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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모두 좋은 사람이다

글/ 산둥 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9월 15일] 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한 진상을 이야기하면 어떤 사람은 “XX는 파룬궁을 수련하더니 가출해서 가정을 버리고 농사도 짓지 않는데 이러니 정부도 그럴만 하지.”라고 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조금 극단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예를 들어, 한 사람이 99%가 장점이고 단 하나가 결점이라고 하자. 이 하나의 결점 때문에 그 사람을 나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한 단체에서 99명이 잘했는데 한 사람이 잘못했다고 하자. 그 한 사람 때문에 그 단체 전체를 나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사람들은 각자 사는 방식이 모두 달라서 적지 않은 사람들은 한 가지 목적에 달성하기 위해 한동안 일상생활을 돌보지 못할 수 있다. 그가 좀 편파적이고 지나치다고는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죽을죄란 말인가? 탄압을 받아야 하는가? 법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보았을 때, ‘명예를 더럽히고 경제적으로 파탄시키며 육체적으로 파멸’시켜야 정도란 말인가?

고시공부를 하는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느라 밥을 먹어도 맛을 모르며 가족과 함께 지내도 손님처럼 행동한다고 하여 그가 부모를 버렸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또 만약 한 사람이 부처가 되기 위해 출가했다하여 그를 ‘가정을 버렸다’고 매도하는 것이 맞는가? 한 선수가 올림픽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연속 수개월 동안 단체훈련에 전념하느라 부모님을 돌보지 못하고 여가를 즐기지 않는다 하여 마땅히 그를 증오해야 하는가?

현재 박해받고 있는 상황에서 박해와 맞서 싸우는 파룬궁 수련생들의 투쟁은 어렵기 그지없다. 많은 사람들은 진실한 말을 굽히지 않음으로써 강제적으로 정상적인 가정생활과 일자리를 잃었다. 만약 박해가 아니었다면 수련생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공원에서 단체로 연공하고 낮에는 출근하고 저녁에는 전념하여 법공부를 하는 평온한 생활을 했을 것이다. 이러한 생활을 빼앗아 간 것은 지금의 박해이며 박해를 꾸민 장쩌민이야말로 죄악의 원흉이다!

고대에 우(禹, 역주 – 하나라를 세운 성왕, 전설에 홍수를 다스렸다 함)는 물을 다스리기 위해 집 문 앞을 세 번이나 지나면서도 집에 들르지 않았다고 한다. 근대에는 ‘왜놈을 물리치려면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지 못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모두 이해하면서 왜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에 대하여 이다지도 배척하는가? 보아하니 몇 년 동안 정부의 비방 선전에 극심히 독해되어 많은 사람들이 그 속에 있으면서도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이 세상에는 파룬궁 말고도 여러 가지 신앙이 있다. 불교와 도교를 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독교, 천주교를 믿는 사람이 있으며 또 공산당을 믿는 사람과 기타 공파를 믿는 사람이 있다. 무엇을 믿든 지간에 진정으로 신앙이 있는 사람은 신앙의 이론에 따라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해야 비로소 진정한 신도라 할 수 있다. 자신이 믿는 신앙의 요구를 위반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참된 신념을 가졌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모두 알다시피, 현재 중국의 지도자와 간부는 대다수가 공산당원이지만 진정으로 당의 규장제도의 요구에 부합되게 행동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가? 부패되어 탐오하고 국가의 재산으로 먹고 마시며 방탕한 짓과 도박을 하는 사람들이 흔하다. 관리와 강도가 함께 나쁜 일을 하는 것은 이미 신기한 일이 아니다. 공산당 정부는 그러한 공산당원들이 잘못했다고 하여 자신을 탄압하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아직 파룬궁 수련생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는 한 사람만 보고(역주-공산당은 이미 파룬궁 수련자가 아닌 많은 사람을 수련자로 속여 비방 선전에 이용했다)이런 과격한 결론을 내리는가? 왜 완벽하게 조사해 보거나 어떤 내용인지『전법륜』을 읽지 않는가?

사실 이런 결론을 내린 사람은 내가 알기로는 이 몇 가지 원인 때문이다. 첫째, 파룬궁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일방적인 거짓선전으로 잠시 진짜와 가짜, 선과 악을 가리지 못하고 있다. 둘째, 구체적인 상황을 잘 모르고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말하며 파룬궁을 배우는 사람이 한 일이 아니어도 파룬궁에 누명을 씌운다. 셋째, 개인 사정으로 가출한 것과 정부의 박해로 가출한 것을 동일하게 취급한다. 이에 대해서는 좀 구체적으로 설명하겠다.

(1) 파룬궁은 “진선인(眞善忍)”의 원칙으로 연공인을 요구하는바, 사회상에서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명확한 요구가 있다. “당신은 속인의 어떠한 정상적인 직업이든지 가질 수 있으며 수련하는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서든지, 어떠한 직장에서든지 모두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한 수련인으로서 당신은 어디에서든지 반드시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수련하는 사람으로 말할 때, 속인사회에서 잘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자신의 책임인즉, 자신을 수련인으로 간주하고 엄격하게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장이 당신을 고용했는데 당신이 일을 잘 해주지 않았고, 학생인데 숙제를 하지 않고 수업시간에 강의를 듣지 않는다면 당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좋은 사람이라면 어떠한 환경에서든지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당신이 학생이라면 마땅히 공부를 잘해야 하고 당신이 직원이면 마땅히 직장 일을 잘 완성해야 한다.”(『휴스턴법회에서의 설법』) 마찬가지로 파룬궁의 요구에 따른다면, 당신이 농민이면 마땅히 농사를 잘 지어야 하는데 가정이 있으면서 가정에 책임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때문에 진정으로 파룬궁의 요구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파룬궁을 배우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2) 파룬궁은 1992년에 전해졌고 그전에 많은 사람들은 기타 공법을 배웠다. 내가 알기로 일부 가출했거나 기타 이상한 상태가 나타난 사람들은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타 공법을 배운 사람들이다.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은 매스컴에서 날조한 요언 때문에 이상한 상태가 나타나기만 하면 모두 파룬궁이라고 잘못 아는데 이는 구체적인 정황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3) 1999년 7.20 이후, 장쩌민은 무고한 파룬궁 수련생들을 탄압하기 시작했고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에게 ‘진선인’에 대한 신념을 포기하도록 강요했다. 만약 포기하지 않으면 체포하거나 강제노역을 판결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파룬궁을 배운 일부 사람들은 박해를 피하기 위하여 집을 떠났는데 이는 완전히 장쩌민의 박해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써 질책 받아야 할 자는 장쩌민이지 파룬궁 수련생들이 아니다. ‘진선인’의 요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잘못이 없다. 좋은 사람이 많으면 인심이 좋아지고 사회가 안정될 수 있다. 만약 모든 사람이 ‘진선인’에 따라 한다면 인심이 이렇게 나쁠 수 있겠는가? 사회기풍이 이렇게 타락할 수 있겠는가?

사회를 어지럽힌 것은 파룬궁이 아니라 집권자 자신이다. 문화대혁명 10년동란은 사회를 몇 십 년 후퇴하게 했다. 6.4 반부패 민주화 학생운동이 탄압되면서 탐관오리가 범람하게 되었으며 사회기풍은 더욱 타락했다. 장쩌민이 꾸민, ‘진선인’을 믿는 선량한 민중에 대한 탄압은 인력과 물자를 낭비하고 악인이 마음대로 날뛰게 했으며 치안이 악화되고 천재인화가 가중되게 했다.

국가의 이익, 국민의 이익이 집권자 개인의 이익과 충돌할 때 집권자는 항상 개인의 이익을 중하게 여긴다. 탄압하는 자들은 누명을 씌우고 몽둥이를 휘둘러 항상 자신의 행위가 ‘고명’했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아낸다. 하지만 그러한 죄명은 모두 누명을 씌우고 모함한 것으로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 불쌍한 것은 백성들인데 집권자가 희롱하는 원숭이가 되어 사기당하고도 집권자를 위하여 외친다. 고대 로마의 네로가 도시를 불태우고 기독교에 죄를 뒤집어씌움으로써 백성들을 속인 것과 같이 말이다. 백성들은 기독교인들이 처참하게 살해되는 것을 보고 환호했는데 무지 때문에 죄를 지었으며, 그로 인하여 전염병이 돌아 거리마다 시체가 널렸지만 원인을 몰랐다. 오늘날 장쩌민은 파룬궁을 박해하기 위해 톈안먼(天安門)에서 분신자살을 조작하여 파룬궁을 모함하지만 백성은 이를 전혀 모르고 도리어 장쩌민을 위해 외치고 있다. 어떤 이는 눈앞의 이익을 위해 대법제자를 고발하는데 이는 무지 속에서 악한 자를 도와 악을 행하는 것이다. 2003년의 ‘사스’는 하늘이 준 경고이고 2004년의 조류독감은 경종을 다시 한번 울린 것으로서 마땅히 각성해야 한다. 선량한 동포들이여, 정의를 지지하고 선(善)을 수호하며 사악을 제지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전 국민이 모두 각성한다면 사악이 감히 제멋대로 하겠는가?

문장완성: 2004년 08월17일
문장발표: 2004년 09월15일
문장갱신: 2004년 09월15일 12:46:42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9/15/84227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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