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역병’이라는 병은 무서운 단어이다. 역사상 역병이 발생했을 때엔 한 마을 한 마을씩 몽땅 죽었고 어떤 곳은 사람이 다 죽고 없었으며, 어떤 곳은 극소수 사람만이 살아남았다. 보통 거의 구할 수 있는 약이 없었다. 어떤 사람은 현대 의학이 매우 발달했다면서 백신을 제조하여 예방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의학전문가는 상당히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는데, 조류독감을 놓고 말할 때 만약 조류독감 병독에 변이가 발생했다면 이전의 백신은 그 작용을 잃을 것이라고 했다. 새로운 백신을 연구해 내려면 하나의 과정이 있어야 하므로 대 역병은 인류의 큰 재앙인 것이다.
대 재난에 대해 수많은 예언이 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팔방에 인적이 소멸되고 천산에 나는 새 없다.”고 하거나 “가난한 사람은 만에 하나 남고 부자는 만에 2, 3명 남는다.”고 말한다. 당신이 생각해 보라 그것이 어떤 형편인지를. 아무튼 역병은 많은 사람의 목숨을 잃게 할 것이다.
역병이 올 때면 당신이 얼마나 돈이 있든, 얼마나 큰 벼슬을 하든, 평소에 얼마나 자기 보양에 노력을 했든지 간에 얻을 때가 되면 역병은 찾아오는 것이다. 그럼 모면할 방법이 없단 말인가? 물론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역병을 모면하는 좋은 처방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리훙쯔(李洪志) 대사께서는 세인이 재난을 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그 분은 가사에서 지적하셨다. “구원 받는 자 필히 양지가 있으리니”(홍음3 -신이 나에게 진상을 전하라 하네) 이는 당신이 구원되려면, 역병이 당신 집에 찾아오지 못하게 하려면 반드시 “양지가 있어야” 한다고 세인에게 알려준 것이다. 이른바 양지란 바로 시비, 선악, 정사(正邪)를 분명히 가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양지가 있는 사람은 역병이 찾아오지 않을까? 양지가 있는 사람은 나날이 나빠지는 사회기풍을 따라가지 않을 것이다. 그는 나쁜 일을 하지 않고 늘 좋은 일만 할 것이며 그래서 그의 몸에는 얻은 덕이 많아질 것이고 역병, 병독 같은 것들은 그의 체내에 생존할 조건과 환경이 없다. 그래서 그의 몸에 오를 수 없는 것이다. 반대로 양지가 없는 사람은, 남의 장단에 춤을 추면서 나쁜 일을 많이 할 것인즉 그가 얻는 업력도 많아진다. 이런 흑색물질은 역병, 병독이 자생할 수 있는 환경에 적합하므로 역병, 병독은 곧 그의 몸에 오를 것이고 그럼 사람은 병을 얻게 된다.
현재 세인에게 양지가 있는지 없는지 하는 유일한 표준은 바로 파룬궁(法輪功)에 대한 태도이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사람은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몸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공산당이 나에게 월급을 주니 나는 그를 위해 일해야 한다. 무슨 시비요, 선악이요 하는 따위를 나는 그렇게 많이 상관할 수 없다. 위에서 나더러 뭘 하라면 나는 곧 무얼 하겠다.” 이런 사람은 그의 지도자가 자신의 손아귀에 넣어 아주 당장이라도 훌륭한 몽동이로 발탁해서 쓸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왕리쥔처럼 목숨 내걸고 보시라이를 위해 일해 준 덕택에 한 민경으로부터 부부급 고관으로 승진하였지만 그래도 어떻게 되었는가? 여전히 개인 이익 충돌 때문에 미 영사관으로 도피하지 않았는가? 마찬가지로 보시라이도 더욱 높게 오르기 위해 장쩌민을 바짝 따라붙어 파룬궁에 대해 피비린내 나는 탄압을 자행하였다. 그러나 마지막 끝까지 오르긴 했지만 역시 떨어지고 말지 않았는가. 분골쇄신이 되지 않았는가? 그들 왕리쥔, 보시라이 역시 현 체제에서 명성을 날리기를 바랐으나 시비, 선악을 가리지 못한 모든 사람의 필연적인 결과의 길로 떨어지지 않았는가?
친구여! 당신들 중의 어떤 사람은 파룬궁을 박해한 십여 년 중, 나쁜 말을 하고 나쁜 일을 하였다. 하지만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정법 중에서 나는 일체 중생의 지난 과오를 탓하지 않으며 오직 정법 중에서 중생들의 대법에 대한 태도만 볼 뿐이다.”(세간을 향해 파룬을 돌리노라) 파룬궁을 박해한 지 13년이 다 지났다. 오직 당신이 대 재난 전에 깨우칠 수 있고 진상을 요해하고 뉘우칠 수 있다면 그건 바로 양지가 아직 있는 것이다. 당신이 말하기를 그럼 큰 재난이 오기 전의 ‘그날’에 다시 보자고 한다면 실로 그날이 올 때면 누구도 당신에게 통지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한다, “파룬궁, 공산당은 모두 나와 관계없다. 나는 나대로 출근하고 나는 나대로 나의 장사를 하고 돈을 벌어 밥을 먹을 수 있으면 그만이다.” 또 어떤 사람은 어려서부터 ‘당’의 말을 들으며 자라 지금은 집도 있고 차도 있는데 조금만 말을 듣지 않으면 자신에게 시끄러움이 찾아올까 두려워한다. 그래서 파룬궁 전단지를 감히 보지 못하고 진상을 감히 듣지 못한다. 아래에 이야기 하나를 하겠다.
한 여기사가 있었는데 그녀는 장거리 버스를 운행하는 운전사다. 한번은 인적이 드문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 있는데 갑자기 세 명의 청년이 차를 세우라고 소리쳤다. 그러더니 여자 기사에게 함께 놀아보자고 하면서 노골적으로 희롱하기 시작했다. 이 때 차 안의 한 청년이 나서서 말렸으나 나머지 승객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청년 혼자서는 그들 세 청년을 말릴 힘이 안 되었다. 그 여자 운전사는 어쩔 수 없이 그 세 남자를 따라 하차하였다…. 여자 운전사는 세 남자와 함께 차로 돌아온 후, 그 말리던 청년에게 차에서 내리라고 요구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차를 움직이지 않겠다고 했다. 이 때 차 안의 모든 승객들은 그 청년보고 하차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청년은 짐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차가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어 벼랑 끝에 이르렀을 때 여자 운전사는 액셀러레이터를 맹렬하게 밟아 차를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게 하여 차에 타고 있던 사람은 한 사람도 살지 못하고 모두 죽었다.
이 일에서 나쁜 일을 한 세 사람은 응당 보응을 받은 것이지만 차 안의 다른 사람들은 나쁜 일을 하지 않았고 나쁜 일에 직접 참여하지도 않았으므로 법률에 따라 말한다면 죽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죽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은 용감하게 나서서 말린 정의감이 있는 그 남자였는데 바로 하차한 그 사람이었다. 우리 생각해 보자. 그 세 청년의 사악한 행태가 나타났을 때 그 청년 한 사람만 나서서 말릴 것이 아니라 7, 8명 혹은 더 많은 사람, 혹은 차 안의 모든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외쳤다면 그럼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었겠는가? 이렇게 했다면 이런 비극이 발생할 수 있었겠는가? 사실 차 안의 사람들은 모두 그 세 청년의 사악한 의도를 알고서도 침묵을 지켰는데 무엇 때문인가? 아마 어떤 사람은 ‘이 일은 나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 했거나 혹은 충돌이 생겨 자신이 상할까 두려웠을 것이며, 혹은 나쁜 사람이 후에 보복할까 두려웠을 것이다.
무슨 어려운 일에 부닥치면 눈앞의 이익만 고려하고 선악을 가리지 않으면서 방임하는데 그럼 그들에게 양지가 있는가? 바로 이런 사람에게 양지가 없음으로 하여 침묵을 지키며 그 세 악인에게 ‘당신들은 당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해라, 우리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이런 암묵적 정보를 전달한 것이다. 이건 그래 그들이 나쁜 일을 하는 것을 방임한 게 아닌가? 그들과 한 패거리로 된 게 아닌가? 그렇다면 이런 나쁜 일의 발생은 기타 사람과 직접 관계가 있는 게 아닌가? 사람이 일단 양지를 잃게 되면 사람이 될 자격을 잃게 된다. 사람이라면 반드시 양지가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동물로 될 것이 아닌가? 이렇게 보면 그 차 안의 여러 사람이 죽은 것 역시 정리 중에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그 남자는 양지가 있으므로 난을 피할 수 있음을 표명한 것이다. 이로 보아 선악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으며, 양지가 있는 사람이라야 선을 선택할 수 있음을 설명한다.
공산당은 1999년 파룬궁을 박해하였는데, 파룬궁과 공산당 가운데서 누가 옳고 누가 그르며, 누가 바르고 누가 사한가 하는 것에 대해, 당신은 이것이 당신과 무관하다고 여기면서 밥벌이 하는 것만 관심한다면, 당신은 선악을 가르지 못한 것이 아닌가? 당신은 이미 양지가 없는 것이다. 보건대 당신은 편안하게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어느 날인가 재난이 갑자기 들이 닥칠 때엔 목숨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인데 당신이 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앞의 이야기에서처럼 자신의 일시 평안을 위해 침묵을 지켰지만 위험은 그들을 향해 덮쳐온 것이 아닌가? 다만 자신이 모를 뿐이고 재난이 발생할 땐 후회할 사이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당의 말을 들으며 자랐다는 친구는 지금 집도 있고 차도 있어 생활이 좀 좋은데 이 역시 당신이 예전에 좋은 일을 하여 얻은 덕이다. 당신은 그걸 당의 말을 들어 얻은 것이라 여기는데 그건 정말 너무 틀린 생각이다. 실은 공산당이야 말로 당신들 생명을 훼멸하려 하고 당신들에게 선악을 가리지 못하고 정사를 가리지 못하게 하면서 그를 따라 ‘희생’하고, 그의 순장품이 되게 하려는 것인데 이건 슬픈 일이 아닌가? 당신들은 왜 자신의 양지를 되찾아 오지 않는가? 오직 재난이 당신 앞에 아직 실현되지 않기만 하면 되찾아 올 기회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아직도 구원될 기회가 있는 것이다.
2012년 전 세계 화인 신년만회에서 소프라노 펑밍이 부른 노래 가사에 “큰 재난은 이미 왔고 신도 왔다.”가 있다. 이는 세인에게 남겨 준 양지를 찾아올 시간이 아주 제한돼 있음을 설명한다. 만약 당신이 아직도 이전처럼 자신의 밥벌이만 생각하고, 홍마를 따라가겠다고 한다면 당신이 예전에 분투로 얻어온 명과 이가 한 순간에 훼손될 것인데 이는 우리가 보고자 하는 일이 아니다. 당신이 이제라도 ‘양지’를 찾아온다면 아직 늦지 않다.
큰 재난은 눈앞에 박두했고 구원될 기회는 오직 한 번뿐이다. 역병이 집으로 찾아올 수 있는지의 여부가 이 시각에 달렸다. 당신의 양지를 되찾아 올 수 있는지의 관건은 당신이 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진상을 요해하는데 있다. 진상은 희망이고 진상은 구도이다.
생명을 가지겠는가, 재부를 가지겠는가. 당신은 반드시 양지가 있는지 없는지 하는 고험을 겪어야 한다. 양지가 있는 사람은 아무것도 잃지 않을 것이다. 전국 3퇴 인원수(당, 단, 대 탈퇴)는 2012년 5월에 이르러 이미 1억 1천 6백만 명을 초과하였다. 그들은 아무 것도 잃지 않았고 도리어 복을 얻었으며(일이 순조롭고 신체가 건강하며 가정이 행복하다), 이제 곧 아름다운 미래를 얻게 될 것이다.
친구여! 역병은 두렵지 않지만 두려운 것은 자신의 양지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당신과 당신 가정에 모두 아름다운 미래가 있기를 충심으로 바란다.
문장발표 : 2012년 6월 1일
문장분류 : 시사평론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6/1/25833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