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어우양페이(歐陽非)
[밍후이왕] 허베이성 서북부에 화이라이(懷來)현이 있는데 장자커우(張家口)시에 속하며, 베이징과는 120킬로 정도 떨어져 있는 중국의 포도주 고장이다.
2013년 11월 5일, 전 중공중앙(原中共中央) ‘610′ 사무실 주임이며 공안부 부부장인 리둥성(李東生)은 화이라현에 기어들어, 현위서기 궈잉(郭英)을 동반하고 투무(土木)진 얼타이즈(二台子) 촌으로 가서, 파룬궁(法輪功) 박해를 위한 진일보의 작태를 벌였다. 자신이 직접 지휘하여 배치하고 선전하며 (파룬궁) 박해를 강화하는 역량을 확대하였는데, 특히 전 방위로 인터넷 관리를 감행함으로써 (파룬궁수련자) 한 사람도 놓치지 말라고 소란을 피웠다.
리둥성은 이렇게 얼타이즈 촌에서 칼을 썩썩 갈면서 기회를 노렸으나, 마음은 틀림없이 뜨거운 가마 위의 개미와 같았을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리둥성의 활동뉴스는올해 8월 후부터 더는 활동상황이나 무슨 조짐도 보이지 않았는데, 저우융캉이 잡혔다는 소문을 둘러싸고 인터넷에서는 진작부터 리둥성이 모처로부터 조사받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과연 한 달 후인 12월 20일, 리둥성은 ‘엄중위기위법(嚴重違紀違法)’ 즉 엄중하게 법률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체포됐다.
리둥성이 낙마하기 전에 화이라이현을 기어든 것은, 틀림없이 우리에 갇힌 짐승의 최후 발악으로서, 자신의 공개적인 행동으로 여론을 호도하며 ‘요언’을 반격하겠다는 속셈이었을 것이다. 더욱이 자신의 보호도 어렵게 된 파룬궁 박해 두목 장쩌민 부류의 패거리들이 자신을 구해주기를 꿈꿨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얼타이 촌에서의 비열한 표현은 현지 뉴스에 보도된 외 여타 다른 매체에서는 아무런 보도가 없었다.
리둥성은 왜 화이라이현을 선택했을까? 구글을 통해 ‘밍후이왕’에서 화이라이현에 관한 문장을 검색하면, 2,290개의 목록이 뜨는데 대다수는 박해와 관련된 내용의 보도다. 그중에 화이라이현 베이싱바오(北辛堡)향 찬팡잉(蠶房營) 촌의 천윈촨(陳運川) 노인 일가에 대한 기록이 있다. 온 집안이 다 파룬궁을 수련했다가 중공으로부터 혹심한 박해를 당한 사건의 당사자 가족으로, 유엔 인권기관의 특별한 관심을 받고 있는 대상이다. 가족 6명 중 큰딸 천수란(陳淑蘭)만 살아남았다. 천윈촨 노인과 아내 왕롄룽(王連榮)은 여러 번 납치와 수감을 당하며 강제 세뇌, 판결, 혹형 등의 시달림을 당했는데 그 고문 박해로 이미 사망했다. 큰아들 천아이중(陳愛忠)은 30만 볼트의 고압 전기 몽둥이로 잔인하게 전기충격 고문을 당했고, 둘째 아들 천아이리(陳愛立)는 박해로 체중이 50여 근(30kg)에 불과해 그가 받은 잔혹한 고문 박해의 시달림은 이루다 말할 수가 없는 지경이다. 작은딸 천훙핑(陳洪平)은 지독한 구타를 당했을 뿐만 아니라 약명 불상의 주사를 강제로 맞기도 했다. 결국 이들 세 사람은 전후에 모두 고문박해로 사망했다. 큰딸 천수란(陳淑蘭)만 아직 생존해 있지만, 그녀는 7년 반의 중형을 선고받아 수형생활을 끝내고 출옥했으나 다시 또 납치당했다. 2013년 8월 8일 밍후이왕 보도로는, 그녀는 또 4년의 징역형이 선고됐는데, 요추 두 곳에 (박해로) 골절상을 입어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라고 했다.
리둥성은 최후에 생각한 것이 바로, 천윈촨 노인의 고향인 화이라이 현으로 가서 계속 파룬궁을 비방하는 것이었다. 과거의 공개된 공식 직함이나 호칭에서는 리둥성은 모두 ‘610사무실’ 주임이란 이 비밀 칭호가 없었다. 그러나 중기위 감찰부에서 리둥성을 조사하고 있다고 발표한 첫 번째 직함이 바로 ‘610′ 사무실 주임이었고, 리둥성이 파룬궁 박해의 주요 두목 중의 한 사람임을 명백하게 드러냈다. 악명 높은 ‘610′ 사무실은 1999년 6월 10일에 설립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인권말살의 망나니 장쩌민이 설립한 전문 파룬궁박해기구로 법률을 능가하는 조직인데, 나치의 게슈타포와 10년 동란 때의 ‘중앙문화혁명 소조’와 비슷한 것이다. ‘610’은 공, 검, 법, 사, 국안, 선전, 외사 등 근 20여 개 부서를 규합해 온 나라의 국력을 다 쏟아 부으며 파룬궁을 박해했다.
매체에서, 특히 텔레비전에서 비방 날조로 파룬궁을 타격하는 것이 가장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1999년 ‘610′ 사무실을 설립할 때부터 당시 중앙 텔레비전방송국 부국장이던 리둥성이 ‘610′ 사무실 부주임으로 발탁되고, 2009년 10월 ‘610′ 사무실 주임으로 승진했다. 중앙 ‘610′ 사무실의 첫 번째 두목은 왕마오린(王茂林 1999년 6~2001년 9월)이었고, 두 번째 두목이 류징(劉京-2001년 9월~2009년 10월)이었으며, 리둥성이 세 번째이다.
리둥성은 처음 텔레비전 방송국 기자로 시작해서 팀장, 부주임, 주임, 중앙CCTV 부국장에 이르기까지 거의 매 부서에서 다 근무했지만, 승진 길은 굼뜬 편이었다. 그러나 중앙CCTV 부국장이 된 후부터 승진이 빨라졌는데,2000년 방송텔레비전 총국의 부국장이 됐고, 얼마 안 되어 또 중공 중앙 선전부 부부장으로, 또 몇 년 안 되어 공안경력이 전혀 없는 그가 공안부 부국장(8명 부부장 중 순위가 두 번째)과 공안부 당위부서기를 겸임했고, 류징의 중앙 ‘610사무실’주임 직을 이어받았다(정부장급). 인터넷에서 누군가가, 리둥성의 벼슬변천이 이렇듯 대단한 것은, 엽관의 수작을 부린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하기도 했다. 사실 아니다. 리둥성이 1999년 후부터 벼슬로 승진을 하게 된 것은, 파룬궁을 비방하고 파룬궁을 박해한데로부터 시작 된 것이다.
리둥성이 중앙CCTV 부국장이 됐을 때(동시에 역시 ‘610′ 사무실 부주임), 그가 주도한 ‘초점방담’이 바로 파룬궁을 비방날조 한 최선봉이었다. 불완전한통계에 따르면, ‘초점방담’은 1999년 7월 21일부터 2005년까지 6년 반 동안도합 102집 반을 파룬궁 (비방)프로그램으로 제작 방송했다. 그중 1999년 7월 21일부터 8월 31일 사이 42일 동안에 모두 30집을 방송했는데, 그 시기의 ‘초점방담’은 모든 프로그램의 3/4을 차지했다.
(파룬궁) 비방날조를 주도한 리둥성은, 특히 매체기획자란 배역으로 장쩌민과 뤄간의 무리가 조작한 ‘천안문 거짓분신 자살사건’에 참여했다. ‘초점방담’의 분신자살 프로그램은 거대한 증오를 선동했지만, 사람의 계산은 하늘의 계산보다 못함으로써 결국 이 프로그램은 순전히 속임수라는 것이 폭로됐다. 중앙 CCTV의 현장 슬로모션 화면은, 사망한 류츈링이 사실은 사람이때린 물체에 의해 사망한 것임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불을 끌 때 류츈링 머리 부근에서 팔을 힘껏 휘두르는 장면이 나타났는데, 흉기를 쥔 손의 팔을 힘껏 휘둘러 류춘링의 머리를 격타하여 류춘링이 두 손을 치켜들고 갑자기 쓰러졌으며, 순간 류춘링 몸에서 빠르게 길쭉한 흉기 모양의 물건이 튕겨 올랐다. 동 거짓분신 자살사건 프로그램 화면에는 또 다른 왕진둥의 현장특집이 있는데, 그 전신의 옷이 다 불에 타서 너덜너덜했지만, 두 다리 사이에 끼운 휘발유를 담은 녹색의 페트병은 멀쩡한 채로 있었다. 바로 이렇듯 허점투성이속임수 프로그램의 진상을 중공이 봉쇄했기 때문에 놀랍게도 무수한 사람을 독해시킬 수 있었다.
리둥성은 바로 악독한 거짓말과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증오를 조작하고 살포 하여 한 때는 관운이 트였다. 하지만 하늘의 그물은 매우 크고 넓다, 응보를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지 않았을 뿐으로, 선악에 응보가 따른다는 천리에서 누구도 벗어나지 못한다.
리둥성이 화이라이현에 기어든 것은 당연히 화이라이의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심각한 박해와 관계가 있는 것이다. 필자도 리둥성을 친히 수행한 화이라이 현위서기 궈잉에 대해 무슨 내력이 있지 않나 해서 몹시 호기심이 갔다.그래서 살펴봤는데, 화이라이현 정부 사이트의 ‘지도자 정보’란에는 숱한 부서기의 명단 중에 이미 궈잉의 종적은 보이지 않았다. 궈잉에 관한 모든 매체보도도 12월 16일 이후부터는 중단됐는데, 바로 리둥성이 낙마하기 나흘 전이었다. 궈잉은 2013년 7월 29일 화라이현 위서기로 취임했기 때문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다. 필자는 화이라이 정부 사이트를 관리하는 서비스 담당 부서에 전화를 걸어 궈잉 서기에 관해 물었더니, 상대방이 말을 더듬거리며 모른다고 했다. 궈잉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분명하지만 리둥성과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알 길이 없다. 다만 ‘610’ 두목을 수행하고 얼타이즈 마을로 가서 파룬궁을 비방한 것이 사실이니, 궈잉에게 가져다준 것은 정확한 액운일 것이다.
필자는 이미 “노동교양소 제도가 폐지됐으니 ’610’은 얼마나 지탱할까?”란 제호의 문장을 쓴 적이 있는데, 노동교양소가 없어졌지만 ‘610’은 여전히 감옥, 세뇌반 등의 장소를 이용해 악한 짓을 한다고 말했다. ‘610’ 두목 리둥성이 낙마해 드디어 ‘610′ 사무실의 죄악이 물 위로 드러나게 되었다. 표면상으로 보건대는 중공의 내부권력투쟁인 것 같지만, 장쩌민 무리가 파룬궁을 박해해서 조성된 도덕의 붕괴, 법치후퇴, 인권악화 등으로 인한 사회동란의 우려가 되고 있기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임 지도자가 통치지위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장쩌민, 저우융캉 등의 부류들을 제거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그러나 그건 사람이 하고 있지만, 하늘이 보고 있으며, 이 일체의 배후는 천의가 시키는 것으로, 선악에는 응보가 따른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인간에서 체현되는 현상인 것이다. 탐관이 모두 파룬궁을 박해했다는 말은 아니지만,그러나 파룬궁을 적극적으로 박해하고 ‘진선인(眞善忍)’을 적대시한 중공 관원은 하나하나가 모두 틀림없이 도덕이 패괴된 탐관오리일 것이다. 죄악이 하늘에사무친 ‘610’은 지금 한 창 끝장으로 가고 있으니, 대 청산을 당할 때가 된 것이다.
파룬궁을 박해한 직접적인 실체 조직인 ‘610′ 사무실은 중앙으로부터 성, 시, 현, 향, 심지어 공안국, 학교와 공장, 광산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것의 지사와기구가 있다. 십여 년을 내려오면서 어떤 사람은 이를 일종 직업으로 삼았고, 오늘까지도 여전히 학교, 공장, 각종 직장에서 사악한 무슨 반X교 경시 선전, 반X교 서명(중공이야말로 진정한, 가장 큰 사이비교다)을 하고 있으며,‘610’요원은 아직도 파룬궁수련생을 불법적으로 심판하고, 세뇌반으로 납치 감금한다(늘 각종 ‘법제교육 센터’, ‘법제양성 센터‘로 포장). 여기에서 아직도 ’610‘을 위해 목숨을 팔고 있는 사람들에게 권고한다, “노동교양소 폐지, ’610‘ 두목 리둥성이 당한 악보를 중시하고, 천멸중공의 역사적 필연을 보아 내어, 낭떠러지에서 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살길을 남기라!”
‘610’ 두목 리둥성이 이미 낙마했는데 ‘610’은 얼마나 더 오래 지탱할 수 있을까?
문장발표 : 2013년 12월 29일문장분류 : 시사평론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2/2928483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