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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는 중국장기이식시장의 급증을 설명할 수 없다 (3)

——2003년:중국장기이식시장 급증

작자:오우양페이(歐陽非) 쑨쓰셴(孫思賢) 린잔샹(林展翔)

【명혜망 2009년 12월 7일】

6. 2003-2006년 : 장기이식 유례없는 큰 시장

앞에서 거대한 ‘버섯구름’을 본 독자들은 아마 나머지 많은 장기들이 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여러 가지 답을 상상해보았을 것이다. 일단 성급하게 결론짓지 말고 우선 2003-2006년 장기이식시장이 갖는 역사상 유일무이한 독특한 특징에 대해 살펴본 후 다시 어떤 내력의 장기가 이 핏빛 ‘버섯구름’을 설명할 수 있는지 판단해보도록 하자.

(1) 첫 번째 특징: 사상 유례없이 짧은 대기시간

미국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 간이식을 위한 평균대기시간은 2년, 신장은 3년이다(주 27). 반면 중국 일부 병원에서는 장기이식 대기시간이 매우 짧아 주 단위로 계산한다.

 

그래프 설명 : 중국과 미국의 평균 장기이식 대기시간

아래 표는 중국의 몇몇 대형 장기이식센터에서 2003-2006년 기간에 정식 발표한 평균 장기이식 대기시간이며 맨 오른쪽에 있는 것이 미국 복지부에서 발표한 평균 장기이식 대기시간이다. 이를 통해 볼 수 있다시피 미국에서는 평균 2-3년이 걸리는 장기이식 대기시간이 중국에서는 불과 1-2주만에 가능하다.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장기이식 역사상 매우 특별한 경우에 속한다. 이런 특별한 대기시간이 의미하는 것은 특별한 장기출처가 존재함을 의미한다.

 
표: 중국과 미국에서 장기이식 평균대기시간

(자료출처: 부록 7 참조)

 동방장기이식센터(톈진제1중심병원)
 해방군 제2군의대학 제2부속병원 장기이식연구소(상하이 장정병원)
 국제장기이식인터넷지원센터(선양중국의과대학 제1부속병원)
 미국 복지부 자료(
www.organdonor.햎)
 
평균

대기시간환자 평균 대기시간 2주간이식 환자 평균 대기시간 1주간이식은 빠르면 1달, 늦어도 2달 정도.

신장이식은 빠르면 1주, 최대 1달을 넘지 않음. 문제 발생 시 1주일 내 재수술 가능간: 2년, 신장:3년

심장 230일

폐 1068일

간 796일

신장 1121일

췌장 501일(2) 두 번째 특징: 비싼 수술비로 폭리를 취할 수 있다

장기이식비용은 병원마다 차이가 있지만 중국의과대학 제1부속병원 국제장기이식인터넷지원센터에 올라온 아래 표를 보면 어느 정도 비용이 들어가는지 짐작할 수 있다.


표: 장기이식비용표(단위: 달러)

신장이식6만2천불간이식9만8천불~13만불간과 신장이식16만불~18만불신장과 췌장이식15만불폐이식15만불~17만불심장이식13만불~16만불

신장이식은 6만불(인민폐로 환산하면 약 40여만 위안) 이상, 간이식은 10만 불(약 70만 위안)이 소요되며 폐와 심장이식은 더 비싸서 15만불 이상이 든다(자료의 출처와 상세한 비용표는 부록 8을 참조).

《봉황주간(鳳凰周刊)》 2006년 보도에 따르면 외국인 환자들이 증가함에 따라 수술비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2004년 초 톈진시 제1중심병원(동방장기이식센터) 간이식에 필요한 수술비용은 3만2천불(약 25만 위안) 정도였으나 2005년에는 4만 불(약 33만 위안)을 넘었다(주 28).

이런 거액의 수술비용(배후에는 저렴한 장기출처가 있다)는 장기이식사업에 큰 폭리를 안겨주었다. 해방군 제309병원 장기이식센터 소개 글에는 “이식센터는 우리 부서에서 중점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과로 2003년 수입 1607만 위안, 2004년 상반기 1357만 위안, 금년(2005년)에는 3000만 위안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주 29).

톈진시 동방장기이식센터의 수입은 이보다 더 크다. 《남방주말(南方周末)》의 보도에 따르면 “(장기이식)업무가 급속히 팽창함에 따라 동방장기이식센터가 거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예전 매체 보도에 따르면 간이식 한 가지만으로 1년에 벌어들이는 수입이 최소 1억 위안에 달한다.”(주 30)

2006년 9월 동방장기이식센터 신축병동(500병상)이 완공되었으며 여기에 투자한 돈만 1억3천만 위안에 달한다. 이 병원의 ‘연간 병상회전율’은 만 차례가 넘으며 외과수술센터에는 동시에 9명의 간이식과 8명의 신장이식 수술을 할 수 있는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이식센터이다.

하지만 장기이식사업이 큰 이익을 가져다 준 결과는 매우 심각하다. 한편으로는 돈이 있는 사람들은 마음대로 장기를 살 수 있게 되었고 다른 한편으론 거대한 이익 때문에 병원들이 경제적 이익을 위해 아무것도 돌보지 않고 새로운 장기내원을 개척하도록 만들었다. 그렇다면 중국의 특수한 정치 환경하에서는 일부 단체의 사람들이 장기공급을 위한 희생양이 될 수 있다.

(3) 세 번째 특징: 세계 장기이식의 중심이 된 중국

장기이식에 들어가는 비용이 아주 비싸기 때문에 이식수술을 받는 환자들은 주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특정 집단에 한정되는데 주로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다.

* 외국인 환자(한동안 ‘장기이식을 위한 중국여행열풍’이 불었다)

* 중국인 사업가, 스타 및 중공 관리

* 장기이식을 위해 전 재산을 탕진하는 소수의 일반인 환자

《삼련생활주간(三聯生活周刊)》 2004년 보도에 따르면 중국 내 장기이식환자의 대다수는 ‘자기 사업을 가진 기업가’이거나 또는 일부 ‘직책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보도에서는 또 불과 몇 년 만에 수만 명의 외국인 환자들이 중국에 들어와 장기이식을 받아 ‘장기이식열풍’을 일으켰다고 한다.

문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장기이식여행의 성황을 묘사했다. “톈진시 제1중심병원(동방장기이식센터)에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말레이시아, 이집트, 파키스탄,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홍콩, 마카오, 대만 등 약 20개 국가와 지역의 환자들이 찾는다. 이 병원 4층에는 늘 두건을 두르고 긴 옷을 걸친 아랍 사람들을 볼 수 있으며 병동 중심에 위치한 카페는 ‘국제회의클럽’이 되어 서로 다른 피부색을 지닌 다양한 인종들이 교류한다.” (주 31) (2007년 7월 중국 위생부에서는 각 병원에 외국인에 대한 장기이식수술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4) 네 번째 특징: 작은 시장 속의 큰 시장으로 ‘버섯구름’ 출현

고비용에 환자 층이 제한된 장기이식시장과는 반대로 2003년 이후 중국의 장기이식은 수량이 큰 폭으로 상승해 매년 5천에서 1만 건 심지어 이보다 더 많은 장기이식을 진행해 ‘버섯구름’을 형성했다.


그림설명: 위―2003-2006년 특정 환자를 겨냥한 큰 시장

아래―2003년이전 일반 환자를 겨냥한 작은 시장.

중국에서는 매년 약 150만 명이 장기기능부전으로 장기이식을 필요로 하지만 공급할 수 있는 장기는 매우 부족한 편이며 미국보다도 더 심각하다. 하지만 2003년부터 중국에서는 갑자기 장기공급이 풍부해졌으며 외국인 환자들을 끊임없이 유치하는 세계장기이식시장의 중심이 되었다. 동방장기이식센터 부주임 런정훙(任鄭虹)은 2004년 《삼련생활주간(三聯生活周刊)》과 가진 인터뷰에서 “중국의 장기공급부족은 사실 외국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말했다(주 32).

그렇다면 이는 대체 어찌 된 일인가?

원래 이식 장기가 심각하게 부족했던 이식시장(작은 시장)에서 어떻게 ‘시장 중의 시장’으로 변해 특정 환자들을 겨냥한 풍부한 시장(큰 시장)으로 변할 수 있었을까? ‘작은 시장 속에 큰 시장이 존재’하는 중국 장기이식시장의 이런 변화를 이해하려면 중국 장기이식시장의 상황에 대해 알아야 한다.

중공은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한 생체장기적출 혐의를 부인할 때도 이런 이유를 들었는데 바로 중국에는 100만이 넘는 장기이식 대기자가 존재하고 있는데 어찌 그렇게 짧은 대기시간이 가능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시장’을 뒤섞은 것이다.

(5) 다섯 번째 특징: 외국인도 좋아하는 중국산 장기의 질

중국 장기이식시장의 이런 비정상적인 현상은 위에서 제기한 아주 짧은 대기시간, 특정 계층을 겨냥한 이식 장기의 수량과 규모의 폭증 외에도 또 한가지 주의할만한 특징이 있다. 바로 장기이식의 증가가 장기의 질을 떨어뜨리는 데 의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반대로 이 시기 공급된 장기의 질은 아주 우수했다.

중국인들이 모두 알다시피 대륙에서 수출하는 상품의 질은 국내시장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우수하다. 이 당시 국제장기이식여행열풍 중 중국장기를 이식받은 손님들은 주로 해외환자들이었으며 이들에게 제공할 장기는 국산품보다 수출품의 품질이 좋은 것과 마찬가지로 장기의 품질이 아주 높아야 한다.

중국의과대학 제1부속병원 국제장기이식 인터넷지원중심 사이트에 올라온 ‘Q&A’에는 이식장기의 품질문제에 대해 이렇게 답변하고 있다.

“중국에서 시행하는 생체신장이식은 여러분들이 일본의 병원이나 투석센터에서 들은 사체이식과는 전혀 다릅니다.”

“신장이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형의 일치 문제입니다. 생체장기이식을 하기 전에 우선 공여자의 신기능 및 백혈구를 검사해 이식용 신장의 안전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일본에서 시행하는 사체신장이식에 비하면 이곳의 시술이 훨씬 안전합니다.”(부록 9를 참고할 것)

이처럼 중국에서는 사체가 아닌 생체에서 장기를 적출한다는 것이 외국 환자들을 유치하는 중요한 포인트가 되었다.

해외의 독립적인 조사 기구에서 일찍이 환자 혹은 환자 가족의 신분을 이용해 중국 내 장기이식병원에 전화를 걸어 장기 상황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다. 이때 들은 답변은 주로 “(장기)공여자는 건강하며” “나이는 일반적으로 30세가량 되고” “품질이 가장 좋다고 보장할 수 있다”는 등이었다(주 33).

다시 말해 중국 장기이식의 대기시간이 극히 짧은 반면 품질은 매우 우수하기 때문에 외국인들의 장기이식여행열풍이 불 수 있었다.

(6) 여섯 번째 특징: 2006년 이후 갑자기 공급 감소

이식장기의 내원은 비교적 안정적이다. 이 역시 앞에서 우리가 언급했던 캐나다와 미국의 이식장기가 십수 년 간 그리 큰 변화가 없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물론 갑작스런 하락도 없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2003-2006년에 장기이식수술이 미친 듯이 증가한 후 2006년 3월 파룬궁 수련생 생체장기적출의혹이 폭로되어 국제적인 압력이 들어옴에 따라 2007년 이후 중국의 장기이식은 큰 폭으로 하락했다.

생체장기적출 사건이 폭로된 후 중공은 한편으로는 부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장기이식시장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에 나서 ‘인체장기이식조례’와 ‘이식병원에 대한 진입자격’을 발표했으며 600여 개에 달하던 과거 이식병원 중 160여 개 병원에만 자격을 부여했다.

그렇다면 이식병원의 감소가 장기이식 수량의 하락을 초래한 원인은 아닌가?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며 최소한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장기이식 병원이 감소하면 장기 획득을 위한 병원들의 경쟁도 크게 감소하게 된다. 대형병원의 경우 장기출처에 큰 변화가 없다면 장기 공급이 오히려 더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상황은 많은 대형병원들의 장기이식도 급격히 하락했다. 그러므로 문제는 장기의 공급 자체가 사라진 것이지 병원의 숫자에 달린 것이 아니다.

2007년 5월 중화장기이식학회(中華器官移植學分會) 상무위원이자 전군장기이식센터 주임인 스빙이(石炳毅)는 《과학시보(科學時報)》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국내 장기이식의 수는 2006년 사상 최고에 도달해 약 2만 건의 장기이식이 있었다. 2007년 1-5월에는 과거 같은 기간에 비해 현저히 하락했는데 주요 문제는 여전히 장기의 부족이다.”라고 했다(주 34).

《남방주말(南方周末)》 2007년 7월호에 실린 한 문장에서는 이 문제를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식수술을 담당하는 의사들은 장기공급이 갑자기 부족해진 것을 원망하고 있다.” “주즈쥔(朱志軍)은 동방장기이식센터 부주임으로 이 병원 2층에 근무하는데 아주 우울한 모습이었다. 그는 기자에게 설 이후 지금까지 약 반년이 지났지만 아시아 최대의 장기이식센터에서 모두 합해 겨우 15건의 간이식수술만 했을 뿐인데 2006년에는 1년간 모두 600여 건의 간이식 기록을 세웠다고 말했다.”(주 35)

사형수 장기의 상대적인 안정성

앞서 간단한 추산을 통해 우리는 사형수가 제공하는 장기에는 일정한 안정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2003년 이전과 2006년 이후 중국내 사형수 장기의 공급은 기본적으로 모두 6000건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사실상 이런 안정성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요인에서 비롯된다.

1)이식기술과 면역억제제가 이미 90년대 말에 성숙되어 더 이상 기술혁신에 의한 수량의 증가가 없었다.

2) 장기이식에 필요한 조직적합성 요구가 기술적인 병목요인으로 작용해 동일한 장기내원에 대해서는 일정한 안정성을 유지하게 한다.

3)중국은 장기공유네트워크가 부족하고 지방보호주의가 존재하기 때문에 보통 현지 병원과 현지 사형수간에만 장기이식이 가능하며 범위가 제한적이라 편차도 크지 않다.

4)사형수 자체는 사법체계 고유의 절차에 따라 판결 받기 때문에 ‘엄밀타격’이 있는 해를 제외하면 사형수의 수는 비교적 안정적이며 심지어 점차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5)사형수 장기를 이용하는 ‘합법성’ 및 사형수들을 가급적 사회에 공헌하게 해야 한다는 중국 사회의 분위기 때문에 장기를 이식하는 병원이 외부적인 압력을 받지 않는다.

다시 말해 사형수 장기는 상대적으로 말해 비교적 안정적인 장기공급원이다.

최고인민법원에서 사형심사 비준권을 회수한 영향

2007년 1월 1일 최고인민법원(역주: 한국의 대법원에 해당)에서 성(省)급 고급법원(한국의 고등법원에 해당)의 사형심사비준권을 회수한 이후 사형판결이 하락했다. 이것이 2007년 장기공급이 부족해진 원인이 아닌가? 물론 이런 요인도 작용했겠지만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

2008년 3월 10일 신화사의 보도에 따르면 고급법원의 사형심사비준권을 회수한 후 2007년 전국적으로 사형판결이 비준 받지 못한 비율은 겨우 15%에 불과하다(주 36). 이정도 비율이면 사형수 장기 내원에 대해 큰 영향을 끼치진 못한다.

실제 이식수량으로 보아도 이와 같다. 본문 제1부에서 ‘과거 데이터 참조’에서 인용한 《중국일보(中國日報)》의 보도에 따르면 현재(2008-2009년) 65%의 장기가 사형수에서 유래하며 지난 2년 동안 매년 약 1만 건 정도의 장기 이식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는 매년 약 6천여 건의 장기가 사형수로부터 유래했다는 의미인데 이는 기본적으로 2000-2002년 수준과 큰 차이가 없다.

때문에 2007년 장기이식의 수량이 큰 폭으로 하락한 것에는 반드시 다른 장기내원의 갑작스런 감소(하지만 완전히 소실되었다고 볼 순 없다)로 인해 조성된 것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것을 종합해보면 중국에서는 2003-2006년 갑자기 급속히 소실된 장기이식시장은 사상 유례가 없는 특수한 시장이다. 사형수 장기를 이용하는 것은 이상의 비정상적인 특징들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2007년부터 장기부족으로 인해 친척간의 생체장기이식이 다른 일종의 장기내원이 되었다. 중국 매체에서 대대적으로 이를 선전하는 것은 가족간의 기증에 의한 장기이식에 대해 중국인들의 두려움과 인식의 변화를 꾀하려는 것이다.

인민망의 보도에 따르면 동방장기이식센터에서는 2007년 84차례의 친척간 간이식수술(부분 간이식을 포함)을 진행했다(주 37). 그러나 2006년 이후 친척간 생체장기이식이 장기이식의 중요한 내원이 된 것은 본문에서 주목하고 있는 2003-2006년 장기이식시장의 ‘버섯구름’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7. 나머지 장기는 어디에서 왔는가?

만약 사형수가 제공할 수 있는 장기가 6천 케이스 가량 되고, 앞에서 살펴보았다시피 친척간 생체장기이식은 2006년 이전까지는 극히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2003-2006년 사이에 매년 1만2천 건에서 심지어 2만 건이 넘는 장기이식시장의 미친 듯한 성장을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1) 새로운 장기내원이 지녀야 할 특징

우리는 이 장기내원이 마땅히 아래와 같은 몇 가지 간단한 특징을 지녀야 한다고 본다.

1) 사람 수가 충분해 적어도 현재 사형수 장기를 이용하는 규모 정도의 장기를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2) ‘합법적’인 근거가 없어야 한다. 그래야만 갑자기 나타났다가 외부에 발각된 후 갑자기 소실될 수 있다.

3) 비록 불법이긴 하지만 참여자들이 법적인 책임을 지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 현재 정부 정책상 이들 장기공급원에 속하는 사람들을 ‘사지에 몰아넣는 것’을 용납해야 한다.

4)동시에 조직형이 일치할 확률을 높이기 위해 이들이 몇몇 지역에 집중되어 있어야 한다.

5) 마지막으로 공여자의 장기를 훔치고 살해하는 범죄행위에 대해 의사들도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고 아무런 도덕적 부담감도 없어야 한다.

(2) 새로운 장기내원: 불법으로 집중 감금된 파룬궁 수련생들

중국에서 사형수의 장기를 이용하려면 반드시 사법(司法)부문의 허가와 참여가 필요하기 때문에 병원에서 마음대로 감옥에 가서 장기를 적출할 순 없다. 하지만 사법계통 외에 중공 정부의 탄압을 받고 적대시하는 집단이 존재하고 이들이 불법으로 강제수용소에 감금되어 있으며 아울러 그 수가 많다면 이들은 생체장기창고가 되기에 가장 좋은 조건을 지닌다. 특히 특권을 지닌 군대와 무장경찰 병원에 새로운 장기의 내원을 열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장기의 내원은 무엇일까?

1999년 7월 20일 중공의 전면적인 파룬궁 박해가 시작된 후 중국에서는 파룬궁 수련생들을 불법으로 집단감금한 장소들이 여러 곳 나타났다. 파룬궁 수련생들은 장기공급원이 되기 쉬운 몇 가지 조건을 지니고 있다.

1) 사법계통에서 벗어나 있다. 많은 수련생들은 체포된 후 직접 노교소에 보내진다(노교소에 보낼 때는 법원의 심판이 필요하지 않고 공안이 직접 보낼 수 있다). 상방(上訪)에 참가한 많은 수련생들은 가족, 직장 및 지방정부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본인의 성명과 주소를 밝히지 않았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불법으로 집단 감금되었다.

2)앉아서 죽음을 기다리는 거대한 생체장기저장고가 있다는 것은 대기시간을 1-2주로 단축시켜 중국을 국제장기이식여행의 중심지로 만들 수 있다.

3)장기이식의 관건은 공급 장기의 질에 달려 있기 때문에 생체장기가 사체 장기보다 훨씬 우수하다. 이런 장기라야만 설사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고품질의 장기를 원하는 서양인 환자들의 요구에 부합할 수 있다.

4)양질의 이런 장기는 이식수술 후 환자의 생존율을 높이고 싶어하는 중국의사들의 바람을 가장 잘 만족시킬 수 있다.

사형수들은 대개 폭음, 흡연, 마약 등을 하는 것에 반해 파룬궁 수련생들은 술이나 담배를 하지 않고 나쁜 생활습관이 거의 없으며 신체가 건강하다. 특히 농촌과 작은 도시에서 상방에 참가한 많은 젊은 파룬궁 수련생들은 장기절도의 주요 대상이 되었다.

(3) 대량 실종된 파룬궁 수련생들의 행방은?

1999년 7월 장쩌민 일당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후 파룬궁 수련생들은 진실을 알리기 위한 주요 수단으로 현지 및 베이징에 있는 관련 부문을 찾아가 상방하고 진상을 알렸다. 어떤 사람들은 천안문 광장에서 현수막을 펼쳐 파룬궁 인권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을 끌고자 했다.

명혜망의 보도에 따르면 베이징 공안 내부에서 2001년 4월까지 베이징에 상방하러 왔다 체포되어 기록을 남긴 수련생만 연인원 83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여기에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수련생과 기록을 남기지 않은 사람들은 포함하지 않는다(주 38).

미 국무부에서 발표하는 2008년 종교자유보고서에서는 중국노교소에 감금된 사람들 중 파룬궁 수련생들이 절반이상을 차지해(주 39) 적어도 십만 명에 달한다고 했다.

중공의 가혹한 연좌제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중공은 상방에 참여한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아주 가혹한 연좌제를 시행했다는 점이다. 수련생 가족들을 직장에서 쫓아내거나 직장 상사가 벌을 받으며 직원 전원의 임금이나 상여금을 주지 않는데 심지어 지방정부 부문에서 책임을 지고 직장에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이렇게 하여 중공은 사실상 수련생 주변의 모든 환경을 총동원해 파룬궁 박해에 참여하게 했다.

직장에서 본래 수련생들을 동정했던 동료들도 상여금이 깎이고 수련생들을 미워하도록 선동받자 파룬궁에 대해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지방정부 부문에서는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소극적으로 대처하던 상태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파룬궁 수련생의 상방을 저지하기 위해 나섰다. 지방 공안은 베이징 신방사무실 앞에 파견되어 상방을 가로 막았고 지방정부의 ‘베이징 주재 사무실’은 각급 지방정부가 현지 대법제자들을 체포하는 파출소로 변했다.

성명과 주소를 밝히지 않은 수련생들의 대량 실종

때문에 2000년 무렵부터 상방에 참여한 많은 파룬궁 수련생들은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본인의 성명이나 주소를 밝히지 않았다. 당시 명혜망에 올라온 수련생 교류문장을 통해 보면 ‘성명과 주소를 밝히지 않는 것’은 파룬궁 수련생들이 연좌제를 저지하기 위해 널리 사용하던 방법이었다.

그렇다면 이들 수련생들은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가? 이중 많은 사람들이 실종되었다. 외부에서는 단지 그들이 모처에 집단으로 감금되어 있음을 알뿐이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이런 집단 감금은 대규모 생체장기적출을 위한 좋은 조건을 만들어준 셈이다.

《피로 얼룩진 장기적출(血腥的器官摘取)》이란 책의 저자인 데이빗 메이터스와 데이빗 킬고어는 세계 각지에서 중공에 의해 불법으로 감금당했던 많은 파룬궁 수련생들을 인터뷰했다. 이들 수련생들은 간수소에서 성명과 주소를 밝히지 않은 수많은 파룬궁 수련생들을 보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 수련생들이 최후에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동시에 이들 실종된 수련생들의 가족들도 자신의 가족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며 체포되었는지 혹은 어디에 감금되어 있는지조차 모른다. 이런 엄혹한 현실 속에서 가족을 찾고자 해도 어디로 가서 말해야 할 지 알 수 없다.

현재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궈궈팅(郭國汀) 변호사는 “내가 맡았던 상하이의 황슝(黃雄) 사건이 바로 이랬습니다. 황슝은 상하이 자퉁(交通)대학 기숙사에서 실종되었으며 아무런 소식도 없었습니다. 우리도 여러 곳을 조사해봤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라고 했다.

명혜망의 보도에 따르면 한 파룬궁 수련생이 2001년 초 베이징 간수소에서 성명을 밝히지 않은 수많은 파룬궁 수련생들이 동북지역으로 옮겨진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녀는 이렇게 증언했다.

“2000년 12월 20일 이후 간수소에 보내진 수련생들이 갑자기 늘어나 매일 수십 명에서 심지어 백 명이 넘을 때도 있었는데 성명을 밝히지 않으면 번호로 불렀다. 며칠 지나지 않아 감옥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없게 되자 경찰은 매일 수련생들을 심문했고 전기 충격기 등으로 고문을 가하거나 다른 죄수들을 시켜 수련생들을 구타하게 했다. 하지만 이렇게 해도 대부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나중에는 경찰도 더 이상 묻지 않게 되었고 당신들이 말하지 않으면 당신들을 말하게 하는 곳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과연 2001년 연초부터 이틀 간격으로 새벽마다 대형버스를 이용해 사람을 한 무리씩 보냈다. 우리 감방에는 18, 9세가량의 산둥에서 온 아가씨가 있었는데 K28이라 불렸다. 어느 날 새벽 호명이 잘못 되어 버스에 올라탔다가 되돌아왔는데 그녀는 다른 수련생들이 모두 동북으로 끌려갔다고 말했다. 나중에는 경찰도 속이지 않고 모두 동북으로 보냈다고 말했다. 이 기간에 베이징에서 동북으로 보내진 사람이 아주 많았다.”(주 40).

‘비밀 강제수용소’의 비밀이 벗겨지다

중국 검찰원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최근 필자에게 중공의 노교소와 감옥에서는 장기간 성명을 밝히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법적 수속을 밟을 수 없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고 알려주었다.

그렇다면 이들 실종된 수련생들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2006년 3월 흑막을 아는 인사가 랴오닝성 쑤자툰(蘇家屯)사건을 폭로하면서 감춰졌던 비밀이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수천 명의 파룬궁 수련생들이 쑤자툰에 집단 감금되어 산채로 장기를 적출당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뒤이어 언론에 ‘강제수용소’라는 단어가 등장해 대량의 파룬궁 수련생들을 불법 감금한 곳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성명과 주소를 밝히지 않은 수련생들이 강제수용소로 보내진 외에 간수소와 노교소에서도 아주 확고하고 전향을 거부한 일부 수련생들에 대해 아무도 알 수 없는 곳으로 옮겼다는 일부 수련생들의 증언이 있었다. 이런 집단 감금지역의 존재는 또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군부가 장악한 ‘강제수용소’

사법계통에서 수용할 수 없는 성명과 주소를 밝히지 않은 소위 ‘죄수’들은 중공의 전통에 따라 군대의 손에 넘겨졌다. 중공 내부의 인사가 전한 소식을 통해서도 이 점을 입증할 수 있는데 ‘강제수용소’는 군사감시관리구역과 관련이 있다.

2006년 3월 생체장기적출이 폭로된 후 선양 군구(瀋陽軍區) 후근부(後勤部) 소속의 한 노군의관이 대기원 사이트에 투고한 내용에 따르면 전국 각 지역에도 유사한 곳이 수십 곳 있다고 한다. 그는 또 “해방군 군사시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장기이식관리계통은 군대이다. 그 의미는 바로 이와 유사한 일을 관리하는 기구의 핵심이 군부라는 것이다. 앞으로 많은 군사시설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으며 그것이 진정한 강제수용소이다.”(주 41)라고 했다.

우리는 아래에서 군대병원이 장기를 획득하는데 아주 유리한 점이 있으며 이 역시 군대가 장기내원을 장악하고 있는 것과 떼어놓을 수 없음을 논할 것이다.

(4) 감금된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혈액검사를 실시한 목적?

중공의 일부 감옥에서는 소위 ‘죄수들에 대한 정기신체검사’ 제도를 만들었다. 하지만 실제상 내막을 들여다보면 일반 수감자들과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검사 항목이 서로 달랐다. 2004년 상하이 티란차오(提籃橋)감옥의 보도에 따르면 이 감옥 신체검사의 주 항목은 ‘혈압, 심폐청진, 간장과 비장 촉진 및 타진’ 등으로 평균 약 60위안의 비용이 소요된다고 한다(주 42). 이를 보면 파룬궁 수련생들과 달리 일반 수감자들에 대한 혈액검사는 일반적인 검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혈액검사는 장기적출에 필수불가결한 선결 조건이다.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NTDTV가 2009년 7월 제작한 《생사지간(生死之間)》이란 프로그램에서는 수명의 파룬궁 수련생들을 인터뷰해 그들이 감금된 기간에 혈액검사를 받았다고 제기했다.

현재 캐나다 토론토에 거주하는 간나(甘娜)는 베이징 출신으로 일찍이 수도비행장 세관에서 일했다. 그녀는 2001년 베이징 신안(新安) 여자 노교소에 세 번째로 감금되었을 때 혈액검사와 X레이, 심전도 및 눈 검사 등을 받은 적이 있다. 간나는 “당시 나는 아주 이상하게 느꼈습니다. 노교소 경찰은 우리를 아예 사람으로 간주하지도 않는데 우리에게 이런 전면적인 신체검사를 해주었으니까요.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전(前) 대외경제무역부 처장(處長) 장이지(張亦潔)는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7차례에 걸쳐 감금되었다. 마지막은 2001년 6월이었는데 베이징 여자 노교소에 감금되었다. 그녀는 “원래 우리 부서에서는 6개월마다 한 번씩 간부들에 대한 신체검사를 진행했는데 보통 일반적인 간기능 검사 등을 하기 위해 소량의 피를 뽑았습니다. 하지만 노교소에서 피를 뽑을 때는 그 양이 평소보다 훨씬 많은 것에 놀랐는데 저는 당시 왜 이렇게 많은 피를 뽑느냐고 말했습니다.”라고 했다.

쩌우위윈(鄒玉韻)은 광저우(廣州) 파룬궁 수련생이다. 그녀는 일찍이 2000년에 광저우 차터우(槎頭) 여자노교소에 감금되어 불법으로 2년 10개월 동안 감금된 적이 있다. 나중에 또 체포되어 광저우 5개 세뇌반을 전전하며 박해를 받았다. 그녀는 “마지막에 갔던 톈허구(天河區) 세뇌반에서 의사가 나를 병원에 데려가 뇌파 검사를 포함한 아주 자세한 검사를 했습니다. 물론 혈액검사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라고 증언했다.

《피로 얼룩진 장기적출》에서도 혈액채취 문제에 대해 중공의 불법 감금을 당한 적이 있는 파룬궁 수련생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이런 혈액채취와 신체검사는 확실히 당사자인 파룬궁 수련생을 아주 당혹스럽게 했다. 파룬궁 수련생들은 감금 기간에 각종 비인간적인 시달림과 대우, 강제전향, ‘삼서’ 혹은 ‘오서(소위 보증서 및 회개서 등)’ 등의 핍박을 당한다.

수련생들의 전향률은 직접적인 정치업적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심한 고문은 다반사고 심지어 고문으로 사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무자비한 중공이 도리어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해 또 보편적이며 체계적으로 혈액을 채취하고 신체검사를 한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파룬궁 수련생들은 자신들에 대한 혈액검사가 다른 일반 수감자들에게도 모두 시행된 조치가 아니라 종종 파룬궁 수련생들을 전문적으로 겨냥해서 시행되었다고 제기했다. 즉, 수련생들에게 신체검사를 할 때 다른 수감자들에게는 신체검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욱 의심스러운 것은 당신에게 정말 무슨 병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신체검사를 하는 목적이 수검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의 신체에 무슨 병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그때는 누구도 이런 검사가 장기적출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단지 노교소, 감옥에서 혈액을 검사한 상황이며 다른 곳으로 옮겨져 집단으로 감금된 대량의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어떻게 혈액을 채취 당했고 어떤 처지에 있는지 모르고 있다.

(5) ‘파룬궁 수련생’ : 거대한 예비 장기창고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사형수는 ‘일회성 소규모 자원’이다. 사형수는 이식에 적합한 장기인지 확인할 기회가 단 한번밖에 없으며 이때 사용되지 못하면 사람이 죽어버린다. 동시에 사형수는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처형되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제한’이 있다. 따라서 장기공유체계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하에서 사형수의 조직형은 ‘소규모 형태’에 속한다.

불법 감금된 파룬궁 수련생들은 이와 다르다. 이번에 조직형이 일치하지 않으면 남겨뒀다가 다음에 다른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는 ‘저장형 자원’이다. 대량의 파룬궁 수련생들은 또 집단감금(이렇게 감금하는 곳이 중국에는 여러 곳 있다)되어 있기 때문에 ‘대규모 자원’이다. 그러므로 장기공급원으로서 말하자면 공체의 수량과 조직형이 일치할 확률이 크게 높아진다.

우리가 앞서 언급한 중국 장기이식시장의 여러 가지 특수성들은 바로 파룬궁 수련생 생체장기적출을 해석하는데 부합한다.

 
그림 설명: ‘파룬궁수련생 생체장기적출’ 모델. 집단 감금된 대량의 파룬궁 수련생들 중에서 환자에 적당한 조직형을 찾아 장기를 적출할 수 있으며 만약 한 번에 안 되면 다음에 또 활용할 수 있다.

(6) 파룬궁 수련생 장기적출과정에는 ‘법원’이 없다

사형수 장기를 이용하는 과정 중에 가장 중요한 고리가 ‘법원(法院)’이었다면 파룬궁 수련생 생체장기적출과정 중에는 ‘법원’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수많은 파룬궁 수련생들이 사법적인 심판을 거치지 않고 직접 노교소로 보내지거나 혹은 강제수용소에 감금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중공은 또 변호사들이 파룬궁 수련생을 위해 변호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통지했다. 이는 객관적으로 정상적인 사법체계를 밖으로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생체장기적출은 ‘법원’을 우회해 병원과 불법 감금된 장소 간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었으며 이는 몹시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다.

1)잠재적으로 장기적출이 가능한 거대한 장기저장고를 만들기 쉽다. 수많은 파룬궁 수련생들이 상방하다 불법 감금되면 공안에서는 사법적인 절차를 따르지 않고 직접 노교소나 강제수용소로 보낼 수 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게 만들었다.

2) ‘법원’이 사라지자 병원이나 장기매매 브로커가 직접 파룬궁 수련생이 감금된 곳(간수소, 감옥 또는 강제수용소)과 교섭해 일련의 법률적 형식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또 전통적으로 이용해왔던 형장에서 사형수의 장기를 적출하던 불편한 점들도 사라져 객관적인 효율이 크게 증가했다.

3) 뒷걱정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법원의 형식을 거칠 경우 만약 사실이 폭로된다면 외부적인 제약이나 가족들의 반발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법원을 거치지 않게 되자 대부분의 파룬궁 수련생들이 실종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염려가 사라진다. 외부에서도 어떻게 이들을 도와주어야할 지 모르기 때문에 이들은 함부로 다룰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여기서 한 가지 설명이 필요한 것이 있다. ‘법원’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는 파룬궁 박해 중에서 정상적인 법률절차를 통한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지 사법계통이 생체장기적출과 무관하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에 근거해 파룬궁 수련생 생체장기적출 과정을 도시하면 기본적으로 아래와 같다.

 
그림설명: 파룬궁 수련생 생체장기적출 순서도. 좌측 위부터 순서대로 신앙 견지→불법체포→노교소, 간수소, 감옥 및 집단강제수용소→혈액검사→기다림→생체장기적출.

(7) 파룬궁 수련생 생체장기적출은 ‘군부에서 주도’

군부에서 장기의 내원을 장악하고 있고 장기이식에 참여한 병원들도 군대병원이거나 혹은 군대와 관련된 장기이식병원이 중심이 된다는 점이 파룬궁 수련생 생체장기적출의 최대 특징이다. 군대는 기밀이 잘 유지되는 까닭에 외부에서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기가 더욱 어렵다.

중공은 해방군 총병원, 각 군의(軍醫)대학 부속병원, 군구(軍區) 및 군병종(軍兵種) 총병원 등을 포함한 방대한 군대위생계통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장기이식분야는 중공 군대병원이 가장 활약을 펼치는 영역의 하나이다.

해방군 총후근부 위생부 부장이자 전 제2군의대학 학장 장옌링(張雁靈)은 2008년 12월 신화 사이트에서 “1978년 전군(全軍)에서 신장이식이 가능한 병원은 겨우 3곳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간, 신장, 심장, 폐장 이식은 물론 여러 장기를 동시에 이식할 수 있는 병원만 이미 40곳에 달하며 이는 전국 총수의 4분의 1에 해당한다.”라고 말했다(주 43).

군병원의 이식수술 급증은 충분한 장기공급이 주요 원인

 

그림설명: 2009년 7월 18일 베이징 샹산(香山)호텔에서 거행된 해방군 309병원 주최의 ‘2009년 전군장기이식학술연구대회’ 장면. 스빙이가 사회를 맡았고 총참모부 위생국장과 총후근부 위생부 관리들이 참석해 연설했다.

《삼련생활주간》 2006년 4월호 보도에는 “중국에서는 98%의 이식 장기가 비위생부 계통에 의해 통제된다.”라고 했다. 사실상 사형수 장기를 이용하는 것에서 파룬궁 수련생 생체장기적출에 이르기까지 무장경찰병원을 포함한 군병원이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 이식 수술을 하는 일부 대규모 비(非)군사 병원에서도 대개는 수술을 주도하는 의사가 군병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거나 심지어 군대나 무장경찰 병원의 의사가 직접 수술을 집도한다.

군병원, 무장경찰병원과 연해 병원이 생체장기적출의 중심

원래 톈진시 제1중심병원 장기이식센터은 수년간 신속한 발전을 거쳐 ‘동방장기이식센터’로 개명해 명실 공히 아시아 최대의 장기이식센터가 되었다. 이 센터 주임이자 설립자인 선중양(沈中陽)은 2003년 베이징 무장경찰 총병원에 ‘무장경찰부대 간이식연구소’를 설립해 소장을 맡았다. 아울러 무장경찰부대와 밀접한 연계를 맺었는데 이것이 바로 선중양이 책임진 몇몇 장기이식단위에서 새로운 장기 획득이 유리하게 된 중요한 요소이다.

대륙 장기이식계의 스타이자 늘 언론의 조명을 받는 또 한 명의 인물이 있으니 바로 스빙이다. 그는 전군(全軍)장기이식센터 주임이다. 전군장기이식센터는 해방군 총참모부 총병원(해방군 총병원 제2부속병원 또는 해방군 제309병원이라고도 한다)에 설치 되어 있다.

《피로 얼룩진 장기적출》이란 책에서는 중국에 가서 장기이식수술을 받은 일부 환자들을 인터뷰한 기록이 나온다. 이들 환자들의 수술을 집도한 의사들은 대부분 군대를 배경으로 한다. 한 환자는 상하이시 제1인민병원에 입원했는데 주치의인 탄젠밍(譚建明)은 난징 군구 푸저우(福州) 총병원(전 93병원) 주임의사이기도 했다. 탄젠밍은 또 난징 군구 상하이 주재 중심병원(해방군 제85병원)에서도 수술을 맡았다.

이 책에서 언급한 또 다른 환자는 일단 상하이 화산(華山)병원[푸단(複旦) 대학 부속병원]에서 간이식수술을 받을 준비를 했으며 그를 맞은 의사는 이 병원 간센터 부주임인 첸젠민(錢建民)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며칠 후 첸젠민이 적당한 장기가 없다면서 상하이 장정(長征)병원으로 옮기도록 했다. 그곳에서는 장기를 구하기가 쉽다는 설명과 함께. 상하이 장정병원이란 바로 제2군의대학 부속병원을 말한다. 환자가 장정병원으로 옮긴 후 병원에서는 입원 당일 적당한 간을 찾아낼 수 있었다.

《피로 얼룩진 장기적출》에는 또 광둥성 둥관(東莞)시 타이핑(太平)인민병원에서 신장이식수술을 받았다는 환자가 있다. 그의 주치의는 가오웨이(高偉)였다. 타이핑병원은 군병원이 아닌 일반병원이었다. 하지만 주치의인 가오웨이는 제1군의대학 주장(珠江)군의대학병원 신장이식과 의사이자 광둥성 선전 무장경찰변방병원 의사를 겸직하고 있었다.

희망지성 국제라디오방송에서는 2009년 9월 인터뷰한 광저우화교병원(廣州華僑醫院)에서 장기이식수술을 돕던 마취과 의사 펑쉐메이(彭雪梅)를 인터뷰했다. 펑쉐메이는 장기를 얻는 루트가 아주 다양하다고 폭로했다. “대개는 남방(南方)병원에서 신장을 가져온 후 우리 병원에도 보내줍니다. 일부 실마리는 말해줄 수 있지만 이것을 공개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입니다.” 여기서 남방병원이란 남방의과대학 제1부속병원을 말하며 남방의과대학의 전신은 해방군 제1군의대학으로 2004년에 광둥성으로 이전되었다.

중국 위생부에서는 2008년 8월 ‘신장이식 과학등기관리체계(CSRKT,www.csrkt.org)’라는 자료센터를 만들었는데 바로 스빙이가 소재한 해방군 총병원 제1부속병원에서 책임지고 있다. 이는 군대병원이 중국대륙 장기이식 영역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잘 보여준다.

국제적으로 중국 장기이식여행열풍이 불 때 연해 도시의 대형병원들은 조건이 아주 좋아 외국인 환자를 초빙하기가 쉬웠다. 이들 병원은 광범위한 장기내원을 개척하기 위해 군대 또는 군대의 배경을 지닌 병원과 연계를 맺었고 이것이 바로 이들 병원에서 장기매매 브로커가 등장한 이유이다.

외부에서는 군대가 어떻게 장기를 적출하고 장기를 분배하는지 잘 알 수 없다. 하지만 군대, 무장경찰병원이 장기이식분야에서 크게 활약하는 것과 장기를 구하는 측면에서 크게 유리한 점은 중공 군부가 강제수용소를 장악하고 장기내원을 통제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8) 다른 장기내원의 문제

‘불법 신장매매 광고’

장기 내원을 말하면 어떤 독자들은 아마 전봇대에 붙은 ‘신장매매 광고’를 떠올릴 것이다. 생활의 어려움 때문에 자신의 장기를 판매하는 이런 것이 수많은 장기의 내원이 될 수 있을까?

우선 이런 식의 장기매매는 법률적으로 명백히 금지된 불법이며 일단 발각되기만 하면 처벌을 받는다. 신장을 매매하는 사람은 법의 허점을 파고드는데 바로 친척 사이에 생체장기이식수술을 할 수 있다는 조항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신장을 매매하려면 환자의 직계가족이라고 위조해야 한다. 물론 이 자체로 위험이 따른다.

돈을 벌기 위해 신장매매광고를 하는 것은 중국 도처에 널리 퍼져 있다. 2004년 《신문신보(新聞晨報)》에 실린 한편의 문장에서는 신장매매광고가 가장 많은 곳을 보여주었는데 바로 병원 화장실이다. 한 간호사는 기자에게 “방법이 없습니다. 도처에 모두 신장을 기증하고 신장을 매매한다는 광고입니다. 근원을 없앨 수 없으니 그냥 광고지를 긁어내 떼어버릴 뿐입니다.”라고 말했다.(주 44)

하지만 신장매개광고가 많은 것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장을 판매하는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사실상 장기 조직형이 일치하지 않을 확률이 낮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전문가들은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났을 때 조직형이 일치할 확률은 매우 낮으며 쌍방이 병원에서 미리 검사를 받아 사전에 충분한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을 제외하고도 또 하나의 관문이 있다. 바로 어떤 의사도 직접 이런 수술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쌍방이 모두 법을 어기기 때문이다.”(주 45)

어떤 의사는 사형수의 장기는 가격이 아주 저렴해서 몇 분 만에 사라지며 공여자가 돈을 요구하지도 않고 장기를 뗀 후 공여자의 건강에 대해서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파룬궁 수련생 생체장기적출도 이에 해당한다)고 했다.

하지만 신장을 판매하는 사람으로부터 장기를 적출하자면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신장 매매에는 보통 10여만-20만 위안의 돈을 요구하며 또 공여자의 생명안전을 책임져야 하고 며칠간 입원시켜 회복해야 하는 것 등이 필요하다.

중국의과대학 제1부속병원 장기이식과 부교수 우강(吳剛)은 2004년 《화상신보(華商晨報)》와의 인터뷰에서 “단지 불법으로 낯선 사람의 신장을 매매한다는 광고를 내는 것만으로도 패가망신할 수 있다!”고 말했다(주 46).

물론 신장을 매매하는 현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며 이런 방법으로 신장을 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대규모 장기공급원이 될 수는 없다. 우리가 앞서 언급한 대로 심지어 중국정부도 부인하지 않듯이 중국 장기이식의 발전은 상당부분 장기이식시장의 거대한 수익과 관련이 있다. 만약 신장을 사서 수술에 사용한다면 원가가 비싸지기 때문에 병원에서 얻는 수입이 크게 줄어든다.

그러므로 신장매매 광고가 아무리 횡행할지라도 신장매매로 중국장기이식시장의 버섯구름을 설명할 수는 없다. 우강은 앞서 《화상신보(華商晨報)》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현재 선양시에서는 신장이 충분하기 때문에 그런 신장매매광고는 거의 시장이 없을 것이다!”

우강이 근무하는 중국의과대학 제1부속병원의 국제장기이식 인터넷지원센터 사이트에서는 이식용 신장을 구하는데 빠르면 1주, 늦어도 한 달을 넘지 않는다고 공개했다. 만약 수술이 실패할 경우 1주일 내에 2차 수술을 할 수 있으며 아울러 간 등 다른 장기의 이식도 1달을 넘지 않는다(부록 7을 볼 것).

그렇다면 이 많은 장기는 대체 어디에서 왔단 말인가? 분명한 것은 전봇대와 병원 화장실에 붙은 신장매매광고는 아니라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여러분이 보았다시피 2003-2006년 중국 장기이식시장의 폭발적인 발전 중에는 간이식의 급속한 증가도 중요한 요인이다. 하지만 간을 매매한다는 광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2007년 이후 파룬궁 수련생 생체장기적출이란 대규모 장기공급원이 사라지거나 혹은 감소하자 새로운 장기내원이 필요해졌다. 정부에서도 대대적으로 친척간의 장기이식을 선전했다. 이는 친척관계를 날조하는데 편리를 제공했고 지하에서 음성적으로 신장을 매매하는 것이 더욱 창궐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것은 별개의 문제이며 본문에서 관심을 갖는 것은 2003-2006년 장기이식시장의 버섯구름이다.

이식병원의 급증이 이식 장기의 수량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아마 이 기간에 이식수술을 하는 병원이 크게 증가한 것, 특히 3갑(甲)병원을 평가하는데 반드시 일정 수의 장기이식수술을 해야 한다는 지표가 있었기 때문에 장기수량이 크게 증가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장기이식의 가장 큰 문제는 공급장기의 부족에 있기 때문이다.

이식병원이 적을 때에도 장기가 부족했기 때문에 병원이 많아진다고 해도 단지 공급되는 장기가 분산될 뿐이지 더 많은 장기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아울러 우리가 앞서 추산공식을 통해 계산했듯이 사형수가 제공할 수 있는 장기의 총량은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었기 때문에 병원이 아무리 많다한들 장기공급이 늘어날 수는 없다.

참고문헌:

27. “美國衛生部的數據表明,肝的平均等待時間是兩年,腎的平均等待時間是三年”,來源: 美國衛生部,http://www.organdonor.gov/transplantation/matching_process.htm

28. “數萬外國人赴華移植器官調查, 大陸成全球器官移植新興中心”, 記者 諶彥輝,《鳳凰周刊》,2006年第5期,來源: http://news.phoenixtv.com/phoenixtv/83932384042418176/20060222/751049.shtml

29. “移植中心是我部重點效益科室”,《解放軍第309醫院器官移植中心簡介》,該中心簡介已刪除相關內容,但在“中國事務論壇”上被保留下來, http://www.chinaaffairs.org/gb/detail.asp?id=61744,另一個來源: http://www.aibang.com/detail/828118414-695423180

30. “急劇膨脹的業務,讓東方器官移植中心獲得巨額營收。據此前媒體報導,僅肝移植一項,一年即可爲中心帶來至少1億元的收入”,中國叫停“器官移植旅遊”, 《南方周末》,2007-07-18, 來源: http://www.infzm.com/content/9556

31. “短短幾年間,更有數萬外國人赴華移植器官,掀起了“器官移植旅遊”,天津調查:器官移植的“亞洲第一”,王鴻諒,《三聯生活周刊》,2004-09-22,來源: http://www.lifeweek.com.cn/2004-09-23/000019783.shtml

32. “中國的供體短缺其實比國外好了太多”,天津調查:器官移植的“亞洲第一”,王鴻諒,《三聯生活周刊》,2004-09-22,來源:http://www.lifeweek.com.cn/2004-09-23/000019783.shtml

33. “電話錄音: 中國大陸醫院和器官移植中心涉嫌提供活體法輪功學員器官的證據”,追查迫害法輪功國際組織,來源: http://www.zhuichaguoji.org/cn/index2.php?option=content&task=view&id=789&pop=1&page=0

34. “2007 年1~5月份,與去年同期相比卻出現明顯的下降,主要問題仍然是供體短缺”,供體短缺是制約器官移植事業發展的瓶頸,《科學時報》,來源: http://www.sciencenet.cn/html/showsbnews1.aspx?id=1820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