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당풍(唐風) 정리
[밍후이왕] 이익과 도덕은 어떤 경우에 확실히 한 가지를 선택하기 어렵다. 현대사회에서 이익을 취하려고 의(義)를 저버리며 심지어는 오직 이익만 탐내는 자가 수두룩하다. 하지만 사업가 입장에서 고려하면 기업은 이윤을 내는 것이 목적이다. 그럼 이 두 가지에서 마땅히 어떻게 선택해야 할 것인가? 우선 고금의 경영에서 본보기로 되는 이야기를 살펴보도록 하자.
인술(仁術)로 재물을 모은 명상인 백규(白圭)
백규, 이름은 단(丹)이며 전국시기 낙양의 저명한 상인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세상 밖의 고인인 귀곡자(鬼谷子)라고 한다. 백규는 전에 위(魏)나라 관리직에 있었고 그 후로 제나라, 진나라에 머물렀는데 저명한 경제 지략가, 재산 관리가였다. ‘한서(漢書)’에서는 그를 무역을 경영하고 공상업을 발전시키는 이론의 시조로 불렀다.
백규는 나라의 재산을 관리함에 있어서 큰 국면을 돌보는데 착안하면서 경영에서는 사소한 이익일지라도 포기하지 않았으며 음모를 꾸며 속이지 않았다. 그는 물류유통과 생산발전을 연계시켜 경영에서 재물이 생기게 하고 또 생산으로 하여금 발전할 수 있게 했다. 일부 상품이 누적되고 판매가 침체됐을 때 일부 악덕상인은 가격이 폭락되기를 기다려 대량으로 물품을 구입해 들였는데 백규는 다른 사람에 비해 늘 높은 가격으로 구매했다. 시장에 곡물이 부족할 때 악덕상인은 투기를 했으나 백규는 다른 사람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제때에 물품을 판매해 백성의 수요를 만족시켰다. 백규의 이런 경영방법은 자신에게 경영의 주도권을 얻게 했을 뿐만 아니라 풍부한 이윤도 획득하게 했다. 또 객관적으로 상품의 공급과 수요 및 가격을 조절할 수 있어 일정한 정도에서 백성, 수공업자들, 일반 소비자의 이익을 보호했다.
전국시기의 상업은 특히 권세가와 부호들을 대상으로 한 귀중품 매매가 이윤이 가장 높았다. 그러나 백규는 생활필수품을 선택해 경영했다. 대면한 것은 많은 청빈한 평민백성이었으며 이로써 백규는 이윤은 적으나 다량 판매할 수 있는 경영원칙을 받들어 상품 가격을 높이지 않고 상품 유통을 빠르게 하며 판매를 확대하는 방법으로 더욱 많은 이윤을 얻었다. 백규는 시기를 잘 파악하는 재간과 능력이 있었다. 그는 고대의 천문기년법과 오행 사상에 따라 천문학, 기상학(氣象學) 지식을 이용해 농업에서 흉년과 풍년 규율을 총결해내 이 규율에 따라 교역을 진행했다. 풍년에는 양식 가격을 저렴하게 거둬들였고 흉년에는 양식 가격이 오를 때 판매해 백성들이 흉년 시기를 근심 없이 지내도록 도왔다. 이렇게 백성들을 보살피는 동시에 재산은 배로 늘어났다. 백규는 자신의 이런 경영방법을 ‘인술(仁術)’이라 일컬었다.
상업의 도를 지킨 일본 기업의 아버지
일본기업의 아버지로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가장 일찍 유가사상을 참고해 경영관리를 한 상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33세에 정계에서 재계로 전이해 공자의 ‘논어(論語)’를 표준으로 할 것이라 뜻을 세우고 사업 활동에 종사했다. 일생동안 금융, 제지, 운수 등 5백 개 기업을 창설했고 일본 메이지, 다이쇼시기 실업계 지도자가 됐다. 88세에 그는 ‘논어와 주판’을 저술했는데 ‘논어’와 ‘주판’은 상생이지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충효인의(忠孝仁義)는 선행이며 높은 생산효율 역시 선행으로서 관건은 ‘견리사의(見利思義-이익 앞에서 의(義)를 생각해야 한다)’라고 여겼다. 만일 ‘이익에 초점을 두고 행한다면 원망이 많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정의를 기준으로 하는 처세자야말로 군자이며 이해득실을 기준으로 처세하는 사람은 소인배라고 여겼다.
자신의 경영원칙을 준수하기 위해 그는 투기에 절대 참여하지 않았다. 정부의 철도 채권으로 거대의 이윤을 획득할 수 있음을 알았을 때에도 자발적으로 큰돈을 벌 좋은 기회를 포기했다. 그는 만약 채권투기로 이윤을 얻는 단맛을 본다면 이후 쉽게 투기할 수 있는 불량한 습관이 형성될 수 있으며 결과는 아마 본전도 못 찾는 정황에 부딪치게 되어 파산될 가능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신용을 잃어 투자자에게 시끄러움을 줄 수 있다고 여겼다. 기업가는 군자여야지 소인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창업은 단지 이윤만 고려할 게 아니며 사회에 유익하지 않은 회사는 발전할 수 없다고 여겼다. 때문에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이윤을 두 번째 순위에 놓고 우선 고려한 것은 경영이 사회에 가져다줄 수 있는 효과와 가치였다.
‘의(義)’와 ‘이(利)’에 대한 변론
동서양에서 ‘의’와 ‘이’에 대한 변론은 현재까지도 영원한 과제인 것 같다. 도덕과 이익에서 어느 것이 우선이고 어느 것이 뒤인지, 어느 것이 무겁고 어느 것이 가벼운지, 또 양자는 모순의 대립 면인지, 아니면 병행할 수 있는 것으로 서로 위배되지 않는 통일체인지? 이익을 내고 손해를 피하려는 것은 사람의 속성이다. 현실적인 이익과 영원한 도덕에 모순이 발생할 때 어떻게 균형을 잡고 어느 것을 취해야 할 것인가?
유가 경전 ‘대학(大學)’에 이렇게 적혀있다. “도덕이 있어야 좋은 인재를 얻을 수 있고, 인재가 있어야 재물을 만들 수 있는 토양이 있으며, 재물을 만들 수 있는 토양이 있어야 재물이 자랄 수 있는 것이며 재물이 있어야 마음껏 나라와 백성을 위해 힘을 다할 수 있게 사용할 수 있다. 덕이 근본이요, 재물은 그 다음이로다.” 덕이 근본이고 재물이 그 다음이기 때문에 공자는 ‘이익 앞에서 의를 생각하라’, ‘의를 지키지 않은 부귀는 뜬 구름과 같다.’, ‘군자는 의를 알고, 소인배는 이익을 안다’라고 말했다. 때문에 유가사상의 영향을 깊이 받은 중국 전통 공상업에 종사하는 인사들은 모두 ‘군자도 재물을 좋아하지만, 도리를 지켜 그것을 얻는다’라는 경영원칙을 지키고 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은 이렇게 말했다. “경제가 미래로 발전할수록 이론으로 회귀할 것이 필요하다. 그 원인은 사람들이 아무리 어떻게 도덕의 구속력에서 벗어나려 해도 마침내는 경제활동 자체가 내재한 이론속성으로 인해 벗어날 수 없으며 도덕적 구속을 벗어난 행위는 헛된 것이 되기 때문이다.”
파룬따파(法輪大法)의 창시자 리훙쯔(李洪志) 선생은 재물에 대해 더욱 본질적으로 그의 ‘부이유덕(富而有德)’에서 논술했다. “군(君)·신(臣)·부(富)·귀(貴)는 모두 덕(德)에서 생기며, 덕이 없으면 얻지 못하고 덕을 잃으면 모든 것이 흩어져 없어진다. 고로 권력을 도모하고 재물을 얻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그 덕을 쌓아야 하며, 고생을 겪고 선을 행해야만 많은 덕을 쌓을 수 있다.”
이로 보아 근본으로 따지면 도덕은 마땅히 일체 활동의 종국적인 준칙이자 표준이며 경제활동의 본질은 이타(利他)의 선(善)을 행하는데 있으며 이로써 자신은 이익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타인을 위해 지불한 것이 클수록 얻게 되는 것은 마땅히 더욱 많은 것이며 선을 행한 게 두터울수록 얻는 이익도 더욱 풍부하게 된다. 도덕과 이익은 근본적으로 말하면 병행되는 것이며 위배되지 않는 통일체다. 때문에 옛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재물은 도(道)에서 생기니 상도를 지키라.” 뜻인즉 재물과 이익은 도덕에 어긋나지 않은 행위에서 비롯되며 마땅히 의로써 이익을 내야하고, 의와 이익은 상생해야 하며 정당한 방식으로 정당한 이익을 얻어야 한다.
기업도 선악(善惡)을 선택해야 한다
‘의’와 ‘이익’에 대한 변론에 비록 결론이 나 있어도 거액의 이윤이라는 유혹 앞에서는 기업마다, 사람마다 높이 멀리 볼 수 있는 혜안을 갖춰야 한다.
중공은 죄악을 덮어 감추기 위해 진상을 가릴 담벼락을 높이 쌓았으나 이것은 사람마다 악행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중국 네티즌은 3억을 초과했고 이렇게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을 두고 인터넷 기업의 거두(巨頭)인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사는 서로 다른 선택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자율’적인 길을 선택했으며 심지어는 중공과 협력해 악행을 벌였다. 그러나 구글은 ‘악을 행하지 않겠다’는 도덕적인 원칙하에 최종적으로 중국에서 퇴출하는 길을 선택했다.
이전에 자발적으로 나치와 합작했던 독일의 4대 상업은행의 하나였던 드레스덴 은행(Dresden Bank)은 도덕적인 의무를 감당하고 동일 업종 사람들을 각성시키기 위해 대량의 인력과 물력을 쏟아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죄행을 조사해 세상에 공포했다. 현임 드레스덴 은행 이사회 구성원인 울프 마일(Ulf Mile)은 침통한 표정으로 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 “은행의 구성원은 반드시 자신의 기업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진상을 접수해야 하는데 그것이 고통을 가져올지라도 말입니다.” 그는 이렇게 강조했다. “일체 비인간적인 행위는 모두 작은 한 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는 역사가 우리가 살고 있는 매일 반복되는 현실 생활에 대한 경고입니다.”
1999년 7월 장쩌민(江澤民)은 파룬궁을 탄압하기 시작했고 보시라이(薄熙來)는 승진을 위해 장쩌민 뒤를 따라 파룬궁 탄압에 힘을 다했다. 파룬궁 수련생에게서 생체 장기 적출하여 판매하고 그 시체마저 판매해 얻은 수익은 보시라이, 구카이라이, 저우융캉이 재물을 모은 경로이다. 독일 의사 군터 폰 하겐스(Gunther von Hagens)는 1999년 8월 정식으로 중국 다롄(大連)에 하겐스 시체가공공장을 설립했다. 그는 기자에게 공장을 다롄에 설립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매우 간단한데, 정부에서 지지하고 정부에서 혜택을 주고, 우수한 노동력과 저렴한 월급, 그리고 충족한 시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시체는 그들에게 몇 십억 달러의 고액의 이윤을 가져다주었으나 이는 아직 양심이 남아있는 중국인의 마음을 아프고도 깊게 찔렀다. 그 공포적인 인체의 신비 전시회 배후에는 얼마나 소름끼치는 죄악이 숨어 있었던가! 인류의 인륜도덕을 위배하고 경영하는 기업이 어찌 장원한 발전을 기할 수 있겠는가!
현실 생활 속에서 보면 도덕을 지키는 인의지사(仁義志士)는 손해를 보는 것 같고 ‘도덕을 양편에 놓고 이익을 가운데 놓은’ 사람은 오히려 늘 크게 횡재하는 것 같다. 사실 의와 이익의 관계는 나무뿌리와 나무 꼭대기와 같은 것으로 본말(本末)은 시간과 공간의 차이가 있다. 덕을 쌓는 것이 우선이고 이익을 얻음이 뒤이다. 식견이 짧은 사람은 늘 눈앞의 이익만 챙기고 장원한 이익을 홀시하게 된다. 도덕은 형체가 없으나 이익은 형체가 있기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않는다. 오직 성자만이 비로소 높고 깊은 법리를 통찰해낼 수 있다. “선행을 많이 하면 그 가문에 경사가 남으나, 그렇지 못한 가문에는 재앙이 깃든다”라는 말이 있다. 도덕을 지키며 선을 행한 사람은 그것이 아주 적은 것일지라도 이미 자신을 위해 풍성해질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한 것이나, 악에 종사해 부귀영화를 얻은 사람은 만일 반성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하찮은 일일지라도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
진정으로 인류에게 복을 가져다주고 자신과 직원 모두가 장구하게 복리를 누릴 수 있는 기업으로 되려면 ‘상도를 지켜야’한다. 그래야 재물의 길이 열릴 수 있으며 양심과 도덕을 확고히 지켜야 역사의 관건적인 시각에 선악에서 정확한 선택을 할 수 있다.
문장발표: 2012년 8월 23일
문장분류: 시사평론>世道人情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8/23/26190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