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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자신을 용서 못할 그 지경까지 가지 말자

글/ 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람 가운데 완벽한 사람은 없고, 황금 가운데 순금은 없다. 이 세상에서 누구든 잘못 말할 수 있고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아이가 나쁜 일을 한 후에 교육하면 가장 효과가 있고, 젊은이는 넘어진 후 반성하고 성장하며, 중년은 여러 번 좌절과 실패를 거치고 나면 사업의 출로와 방법을 찾게 되고, 노인은 역사를 회고하는 중에 후세 사람에게 경험과 교훈을 남겨준다. 사실 사람은 성현이 아닌데 어찌 잘못이 없겠는가? 잘못을 저질렀지만 고칠 수 있으면 고치는 것이 일반 사람의 처세 이념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어떤 일을 한 다음에는 도리어 해탈할 수 없고 심심한 자책을 버릴 수 없어 뼈저린 후회 속에 맴도는데 자신을 정신적으로 피곤하게 하고 몹시 고통스럽게 한다. 어떤 사람은 몇 십 년 동안이나 은영(阴影)속에서 배회하는데 이미 자승자박한 것이다. 그들은 도대체 무슨 짓을 했는가, 그들은 왜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가?

‘문화혁명’ 기간 한 차례 홍위병 무력 투쟁 중에 16살 왕지위(王冀豫)는 몽둥이를 휘둘러 대립파의 왕옌훙(王岩宏)을 죽였다. 이리하여 19살인 왕옌훙은 피못 속에서 세상을 떠나게 됐다. 이후 왕지위는 늘 밤에 깨어나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사람을 때려죽인 이 일을 어떻게 하겠는가?” 왕지위는 62살이 되어서야 자기 죄를 세상에 공포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젊었을 때 어떤 일은 아예 대수로워하지 않거나 혹은 자신에게 여러 가지 구실을 댔다. 50대 후에야 이런 저런 일을 발견하였고 밤이면 잠들 수 없었다. 악몽이라하기 보다는 양심상에서 남에게 미안하고 괴로운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그 해 동지에 종이돈을 태웠다. 나의 할머니, 나의 아버지에게 태울 땐 불이 잘 붙었지만 왕옌훙에게 태울 때엔 불이 붙지 않았다. 나는 조급해졌다. 난 당신에게 빚을 졌소, 나를 용서하지 마시오. 나를 미워하고 자신을 못살게 굴지 마시오.”라고 하자 갑자기 ‘불’이 확 붙었고 게다가 바람까지 불어와 한 순간에 타버렸다!”라고 했다.

공평한 마음으로 논한다면 그때 왕지위는 겨우 16살로서 아직은 철이 안든 어린이었다. ‘반란에는 도리가 있고 혁명에는 죄가 없다’는 선전으로 날마다 “당이 뭘 하라고 하면 뭘 한다‘는 고무 중에 소년인 그는 맹종을 미신하고 열광적으로 움직이면서 무력투쟁에 적극 참가해 의견이 다른 자를 타격했다. 하지만 운명은 그와 허황하고도 슬픈 농담을 했다. 중공의 혁명에 참가했지만 그에게 조금도 좋은 점을 가져다주지 않았고 도리어 악독하기 그지없는 폭도, 살인범으로 되게 했다. 그는 ”42년이 지나갔지만 갈수록 살인한 자책감을 짊어지게 된다.“고 했다.

반우파‘, ’문화혁명‘이 종결된 후, 대다수 사람은 그 시대의 그 악독한 자를 분분이 공소할 때, 바진(巴金-파금)노인이 우선 비난하고 적발한 사람이 도리어 그 자신이었다. ‘수상록(随想录)’에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자신의 연기(설령 부득이한 것이라 해도)에 대해 구역질이 나고 수치를 느낀다. 오늘 30년 전에 쓴 그런 말을 되돌아보면서 나는 여전히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고 또한 후세 사람들이 나를 용서해 줄 것을 바라지 않는다.” 실제로 파금은 당시 압력에 못이겨 자신을 보호하고자 마음을 어기고 펑쉐펑(冯雪锋)을 ‘당위에 자신을 놓았다’고 비평했고, 아이칭(艾青)을 ‘아래 위로 연계를 달았다’고 비평했다. 그때는 고비를 넘기기 위해 대다수 사람은 모두 바람부는 대로 태도표시를 했다. 일단 사태가 진정되자 그는 자기가 당년에 쓴 글을 다시 읽었을 때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백지에 쓴 검은 글은 영원히 지울 수 없으며 자손후대는 우리의 진정한 심판관이다. 도대체 무슨 착오를 저질러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가를 그들은 알고 있으며 그들은 우리를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어 파금은 시종 자기가 ‘남의 뒤를 따라 돌을 던진’ 수치스런 행위를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객관적으로 말하면 “그때는 사람이 세퍼트로 변해 주인의 명령에 따라 사람을 물었는데 진리는 이미 소멸되고 중국은 어둠 속에 매몰됐던 것이다(마오위스).” 그렇게 혼란한 시대에 파금은 적발 신고를 하지 않았고, 갖은 궁리를 다해 남을 해치지 않았으며 사람을 사선으로 내모는 악행은 더구나 하지 않았다. 그는 완전히 자신의 행위를 부득불, 어쩔 수 없는데다 밀어놓을 수 있었다. 사실상 죄악은 멍에였고 파금은 단지 “볼펜을 수술 칼로 삼아 아주 서툴게 한쪽 한 쪽씩 자신의 마음을 도려내” 38만자에 달하는 ‘수상록’을 탈고했던 것이다.

1999년 중공이 파룬궁 전체에 대한 박해를 발동해서부터 중화대지에는 또 다시 내부투쟁이 일어나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는 비극이 재연됐다. 중공은 온 국가 기계를 모조리 동원해 맨 손인 선량한 수련자를 박해하였는바, 특무를 이용해 미행하고, 경찰을 이용해 때리고 심지어 의사를 이용해 수련자를 해쳤다. 한 경찰은 수련생을 체포할 때 이렇게 말했다. “이건 나의 사업이다. 나는 집을 먹여 살려야 한다.” 한 경찰은 수련생을 구타할 때 소리쳤다. “공산당이 나에게 밥을 주니 나더러 누구를 때리라고 하면 누구를 때린다.” 어떤 경찰은 수련생을 학대할 때 “나는 보응이 두렵지 않다! 나는 너를 괴롭혀 죽게 하겠다.” 라고했다. 14년 동안 이런 비극이 날마다 일어났다. 세계가 문명으로 나아가는 오늘,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는 일이 중국에서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 참혹한 박해 중에 이미 4천여 명 수련자가 박해로 치사되었음이 실증됐다. 이건 전체 중국인민의 커다란 치욕과 비애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오늘의 우리는 청성하게 인식할 수 있다. 역차의 운동 중에서 폭행자와 학대받는 자는 마찬가지로 피해자다. 폭행자는 중공 장기판의 한 바둑알에 불과한 것으로 중공의 지배를 받을 뿐 최종에는 나쁜 짓을 한자가 자부해야 한다. 역사적 각도에서 본다면 어떠한 시기, 박해이던, 운동이 얼마나 어둡고 잔혹하든 결속되는 날이 어쨌든 있을 것이며, 진상이 밝혀지고 정치가 청명하고 법률이 공정한 때가 오면 모든 죄악은 모두 정의, 도덕, 양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사람은 착오를 범할 수 있지만 범죄는 범할 수 없다. 착오는 용서할 수 있지만 죄악은 용서할 수 없다. 살인방화하고 죄를 뒤집어씌우고, 함부로 고문하는 것은 바로 죄악이다. 죄악은 법률의 심판, 도덕의 질책을 벗어날 수도 있겠지만 영혼은 도리어 이때부터 안녕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직업이 무엇이든, 우리의 권력이 얼마나 크든 우리는 이지적이고 청성한 두뇌를 유지해야 하고 사악에 충성하는데 미신하지 말며, 폭행자에게 맹종하지 말고, 선량을 모함하지 말며, 더구나 사람을 때리거나 죽이지 말아야 한다. 진상을 알고 시비를 명백히 가리며, 도덕과 양심이 있고 행위 최저선이 있는 사람이 되며, 자신이 한 일체 행위가 시간의 검증을, 역사의 시련을 겪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래야만 자신의 영혼에게 안정된 집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늙어서 백발이 성성할 때가 되면 모두 자신에게 물을 것이다. 나는 무엇을 했는가? 나는 자신에게 미안하지 않는가? 그 무슨 허울 좋은 구실이든, 그 어떤 어쩔 수 없는 경우이든 맹종하지 말고 바람따라 나쁜 일을 하지 말라. 알아야 할 것은 남에게 살길을 마련해 주는 게 바로 자신에게 살길을 남겨주는 것이다. 나쁜 짓을 해 도망할 곳이 없는, 스스로 죽음의 길을 찾아가지 말라.

마음에 죄가 있으면 안녕을 얻지 못하기 마련인데 이는 인류 최저한도의 도덕수준이다. 남을 해치는 게 바로 자신을 해치는 것인데 이는 세간의 가장 근본적인 도덕 규율이니 절대로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그 지경까지 가지 말라.

문장발표 :2013년 10월 8일
문장분류 :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0/8/28090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