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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은 왜 마귀로 변할 수 있었는가

글/ 문선(文善)

[밍후이왕] 근일, 산시 린펀(山西臨汾)에서 어린이를 해친 악성 사건이 발생했는데, 여섯 살 남자애를 들판으로 꼬여다가 잔인하게 두 눈을 파갔다. 사이트에서 동통을 참을 수 없어 침대에서 몸부림치는 남자애의 영상을 본 사람들은 가슴을 도려내는 괴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더욱 사람을 질식케 한 것은 애가 부모에게 “왜 날이 아직도 밝지 않아요?”라는 물음이었다. 그는 아직 모르고 있다. 길고 긴 앞날의 생명 중에서 다시는 빛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사람을 분노하게 하는 이런 죄행은 도대체 어떤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인가? 보도에 따르면 범죄를 저지른 자는 중년 부인이라고 한다. 이 여인은 어린이를 데려가 나뭇가지로 눈알을 빼냈다. 흉수가 놀랍게도 여인이다! 그야말로 상상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다. 누군가 물었다. “여인의 천성적 선량과 모성애는 어디로 갔는가? 어찌 한 어린애에게 마수를 뻗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 어떠한 여인이기에 이렇듯 악독할 수 있단 말인가?

흉수를 아직 붙잡지 못했으므로 우리는 그녀가 도대체 어떤 마귀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녀는 비록 여인이지만 오히려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을 똑같이 하고 있는 한 무리 망나니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들은 중공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검은 소굴인 감옥, 노동교양소와 세뇌반에 숨어 있는, 중공의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소멸 정책의 충실한 집행자들이다. 그녀들은 흉악하고 잔인하며 죄악을 겹겹이 저질렀고 두 손에는 선량한 자의 선혈을 가득 묻혔다.

산둥 자오위안(山東招遠)시 링룽(玲瓏) 세뇌반 첫 번째 두목 숭수친(宋書琴)이 바로 그중의 한 사람이다. 그녀는 사악하고 잔인했으며, 사람을 때릴 때면 히스테리가 발동해 악귀보다 더 사나웠다. 2001년 여름 어느 날, 숭수친은 7, 8명 악도를 시켜 몽둥이로 파룬궁 수련생 두 명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구타하여 온몸에 퍼런 멍이 들게 했다. 다른 악도들은 지쳐서 때리지 못했지만 숭수친은 때릴수록 재미나 하이힐을 벗어들고 뾰족구두 굽으로 그중 한 수련생의 얼굴을 마구 때려 얼굴이 퍼렇게 붓고 귀에서 피가 흘렀으며 입이 부어서 벌릴 수도 없게 됐다.

그 후 이 수련생은 오랫동안 음식을 먹을 수 없었는데 숭수친은 도리어 악인을 시켜 코에 관을 꽂고 음식물을 주입하며 그녀를 괴롭혔다. 코에 관을 꽂을 때마다 피가 줄줄 흘렀다. 이어 그녀를 강박하여 6일 밤 6일 낮을 벽을 마주하여 서 있게 했고 눈을 감기만 하면 때렸다. 그녀가 그래도 ‘전향’하지 않는 것을 보고 숭수친은 또 하이힐로 그녀 얼굴을 마구 후려쳤다. 그 수련생은 맞아서 구토했고 입에서는 피가 흘렀다. 숭수친은 물을 가져오라 호령하고는 입의 피와 구토물을 함께 삼키라고 협박했다. 이어서 또 그녀에게 수갑과 족쇄를 채워 호랑이 의자에 10여 일 묶어 놓고 그것도 모자라 고의적으로 모기를 풀어놓아 물게 했다.

숭수친으로 말하면 사람을 때리고, 때려서 불구로 만들며, 고문으로 괴롭히고 심지어 독주사를 놓는 것을 밥 먹듯이 한다. 많은 사람이 그녀에게 맞아 그 자리에서 까무러쳤다. 숭수친이 세뇌반 두목으로 재직한 3년 동안에 그로부터 미친 듯이 시달림을 당한 사람이 수백 명이나 되는데 80세~90세의 노령이 있는가 하면 앳된 중학생도 있고 가장 어린 사람은 심지어 두 살이 채 안 된 어린애도 있었다.

쟈메이리(賈美麗)는 허난성 정저우 18리허(河南省鄭州十八裏河) 성(省) 여자노동 교양소 부소장인데 역시 살인하고도 눈 한번 끔벅이지 않는 악마이다. 그는 파룬궁수련생 박해에 아주 기를 쓰는, 흉악하고 잔인하며, 여러 명 파룬궁수련생을 고문으로 죽인 주요 범죄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녀가 늘 쓰는 수단은, 죽도록 때리고, 달아매고 전기충격하며, 호랑이 의자에 앉히는 등등 고문인데 가장 쉽게 사람을 죽게 하는 ‘약속의’(約束衣)를 포함해서이다. ‘약속의’는 원래 전문 정신병 환자에게 쓰는 것인데 도리어 파룬궁수련생 ‘전향’에 쓰이고 있다. 이 형벌을 당한 사람은 두 팔이 즉시 불구가 된다. 먼저는 어깨로부터 팔꿈치, 손목의 힘줄이 끊어지고 뼈가 부러지는데 고문 시간이 오래되면 어깨뼈가 끊어져 고통스럽게 죽는다.

2003년 4월 23일, 샹청(項城) 파룬궁수련생 순스메이가 ‘약속의’를 입고 철창에 하루낮 하루밤을 매달려 있었다. 풀어 내렸을 때는 사람이 이미 식어버렸다. 쟈메이리는 죄수 두 사람을 시켜 순스메이 시체를 메고 가 진찰받는 가상을 꾸며서 모살을 덮어 감추었다. 두 죄수는 이로써 3개월 감형 혜택을 받았다. 두 죄인이 석방될 때 그녀는 경고했다. 만약 ‘약속의’ 사건을 흘린다면 당신들의 가족마저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위의 두 가지 파룬궁 박해 실례를 통해 이 두 여인은 일반인과 달리 흉악하고 악독함을 보아낼 수 있으며 사람들이 그녀들을 여 마귀라고 부르는 것을 책할 수도 없다. 이는 파룬궁 박해에 가담한 수많은 여 마귀 중에서 무작위로 골라낸 두 가지 예일 뿐이다. 밍후이왕을 읽어 보면 그녀들과 마찬가지로 흉악하고 심지어 더욱 악독한 여자경찰들이 많고 많음을 발견할 수 있다. 중공의 거의 모든 검은 소굴마다 모두 이런 사람이 있으며, 많은 지방에서는 심지어 보편적으로 사악하다.

속담에 ‘사람은 본래 착하다.‘라고 했으며 더욱이 여인은 모성을 타고났으므로 마땅히 온화하고 선량한 상징으로 돼야 하지만 무엇이 이렇게 많은 여인을 본성을 잃어버리고 남자보다 더 잔악하고 심지어 인성을 죄다 잃게 하였는가? 그녀들의 경력이 우리에게 해답을 줄 수 있다.

일반인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잔인하고 악독하며 생명의 빚을진, 죄행이 심각한 여 마귀는 응분의 처벌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중공 당국의 장려와 승진 혜택을 받았다는 것이다. 숭수친은 중공에 공을 세워 상을 받았고 텔레비전에도 나왔으며, 모범으로 상부에 보고되어 승진했는바, 보통의 부녀 간부로부터 일거에 ‘610’ 부주임 직위로 승진했다. 또 자오위안(招遠)시 부녀연합회가 주최한 ‘자오위안시 10대 여걸’ 활동에서 20명 후보자 중의 한 사람이 됐다. 쟈메이리는 박해에서 공을 세워 대대장으로부터 노동교양소 부소장으로 발탁됐다. 또 랴오닝 마산자 여자노동교양소 소장 쑤징은 파룬궁박해에 있는 힘을 다해 중공에 ‘2등공’으로 기재되고 중공 사법부로부터 5만 위안(약 900만 원)의 상여금을 받았다. 후에 또 선양 루쉰 미술학원 직원 가오룽룽 살해에 참여해 ‘전국영웅모범 2등 상’을 받기도 했다. 못된 짓을 하고도 도리어 명예와 이익을 얻으니 그들이 이렇듯 범죄에 열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여인들의 못된 짓은 가증스럽기는 하지만 중공의 범죄를 장려하는 사악한 기제가 없었다면 그녀들은 적어도 삼가라도 좀 했을 것이고, 인생 중의 악의 일면이 극대로 확대되어 사람마다 혐오하는 십악불사(十惡不赦)한 악마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았듯이 중공은 그녀들을 사람으로부터 귀신으로 변하게 한 장본인이다.

일반 여인의 타락과 퇴폐도 중공과 관계있는가? 누구나 다 알다시피, 파룬궁 眞·善·忍에 대한 중공의 박해는 중국 사회도덕 시스템의 전면적인 붕괴를 초래했으므로 여인들도 난을 피하기는 당연히 어려운 것이다. 더구나 중공은 국가정권을 찬탈해서부터 의식적으로 중국 여인의 아름다운 품성을 훼멸했다. 중국 전통문화는 남자는 굳세고 여자는 부드러움을 중요시한다. 여인은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우며 시부모를 모시고 남편과 함께 자식을 가르치는 책임을 지고 있으며, 자식을 교육하고 도덕을 유지하며 정상적인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방면에서 대체할 수 없는 작용을 발휘하고 있다. 중공은 오히려 여인을 핍박하여 “단장을 즐기지 않고 무장을 즐기게”해, 여인들이 잔혹한 투쟁 중에서 여인의 특성을 잃어버리고 거칠고 난폭해지게 했다. 게다가 당문화(黨文化)의 주입과 역대로 이어져 온 정치운동의 촉매작용으로 인해 수십 년을 지나오면서 사람들은 드디어 여인이 더는 여인답지 않고 어떤 여인들은 남자보다 더 잔악함을 보게 됐다.

오늘, 악독한 여인이 검은 손을 아동에게 뻗칠 때, 한 무리 여 악마들이 선량한 서민을 잔혹하게 박해할 때, 우리는 그녀들 개인의 죄책을 꾸짖고 추궁할 뿐만 아니라 이 일체 죄악의 근원인 중공 사당을 청산해야 한다. 우리 동포의 생명이 더는 유린당하지 않기 위해서, 후대들이 더는 공포의 어둠 속에서 살지 않게 하려고 중공을 버리는 데 아직도 무슨 주저가 있을 수 있겠는가?

문장발표: 2013년 9월 1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9/1/27894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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