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용연(龍延)
[밍후이왕] 전 충칭(重慶)시 부시장이자 공안국장이었던 왕리쥔(王立軍)이 청두(成都)주재 미 영사관에 도망쳐 정치 피난을 요구한 이후 중공의 내부 투쟁이 전면적으로 촉발됐다. 현재 적극적으로 파룬궁 박해에 참여한 보시라이와 왕리쥔은 이미 보응을 받았다. 하지만 이 일은 아직 종결되지 않았다.
중공(중국공산당)이 국민의 알 권리를 박탈하고 소식을 봉쇄해 많은 중국 사람은 ‘충칭사건’을 잘 알지 못한다. 사람이 이 일을 대체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그 과정을 간단히 소개하려 한다.
1. 보시라이와 왕리쥔이 반목하게 된 원인에는 여러 설이 있다
보시라이의 심복인 왕리쥔은 도청광이다. 타흑(打黑-범죄 조직이나 행위를 타격)의 명의로 도청했을 뿐만 아니라 보시라이까지 도청해 그의 가족 비밀까지 대량 파악하고 있었다. ‘충칭사건’은 보시라이와 왕리쥔의 반목으로 일어난 것으로 보이지만 외부에서는 각종 설이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2012년 1월 28일, 왕리쥔이 보시라이에게 보고할 때 경찰이 조사하는 사건이 보시라이 가족에 미치게 되자 책임 경찰이 감히 조사를 계속하지 못하고 사직을 요구했다는 말을 하게 됐다. 보시라이는 이에 대해 진노했고 두 사람은 사이가 틀어졌다.
2) 왕리쥔은 공안국장으로서 보시라이의 아내 구카이라이(谷開來)가 영국인 사업가 닐 헤이우드의 암살 사건에 혐의가 있음을 발견하고 보시라이에게 보고했는데 그 자리에서 따귀를 맞았다. 2일 이내에 왕리쥔 조사팀에서는 11명이 체포되고 두 명이 맞아 죽었으며 한 명이 자살했다. 그 후 왕리쥔은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에 관한 자료를 여러 부 만들어 저우융캉이 그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면 함께 죽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해외 언론은 헤이우드가 살해된 원인을 폭로했다. ‘헤이우드는 구카이라이 불륜관계에 있었으며 보시라이가 재산을 비밀리에 옮긴 비밀을 알고 있었다.’
3) 중앙기율검사위원회(中紀委)가 왕리쥔과 면담하자 왕은 몹시 두려워하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기율검사위의 요구대로 보시라이의 자료를 수집하겠다고 약속했다. 베이징 고위층의 아무개가 이 일을 보시라이에게 알려주어 두 사람은 반목하게 됐다.
……
어쨌든 왕리쥔이 보시라이의 치명적인 비밀을 쥐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보시라이는 왕리쥔을 살해해 입을 막으려 했고 왕리쥔은 목숨을 지키려 했다. 이는 왕리쥔이 도망친 동기다. 해외 매스컴 소식통은 보시라이가 직접 명령을 내려 영국인 헤이우드를 살해하라고 했고 그의 비서 장샤오쥔(張曉軍)이 책임지고 실시했다고 한다. 보시라이는 또 다롄(大連)과 충칭에서 6명을 암살한 사건에도 책임이 있다.
2. ‘충칭사건’ 과정 소개
2월 1일, 보시라이와 왕리쥔의 ‘집안싸움’이 폭발했다. 보시라이는 왕리쥔의 충칭시 공안국장, 당위서기 직무를 해임하고 부시장 신분으로 공상, 기술감독, 과학교육, 문화위생 업무를 보라고 했다. 왕리쥔은 실권을 잃었다.
2월 2일, 충칭시 당국은 이 소식을 공개적으로 선포했다.
2월 2일 소식 선포 전, 보시라이는 왕리쥔의 기사, 요리사, 경호원, 비서를 비롯한 19명을 체포했는데 두 명은 구타로 사망하고 한 명은 자살했다. 왕리쥔의 일거일동은 보시라이의 감시 하에 있었다.
2월 3일, 언론 폭로에 따르면 왕리쥔은 이미 실명으로 중앙기율검사위원회에 보시라이 아내 구카이라이의 부패 문제를 적발했다. 해외로 재산을 이전시킨 것, 보시라이 아들 문제 등등이다. 해외 언론은 구카이라이가 미국, 영국 등지로 80억 위안의 자산을 이전했다고 보도했다.
왕리쥔은 보시라이가 마음이 독하고 수단이 악랄해 자신이 수시로 생명위험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왕리쥔은 보시라이가 윈난(雲南)으로 간 틈을 타 감시자의 눈을 속이고 2월 6일 저녁 여성으로 변장해 차를 몰고 청두로 도망쳐 미국 영사관으로 진입해 1일간 머물고 떠났다. 왕리쥔은 미국 영사관에서 정치 피난 신청서를 작성했다.
보시라이는 상황을 안 후 장갑차를 포함한 70여 대의 경찰차를 쓰촨성 청두로 몰고 가서 미국 영사관을 포위했다. 충칭시장 황치판(黃奇帆)이 직접 지휘하며 왕리쥔을 내놓으라고 했다.
2월 7일, 베이징 고위층의 개입으로(후진타오 직접 개입설) 황치판은 물러나고 왕리쥔은 베이징에서 온 사람[국안부 부부장 추진(邱進)]을 따라 베이징으로 갔다.
2월 7일, 기자 장웨이핑(姜維平)의 폭로에 따르면 왕리쥔이 미국 영사관으로 달아난 일이 폭로된 후 충칭시의 많은 경찰이 기뻐했다고 한다. 그들은 왕리쥔이 자신들을 몹시 괴롭혔으며 경찰 사이를 서로 신임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경찰과 국민 대립이 더욱 심각해졌는데 지금은 큰 짐을 던 듯 시원하다고 했다. 그들은 폭죽을 터뜨려 경축활동을 벌이려 계획했으나 보시라이가 명령을 내려 터뜨리지 못하게 했다. 그날 경축 주연이 열려 모두 샤브샤브를 먹으며 왕리쥔의 추문을 언급했는데 그와 젊은 여경 내연녀들과의 이야기도 포함됐다.
2월 8일, 충칭 관방에서는 왕리쥔이 휴가성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충칭 정부 측 웨이보(微博)는 “왕리쥔 부시장은 장기적인 과부하 업무로 정신이 긴장되고 신체가 불편해 지금 휴가식 치료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2월 9일, 빅토리아 눌런드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왕리쥔이 미국 영사관에 왔었고 ‘자진해서’ 떠났다고 발표했다.
2월 9일, 중공 외교부는 왕리쥔이 2월 6일 미국 총영사관에 진입해 하루를 체류하고 떠났다고 외부의 핍박에 못 이겨 시인했다.
2월 13일, 시진핑(習近平)은 5일간의 방미 여정을 시작했다. 중국 사무에 익숙한 미국 관료가 시진핑이 미국을 방문하는 민감한 시기에 왕리쥔이 미국 영사관에 폭로한 요점을 누설했다. 미국의 베테랑 언론인 빌 거츠는 미국 프리비컨 사이트에 장편 문장을 발표해 이 미국 관료의 말을 인용했는데 왕리쥔이 미국 측에 중공 고위층 부패 자료를 제공했다고 했다. 그중에는 충칭 시위서기 보시라이에 관한 자료, 정치국 상무위원 저우융캉, 보시라이와 같은 이런 강경파가 어떻게 정변을 통해 시진핑을 무너뜨리고 그가 순조롭게 정권을 이어받지 못하게 할 것인가에 연관된 자료도 있었다. 이후 시진핑은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보시라이를 파직시키는 관건적인 한 표를 던졌다.
그 후, 해외 언론은 왕리쥔이 미국에 제공한 자료 중 일부 내용을 잇달아 보도했다. (1) 보시라이가 파룬궁 수련생 생체 장기적출에 참여하도록 지시한 관련 증거(녹음, 비밀문서 등) 및 정법계통에서 하달한 파룬궁 및 반체제 인사에 대한 탄압문서 (2) 보시라이의 음성 녹음도 있었는데 그중에는 보시라이가 장쩌민을 ‘현대판 자희태후(서태후)’, 후진타오는 ‘한헌제(漢獻帝-한나라 마지막 황제)’, 시진핑은 ‘유아두’(劉阿斗-유비의 아들)라 불렀다. 보시라이는 자신이 장차 중국의 미래를 이끌 것이며 자신은 9명의 ‘무능한 지능장애자’가 아니며 그 아홉 상무위원이 선정한 새로운 ‘무능한 지능장애자‘자도 아니라고 허풍을 떨었다. (3)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이 정변을 계획해 시진핑이 순조롭게 권력을 이어받는 것을 제지함과 관련된 자료 등이다.
2월 28일, 충칭시장 황치판(黃奇帆)은 홍콩 펑황TV 기자의 특별 인터뷰를 받고 왕리쥔 사건을 시인했으며 미국 영사관을 포위한 경찰차는 모두 충칭이 아닌 ‘천(川-쓰촨)’자 패 차량번호라고 밝혔다. 하지만 펑황TV 방송에서는 3월 5일에 이 인터뷰가 삭제됐다. 황치판이 선수를 쳐 사건 경위를 밝힌 후 베이징을 협박해 충칭의 의도를 받아들이게 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2월에 중공 최고층은 두 차례 관련 회의를 열었는데(구체날짜 미상) 원자바오는 왕리쥔 사건은 현임 충칭시위원회의 과거 몇 년간 업무 중 발생한 ‘뚜렷한 문제’의 결과라고 여겼다. 또 중앙은 마땅히 충칭의 최근 사업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궈창(賀國强)과 리커창(李克強)은 원자바오의 의견에 기본상 동의했다. 그러나 저우융캉은 왕리쥔이 미국 영사관에 진입한 것은 단독 사건이므로 왕리쥔 때문에 최근 몇 년간 충칭에서의 보시라이가 취득한 성적을 부정할 수 없다고 했다. 리창춘(李長春)과 자칭린(賈慶林)은 기본상 저우융캉의 의견에 동의했다. 후진타오는 충칭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 침묵을 지켰고 우방궈(吳邦國)도 태도 표시가 없었다.
3월 2일, ‘양회’ 대변인 중 한 사람인 자오치정(趙啟正)은 말했다. “왕리쥔은 지금 관련 부서의 조사를 받고 있으며 휴가를 신청했으므로 회의에 나올 수 없다. 보시라이가 와서 회의하려 하니 때가 되면 여러분은 취재할 수 있다.”
3월 5일 양회 첫날, 경찰이 미국 영사관을 포위한 사건이 대해 충칭시장 황치판은 펑황TV 특별 인터뷰에서 공개적으로 말했다. “나는 차 한 대에 비서 한 명을 데리고 갔다.” “외부에서 그렇게 많은 경찰차가 있었다고 말하는데 그들 차량번호는 천경(川警-쓰촨 경찰)이고 쓰촨의 것이다.” 하지만 3월 7일 쓰촨 대표단은 “쓰촨성 공안청은 경찰력을 파견해 왕리쥔 사건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반격했다. 그럼 이 쓰촨 경찰은 누가 파견한 것인가? 분석가는 정법위서기 저우융캉이 직접 명령을 내려 쓰촨 경찰을 움직인 것으로서, 저우융캉이 관건적 시각에 제멋대로 경찰을 움직이고 월권했으므로 후진타오와 원자바오의 분노를 자아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3월 7일, 홍콩 영문 언론 ‘남화조보(南華早報)’는 중공 총서기 후진타오가 이미 며칠 전의 양회 고위층 회의에서 전 충칭시장 왕리쥔을 ‘당과 국가의 반역자’로 정했다고 쓰촨성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3월 8일, 보시라이는 인민대회 당일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고 저우융캉은 충칭대표단에 가서 공개적으로 보시라이를 지지했다.
3월 9일, ‘양회’의 충칭대표단 기자회견 일에 중공 충칭시위서기 보시라이가 처음으로 언론에 왕리쥔 사건을 정면으로 언급하면서, 왕리쥔이 도망쳐 ‘매우 의외이며’, ‘가슴 아픈 일’, ‘자신이 사람을 잘못 썼다.’고 했다. 보시라이는 “충칭의 이 타흑(打黑)은 실제로는 공안만의 노력이 절대 아니다. 공안, 검찰, 법원, 사법, 국가안전, 기율검사위까지 합한 여러 부서가 공동 노력한 결과이며, 정법위에서 조율한 것이지 왕리쥔 한 사람의 일이 아니다.”라고 발뺌했다. 보시라이는 기자에게 “우리는 후진타오 총서기가 충칭에 갈 것이라 믿고 가서 보고 나면 기뻐하실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러나 중공 언론은 보시라이의 이 말을 한마디도 보도하지 않았다. 보시라이의 말에는 후진타오를 핍박하는 뜻이 뚜렷하게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자신 뒤에는 중공중앙 정법위서기 저우융캉의 지지가 있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보시라이의 이 발언은 후진타오가 보시라이를 처리하도록 결심을 내리게 한 도화선으로 추정된다.
3월 13일, 중공중앙 정치국 상무위원 회의에서 시진핑은 충칭문제에 대한 중앙의 “전면적이고 실사구시한 조사”를 진행함에 찬성을 표시했다. 우방궈도 이를 지지한다는 태도를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저우융캉을 제외하고 기타 상무위원은 모두 보시라이 직무를 해임하는데 동의했다. 저우융캉은 정치국 상무위원 중에서 유일하게 보시라이를 보호한 사람이다.
2012년 양회 인민대회는 3월 14일 오전에 폐막됐고, 총리 원자바오는 기자회견을 세 시간가량이나 열어 역사상 가장 긴 기자회견 기록을 창조했다. 원자바오는 왕리쥔 문제를 대답할 때 왕리쥔 문제를 엄격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 충칭시위와 시 정부는 반드시 반성해야 하고 아울러 왕리쥔 사건에서 교훈을 섭취해야 한다.”라고 말해 충칭의 창홍타흑(唱紅打黑-혁명가요를 부르고 범죄단체를 타격함)은 ‘문화혁명의 여독’이라고 암시했다. 언론은 “이는 원자바오가 보시라이에 대한 ‘가장 호된’ 질책이며 동시에 보시라이 배후 조종자인 전 중공 총서기 장쩌민과 현임 중앙 정법위 서기 저우융캉에 공개적으로 도전한 것이다. 원자바오의 말은 중공 고위층이 공개적으로 분열됐음을 표명한다.”고 분석했다.
3월 14일 오후, 중공중앙 정치국은 조직생활 회의를 열었다. 홍콩 ‘동향(動向)’ 잡지는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 허궈창이 회의에서 보시라이를 겨냥하여 세 가지를 열거했다고 실었다. 1) 보시라이는 후진타오 총서기의 관련 지시를 여러 번 자기 홍보에 이용했다. 특히 총서기에게 충칭 방문을 요청해 놓고서는 총서기가 충칭을 시찰하려 한다고 왜곡하여 전했는데 그 동기와 목적은 무엇인가? 2) 보시라이는 회의에서 “감히 악귀와 높이를 다툴지언정, 패왕에게 한 치도 양보하지 않으리.”라고 했는데 이 논조가 타당한가? ‘악귀’ ‘패왕‘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3) 정치국 위원, 시위서기로서 왕리쥔이 벌인 엄중한 정치 사건과 그 때문에 조성된 열악한 영향에 대해 책임성이 없고 덮어 감추려 하고 있다. 심각한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3월 15일, 중공중앙은 보시라이에게 충칭시위 서기직에서 해임하며, 왕리쥔을 부시장 직무와 정치국 위원에서 해임하고, 국무원 부총리인 장더장(張德江)이 충칭 시위서기를 겸임한다고 결정했다. 보시라이는 양회가 끝난 후 충칭으로 돌아가지 않고 베이징에 억류당했다는 소식이 있다.
15일 같은 날, 충칭시위원회는 전 시 지도자 간부 대회를 열어 중공중앙의 주요 지도자 변경에 관한 결정을 전달했다. 충칭시장 황치판은 즉시 보시라이를 배반하고 “중앙의 왕리쥔 사건 처리를 결연히 옹호한다.”라고 표시했다. 해외 언론은 황치판이 중공중앙에 “보시라이가 자신이 총서기 된다면 나를 총리로 만들어 주겠다는 말을 했다.”라며 보시라이를 밀고했다고 전했다.
3월 17일 저녁, 중국 인터넷에서 장기간 봉쇄됐던 해외 따지웬(大紀元) 사이트가 6시간 열려 중국 네티즌들은 방화벽을 넘지 않고도 국외 봉쇄된 소식을 볼 수 있게 됐고 탈당 대조(大潮)도 보았다.
3월 18일, 베이징 내부 소식인사의 누설에 의하면, 베이징 고위층에서 보시라이 직무 해임 결정을 내린 후 원자바오는 보시라이의 위법 사실 및 왕리쥔 탈출과 창홍타흑 등 일련의 문제를 진일보 추궁할 것을 적극 주장하며, 보시라이를 면직하고 철저히 조사해 처벌할 것이라고 했다. 원자바오의 주장은 시진핑을 포함한 일부 상무위원 지지를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저우융캉은 보시라이를 보호하고 원자바오와 대항해 서로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전반 고위층 각파는 거의 전부 이 한 사건에 말려들었는데 전례 없이 치열하게 투쟁했다.
3월 19일, 미국 의회 외교위원회는 정식으로 왕리쥔 사건을 조사했다.
3월 19일 밤, 베이징 창안제(長安街)에 총성이 울렸고 중난하이에 내분이 발생했으며 저우융캉이 ‘통제당했다’는 말이 인터넷에 떠돌았다. 순식간 ‘창안제’, ‘총성’, ‘저우융캉’이란 단어가 차단됐다. 21일 자정에도 총성이 들렸다고 했다. 베이징 경비지역과 무장경찰의 마찰이었다고 한다.
3월 21일, 중공중앙은 갑자기 저우융캉의 부속, 전국 정법위서기(전국 각지 공안국장, 무장부대 정위)에 명령을 내려 베이징에서 회의한다고 했으나 저우융캉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26일 회의는 열리고 저우융캉이 ‘나타나’ 발언했는데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논조였고 마음에 없는 발언이라는 것이 드러나자 외부에서는 저우융캉이 “발언 당했다.”라고 서술했다.
3월 21일,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는 “저우융캉이 어느 정도 이미 통제당했다.”라고 보도했다.
3월 21일, 중국 최대 검색사이트 바이두에 ‘션윈(神韻)예술단’ 단어가 금지 해지됐는데 검색하면 미국 션윈예술단 사이트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22일에는 봉쇄됐고 23일에 다시 해제됐다. 바이두 사이트는 금지와 해금을 반복했는데 중공 고위층의 배후 투쟁의 격렬함을 명확히 드러냈다.
3월 22일, 저녁 중앙 TV 뉴스 방송에 저우융캉이 괴이하게 ‘얼굴을 드러내’ 상하이에서 열린 전국 정법선전 업무회의에 영상편지를 보냈다.
3월 23일, 민감시기인 베이징, 중난하이, 텐안먼은 경찰 경비력을 강화했다. 중난하이에서 베이징 시단(西單)까지 1킬로미터도 안 되는 구간에서의 경비가 매우 철저했다. 중신사(中新社) 23일 소식에 따르면, 중공중앙 정치국 상무위원, 중앙 정법위 서기 저우융캉이 23일 오후 인민대회당에서 인도네시아 외교부장 마티를 회견했다고 한다. 23일 저우융캉이 모습을 드러내 ‘진상을 밝힌’ 동시에 최고 민감 차단 검색어인 ‘생체 장기적출’ 관련 단어가 바이두에서 한때 해금됐다.
3월 24일, 소식통에 따르면 원자바오는 여러 번 중공 고위층에 ‘6.4천안문사건’ 누명을 벗겨주자고 제기했고, 중공 전 지도자 후야오방과 자오쯔양의 누명을 벗겨 주자고 제출했으며, 중공 최고 금지구역까지 들어가 “파룬궁 누명을 벗겨주자.”고 제출했다. 소식통은 원자바오가 중난하이 내부 회의에서 “마취약을 놓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 몸에서 장기를 적출해 돈까지 버는 것이 사람이 할 짓인가? 이런 일은 발생한 지 여러 해 됐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기간 바이두와 국내 일부 매체에서 한동안 ‘전법륜(轉法輪)’, ‘생체장기적출’, ‘션윈(神韻)’ 등 관건 단어가 금지 해지됐다.
3월 29일, 중국 최대 검색엔진인 바이두에 놀랍게도 “저우융캉과 보시라이가 시진핑을 혼내려” 한다는 소식이 나타났고 30일에는 바이두에 다시 홍콩의 ‘공산당 탈당 행진’ 동영상이 나타났다.
3월 30일, 영국 언론 ‘타임스’는 영국 고위층 간부가 영국인 사업가 닐 헤이우드의 죽음이 얼마 전에 면직당한 충칭시위 서기인 보시라이와 관련 있음을 밝혔다고 전했다.
4월 10일 오후, 로이터 통신은 보시라이가 중공중앙위원과 정치국위원 직무를 잠시 중지당했고 입안 조사를 받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4월 10일 저녁 11시경에야 중공 대변인 신화망은 이 소식을 발표했다. 중공중앙은 보시라이가 맡은 중앙 정치국 위원, 중앙위원 직무를 ‘중지’하며 보시라이의 엄중한 위법 문제를 입안 조사한다고 밝혔다. 이어서 신화망은 또 보시라이 아내 ‘보구카이라이(薄谷開來)‘와 장샤오쥔(보시라이의 집사)이 영국인 닐 헤이우드를 살해한 혐의가 있어 사법기관으로 이송됐다고 발표했다.
신화망은 보시라이 아내를 ‘구카이라이’가 아닌 ‘보구카이라이’라고 했는데 자세히 음미할 가치가 있다. 분석가의 지적으로는 중공의 통지는 두 가지 중요한 문제를 감추려 했는데, 하나는 저우융캉과 보시라이가 군사정변을 획책해 시진핑의 권력 계승을 저지하려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최근 몇 해 중공 고위층의 내분은 주요하게 파룬궁 문제를 둘러싼 것으로서 중공 고위층은 파룬궁 박해에 대해 줄곧 엄중한 의견대립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4월 11일, 해외 언론에서 보시라이와 구카이라이의 보다 많은 소식을 보도했다. 1) 이미 체포된 충칭 난안(南岸)구 구위서기 샤더량(夏德良)은 청산가리로 헤이우드를 살해했다고 시인했다. 샤더량은 또 부시장으로 승진하기 위해 구카이라이에게 3천만 위안(약 54억 3천만 원)을 주었다고 털어놨다. 초보적 조사에 의하면 지난 2년간 보시라이가 구카이라이를 통해 충칭에서 선출한 관리들에게서 받아낸 뇌물은 10억 위안(약 1,800억 원)에 달한다. 2) 보시라이와 왕리쥔은 충칭에 정신병원을 설립했는데 지금까지 1,300명의 ‘말로 인해 죄를 얻은’ 사람을 감금했다. 3) 보시라이와 왕리쥔은 파룬궁 박해에 아주 활약적이었고 감금된 파룬궁 수련자의 생체에서 여러 번 장기를 적출한 혐의가 있다. 4) 분석가에 따르면 살해된 헤이우드는 보시라이 집안을 도와 재산을 이전하는 중에 보시라이가 정변을 밀모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그리하여 보시라이는 헤이우드를 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내 구카이라이에게 실행하도록 부추기고 배후에 숨었는데 이는 중공 정치가의 흔한 수법이다. 역사상 마오쩌둥은 그 아내 장칭을 시켜 수많은 정적을 타도 살해했다. 5) 중공 내부의 한 인사는 보시라이가 백여 명의 여성과 성관계를 했는데 그 중 28명은 유명인이라고 밝혔다. 모델, 중앙 CCTV 아나운서도 있다. 얼마 전에 체포된 다롄 스더(實德) 총재 쉬밍(徐明)은 자신이 여자를 데려와 보시라이와 음란한 관계를 갖게 했다고 시인했다. 왕리쥔이 비밀리에 이 부분을 녹음했다. 6) 중공 내부인사는 보시라이가 가장 숭배하는 사람은 진시황과 마오쩌둥이며, 자신을 중국의 가장 위대한 세 번째 인물이라 여긴다고 전했다. 7) 구카이라이는 홍콩 신분증과 싱가포르 영주권이 있다.
3. 저우융캉, 보시라이가 군사정변을 획책해 시진핑의 권력 계승 제지하려
보시라이의 야심은 ‘상무위원회에 들어가’ 중공중앙 정법위 서기로만 되려는 것이 아니라 최고 권력을 탈취하려는 것이었다. ‘왕리쥔 사건’에서 가장 폭발성을 띤 것은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이 군사정변을 획책해 시진핑이 권력을 이어받지 못하게 하려는데 있다.
해외 언론이 보도한 주요 내용으로는
▲보시라이는 군방과 결탁했는데 적어도 두 개의 군사집단이 그를 지지하고 있으며 정법위가 통제하는 방대한 무장경찰과 경찰이 있다고 스스로 말했다.
해외 언론은 저우융캉 수하에는 250만 공안과 150만 무장경찰이 있는데 후진타오가 장악한 군대는 단지 200만뿐이므로, 중형장비에서 군대보다 좀 못한 외에 무장 공안의 무기는 군대보다 더 선진적인 것도 있다고 전했다. 중공의 안정유지에 드는 돈은 군대에 투입한 금액을 초과하고 있는데 이는 무슨 비밀도 아닌 것으로, 왕리쥔이 미국에 폭로한 “저우융캉과 보시라이가 경찰을 발동해 정변을 밀모해 시진핑에게 자리를 내놓게 하려는” 것도 가능한 일이라고 해외 언론은 전했다.
▲중공 최고 당국이 놀라는 것은 왕리쥔이 중공중앙 경위국에 침투해 중공중앙 주요 지도자의 행적과 비밀을 알아냈다는 점이다. 분석가에 따르면 왕리쥔은 보시라이를 따르는 졸개일 뿐이다. 보시라이 몰래 중앙 경위국에 관계를 맺을 능력이 못 된다. 그런 행위는 틀림없이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이 지시한 것이다. 특히 중앙 경위국과 관계를 맺은 것은 저우융캉이 배치한 것일 것이다.
왕리쥔은 경찰 출신이기에 감청과 도청을 즐기며 이른바 ‘타흑 영웅’이기도 하고, 많은 선진적인 경찰 도청 기술을 장악하고 있기에 중앙 경위국 직원들은 그에 대한 경계심을 풀었다. 왕리쥔은 결국 중공중앙 지도자가 충칭에 올 때 도청을 했고 중난하이의 비밀 역시 외부로 새어나가게 됐다.
시진핑, 허궈창, 리위안차오(李源潮), 우방궈가 충칭에서 고찰하거나 조사 연구하는 기간에 왕리쥔은 감청과 도청을 했고 아울러 여러 차례 중요 내용을 도청해 보시라이에게 보고했다.
▲보시라이가 중공중앙 보위국 부국장, 원자바오의 경호실장 리룬톈(李潤田)을 매수했을 가능성이 있다. 4월 5일 리룬톈은 ‘퇴직’했다.
▲보시라이는 거금으로 좌파를 매수해 보시라이와 이른바 ‘충칭양식’을 치켜세웠다. 베이징 대학 교수 쿵칭둥(孔慶東)은 충칭에서 100만 위안의 ‘강연 수수료’를 받았다고 스스로 폭로했다. 중공 ‘좌파’의 대본영 ‘오유지향(烏有之鄕)’의 창시자 중 한 명인 중국 정법대학 교수 양판(楊帆)은 창을 거꾸로 돌려 기타 ‘좌파’와의 분쟁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충칭에 극좌파를 협찬한 상황을 발표하라고 요구했다.
문장발표: 2012년 4월 11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4/11/25551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