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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 수련생들은 무엇 때문에 ‘4.25’청원을 했는가?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0년 4월 25일】청원[上訪]은 헌법이 국민에게 부여한 권리다. 그러나 그 누구나 무슨 일이 없으면 청원하러 가지 않는다. 누가 청원하였다고 하면 사람들은 우선 당연히 관심을 갖는 것이 그가 왜 청원 하였는가, 그에게 무슨 억울함이 있는가? 어떤 공정하지 못한 대우를 받았는가? 누가 그를 업신여겼는가이다. 현지에서 억울함을 말할 곳이 없어 비로소 청원하였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사람들의 정상적인 사유이다.

그러나 1999년 4월25일, 만여 명 파룬궁 수련생들이 자발적으로 북경 푸유(府右)거리 국무원 청원사무소에 가서 평화적 청원을 하였다. 중공은 매체를 통해 파룬궁이 무엇 때문에 청원하였는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국무원 청원사무소에 갔는가를 감히 보도하지 못했다. 정부의 직능 부문으로서 어떻게 이해했든지 간에 결코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매체를 이용하여 이 일을 표면상에서 크게 문제 삼으면서 함부로 파룬궁은 ‘조직이 있다’ 고 과장했으며, 파룬궁 수련생들이 ‘중난하이(中南海)를 포위하였다’등 거짓말을 날조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기만 당하여 당신들이 ‘4.25’청원을 하지 않았다면 공산당도 탄압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4.25’청원은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이유가 아니다. 파룬궁 수련생들이 ‘4.25’에 청원하지 않았어도 중공은 여전히 이와 비슷한 사건을 만들어 낼 것이다. ‘4.25’청원은 뤄간(羅幹), 이 한 무리들이 파룬궁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탄압하기 위해 일찍부터 꾸민 음모이다.

구실을 만들어 파룬궁을 박해하는 것은 결코 99년 ‘4.25’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니다.

사실은 1996년부터 파룬궁 수련생들의 수련환경이 갈수록 악화되었다. 먼저 광명일보(光明日報) 에서 파룬궁을 음해하는 문장을 실었다. 이어서 중공중앙선전부가 곧 파룬궁의 서적과 음향 자료의 출판을 금지 하였고(후에 수련생들이 구매한 책은 해적판이었다) 1997년 초, 뤄간은 공안부에 전국적으로 파룬궁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라고 지시하였으며, 증거를 망라하여 파룬궁을 ‘x교’로 몰아가려 하였는데, 1998년 5월, 뤄간의 동서 허쭤슈(何祚庥)가 북경 텔레비전 방송국 사건을 일으켜 ‘베이징 특급’프로그램에서 파룬궁을 비방하였으며, 1998년 7월 공안부 일국에서 공정[1998]제555호 ‘파룬궁 조사에 관한 통지’를 내어, 먼저 죄를 언도하고 이후에 조사를 하게 하였으며, 1999년 4월 11일에 허쭤슈가 또 음모를 꾸며 반란을 일으켰는데 톈진 교육학원 잡지에 문장을 발표하여 파룬궁을 공격 하였고, 4월23일 톈진 공안국은 교육 학원에 가서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 40여 명을 체포하였다.

파룬궁 수련생들이 무엇 때문에 ‘4.25’청원을 하러 갔는가?

나는 베이징 수련생이다. 그 해 ‘4.25’청원에 나도 갔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일이 마치 엊그제 일 같이 기억된다. 11년 전의4월24일 저녁, 나는 법공부팀에 가서 법공부하고 연공하였다. 한 수련생이 우리들에게 톈진 공안이 폭력을 방지하는 경찰을 동원하여, 상황을 바로 알리러 간 수련생들을 구타하여 어떤 수련생들은 유혈 상처를 입었고, 45명 수련생이 체포되었다고 말하였다. 파룬궁 수련생들이 사람을 풀어달라고 요구하니 톈진시 정부는 사람을 풀어주지 않고, 공안국이 이 일을 관여한다고 말 하였다는 것이었다. 톈진 공안 경찰은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건의하기를 베이징에 가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생각 하였다. 이렇게 많은 문제가 나타났기에, 마땅히 정부 기관에 가서 진실한 상황을 똑똑히 알려야 하는데 이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그들이 아마 파룬궁에 대해 알지 못하여 우리를 오해할 수도 있다. 그들이 그릇된 결정을 내리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들의 수련환경이 파괴 당할 뿐만 아니라, 대법의 발양에 영향이 있게 되며, 많은 사람들에게도 영향이 있게 된다. 모두들 이튿날 베이징 국무원 청원 사무소에 가서 청원하겠다고 생각하였다. 보도원은 말하였다.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은 모두 자신의 깨달음으로써 자신이 결정하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통일적인 행동이 없었고 이 일을 조직한 사람도 없었다. 이튿날 아침 5시가 좀 넘어서, 나는 기차역에 가서 첫 차를 기다렸는데 보니 우리 법공부팀의 수련생들이 모두 왔다. 이것은 모두 자기 내심에서 우러나와 자원적으로 청원하러 가는 것이다. 우리들이 수련하는 것은 진(眞), 선(善), 인(忍)이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던지 모두 진, 선, 인의 표준으로 가늠하고, 자신을 요구한다. 사부님께서는 대법 수련은 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키는 것[直指人心]이고 우리의 수련 형식은 대도무형(大道無形)이므로 조직도 없고, 인명부도 없으며,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간다고 말씀하셨다. 파룬궁 수련생들은 필히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한다. 그 누가 무엇을 조직하고, 사람들에게 통일적으로 무엇을 할 것을 요구 한다면 그가 하는 행위는 곧 대법의 요구에 어긋난 것으로서 다른 사람도 듣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매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모두 법이 있기에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모두 알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을 조직했더라면 만 명만이 아닐 것이다. 북경 지역만 하더라도 매 구역, 현에 모두 몇 천 명의 수련생이 있고, 큰 구역에는 수련생이 만 명도 넘기 때문에 만약 누가 조직했다면 다만 북경지역 수련생만으로도 수만 명이 갔을 것이다.

‘4.25’그 날 우리는 6시가 좀 넘어 푸유(府右)거리에 도착하였다. 차에서 내려 얼마 가지 않아, 그곳에서 기다리던 경찰이 우리를 데리고 큰 거리를 지나, 우리들을 중난하이 서쪽 문의 맞은 편 옆쪽에 서게 하였다. 이때 이미 매우 많은 수련생들이 와있었고 갈수록 더 많아졌다. 여러 사람들은 모두 묵묵히 서 있었고, 떠드는 사람도 없었고, 구호도 부르지 않았으며, 현지 주민들의 생활에 영향도 주지 않았다. 모두들 자각적으로 질서를 지켰고, 보행자 도로와 골목길도 모두 열어 놓았다. 밥을 먹은 도시락, 비닐봉지는 모두 수련생들 자신이 사가지고 온 큰 비닐봉지에 넣었다. 어떤 수련생은 그 자리에 서서 법공부를 하였고, 어르신들은 힘들면 뒤에 가서 앉았다. 주룽지 총리가 나와서 수련생을 접견하였는데 모두들 박수를 쳤다. 그리고 나서 여전히 제 자리에 서서 기다렸다. 경찰들이 사진을 찍고, 비디오 촬영을 하면서 공고서 배포를 하였으나 그 누구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는 수련생들이 진상을 똑똑히 알려 그들이 진상을 알게 되면 잘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조용히 앞줄에 서있었는데 심태는 그처럼 순결하였고, 그토록 신성하였으며, 마음속 깊은 곳은 그처럼 평온하였다. 이렇게 많은 수련생들은 모두 마음 속으로부터 우러나와 진, 선, 인으로 자신을 요구하였는데 그처럼 상화하고 순정한 심태는 어디를 가든지 모두 그 환경을 순정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훗날 세인들이 ‘표어도 없고, 구호도 없으며, 지휘하는 사람도 없었고, 심지어 시끄럽지도 않았는데, 쓰레기 하나 없었다’라고 경탄하였는데 이는 파룬궁 수련생들의 심경(心境)의 필연적 표현이었고, 자연적인 표출이었다.

대략 오후 5시가 좀 넘어 현지의 주민들이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세요, 우리는 이미 통지를 받았어요, 저녁에 우리들에게 문을 잠그고 외출하지 말며, 밖에서 무슨 일이 생겨도 나오지 말라고 하였어요.” 주민들은 89년 ‘6.4’학생 유혈사건을 통해 이미 정부에서 무슨 일을 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마음 착한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돌아가라고 권고하였다. 모두들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몸도 움직이지 않고 줄곧 청원이 원만히 끝날 때까지 견지하였다. 후에 공안 내부로부터 흘러나온 소식에 따르면, 그 날 그들은 이미 곤봉을 준비하였는데 사태의 진전을 보고, 만약 저녁 9시가 넘은 후에도 파룬궁 수련생들이 철수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행동하여 그곳을 정리하기로 했다고 하였다.

‘4.25’ 청원은 장쩌민, 뤄간 정치 폭력 집단이 전면적으로 파룬궁을 탄압하려고 미리 준비한 한 차례 살의와 함정이었다. 다만 파룬궁 수련생들의 대선대인(大善大忍), 순정함과 상화함으로 인해 비로소 이 죄악의 음모를 무형 중에 해체하여 한 차례 ‘6.4’와 유사한 유혈 사건을 피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국제 사회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게 된 것이었다.

문장완성: 2010년 4월 25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4/25/22219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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