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러란(了然)
[밍후이왕] 중공이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하는 고문은 다양하다. 그중 한 가지 고문은 매우 악독한데 표면적으로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지만 대법제자에게 심각한 내상을 초래한다.
광저우 제1군의(軍醫)대학박사 양구이위안(楊貴遠)은 광저우시 제1노동교양소에 납치돼 고문을 당했다. 그중 가장 참혹한 것은 곧 노끈으로 전신을 둥근 공같이 묶어놓는 고문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군용 이불 겉면을 한 갈래씩 찢어 노끈으로 삼아 묶는다. 왜냐하면 고통스럽게 하고 또 상처도 드러나지 않게 위해서이다. 하루는 나를 금폐(禁閉)실의 작은 방에 끌고 가서 묶기 시작했다. 어깨부터 아래로 촘촘히 묶기 시작했다. 두 팔과 두 다리도 이렇게 감아서 피가 통하지 않는다. 이런 후 가부좌하게 한다. 두 무릎이 거의 맞닿을 정도로 묶은 다음 고정한다. 이런 후에 팔도 뒤로 묶고 두 손목을 같이 묶어 위로 올린다. 힘껏 당겨 목 부위까지 올리는데 이때면 매우 고통스럽다. 이런 다음 다리에서 한 갈래의 노끈을 늘여 목뒤로 한 바퀴 돌아 머리를 다리에 맞대게 하는데 마치 사람이 공처럼 된다. 조금 있으면 감각이 사라지는데 이러면 풀어놓았다가 또 묶기 시작한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고통을 준다.”
이 고문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다른 사람이 상처를 보지 못하게 하는 악독한 방법이다. 묶는 노끈은 가는 것이 아닌 이불 천이다. 아주 악독한 마음으로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고문임을 알 수 있다.
신체 표면에 흔적을 남기지 않게 하기 위해 중공의 악인들은 또 한 가지 방법을 쓰는데 곧 신체부위에다 무슨 물건을 놓고 이 부위를 때리는 것이다. 역시 외부 사람은 상처를 볼 수 없지만 이 고문을 받은 사람은 내상을 입는다.
광동 메이저우(梅州)시 메이(梅縣)현 농업국 농촌 에너지원부계장 셰한주(謝漢柱)는 2005년 2월 23일에서 28일 동안 메이장(梅江)구 공안분국 형사경찰대 3층에서 고문 협박을 당했다. 몇 명 악경이 그를 강제로 꿇어않게 하고 책을 그의 등 뒤에 놓은 후 악경 천즈둥(陳志東)이 손잡이 50센티미터, 길이 15센티미터, 폭 5센티미터의 네모난 쇠망치로 등 뒤의 책을 내리쳐 심한 내상을 입게 했다.
악경 천즈둥, 리젠루(李建祿)는 그의 신체와 목을 묶고 수건으로 두 눈을 가리고 종이로 그의 입을 봉한 다음 불붙인 두 개의 담배를 그의 두 콧구멍에 꽃아 호흡할 때마다 흡연하게 한다. 이렇게 한동안 고통을 주다가 또 위협 협박하며 반복적으로 하루 저녁에 10갑의 담배를 태운다. 매번 시간이 길어지는데 결국 질식해 기절한다. 이 고문은 맵고 아픈 것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지만 외부에 상처라곤 남기지 않는다.
셰한주는 또 다른 일종의 고문을 받았다. 그것은 2000년 7월 그가 광둥성 싼수이(三水)노동교양소에 납치됐을 때 악경은 5명의 인원을 시켜 셰한주를 땅바닥에 앉히고 등은 철 침대에 기대게 하고는 두 명은 좌우팔을 맹렬히 당기고 두 명은 두발을 당겨 다리가 직각으로 된 다음 몸 뒤로 당긴다. 사지는 고통스럽고 심장과 폐가 아프게 된다. 이것이 싼수이 노동교양소의 ‘오마분시(五馬分屍-사지와 머리를 다섯 마리의 말에 묶은 말을 몰아 잔혹하게 찢어 죽이는 형벌)’ 고문이다. 이 같은 고문을 받은 셰한주는 손발이 퍼렇게 붓고 며칠 동안 않거나 허리도 굽히지 못하고 아파서 잠도 잘 수 없었다. 직접 이러한 박해에 참여하는 악경은 생산을 책임진 대장 장 모모와 간사 레이수바오(雷樹保), 장관성(張官勝)이다.
2009년 9월 7일 산둥성 창산(蒼山)신흥중학 화학교사 멍페이(孟斐)는 회사에서 산둥성 창산현 제2남자 노동교양소 8대대에 납치당했다. 멍페이는 단식 방식으로 박해를 반대했다. 쑨펑쥔(孫豊俊)은 두 명의 악경과 세 명의 노동교양소 인원을 시켜 멍페이를 위생실로 들고 갔다. 그들은 멍페이의 손을 쇠의자 뒷면에 묶어놓고 두 다리는 벌린 후 두발을 의자 뒷면 가로로 된 나무에 고정하고 뒤 쪽에서 멍페이의 두 발을 맹렬히 밟았다. 순펑쥔은 또 두 명의 죄수를 시켜 뒤에서 손수갑을 발로 차게 했다. 두 다리와 손목이 각각 나무와 수갑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악인은 또 머리카락을 잡고 뒤에서 아래로 잡아당기고 머리를 내려 눌렀다. 이때 순펑쥔은 멍페이의 머리, 가슴, 양 옆구리, 다리를 맹렬히 구타해 멍페이는 뼈를 깎는 고통을 느껴 저절로 눈물을 흘렸다.
악경 쑨펑쥔은 후안무치하게 말했다. “아래에 의자 판넬를 펼쳐놓으면 아무리 아파도 뼈는 끊어지지 않는다. 내가 배운 이 방법은 안에서 아무리 중상을 입어도 겉에서는 전혀 알 수 없지.” 쑨은 멍페이를 연달아 두 번, 세 번, 10번, 20번……을 때리는데 얼마를 때렸는지를 모른다. 멍페이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지만 오른쪽에 있는 경찰도 같은 방법으로 오른쪽 넓적다리를 때렸다. 뒤에 있던 두 명의 죄수도 멍페이의 머리, 어깨, 허리, 옆구리를 맹렬히 구타했다.
이런 고문은 얼마나 지독한가? 사람들이 상상해도 이 고통스러운 정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악경이 말한 ‘내가 배운 이 방법’은 배우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말하기만 하면 알 수 있는 방식이다. 그런데 누가 이렇게 손을 쓸 수 있는가? 그 독한 마음을 생각하면 알 수 있다.
중앙민족대학의 문학과 교사 량보(梁波)는 2010년 5월 20일 베이징 하이뎬(海澱)분국 경찰의 납치를 당했다. 간수소 악경 둥융핑(董永平)은 그녀를 야만적으로 구타 모욕하고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 강제로 죄수복을 입히고 강제로 머리를 깎고 주먹발길질을 수없이 했다. 90kg의 둥융핑은 잔인하게 량보의 가슴 부위에 앉았고 다리로 그녀를 깔아뭉개자 량보의 가슴 연골이 부러졌다.
최근 해외매체에서 보도한 허베이성 장자커우(長家口) 25세 유치원교사 후먀오먀오(胡苗苗)는 허베이 여자노동교양소 1대대에서 받은 손상을 말해보자. 대대장 왕웨이웨이(王偉衛)는 일반 수감자 우옌춘, 리링링, 쭝둥룽(吳艶春, 李玲玲, 宗東榮) 등을 시켜 후먀오먀오를 학대했다. 심한 구타 외에 더욱 악독한 것은 빗자루 대와 손가락으로 그녀의 하체를 괴롭혀 몇 달 동안 일어서지도, 걷지도 못하게 한 것이다. 후먀오먀오는 뼈가 손상을 받아 병원에 가서 검사하려 했으나 노동교양소 측은 허락하지 않았다.
후먀오먀오는 아마도 치골이 손상됐을 가능성이 높다. 시안(西安) 대법제자 마윈화(馬蘊華)의 자술을 보면 악인들이 후먀오먀오에 대한 박해를 똑똑하게 알 수 있다. 마윈화는 산시(陝西)여자 감옥 제6분감구에서 박해를 받았다. 그녀의 증언에 의하면 “그들이 나를 때릴 때 전문적으로 음부와 복부를 때리는데 겉에서는 잘 알지 못할 부위다. 또 내 머리를 대야에 장시간 눌러서 질식하게 하고 바늘로 전신을 찌른다. 귀에다 강제로 이어폰을 꽂아 테이프로 고정시켜놓고 중공의 비방과 모욕하는 거짓말을 듣게 해서 세뇌를 시킨다.” 마윈화가 받은 박해는 모두 은폐성 박해다.
헤이룽장성 베이안시 스촨(石泉)진 파룬궁수련자 장빙즈(薑秉志)는 불법 체포돼 쑤이화(綏化)노동교양소에서 심한 박해를 받았다. 악경은 장빙즈가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장빙즈가 있는 감방 문을 열고 비닐자루를 던져놓았다. 뒤에 또 하나 던졌다. 감시하는 죄수가 알아차리고 비닐자루를 장빙즈 머리에 씌웠다. 노끈으로 목에다 단단히 졸라맨 후 몇 명의 범인들이 둘러싸서 때리기 시작했다. 숨이 막히고 질식하고 또 악독한 매를 맞아 그날로 장빙즈는 식물인간이 됐다. 장빙즈는 며칠 후인 2009년 8월 26일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
사실 악경이 사용한 이 같은 은폐성 고문은 아주 많다. 냉동시키고 폭염에 쬐이며 작은 의자에 앉히고 군사자세로 서있는 벌, 잠을 못 자게하고 화장실을 못 가게 하는 등등 모두 이런 유에 속한다. 악경이 이런 고문을 하는 것은 목적이 아주 명확하다. 이렇게 잔인하게 대법제자를 괴롭히지만 동시에 상응한 질책과 이후의 형사책임을 도피하는 것이다.
이상 이런 유의 고문 폭로로 우리는 중공이 키우는 악경의 인성을 말살하는 본성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고문은 장기적이고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중공이 파룬따파 제자에 대한 박해는 하지 못하는 짓이 없다는 것을 충분하게 해석한다.
문장분류: 시사평론
문장발표: 2010년 12월 15일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2/15/曝光中共监牢不露外伤的酷刑-233662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