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중공의 돈과 명리로 지탱해 온 죄악의 마싼자

글/ 비우(飛宇)

[밍후이왕] 금년 4월 7일 저녁 ‘마싼자를 벗어나’라는 제목의 기사가 왕이, 텅쉰, 서우후, 신랑 등 사이트에 동시에 전재 보도되었다. 제목은 다소 차이가 있긴 했지만 내용은 차이가 없었다. 그 문장은 랴오닝 선양 마싼자 여자 노동교양소에서 청원인원을 박해한 죄악의 검은 내막을 폭로했다. 하지만 마싼자에서 박해당하고 있는 주체인 파룬궁(法輪功)의 조우(遭遇)에 대해서는 오히려 덮어 감추었다.

비록 그러하긴 했지만 마싼자의 흑막은 여전히 중국 민중의 치를 떨게 하였고 심지어 감히 믿지 못하겠다고 할 정도였다. “이것이 정말인가? 마싼자가 정말 이렇듯 암담하단 말인가? 마싼자 노동교양소의 경찰이 그래도 사람인가? 노동 교양소에서 어쩌면 이렇듯 악랄한 고문형구를 갖추어 놓았단 말인가? 경찰이 어찌하여 이런 잔혹한 행패를 부릴 수 있단 말인가?”

바로 중국 민중이 마싼자의 죄악에 대해 질책의 비난을 하고 있을 즈음, 마싼자의 죄악을 폭로한 또 한 편의 구술 기록 영화 ‘작은 귀신머리 위의 여인’이 5월 1일 전 세계 인터넷에서 방영되었다. 마싼자의 죄악은 또다시 세인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마싼자 여자 노동교양소의 죄악의 악명은 2000년에 이미 해외 매체를 통해 전 세계로 광범위하게 전파 보도되었다. 중공의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박해와 함께 마싼자 노동교양소의 추악한 악명은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죄악의 마싼자를, 파룬궁을 박해한 장 씨 정치깡패집단이, 오히려 각종 허울 좋은 포장으로 위장시켰다. 한 방면으로는 참혹한 고문을 하면서 다른 한 방면에서는 그것들에게 연이어 돈으로 싸 발라 지지 격려하며 각종 형태의 표창을 하였다. 중공의 음험함, 허위와 교활함은 마싼자 노동교양소에서 파룬궁 수련생을 해치는 죄악상이 아주 극단적으로 표현돼 나온 것이다.

‘마싼자를 벗어나’의 글 중에 “노동교양소의 건물은 2000년에 새로 지은 것인데, 보기에는 넓고도 밝다.”는 언급이 있지만 진실한 상황은 이러하다. 중공(중국공산당)이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불법 조직인 ‘610사무실’의 책임자 왕마오린(王茂林), 둥쥐파(董聚法) 등이 2000년 7월 초 마싼자 노동교양소를 방문 시찰했는데, 당시 그들은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한 잔혹한 죄악에 대해 대단한 칭찬과 격려를 하였으며 아울러 집권자 장쩌민에게 그런 박해 내용을 상세하게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장쩌민은 600만 위안의 인민폐를 마싼자 노동교양소에 지급하면서 ‘610’두목 류징(劉京)에게 “마싼자 노동교양소를 사상교육의 전화기지로 속히 건립하라!”고 명령했다. 그 공정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소요 예산이 1,000만 위안에 달하자 부족한 비용을 랴오닝에서 자부담하라고 조치했다. 이 밖에 1999년 파룬궁 박해가 시작되어서부터 성 내 각 지역에서 납치되어 마싼자 노동교양소로 불법 압송되었는데, 파룬궁 수련생 1인당 1만 위안씩 계산해서 현지 정부가 마싼자 노동교양소에 지급해주기로 결정했다. 1999년 10월부터 2004년 4월까지 그곳에 불법 감금된 파룬궁 수련생 총 인원은 4,000여 명에 달했다. 다시 말해서 파룬궁수련생 박해에 사용하도록 각급 지방정부가 마싼자에 지불한 비용만 해도 이미 4,000만 위안에 달한 것이다. 2004년 랴오닝 성의 한 사법청 고급 관원은, 마싼자 노동교양소의 근로복역(재교육) 해교대회(解敎大會) 공개석상에서 “파룬궁에 대처하기 위해 투입된 예산은 이미 한 차례 전쟁을 치르고도 남을 만큼의 비용이 들었다.”라고 언급했다. 그때는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지 5년이 되지 않은 때였고, 계속해서 지금까지 파룬궁이 박해를 받아온 지가 장장 1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 그렇다면 또 얼마나 많은 천문학적 숫자의 거대한 돈을 투입했겠는가!

마싼자 여자 노동교양소는 무엇 때문에 중공 중앙의 ‘610’으로부터 이렇듯 파격적인 후한 대우를 받는 것인가? 그것은 한 방면으로는 그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력을 다 해 파룬궁을 박해한 결과인 것이다. 당시 전국 각 지역의 노동교양소 중에서 불법으로 파룬궁 수련생을 감금하고 있는 숫자가 가장 많은 곳이었다. 당시만 해도 다른 지역 노동교양소에서는 파룬궁 수련생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결정하지 못한 채 관망하고 있을 때였는데, 마싼자 노동교양소는 이미 계통적으로 고문을 가하고 정신세뇌를 감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싼자가 이렇게 중공의 파룬궁 박해 정책과 일치하는 행태를 유지하고 발전시켰기 때문에 당연히 박해 원흉 장쩌민과 뤄간 등으로부터 주시받고 호감을 사게 되었으며 그러므로 중공 두목이 금전과 격려, 포상으로 장려하고 그를 지켜주고 지탱해 주었는데 바로 그런 것들이 주요한 원인으로 된 것이다.

두목 류징은 늘 중공 정법위 서기 뤄간과 함께 마싼자에 가서 파룬궁 박해 상황을 점검했다. 그는 일찍부터 직접 마싼자를 방문하여 그곳을 관리하는 경찰에게 강제로 파룬궁 수련생이 믿음을 버리도록 조치하라고 지시하였다. 마싼자 노동교양소는 류징의 지시에 따라 파룬궁 창시자를 모함하고 파룬궁을 비방하는 내용을 방송했다. 파룬궁의 믿음을 버리지 않은 수련생에 대해서는 온갖 혹독한 고문을 자행했다. 그러자 뤄간과 류징은 마싼자에서 파룬궁 수련생에게 가하는 고문의 잔악한 수법을 재빨리 전 랴오닝 성은 물론 전국 각 지역의 수용시설에서도 시행하고 추진하라고 시달하였다. 그러므로 랴오닝 성의 모든 구치소, 간수소, 노동교양소와 감옥에서는 보편적으로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야만적인 고문박해가 자행되고 강화되었던 것이다. 마싼자 여자 노동교양소의 사악한 악명은 이렇게 중공 두목의 지시와 집행자들의 무절제한 악행으로 이어지고 수립된 것이다.

“마싼자를 벗어나”의 글에서 ‘챠치(卡齊)’라는 고문 수법을 언급했는데 그것은 작은 의자에 앉히는 고문 방법인 것이다. 작은 의자에 앉게 하는 고문 수법은 문장에서 밝힌 것처럼 한두 시간씩만 앉아 있게 하는 그런 비 노동교양방법이 아니다. 어떤 파룬궁 수련생은 날마다 거의 20시간 이상씩 앉아 있게 핍박당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연속적으로 몇 달씩 앉아 있게도 했다. 마싼자는 파룬궁 수련자들에게 이런 고문의 효과가 좋았다는 경험을 들어 전국으로 보급하였다. 2005년 윈난 성 제2여자감옥은 전문 요원을 마싼자 노동교양소로 파견하여 파룬궁 수련생을 전화시키는 수단과 방법의 고문을 습득하도록 했는데, 그가 고문 교육을 받고 돌아간 후 감옥에서 사용한 고문이 바로 그 작은 의자에 앉히기였다. 겉보기에는 그래도 문명화한 것 같지만 참으로 사람을 아주 괴롭고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파룬궁 수련생을 강제로 작은 의자에 앉힐 때는 반드시 몸을 수직으로 곧추세워 유지하도록 하고는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혹심한 구타를 가했다. 나중에 엉덩이가 썩어서 피고름이 흐를 때까지 줄곧 그렇게 앉히는 것이다.

2000년 11월까지 중공중앙 610 사무실과 사법부의 내부 비밀 문건에 따르면 이미 전후로 25개 성과 시의 관계기관요원들이 31차례에 걸쳐 도합 연 500여 명이 마싼자 노동교양소를 참관과 시찰의 목적으로 다녀간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마싼자를 벗어나’에서 예를 든 죄악은 단지 마싼자 죄악 중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문장에서 언급한 청원했다는 이유로 두 번 납치되어 마싼자 노동교양소에 감금됐던 선양 테시 구 시민 까이펑쩐이 외부에 폭로할 때 말했다. “2008년 9월 9일 아니면, 10일 저녁 9시 반경 내가 화장실로 가는 길에 옥경(노동교양소 경찰관)이 두 명의 파룬궁 수련생에게 고문을 가하는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 옥경은 그녀들을 반 주검이 되도록 때렸는데 그때 그들의 비명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떨리게 했다. 6명의 남자 경찰과 대장이 장 씨라고 알려진 파룬궁 수련생을 때리고 고문할 때 면봉집게로 소변 보는 곳을 찌르고 또 다른 은밀한 곳을 찔러 그녀들이 대소변을 보지 못하게 하였다. 나중에는 결국 때려서 죽게 했다.”

“흰 장갑을 낀 6명의 남자가 시체를 들어 내 갔지만 이 사람들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다. 당시 노동교양소에 있던 우리 몇 명은 모두 그들이 사람을 들어내 가는 것을 보았다. 그중에는 마싼자 노동교양소 공안처장도 있었다.”

“우리는 옥경이 노동교양소 뒤편 건물 아래에 뭔가를 파묻는 걸 보았으며, 이튿날 그 장소에서 어제 그들이 파묻었던 피 묻은 옷을 다시 꺼내는 것을 보았는데, 그 옷은 노동교양소에 수감된 사람의 것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우리는 후에 검찰원에 이 사실을 신고하여 검찰관을 대동하고 현장에 가서 증거를 찾아내어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 했으나, 검찰관과 마싼자 측은 모두 이 사건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싼자의 이런 죄악은 오히려 중공으로부터 업적으로 여겨져 높이 평가받았다. 2001년 2월 26일 중선부, 중조부, 중앙 정법위, 공안부, 민정부, 인사부, 중앙 610사무실 등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연합으로 이른바 선진사적 보고회라는 걸 개최하였다. 이 대회에서 마싼자 노동교양소 여2소 소장 쑤징이 경과보고를 했는데 그녀는 물론 파룬궁 수련생을 고문 학대한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박해를 춘풍화우(春風化雨)한 형식으로 미화했다.

마싼자 노동교양소 여2소가 받은 사당의 포상에는 선양 시 여자 문명시범 초소, 전국 성 파룬궁 투쟁 선진단체, 38 붉은 기 단체, 전국 사법행정계통 교육 전향선진단체가 있고, 성사법청단체 2등공 등이었으며, 여2소장 쑤징이 개인적으로 받은 포상은 사법부 걸출교육능수, 성38홍기수, 성정법계통의 인민 만족경찰, 랴오닝 성 우수공무원상 등을 수상했다.

사실 어찌 마싼자 노동교양소의 죄악만이 돈과 명리로 유지되고 지탱한 것으로 그치겠는가. 파룬궁을 박해한 모든 감옥, 노동교양소 등등 어느 곳 어느 것인들 금전과 명리에 연계되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죄악이 그토록 활개칠 수 있었던 것은 중공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명리로 당도(黨徒)를 사주하여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치도록 하는 것은 중공악당의 명확한 특징이다.

문장발표 : 2013년 5월 26일
문장분류 : 시사평론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5/26/27447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