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칭미오
【명혜망】요즘 사이트에서 중국의 민주와 법치를 걱정하는 일부 친구들이 파룬궁에 대해 의혹을 가진 것을 보았다. 이 친구들은 모두 중공의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반대하고 있는 즉, 이 부분에 대해 나는 깊은 사의를 표한다. 본문은 단지 일부 친구들의 의혹에 대해 나 개인의 생각을 말하는 것일 뿐이며 여러분과 함께 탐구 토론하고 싶다.
1. 타이완의 파룬궁을 예로 들면
타이완과 중국 대륙은 같은 중화문화권에 속하며 현재 이미 민주사회로 진입한 상태이다. 타이완에는 파룬궁수련생들이 무척 많다. 그들과 사회의 관계는 매우 조화롭다. 그들은 전에 중학교 초등학교 교사들에게 파룬궁을 소개한 적이 있고 또한 감옥의 재소자들에게도 파룬궁을 소개하였으며 각 여러 대학에도 자신들의 단체가 있다. 파룬궁 수련단체와 정부는 어떠한 충돌도 발생하지 않았고 또 기타 정치 및 종교단체와도 어떠한 충돌이 없었다. 또한 매스컴과도 충돌이 없었으며 현지의 법률과도 어떠한 충돌이 없었다.
타이완의 파룬궁수련자들 중에는 노동자계층도 있고 또 상인, 각 분야별 전문가와 교수 등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파룬궁단체는 종래로 타이완의 정당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다. 대선 기간에 수련자 개인은 자신의 선택이 있을 수 있으나 파룬궁단체는 전혀 정치편향이 없었다. 통독(통일과 독립)제에 대해 파룬궁단체는 개입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에서 장래에 민주사회로 들어가게 될 중국에서의 파룬궁의 존재정황은 현재 타이완에서의 파룬궁의 존재정황과 비슷할 것이라고 믿는다. 사회, 정권, 그리고 기타 단체와 서로 양성적으로 활동하며 서로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
2. 법치 존중
파룬궁은 타이완, 유럽, 미국, 호주 등 법치사회에서 언제나 현지 그 나라의 법치를 존중하였고 현지 그 나라의 경찰들과 상호 존중하였는 바, 파룬궁단체는 민주사회의 법치를 절대적으로 존중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법치사회에서는 국민 모두가 충분한 신앙, 언론, 집회의 권리가 있기 때문에 파룬궁수련생은 매스컴 창간에 참여할 수 있고 합법적으로 집회에서 행진할 수 있다. 만약 정부 고위관리가 그들의 권리를 제한 한다면 그들은 법률경로를 통하여 자신들의 권리를 수호할 것이다. 요즘 호주의 파룬궁수련자들이 다우너를 법정에 기소한 것이 한가지 예이다. 만약 그들이 매스컴의 비방을 받았다고 여기면 또 매스컴을 고발할 수 있다.
그러나 대륙은 법치사회가 아니고 민중은 신앙, 언론, 집회의 권리를 박탈당했다. 파룬궁수련생들이 관방 매스컴에 의해 공격 당할 때 그들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경로가 하나도 없었고 더욱이 자신의 매스컴 창간은 말하지 않더라도 관방 매스컴을 고발하여도 공평하게 재판 받지 못한다. 그들은 오로지 단체 집회와 평화로운 방식으로 매스컴에 사실을 밝히는 방식으로 자신의 명예와 존엄을 수호할 것이다. 99년 박해가 발생한 후, 그들은 헌법이 부여한 권리를 행사하였을 뿐이지만 혹형과 피비린내 나는 학살을 당하며 불법으로 비방과 모함을 당하였다. 그들은 음성적으로 집회를 가질 수 밖에 없었고 전단지를 배포하는 등의 방식으로 박해를 폭로하고 사실을 밝힐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것들은 모두 법치를 존중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법치를 존중하지 않는 자들은 횡령과 부패를 일삼고 국민을 짓밟는 것을 일삼는 중공의 집권자들이다. 중공은 자신이 제정한 법률을 준수하지 않으면서 일부 불법적인 법을 만들어 민중을 박해하였으며 그들의 이러한 법률에 대한 멸시와 우롱은 나치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본래부터 법치가 없는 이런 정황 하에서 우리는 민중이 법치를 존중하지 않았다고 질책할 수 없다.
3. 이홍지 선생님에 대한 존경
파룬궁수련자들은 모두 이홍지 선생님을 존경하지만 이는 독재와 전혀 관계가 없다. 파룬궁은 누구를 강요하여 이홍지 선생을 존경하라고 하지 않았으며 어떠한 사람을 강요하여 파룬궁을 수련하게 하지 않았다. 기타 사람들은 천주교를 경앙할 수 있고 기독교를 따를 수 있으며 석가모니를 숭배할 수 있다. 이홍지 선생은 어떠한 강제적 수단으로 어느 누구를 속박하지 않았다. 파룬궁수련자들은 각 계층에 분포되어 정상적인 가정생활과 사회왕래, 자신의 직업이 있다. 자유롭게 각종 소식을 얻을 수 있고 어떠한 인신과 이익의 속박을 받지 않으며 오고 가고 것이 자유롭다. 다시 말해서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어떠한 강제적 수단이 없다.
민주사회에서 매 사람마다 모두 자신의 신앙과 자신이 숭배하는 정신적 스승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륙에서 중공 집권자는 재학생들에게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배우도록 강요하고 파룬궁수련생을 세뇌반에 잡아들여 세뇌를 진행하는데 이것이야말로 독재이다.
종교 이 한 개 단어에는 여러 가지 함의가 있다. 파룬궁이 자신이 종교라고 하지 않는 원인은 역사상 많은 종교가 정치와 결탁하였기 때문이다. 파룬궁은 이런 작법이 착오적이라고 여기고 있다.
4. 매스컴의 경향성
대기원 등 매스컴의 일꾼들은 많이는 파룬궁수련자들이고 그들은 문장에 대해 자신의 선택이 있으나 이는 독재와도 전혀 관계가 없다. 파룬궁은 어떠한 사람의 매스컴 창간을 금지한 적이 없고 또 어떠한 사람들이 기타 매스컴에서 자신의 언론을 발표하는 것을 금지한 적이 없다. 모든 매스컴이 자신의 경향성이 있는데 미국 매스컴에서 폭스TV는 편우이지만 로스앤젤레스시보는 편좌이다. 그들의 선택 표준도 같지 않지만 민주사회에서 그들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민주사회에서 매 사람마다 모두 자신의 목소리가 있지만 중국 대륙에서 오로지 중공만이 모든 매체를 끊어 버려 자신의 대변인으로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독재이다.
해외의 많은 중문 매스컴들이 중공에게 영향 심지어 조종당한 정황 하에서 중공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 이런 대기원신문이 있음은 중화의 행운이다. 나는 대기원의 편집인들이 민주와 자유를 숭배하는 모든 지식인들을 존중한다고 믿는다. 대기원과 각 군자들은 같은 것을 구하지만 서로 다르게 존재하여 중국 사회에 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는다.
5. 중공과 중공 탈출을 평가
중공은 대륙에서의 피비린내 나는 통치를 통해 수천만 명에 달하는 무고한 중국인들을 비정상적으로 사망시켰다. 민중은 중공에 대해 평가하고 질책할 권리가 있다. 중공 탈출은 죄악과 무리를 짓지 않겠다는 것이고 합작하지 않겠다는 태도 표시이다. 그리고 탈출자가 새로 이름을 만들어 탈출하는 것 역시 박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이다.
과 탈당은 유혈폭력을 일으키지 않았고 중공 당원들에게 죽이고 때리고 외치지 않았으며 원한과 보복이 없다. >과 탈당은 중공의 문책에 대해 협력하지 않는 것이며 평범한 당원이 중공의 죄악을 이해하고 중공과 합작하지 않도록 도와 주었다. 이는 중국을 놓고 말할 때 좋은 일이다.
중공은 현재까지도 백성을 학살하고 횡령 갈취하고 있는 즉, 중공은 어떠한 민간단체와 이의가 있는 인사들과 협상을 진행한 적이 없다. 오로지 감금, 판결, 괴롭힘, 학살뿐이다. 중공과는 타협이 진행될 수 없는데 마치 유태인은 나치와 타협할 수 없는 것과 같다.
6. 폭력에 평화롭게 항거하는 건강한 역량
파룬궁수련자들은 몸을 사리지 않고 이번 피비린내 나는 박해에 반대해 왔다. 자신의 권리와 존엄에 대한 수호는 중국인의 몇 천년 동안의 순종하는 자세와는 달랐다. 이 과정 중에서 그들은 어떠한 폭력도 행사하지 않았고 또한 원한에 의해 항거하지 않았으며, 평화롭고 이성적으로 폭력에 항거한 것으로 폭력으로 폭력에 반항한 것들과는 다르다.
파룬궁은 민운(民運:역주-항일 전쟁과 혁명 전쟁 기간에 중국 공산당에서 실시한 대 국민 선전)단체 혹은 정치단체가 아니고 그들이 행한 일체는 “박해를 반대하고 진상을 알리는” 내용을 에워싸고 진행되어 왔다. 그들은 진상을 알게 된 세인들에게 아름다운 미래가 있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말하면 만약 그들이 나중에 자신의 신앙, 언론, 집회의 권리를 쟁취한다면 그럼 기타 신앙단체와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저명인사들도 자동적으로 똑같은 권리를 얻게 된다.
그들은 민중을 향해 박해당한 진상을 알리어 중공이 만들어 낸 거짓말을 밝히고 있는 즉 객관적으로 민중의 알 권리를 수호하고 있으며 중공의 한 가지뿐인 목소리를 끊어 버리고 타파하고 있다. 그들이 네트워크 봉쇄를 돌파하기 위해 한 노력들은 또한 네트워크 만리장성 안에 갖혀 있는 아주 많은 중국인들로 하여금 외부의 소식을 얻게 하였다.
국외 국내 파룬궁수련자들이 해낸 거대한 헌신은 완전히 세속을 초월한 믿음 때문이다. 세간의 권세를 위해서였다고 가설한다면 그들은 오늘날까지 걸어오지 못하였을 것이다. 역사상 정치와 종교가 합친 현상은 이미 아주 많은 반면적인 교훈을 제공해 주었고 이홍지 선생은 이에 대해 명확하게 비평하셨다. 때문에 장래의 중국에는 정치 종교의 합일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중국대륙은 현재 난상(亂象)이 분분히 나타나고 있는데 파룬궁수련자들은 이런 난상 속에 있지 않다. 탐오부패에 그들이 없고 오입질, 도박에도 그들이 없으며 상업 사기에도 그들이 없고 마약에도 그들이 없다. 그들은 물론 각종 결함이 있을 것이지만 모두 수련 속에서 고쳐 나가고 있다. 비록 파룬궁이 사회개조에 뜻이 없지만 파룬궁이 중국사회에서 존재함은 사회도덕이 되돌아 올라감에 매우 유익하다.
문장완성 : 2005년 06월 11일
문장분류 : [시사평론]
원문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5/6/13/10392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