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인심의 거대한 변화

글/ 중옌

[밍후이왕] 5월 15일 밍후이왕의 보도에 따르면, 올 2월 말 허베이성 버터우시 푸진 저우둔촌(河北省泊頭市富鎮周屯村)의 파룬궁 수련생 왕샤오둥(王小東, 남 42세 대졸 교사)은 버터우시 공안국 국보대대의 불법 가택수색을 당해 재산이 몰수됐다. 공안은 왕샤오둥의 집에서 CD 상자를 발견하고, 7살 어린 자녀와 70세 노모를 집에 남겨둔 채 그를 체포했다. 이 사건은 마을 사람들의 공분을 불러 일으켰고, 가구당 대표 한 명씩, 3백 가구의 대표가 왕샤오둥의 석방요구 서명부에 연대서명했다.

3백 명이 연대서명한 석방요구서는 중공중앙정치국에까지 보고되었다. 이 서신은 중공상무위원회에 회람되었고, 많은 정치국상무위원들이 이 서신을 회람한 후 몹시 놀랬다고 한다.

그 후, 저우융캉이 우두머리로 있는 파룬궁 박해 전담기구인 정법위의 조직적인 반격이 시작됐다. 그들은 버터우시 푸진정부 직원들과 결탁해 요구서에 서명한 촌민들을 공갈협박하며 파룬궁 반대 성명서에 서명을 요구했다.

실제 발생된 이 사건은 하나의 축소판과 같다. 지난 13년간 진행된 파룬궁에 대한 중공의 박해 과정에서 모든 중국인은 각기 다른 배역을 연기해야 했다. 박해에도 신앙을 견지한 파룬궁수련생과 박해받는 파룬궁수련생을 보호하고 정의를 지지하는 평범한 시민들, 그리고 진상을 이해한 후 박해를 중단하고 정의를 선택한 관리가 있는가 하면 도의를 저버리고 박해를 확대시킨 장쩌민 깡패집단과 그 일당도 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진상을 이해한 후 각성한 민중의 진정한 민의가 무엇인지를 강렬히 느낄 수 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정의와 사악을 앞에 두고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의 기로에 직면해 있다. 박해 중지와 바른 믿음을 지지하고, 법에 따라 원흉을 처벌하는 것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자 중국 역사의 거대한 변화의 시작이다.

탄압 앞에서 중국 민중은 주동적으로 정의를 선택해야

3백 명 연대서명과 같은 사건이 중국에서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지난 해 파룬궁수련생 저우샹양(周向陽)의 고향인 허베이성 친황다오 창리현(河北省秦皇島昌黎縣)의 선량한 촌민 2천3백여 명이 연대서명으로 그를 지지했고, 당국이 저우샹양의 아내 리산산 마저 납치하자 5백여 촌민들이 연대서명으로 그녀의 석방을 요구했다.

지난 3월 17일,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아청구 법원은 파룬궁수련생 자오위안, 장바오성, 청바오잉을 불법판결했다. 변호사 5명이 파룬궁수련생 4명을 변호하며 그들의 무죄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들은 ‘우리는 파룬궁수련생들이 굽히지 않는 확고한 신앙으로 진리를 수호하고, 여러 해 동안 잔혹한 박해를 당하면서도 평화적이고 이성적으로 청원하며, 여전히 신앙을 견지하며 도덕과 양심을 지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목격했다. 우리는 파룬궁의 굴복하지 않는 정신에 감동을 받았다!’ 라고 변론했다.

밍후이왕의 보도에 따르면, 2010년 4월 랴오닝성 푸순시 칭웬현(遼寧省撫順市清原縣)의 376명의 촌민들이 둥룽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한 파룬궁수련생 쉬다웨이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연대서명했다. 정법위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중공 정법위 서기 저우융캉이 ‘서신 연대서명 사건’ 조사를 위해 직접 명령했다고 한다. 촌민들에게 서신 연대서명 주동자를 조사함과 더불어 더 이상 이 일에 참여하지 말라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2010년 12월 21일 헤이룽장성 푸진시 상제지향 중성촌(黑龍江省富錦市上街基鄉忠勝村)의 파룬궁수련생 왠위룽(袁玉龍)과 아들 왠서우장, 며느리 훙진펀 등 세 명이 공안에 불법 납치됐다. 촌 간부를 비롯한 95% 이상의 마을 촌민들이 납치된 세 명은 선량한 사람이라며 연대서명으로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해 중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파룬궁수련생이 납치당하자 마을 촌민 대부분이 정의를 위해 바른 말을 하며 연대서명에 날인한 것은 의(義)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파룬궁수련생의 인품을 인정한 것이기도 하다.

2009년 2월 랴오닝성 푸순에서 발생한 또 하나의 사건이 저우융캉과 뤄간 등 중공의 우두머리들을 떨게 했다. 랴오닝성 푸순시 칭웬현 잉커먼진에 살고 있는 파룬궁수련생 쉬다웨이는 8년간 감옥에서 갖가지 고문 등 박해를 받고 출옥한 후 13일 만에 병원에서 사망했다. 그의 나이 겨우 36세였다. 현지의 순박한 촌민들은 크게 분노하며 두 대의 차에 분승해 둥룽감옥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감옥 측으로부터 아무런 답변도 듣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섯 개 마을 촌민 376명이 감옥에서의 박해를 폭로하는 상소문에 연대서명했다.

2009년 6월 랴오닝성 다렌 좡허시 광밍산 파룬궁수련생 정더차이(鄭德才)가 현지 공안에 납치된 후, 이듬 해 3월 마을 80가구의 촌민들이 정더차이의 석방을 요구하며 연대서명했다. 그들은 연대서명의 방식을 통해 파룬궁에 대한 지지와 즉각적인 석방을 중공에 요구했다.

촌민 3백여 명이 무고하게 박해받은 파룬궁수련생을 지지한 것은 탄압에 맞선 민중들의 정의로운 선택이다. 맹자는 ‘부귀해져도 마음을 방탕하게 하지 않고, 빈천한 상황에도 의지가 변치 않으며, 위무에도 굴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사람을 대장부라고 이르는 것이다.(富貴不能淫,貧賤不能移,威武不能屈。此之大丈夫)’라고 말했다. 정의가 사악에 맞서 싸워 이긴 역사는 권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대장부들의 작품이다. 시냇물이 모여 강물을 이루 듯, 중국 민중의 이런 의거는 반드시 중국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중국의 거대한 변화는 민중의 각성에서 비롯된다

장쩌민 정치깡패집단의 13년에 걸친 파룬궁 박해가 중국사회에 끼친 악영향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법률과 인권에 대한 유린, 윤리와 도덕의 상실, 국민경제 파탄, 우수한 인재에 대한 박해 등등… 중공 혈채파는 국가와 모든 민족에게 엄중한 대가를 짊어지게 만들었다.

정의와 사악은 물과 불의 관계와 같다. 파룬궁수련생을 보호하기 위해 촌민 3백여 명이 연대서명한 사건은 사람들로 하여금 선과 악, 옳고 그름을 분명히 보게 만들었다. 이 의거에 감동받은 보다 많은 중국 민중은 끝끝내 선을 선택할 것이다. 이들이 중국을 신기원으로 선도할 것은 명확하다.

이 사건 역시 사악한 장쩌민 집단이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 이러한 의거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날, 그들에게는 치명적인 재난으로 될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이 한 때 풍파를 일으켰지만 결국 정의의 응징을 피할 수 없음을 그들 또한 잘 알고 있다. 박해에 참여한 사람들도 오직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해야 하며, 더불어 서둘러 파룬궁수련생에게 끼친 손해를 보완하는 길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렇지 않고 일단 기회를 잃게 될 경우, 그들에게는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 발생할 것이다.

박해를 발동한 장쩌민 집단의 우두머리들이 하나하나 권력의 중심에서 떨어짐에 따라 통제받던 언론과 웹사이트들도 진상에 점령되고 있다. 모든 중국 국민들은 곧 중국에서 발생할 역사적인 거대한 변화와 파룬궁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재빨리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드러난 진상 앞에서 보다 많은 중국 국민들이 정의를 선택하게 될 것이며, 역사의 거대한 변화는 진실로 당신 앞에 펼쳐지게 것이다.

문장발표 : 2012년 5월 26일
문장분류 : 시사평론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5/26/25807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