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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을 말하다

글 / 구양명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사실을 말하면 어떤 사람은 박해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중공의 사악에 대해서도 많이 말하려(혹은 감히 말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파룬궁에 대해 의논을 하고 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저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이리하여 중공이 선량한 사람을 박해하는 것에 대해 뒷받침을 한다. 이것은 전형적인 배역을 잘못 놓은 현상이다.

정치에 참여하였는지, 계속 수련할것인지 그것은 파룬궁수련생 자신의 일이다. 박해를 중지하기 위해 중공을 폭로하고 진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정치를 하는 것인지는 그 자신이 가늠해야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고 수련을 포기했다면 그것도 자신이 선택한 하나의 과정이다. 정법수련은 원래부터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자유롭다. 방관자로서 매 사람에 대해 말하면, 주목해야 할 것은 응당 “진, 선, 인”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이다. 박해받은 파룬궁수련생이 도대체 다른 사람를 상하게 하였는가? “진, 선, 인”을 등진 것은 문제의 가장 관건적인 것을 홀시한 것과 같다.

설사 박해받은 사람이 정말로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이 문제가 범죄에 해당하는지? 응당 파룬궁에 죄를 덮어씌워야 하는지? 정말로 모든 파룬궁수련생이 모두 같은 죄가 있는지? 사람의 목숨이 관건이다. 이런 문제들은 모두 홀시할 수 없다.

사람들은 중공이 도리를 따지지 않고 박해할 때, 그런 파룬궁에 대한 질책은 명분이 없는 것이다. 여러분은 알고 있다. 매체를 꾸리는 것은 위법이 아니다. 정치를 하는 것도 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다.(파룬궁수련생은 정치를 하기 위해 “정치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회의 법률환경 안에서 파룬궁수련생이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은 모두 파룬궁수련생 자신의 일이다.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찬동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 만약 당신이 좋아하지 않거나 혹은 그다지 이해하지 못하기에 중공이 제멋대로 박해하는 것을 용납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공정한 이치인가? 무엇을 보고 양지(良知)라고 하는가?

중화민족은 좋은 미래를 갖고 있다. 이것은 중공에서 온 것이 아니라 중국사람 자신의 선택에서 온 것이다. 말하자면 목전에 일부분 중국사람의 생활환경이 개선된 것은 중국사람 자신이 조성한 것이다. 만약 꼭 중공과 무슨 관련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중공이 중국사람에 대한 절대적인 압제를 잃었기 때문에 조성된 것이다. 터놓고 말하면 “진, 선, 인”을 신앙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이 세계에 “진(眞), 선(善), 인(忍)”이 더 있으면 “가(假,가짜), 악(惡), 투(鬪,폭력)”가 더 적어진다. “가(假,가짜), 악(惡), 투(鬪,폭력)”가 횡횡하는 것은 어느 지역에서나 어느 사회에서나 모두 치명적인 해로움이다. 파룬궁이 중공의 박해를 받았는지 여부, 이것은 사람들이 반드시 주목해야 할 일이다. 어떻게 파룬궁을 도와 이번 박해를 제지하는가 하는 이것이야말로 양지(良知)를 갖춘 사람들이 반드시 가서 해야 하는 것이다. 파룬궁의 이론을 이해하는가 이해하지 못하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수련의 이치는 원래부터 대중화된 것이 아니다. 오직 진수자만이 수련의 내포를 이해한다.

헌법규정에는 신앙의 자유가 있다. 반드시 먼저 파룬궁의 이론을 인정해야만 이번 박해를 반대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막론하고 바른 것과 사악한 것을 분별하지 않으면 그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든 모두 해(害)가 된다. 양지(良知)는 고귀하다.

중공이 승인하든 승인하지 않든, 자신과 다른 사람의 양지를 수호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매 사람이 해야 하는 중요한 배역이다.

문장발표 : 2008년 7월 2일
문장분류 : [수련자평론]
원문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8/7/2/18133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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