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산둥대법제자
[명혜망 2005년 10월29일] 많은 사람들은 파룬궁에 대하여 알지 못하여 모두 우리가 부모에 대해 효도하지 않고 집식구를 관심하지 않는 줄로 여기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나와 이야기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똑똑히 알게 하기 위해 오늘 대법제자의 각도에서 부모 효도에 관한 견해를 말해보고자 한다.
부모는 자식을 키워준 은혜가 있다. 그리하여 자식들은 부모에게 효도를 해야 한다. 이는 천경지의로서 또한 사람으로서의 기본 수양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느끼건대 “효”는 전통적인 이념에서 말한다고 본다. 만일 누가 다른 사람의 돈을 빼앗아 그것으로 부모에게 생일케익을 사다 드렸거나 혹은 누가 거액의 돈을 탐오하여 그것으로 부모들로 하여금 부유한 생활을 누리게 했다면 이는 진정한 효도라고 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도리어 부모의 교육이 실패했음을 설명한다. 더욱 슬픈 것은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이런 자식을 좋아하고 가는 곳마다 그 자식의 ‘효성’에 대해 말하지만 돈의 내원에 대해서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 말한다 하더라도 이것은 자식의 재간이라고 여긴다. 또 어떤 부모들은 내 자식은 왜 이런 재간이 없느냐고 원망한다. 지금 이런 일들은 많고도 많다.
옛 사람들이 “천지군친사(天地君亲師)”를 말하고 군은 하늘의 아들이라고 자칭하였다. 오늘 일부 지역에는 아직도 이러한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데 결혼할 때 첫번째로 하늘과 땅에 절을 올리고 두번째 절은 고당(高堂)에 하는 것이지 첫번째 절을 고당(高堂)에 하고 두번째로 하늘과 땅에 올리지 않는다. 서양에서의 결혼은 예배당에 가서 하고 주님께서 그들의 결혼의 증인이 되어주길 희망한다. 여기서 볼수 있는 즉 사람이 부모에 대한 효도는 원칙이 없는 것이 아니다. 효도를 한다고 하여 이 모든 것의 위에 강림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무엇이 두번째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사람들은 늘 큰 집을 위해 작은 집을 버리고 더욱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버린다고 말한다. 어떤 때는 그가 자신의 이익을 버리고 싶지 않지만 외래의 불공평과 기타 요소의 교란과 제약으로 말미암아 어쩔수 없이 자신의 이익을 버려야 할 때가 있다. 악비의 모친이 글자를 새긴 이야기와 대우가 물을 다스리면서 세번 제집 문앞을 지나갔지만 집에 들어가지 않은 이야기 등등의 좋은 이야기들에서 이러한 도리를 지키지 않는 것이 없었다. 만약 사람마다 사고하는 문제의 기점을 자기집 중심으로 한다면 ‘대공무사’ ‘자신을 잊고 남을 위하다’ ‘죽더라도 의리를 지킨다’는 말들은 모두 부정적인 단어가 되고 만다.
실제상 하늘과 땅을 존경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어떻게 효도하고 어떻게 부모를 관심하고 사랑할 것인가를 더 잘 알수 있다. 오직 극히 비열한 인간만이 천지와 하늘 사이에서 선택할 때 믿음과 의를 버리고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는 일을 한다.
이전에 기독교가 로마제국에 의해 300년 동안 탄압을 받았는데 권력자들은 기독교도들에게 많고 많은 요언들을 날조하여 그것을 탄압의 구실로 삼았다. 그러나 기독교 신자들은 세상을 속이는 거짓말과 잔인무도한 위협 앞에서도 정의를 위해 주저없이 나아갔고 무수한 사람들이 시달려 죽었다. 불에 태워져 죽거나 사자에게 먹힐 위험이 있어도 태연자약하였는 바, 그 뛰어난 강철같은 의지와 주님에 대한 성실한 믿음은 천지를 감동시켰다. 또한 내가 이 한 단락을 쓰고 있을 때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나는 참으로 그들에게 탄복한다. 지금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예수의 신도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다지 믿기지 않는다. 만약 어떤 사람이 정말로 그의 가슴에 칼을 대고 네가 정말로 예수의 신도냐고 묻는다면 그 신자는 그의 가족들을 생각했을 수 있고 가족으로 인해 수치스러운 반역자가 되었을 수도 있다. 당신에게 부모가 있게 된 것도 하늘이 주신 것인데 정과 사의 겨룸에서 천지 양심을 져버린다면 천지는 당신에게 주었던 행복을 걷어갈 것이다. 본래 당신의 생명은 예전에 존재하지 않았으니 그럼 또 이전의 존재하지 않음으로 회복시키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그때 강대한 노마제국이 4차례 대온역으로 인하여 멸망의 길로 나아간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오로지 천리에 순응하여 하늘과 땅을 존경하는 사람만이 행복한 미래가 있고 하늘을 거슬러 행하는 것은 오로지 역사에 의해 도태될 수 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위험은 무섭지만 위험을 보지 못하는 것이 더욱 무서운 것이다 라고 말한다. 아울러 역사는 늘 또 끊임없이 중복하고 있다…
어느날 나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우리는 지금 고생스럽지만 이후에 당신들은 저를 따라 복을 누릴 것입니다.” 어머니는 이 말에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어 주었고 격동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때가 되면 나는 거리에 나가서 너에게 북과 쟁이를 두드려 줄 것이다.”
문장완성 : 2005년 10월27일
문장분류 : [시사평론]
원문위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5/10/29/11333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