 십 개의 보도판과 현수막 앞에서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 더욱 놀라운 일은 파룬궁박해를 위해 온갖 유언비어를 날조하던 소위 중공의 선전부장이라는 자가 승용차에는 중공의 깃발도 달지 못한 채 뒷문으로 빠져나갔던 것이다. 류윈산은 며칠간을 가는 곳마다 파룬궁수련생들의 항의에 부딪혀 대부분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특히 마지막 날에는 성탄노인마을로 시찰을 갔을 때 파룬궁수련생들이 하나 뿐인 공항출구의 양국국기가 게양된 아래에 큰 현수막을 걸어놓고 류윈산에게 항의했다. 그러나 류윈산과 수행자들은 나오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류윈산은 파룬궁과 마주칠 것이 두려워 주인에게 부탁해서 막다른 골목길 문을 열고 도망친 것이다.
류윈산은 십여 년간 중공의 선전부장직을 담당했는데, 그의 거짓 선전 속에서 파룬궁수련생들이 16년 동안 중공의 탄압으로 수천 명이 학살당했으며, 수만 명이 생체장기적출을 당했고, 수십만 명이 납치되고 감금되어 수백만의가정이 파괴되는 참혹한 박해가 발생한 것이다. 핀란드 파룬따파학회장은 “이곳에서 항의하는 파룬궁수련생 할머니 중에는 스무 번씩이나 중공에 잡혔던 사람이 있는가하면, 아홉 차례 잡힌 분도 있습니다. 억울하게 십 년 형을선고받은 신혼의 아내가 있고, 아직까지 모친이 감옥에 감금당해 있는 외로운 자매들도 있습니다.” 류윈산이 주도한 파룬궁을 모함한 선전은 장쩌민 일당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과정 중에서 없어서는 안 될 윤활제 역할을 하였는데, 그런 악행은 이미 언어폭력으로 진화한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오늘날, 류윈산 등이 해외에서 포위를 당하고 결국 국내로 도주해 오는데, 그들이 일시적으로나마 안일하게 보낼 수 있는 것 같지만 장쩌민집단을 청산하는 그때는 저우융캉, 보시라이, 수룽 등이 도망가지 못한 것처럼도망갈 길이 없을 것이다!
문장발표 : 2014년 6월 17일
문장분류 : 시사평론>시사반영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6/17/2936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