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칭미오
【명혜망 2005년 5월 25일】최근 어느 한 까페에서 몇몇 기독교 지식인들이 파룬따파에 대해 공격하는 글을 보게 되었는데 나 자신의 감상을 써야 할 필요성을 느끼었다.
파룬따파의 서적에는 기독교, 천주교, 유태교, 불교, 도교는 정교라고 명확히 지적하였고 예수와 석가모니에 대해 모두 아주 긍정하였다. 파룬따파의 수련자는 기독교도의 신앙에 대해 언제나 모두 존중하였다. 타인의 신앙을 존중하는 것은 한 지식인으로서 최소한의 수양이다. 비록 천주교의 교종일지라도 공개된 장소에서 기타 신앙을 공격하지 않았다.
어느 카페에서는 파룬따파 수련을 포기한 어느 한 개별인의 말을 이용하여 파룬따파를 공격하고 있었다. 사실 어느 무신론 사이트와 반 기독교 사이트에서 우리 또한 일부 전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인에 대해 “반대로 일격을 가하는”것을 볼 수 있다. 이런 행동은 유태의 언론을 이용하여 예수를 공격하는 것과 같은 바, 이는 예수가 나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고 단지 유태가 좋지 않음을 증명할 뿐이다.
일부 지식인들은 늘 자신의 신앙수양을 말한다. 사실 이 신학지식은 자기 신앙체계 내의 일들로써 자신의 신앙에 대한 이해가 기타 신앙의 수련자를 경멸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신학수양이 있는 한 기독교도는 대장경을 숙독하는 불교도를 경멸할 자격이 없는 것과 같은 즉 왜냐하면 불교도의 불학 수양은 기독교와 멀리 떨어져 전혀 비길 수 없기 때문이다. 똑같이 파룬따파의 수련자는 날마나 법공부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법의 지도에 따라 심성을 수련하는데 그들의 파룬따파에 대한 이해는 더욱이 기타 신앙 중의 사람과 비길 방법이 없다.
종교 이외는 진리가 없다. 간단한 예를 들면, 예수는 신도들에게 “일심설(日心說)”을 알려주지 않았지만 기독교도는 자신의 신학지식에 근거하여 “일심설”을 이단 사설로 판단하지 말아야 하며 “일심설”을 제기한 코페르니쿠스는 “사탄의”미혹을 받은 것이 아니다.
똑같이 그 시기의 서방 종교에는 윤회환생, 인과보응의 개념이 없었지만 이는 이런 현상이 존재하지 않는다가 아니다. 더욱이 이런 현상은 “사탄”이 만든 것이 아니다. 일부 기독교 지식인들은 불교 등 신앙을 “사탄”과 연결시키는데 이러한 설법은 일부 불교도가 기타 신앙을 전부 “외도천마”로 부르는 것과 똑 같다. 이런 오만과 편견 역시 과학이란 깃발을 쳐드는 무신론자들이 기독교에 대한 공격 중에서 늘 나타난다.
유태교의 랍비들의 히브리어 원문의 구약에 대한 이해는 아마도 이 신학 지식인들을 초과할 것이다. 그리고 일부 겸손한 랍비들은 기독교들의 구약 원문에 대한 번역과 해석 그리고 신약 중의 일부 설법에 대하여 감히 완전히 인정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유태교 랍비들의 신학 수양으로 기독교 신앙을 부정할 수 없다. 똑같이 일부 기독교도들이 이홍지 선생님의 종교에 관련된 일부 설법에 대해 불인정을 표시하는데 이 기독교의 신학지식들은 이홍지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우주의 진실한 정황을 부정할 방법이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홍지 선생님께서 종교, 과학의 일부 명사와 설법에 대한 인용과 해석은 종교 경전과 과학이론으로 자신의 관점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 현유의 문화와 언어를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우주의 진시한 정황을 알려준 것이다.
자신의 종교 혹은 과학에 대한 이해에 근거하여 파룬따파를 공격하는 논술은 아인슈타인의 논문 중에서 어법의 착오를 찾는 것과 같은 즉 “털끝 만한 것을 똑똑히 살핀 결과 더 큰 것은 보지 못한다 (明察秋毫 之 末 , 而 不見 輿 薪)” 이다.
문장완성:2005년 05월 24일
문장발표:2005년 05월 25일
문장갱신:2005년 05월 25일 07:55:15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5/25/102594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