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어우양페이(歐陽非)
“예수는 무거운 십자가를 메고 예루살렘 거리를 걸으며 수시로 넘어졌다.무지한 군중들은 미친 듯이 그를 향해 몰려들어 온갖 멸시와 원한을 퍼부었다. 바람소리를 처연했고 수심 가득찬 구름은 참담한 모습이었다…” 할리우드 멜깁슨 감독은 영화 《예수의 수난기(The Passion of the Christ)》에서 예수가 수난 당하기 전 최후의 12시간을 재현했다. 예수의 최고 수제자였던 베드로마저 분노한 군중을 마주해 두려움으로 세 번이나 자신의 주를 부인했다. 수난당하는 예수를 보며 베드로는 멀찌감치 숨어서 흐느껴 운다. 영화 OST 《Peter Denies Jesus》는 베드로의 강한 공포심과 회한의 심정을 격정적으로 드러난다.
베드로의 일생 중 가장 큰 치욕은 세 번이나 자신의 주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스스로 예수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여겼던 베드로는 수년 후 로마에서 순교할 때 형장에게 십자가에 자신을 거꾸로 매달라고 함으로써 속죄의 심정을 드러냈다.
만약 역사의 시간을 되돌려 베드로에게 다시 선택의 기회를 준다면 그는 그런 굴욕을 재연하지 않을 것이다. 베드로는 아마피비린내 나는 폭력 앞에서도 용감하게 일어나 ‘박해를 중지하라’고 외쳤을 것이다. 오늘의 말로 표현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결백하다’는 현수막을 펼치며 자신이 신앙하는, 즉 자신의 죄를 갚은 주를 위해 공개적으로 도리를 다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사람들은 또 그를 두고 ‘정치를 한다’는 혐의를 씌우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후세사람들에게 존경과 탄복을 받았을 것이다.
당시 베드로가 하지 못했던 일을 지금의 천천만만의 파룬따파 제자들은 하고 있다. 그들은 ‘박해를 중지하라’, ‘파룬따파하오’, ‘사부님의 명예를 회복하라’는마음의 소리를전하고 있다. 베드로가 든 현수막이 ‘정치를 하는’ 게 아닐진대, 파룬궁 수련생들이 수련의 자유를 위해 반박해하는 행위를 두고 어찌 ‘정치를 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문장발표:2011년 01월 9일
문장분류:시사평론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9234601.html
문장발표:2011년 01월 9일
문장분류:시사평론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92346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