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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교양 제도 멸망, 흉수는 반드시 엄벌을 받아야

글/ 비명(飛鳴)

[밍후이왕] 12월28일, 중공 전국 인대 상무위원회의가 끝났다. ‘인대’란 이 고무도장은 노동교양(이하 노교로 약칭)을 폐지한다는 결정을 ‘정식통과’시켜 중공 장쩌민 무리에게 이용당해 파룬궁 수련생을 잔혹하게 박해하던 노교제도는 마침내 소멸됐다.

노동교양제도는 폐지되었지만 노교소에서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고 학살한 범죄를 저지른 옥경(감옥경찰)은 반드시 엄벌을 받아야 하고, 불법적인 범행을 지시한 각급 관원 역시 반드시 그 죄상을 조사받아야 하며, 이번 박해를 일으킨 원흉인 장쩌민, 저우융캉 무리는 반드시 법에 따라 처리되어야 한다.

밍후이왕은 지나간 14년 동안 줄곧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노교소 등 불법기구의 박해를 폭로하고, 노교소 범죄경찰 및 지시자의 폭행을 문서에 기록하는 데 힘썼는바, 더욱 많은 죄악이 계속하여 밍후이왕에 폭로될 것이라 믿는다. 중공 노교소의 죄악은 공산당이 멸망한다고 해서 함께 덮이지 않을 것이며, 못된 짓을 한 흉수는 노교제도가 멸망했다 하더라도 그 책임에서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중공이 노교제도를 폐지한 것은 그가 잘못을 깨닫고 바른길로 돌아왔기 때문인 것이 아니라, 대륙 파룬궁수련생이 노동교양소의 죄악을 끈질기게 밍후이왕에 폭로한 결과이고, 해외 수련생이 밍후이왕의 정보에 따라 끈질기게 전화를 하고 진상을 알려 악인을 진섭한 결과이며, 대륙 수련생이 박해 가운데서도 여전히 끈질기게 세인에게 사악을 폭로하고 진상을 똑바로 알린 결과이다. 또한 대륙 민중이 진상을 알게 된 후 용감히 나서서 서명으로 파룬궁 수련생을 성원한 결과이며, 국내외 각계 정의의 인사들이 지속적으로 그것의 부당함을 알리고 중공사당에게 압력을 가한 결과이다.

중공 노교제도 폐지는 장쩌민 일당의 흉수가 범죄를 멈췄다는 것과는 결코 같은 것이 아니다. 장쩌민 일당이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데 쓰고 있는 610 사무실 특무 계통은 여전히 법원을 조종하여 파룬궁 수련생을 불법 판결하고 있으며, 610은 각지에 사적으로 설립한 흑감옥을 통해 여전히 ‘법제교육’이란 간판을 내걸고 파룬궁 수련생을 납치하여 세뇌를 감행하고 있다. 밍후이왕은 예전과 다름없이 장쩌민 일당의 죄악을 폭로하고 있고, 대륙과 해외의 파룬궁수련생은 예전과 다름없이 진상을 알리고 반박해하며 흉수를 조사하고 있다. 이것은 장쩌민 등 원흉 및 각지의 공범자를 법에 따라 처리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른바 ‘노교’란 바로 ‘노동교양’인데, 이 단어는 중공이 쓰고 있는 대다수 단어와 마찬가지로 시비를 전도하는 깡패짓의 거짓말이다. 이 제도 하에서 중공은 그의 눈에 거슬리는 사람이면 누구든 수감할 수 있고 그들을 강박해 노예노동을 시키며 함부로 각종 학대와 학살을 감행할 수 있다.

중공의 노교제도는 소련에서 배워온 것으로 1957년에 시행됐다. 그해 중공은 ‘음모’를 꾸며 55만 명의 ‘우파분자’를 붙잡았다. 55만 명은 중공이 공인한 숫자로서 실제 인원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 이런 ‘우파분자’ 대다수는 교육을 받은 지식인으로서, 그들은 중공의 유인과 강박으로 중공에 대한 의견을 좀 제출했는데 이로 인해 우파로 몰리게 되었고 이후 노교소에 들어가거나 노교농장에 갇혀서 고역과 세뇌를 당했다. 많은 사람들은 20여 년이나 계속적으로 고난을 당해야 했다. 중공의 노교제도는 시작부터 중국 사회의 지식인들을 박해하는 데 이용되었다.

(파룬궁 박해가 시작됐던) 1999년에는 소련은 이미 해체되었고, 법제와 인권의 이념은 진작 인심에 깊이 자리잡았다. 하지만 중공의 노교제도는 더욱 가증스럽게 변하여, 당시(1999년)의 집권자였던 장쩌민은 중국사회에서 가장 선량한 한 무리 사람들인 파룬궁 수련자를 박해하는 데 사용했다. 이런 사람들은 단지 진선인 신앙을 견지했기 때문에, 단지 민중에게 파룬궁 진상을 전파했기 때문에, 단지 신앙과 언론의 기본 권리를 행사했기 때문에 장쩌민 집단에게 어떠한 법률적 절차도 거치지 않고 각지의 노교소로 납치당했다.

노교소에서 파룬궁수련생들은 극심한 노역노동을 강요당했는데 많은 노역노동은 유독한 환경에서 진행됐다. 노역의 여가시간에는 또 중공이 파룬궁을 비방하는 각종 거짓말을 주입당해야 했고 (자신의) 마음을 어기고 진선인 신앙을 포기한다는 태도를 표시하도록 강요당했는데 다시 말해서 이른바 ‘전향’이었다. ‘전향’을 거절한 파룬궁 수련생은 각종 혹형 등 시달림을 당했고 많은 사람들이 시달림으로 불구가 되거나 사망했다.

지나간 14년간 노교소는 파룬궁 박해에 광범위하게 이용됐는데, 피해를 입은 파룬궁수련생은 백여 만 명으로 추산된다, 많은 파룬궁 수련생은 반복적으로 노교를 당했고 어떤 사람은 심지어 5차례나 노교를 당했다.

노교소는 파룬궁 수련생을 잔인하게 박해함으로써 50여년 죄악의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그 중 장쩌민 집단의 혹사(驅使)와 교사(教唆)는 이 죄악의 주요 추진력이었다. 중공에는 법률을 능가하는 정법위라는 계통이 있었지만 장쩌민은 그래도 부족하다고 여겨 1999년 6월 10일 이른바 ‘610사무실’을 설립했다. 이 방대한 범죄계통은 중공 사당의 중앙으로부터 지방에 이르기까지 공안, 검찰원, 법원을 조종해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사주했는데 노교 박해를 포함해서이다.

중공 610은 각 노교소에 ‘전향율’을 내려 보내어, ‘전향율’을 완수하면 상여금을 주고 완수하지 못하면 벌금을 부과했다. 그리하여 노교소 경찰은 각종 잔혹한 혹형으로 파룬궁 수련생이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했다. 더구나 중공 노교소의 ‘사망지표’는 노교소 경찰이 마음대로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 학살하게 했다.

장쩌민 일당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전에 많은 노교소는 운영난을 겪어 문을 닫을 형편에 이르렀다. 그러나 파룬궁 박해 때문에 각지 노교소는 장쩌민 일당이 주는 대량의 자금에다 또 동시에 대량의 무임 노동력을 얻어 크게 횡재하게 됐다.

610과 노교소는 납세인의 돈을 무고한 공민을 박해하는 데 마구 써버렸는바 이는 모든 납세인에 대한 가해 행위이다. 하지만 610과 노교소의 중국 사회에 대한 가해 행위는 여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노교제도는 선량한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무고한 민중을 박해하는 데도 이용됐는데, 이를테면 각종 억울한 일로 탄원을 견지하고 있는 탄원인들이다. 610과 노교제도는 법제를 짓밟아 중국 사회를 공정함이 없게 만들었고, 중국 공민들이 빈부를 따질 것 없이 모두 인신 안전의 보장이 없게 만들었다.

박해당한 파룬궁수련생은 많은 수가 교원, 엔지니어, 의사, 자영업자 등등으로서 그들은 뇌물을 받지 않고 이익을 챙기지 않으며 성실하고 선량하다. 그러나 탐오 부패한 장쩌민 일당은 도리어 이처럼 좋은 사람을 노교소에 수감하고는 그들에게 ‘전향’을 강요하는데 전향이 되었는지의 기준은 전향한 사람이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사람을 욕하고 행위를 하느냐는 것이다. 이는 중국 사회도덕에 대한 가해행위로서 오늘날 중국의 환경이든 인심이든 모두 독소에 오염되고 침식당하게 하여 훼멸의 가장자리에 이르게 했다.

오늘 노동교양소는 이미 소멸했지만 노동교양 제도의 죄악은 반드시 청산돼야 하고, 노동교양 제도에 참여한 악경, 악인은 반드시 엄벌을 받아야 하며, 노동교양제도보다 더더욱 죄악적인 610 특무조직은 반드시 금지해야 한다. 현재 610 두목 저우융캉과 리둥성의 악보가 이미 시작됐고, 장쩌민 등 박해 원흉 및 그 610 졸개가 멸망할 날도 멀지 않았다. 파룬궁수련생은 세계 각지 어디에나 다 있다. 그들의 14년 반박해의 완강함은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한 흉악범이 이젠 도망할 길이 없게 했고, 정의의 법망과 천리의 응보는 모두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문장발표 : 2013년 12월 29일
문장분류 : 시사평론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2/29/28481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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