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1cm를 높임’에 대해 느낀 것

글/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1992년 2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2년 후, 장벽을 지키던 병사 잉고 하인리히가 심판을 받았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기 전, 장벽을 넘으려 했던 청년 크리스 구에프로이를 그가 사살했기 때문이다. 소설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Der Vorleser)』의 나치 여 간수 한나처럼 하인리히의 변호사도 이런 병사들은 단지 ‘명령을 집행’할 뿐 다른 선택이 없었으므로 그 개인에게는 죄가 없다고 변호했다. 하지만 법관 데오도르 자이델은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경찰로서 상급의 명령을 집행하지 않으면 죄가 있다. 하지만 명중시키지 않아도 죄는 없다. 심지(心智)가 건전한 사람으로서 이때 당신에게는 총구를 위로 1cm 높일 수 있는 주권이 있다. 이것은 당신이 마땅히 능동적으로 감당해야 할 양심의 의무다. 이 세계에서 생명을 존중하는 것은 보편적으로 어느 곳에 놓아도 다 옳은 원칙이다.”고 했다. 결국 병사 하인리히는 구에프로이를 의도적으로 사살했으므로 형을 선고 받았고 게다가 가석방도 없었다.

사실 심지가 건전한 사람마다 지금 오늘날의 중국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변했는지 다 보아 낼 수 있다. 어쩌면 양지를 버리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사람은 이런 모습을 좋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주중의 뭇 신들도 이렇게 생각할까?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 이런 미끄러진 상태를 어찌 계속 지속하게 할 수 있겠는가? 미래의 아름다움은 더욱 사람들의 양지(良知)로 수호해야 하는데, 양지가 없는 사람이 순조롭게 미래로 진입할 수 있겠는가? 한 관원이나 경찰로서 당신은 우선 사람인 다음에 비로소 경찰 혹은 병사다. ‘하인리히 사건’은 ‘최고 양지 원칙’ 의 사례로서 이미 널리 알려졌다. ‘1cm를 높임’은 인류가 악정(惡政)을 마주했을 때 잊지 말아야 할 저항과 자구책이며, ‘인류 양지의 살아있는 찰라’다. 이 1cm는 인류를 가없이 넓게 해주는 1cm이고, 개체가 체제를 초월하게 하는 1cm이며, 인류의 양지를 입증하는 1cm이다.

오늘날 法輪大法(파룬따파)는 세계 100여 개 국가로 전파되었다. 중국대륙의 대법제자는 마난(魔難)중에서 여전히 진리에 대한 신앙을 견지하며, 되도록 힘닿는 데까지 대법의 진상을 알리고 “眞(쩐)·善(싼)·忍(런)”의 이 보편적인 가치를 알려 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본성과 양지를 깨워주기 위해서다. 중국대륙의 경찰이나 정부 관원은 어쩌면 일반 백성들보다 파룬궁의 진상을 접하기 더 쉬울 수 있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온 힘을 다해 미친 듯이 대법제자를 납치하고 박해한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절실한 이익 앞에서 자신의 양지를 판 것이다. 대법을 비방하고 대법제자를 박해하여 악보(惡報)을 받은 악관(惡官)과 악경(惡警)의 실제 사례는 이미 부지기수다. 악보가 아직 자신에게 떨어지지 않았다 하여 끊임없이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하지 말라. 하늘이 중생에 대해 자비를 베풀기에 비로소 인류에게 진상을 알게 하여 이로써 구도될 수 있는 기회와 인연을 남겨둔 것이다. 하지만 하늘이 인류에게 남겨준 시간은 이미 많지 않다! 기회와 인연을 놓치면 장래에 뼈저리게 뉘우친다 해도 이미 영원히 보완할 방법이 없다!

젊었을 때 즐겨보던 드라마 『게리슨 유격대(Garrison’s Gorillas) 』가 기억난다. 그 중에 한 장면은 연맹군의 전사가 도망갈 때 한 독일 병사가 총으로 사격하지만 어떻게 해도 방아쇠가 당겨지지 않아 그는 또 “무슨 총이냐!”며 중얼거렸다. 여러 해가 지났어도 여전히 웃음을 참지 못하게 하는 장면이다. 나는 허둥지둥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던 그 독일 병사가 정말로 ‘의도적으로 살해하지 않고’ ‘1cm를 높이는’ 그의 주권을 지키고 있었기를 바란다.

문장발표:2011년 02년 23일
문장분류: 시사평론->세도인정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2/23/23668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