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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그 사람 그 일(其人其事)》은 3중 박해의 첫 일보

글 / 우한(武漢) 대법제자

【명혜망 2005년 2월 2일】본문 제목의 3중 박해는 610사무실(나찌스 독일의 비밀경찰인 게스타포와 유사한 파룬궁을 탄압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설립된 당무기관)이 파룬궁(法輪功)에 대해 “명예면에서 더럽히고, 경제면에서 무너뜨리며, 육체면에서 소멸하는” 정책을 내부 하달한 것을 가리킨다.

1999년 7월20일 사악한 장(江)씨 집단은 전국에서 중국과 외국을 진압시킨 파룬궁 탄압운동을 발동하였다. 장쩌민은 “공산당은 반드시 파룬궁을 이긴다”고 선언하였다. 그들은 한 방면으로는 정부기관의 독점공구를 이용하여 파룬궁 수련생들을 사사로이 체포하고 박해하였으며, 다른 한 방면으로는 전국의 선전매체를 조종하여 악독한 요언날조를 퍼트렸고, 파룬궁을 모함 공격함으로써 광대한 군중들의 파룬궁에 대한 원한을 선동하였다.

그 당시 가장 큰 살상력을 지녔던 선전이 바로 다큐멘터리 > 이었다. 이 거짓말 극은 그 시기 중앙TV에 의해 24시간 온종일 전국과 전 세계를 향해 지속적으로 방영되었는 바, 정말로 천지를 뒤덮을 지경이었으며 대법과 대법 수련생들은 모두 박해의 거대한 난을 받았다. 진상을 모르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두 깊은 독해를 받았던가? 이 새빨간 거짓말 다큐멘터리를 만든 사람이 바로 자오즈전(趙致真)이다.

자오즈전은 당시 우한(武漢) TV방송국의 국장이었는데, 그와 기자 숭(宋)X은 어느 공안국의 부탁을 받고 파룬궁과 파룬궁을 창시하신 이홍지 선생님을 반대하고 인신공격을 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이에서 볼 수 있듯이 이 다큐멘터리는 언론의 자유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중국에 근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뉴스자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완전히 정치박해의 필요에 의해 나온 것으로써, 파룬궁 탄압 계획을 위한 일부분의 실시였다.

자오즈전은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하여 베이징(北京), 창춘(長春) 등 지역에 가서 저의가 불량한 “취재조사”를 하였다. 그가 만들어낸 >중에서 나온 일체는 모두 사실이 왜곡되었고 가상으로 만들어 졌으며, 남몰래 교묘한 수단을 써서 바뀌었고, 단장취의하여 파룬따파와 사부님을 모함한 것이었다. 여기에서 우리가 이해한 자오즈전의 행적을 아래에 폭로한다:

1, 자오즈전이 물색하고 인터뷰한 대상은 >중의 “증인”으로 이용되었는데 그 대상은 어떤 사람인가?

자오즈전이 물색하고 인터뷰한 대상은 리징펑(李晶峰)、리징차오(李晶超) 두 형제이다. 그 중 형은 베이징 군사박물관의 해설원이었고 동생은 창춘 어느 공장의 일꾼이었으며, 전에는 사부님의 조기(早期)의 수련생이었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을 널리 전하여 세인을 구도하고 국가 대형 기공활동을 지지하기 위하여, 베이징에서 일부 제자들과 동방건강박람회에 참석하였다. 사람들에게 병을 치료하신 적이 있었으며 효과가 신기할 정도로 좋았다. 리징펑 형제들은 명리에 집착하여 사사로이 사부님 몰래 사람들에게 병을 치료하고 돈과 재물을 받았다. 이는 대법의 규정을 위반한 것이며 대법을 파괴한 행위였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法輪大法(파룬따파)의 진수제자(眞修弟子)는 누구도 남에게 병을 치료해 줄 수 없으며, 당신이 병을 치료하기만 하면 나의 법신이 당신 몸에 갖고 있는 모든 法輪大法(파룬따파)의 것을 전부 회수하게 된다.”(《전법륜》)。대법은 엄숙하고 대법수련은 엄숙하다. 사부님께서는 그들 두 사람은 더 이상 파룬따파의 제자가 아니라고 선포하셨다. 사부님께서는 이 일에 대해 아주 가슴 아파하셨다! 그것은 그들이 자신의 명리심 때문에 자신을 망가뜨렸기 때문이다.

리징펑과 리징차오 두 형제는 비록 아주 후회하였지만 자신들의 착오를 인식하지 못하고 도리어 사부님을 미워하며 어느 기회에 보복하려고 하였다. 마침 자오즈전이 파룬따파를 모함하는 목적에 리징펑과 리징차오 두 사람을 물색하고 인터뷰하였으며 그들이 나서서 거짓 증인을 하였는데 이는 정말로 한 박자에 들어 맞아, 서로 결탁하여 나쁜 일을 하였다.

2. > 다큐멘터리는 자오즈전이 주로 꾸미고 계획하고 만든 것이다. 자오즈전은 우한TV의 국장이란 직권을 이용하여 >이란 프로그램의 명의를 내세워 중앙TV에서 한자리를 얻어냈으며 중앙TV와 서로 합작하여 만들어냈다.

사실 7.20 이후, >, 이 죄악의 극은 중앙TV에서 각 성시의 지방 TV방송국까지 반복적으로 방영되었는 바, 그것은 사악한 장씨집단이 파룬궁을 탄압하고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최중형 폭탄이었다. 또한 정치타수들을 위한 공격근거가 되었으며 더욱이 “610사무실”의 사악한 악인들이 파룬궁 수련생에 대하여 세뇌하는 독침과 박해의 정신적 무기로 되었다. 그것이 파룬따파와 대법제자에게 조성한 박해는 극히 엄중하였다. 동시에 그것은 또 국내외 수억에 달하는 진상을 모르는 군중들을 독해하였으며 그들로 하여금 파룬궁에 대한 원한을 선동하였다.

1999년 7월20일 이후 후베이(湖北)에서는 최소한 파룬궁 수련생 21명이 박해로 사망하였다. 그 중 우한 대법제자 펑민(彭敏, 남)은 2001년 4월6일 박해로 사망하였으며 그 당시 겨우 27세었다. 우창(武昌) 칭링(青菱) 구치소에 불법으로 수감된 기간에 펑민은 파룬궁수련을 견지함으로써 악인들로부터 혹독한 매질을 당하였으며 몸에는 상처자국이 가득하였다. 2001년 1월9일 괴롭힘을 당하는 중에 펑민은 5번째 척추 뼈가 분쇄성 골절이 되고, 경추가 압축되어 골절됨으로써 전신 불구가 되었다. 펑민의 모친은 허락을 받고 아들을 집에 데려와 휴양시켰다. 그러나 펑민이 정신과 신체적으로 조금 회복할 기색이 있자 또 시공안국의 방폭대대는 30여명의 경찰들을 파견하여 그를 우한시 제7병원에 납치하여 이른 바 “치료”를 시켰다. 펑민이 제7병원에 납치되어 간 후, 병원측은 610사무실과 시공안국의 지시 하에 목숨이 경각을 다투는 펑민에 대하여 거들떠 보지도 않았으며 또한 펑민의 가족들에겐 퇴원하고 싶으면 펑민이 죽기를 기다려야 하는 즉, 펑민이 죽지 않으면 퇴원 못한다고 하였다!

3, >을 방영하는 문제에서 자오즈전은 전국 파룬궁 수련생들의 제지를 무시하고 자기 고집대로 행하였으며, 수련생을 기편하고 악을 견지하여 엄중한 후과를 조성한 즉, 그 죄과를 벗어나기 어렵다.

새빨간 거짓말극을 만든 자오즈전의 죄행이 대법제자들에게 알려진 후, 1999년 6월경 전국 각지의 대법제자들은 우한TV에 전화를 걸거나 팩스를 보내고 특급우편 등을 보내 다큐멘터리의 내용이 사실이 아님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우한TV는 실사구시에서 입각하여 파룬궁에 대해 책임지고 군중에 대해 책임지며 사회에 대해 책임지는 원칙에서, 우한TV에게 방영하지 말 것을 요구하였다. 동시에 우한의 수많은 수련생들과 타지역에서 달려온 일부 수련생들은 자발적으로 우한TV에 가서 방영하지 말 것을 요구하였다. 수련생들이 TV방송국의 1층에서 조용히 기다렸지만 방송국의 지도자들은 접견하지 않았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후에 방송국 측은 수련생들을 문 밖으로 쫓아냈는데, 수련생들은 문 밖에서 모두 아주 이지적으로 과격한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전국에서 방송을 멈추라는 외침소리가 갈수록 높아지는 정황 하에서, 우한의 수련생들은 더욱 이지적으로 각자가 나눠서 방송을 제지시키는 일을 행하였다. 파룬궁 수련생의 대표로서 일부분 수련생들은 우한TV의 총편집실 책임자를 찾아서 담화하였다. 책임자는 “방송하지 않으며 방송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일부분 수련생들은 우한시 공안국에 가서 방송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였고, 그 당시 접견하고 담화한 한 처장은 이렇게 말했다: “절대로 방송하지 않는다.” 또한 일부분 수련생 대표들은 우한시장 전용전화에 연결을 취하여, 사실을 왜곡하고 파룬궁과 파룬궁 수련생들을 해치는 방송국의 거짓말 다큐멘터리 방송을 시정부에서 제지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전화를 받은 지도자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이 정황을 몰랐고 우리는 한번 조사해볼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우한TV방송국은 1999년 7월20일 전면적인 탄압이 등장하기 전까지 탄압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 거짓말 다큐멘터리를 끝내 방송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중앙TV가 오히려 가져가서 1999년 7월7일 전면적인 탄압행동을 위하여 제7채널의 >이란 프로에서 방송하려고 시도하였다. 전 지구의 파룬궁 수련생들이 중앙 지도자들에게 호소하여 7월7일 중앙TV의 방송은 달성하지 못하였고 7월11일에 또 방송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7월11일 파룬따파 수련생들은 “파룬따파가 중국에서(法輪大法在中國)”란 사이트에 긴급 성명을 내보내어 중앙지도자들의 운동음모를 제지할 것을 호소하였다. 나중에 장쩌민과 뤄간이 자기 고집대로 탄압의 일부분(그후 중공 내부에서는 파룬궁에 대해 “명예면에서 더럽히고 경제면에서 무너뜨리고 육체면에서 소멸하는” 정책을 명확히 제기하였음)으로 “자오의 극(趙片)”을 7월 중순에 전국에서 방송하였다. 5년 반이 넘도록 지속된, 7천만 중국대륙의 파룬궁 수련생들을 직접 겨냥한, 중국의 십억 인구와 더 많은 전 세계 인구를 속인 세기적 인재(人禍)가 시작된 것이다.

문장완성:2005년 01월30일
문장발표:2005년 02월02일
문장갱신:2005년 02월02일 02:07:50
문장분류 : 시사평론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2/2/94612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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