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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의 투쟁 마법 ‘명예상 더럽히기’

— 국민당 4대 가문에서 시작하여

글/ 장톈이(章天義)

[명혜망] 미국 현 대통령은 약 8년간의 여론 흑색선전과 사법적 박해를 겪었다. 이는 한 사람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엄중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중국 대륙의 파룬궁수련자들이 26년간 겪은 경험에 비하면 그나마 덜한 편이다.

중국 전통문화에서 선량함과 정직함은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원칙이다. 그러나 중공의 투쟁 마법은 시종일관 거짓말과 폭력이라는 흑마술을 기본으로 삼았다.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중공은 거짓말, 폭력, 악랄한 투쟁으로 출발했다. 그들은 투쟁 대상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을 오래전부터 중시해왔으나, 1999년 7월 공개적으로 파룬궁 탄압을 시작한 이후에야 그 기술이 정점에 이르렀고, 사회 전 영역에 걸쳐 직업적 암흑 메커니즘을 구축했다. ‘명예상 더럽히기’부터 시작해 피해자의 도덕적 신용을 상실시킨 후 경제적으로 파탄시키고, 만약 상대가 여전히 견디면 구금, 육체적·정신적 이중 고문, 살해, 시신 소각 및 흔적 제거로 이어진다.

유전자적 특성을 살펴보면, 중공이 필연적으로 피에 굶주리고 투쟁을 좋아하며 악독한 이유는 마르크스, 레닌의 유전자를 이어받아 ‘서방에서 온 유령’의 후손이기 때문이며, ‘진선인(眞·善·忍)’에 대해 증오와 질투심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1. 국민당 4대 가문

먼저 중공이 중국 대륙을 장악하기 전 4대 가문 사례를 살펴보면서, 중공이 어떻게 ‘명예 훼손’ 분야에서 자신을 세계 공적 제1의 ‘거짓말쟁이’로 단련시켰는지 알아보자.

항전 승리 후, 중공은 흑색 선전 방식을 빈번히 사용해 국민정부를 비방했다. 예를 들어 천보다(陳伯達)가 작성한 당 선전 자료 《4대 가문》은 국민당 장(蔣), 송(宋), 공(孔), 진(陳) 4대 가문의 재산 규모를 극도로 과장했다. 그 후 신문, 라디오, 교과서, 선전 책자, 영화, 연극, 포스터, 도로변 벽에 슬로건을 통해 거의 모든 곳에서 매일, 매년 맹폭을 가했다. 이런 방식으로 중공은 원하는 비방 효과를 달성했다. 대륙인의 사고방식에서 ‘국민당 4대 가문’이라 하면 거의 ‘부정부패’의 대명사가 되어 무의식적 반응을 형성했다.

물론, 중공이 중국인에게 가한 세뇌 훈련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수억 명의 중국인은 ‘일본’하면 ‘난징대학살’을, ‘미국’하면 ‘미제국주의’, ‘서방 적대세력’을, ‘서방사회’하면 ‘부패한 자본주의’를 떠올린다. 이런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으며, 미국과 유럽에서도 많은 주류 미디어가 중공의 ‘명예 훼손’ 마법 도구의 분신이 됐다. 악마가 세계를 지배하는 현대에는 중공의 인맥이 더 넓고 자원도 더 풍부해,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아는 금전, 색정 조작 외에도 중국 및 해외 교육기관도 ‘통일전선’의 도구로 삼았다. 통일전선의 첫 번째 항목은 거짓말을 역사, 사실, ‘명예 훼손’에 필요한 기본 정보로 삼아 중공에 요구사항이 있는 사람들에게 주입하는 것이다.

최근까지 역사 자료의 기밀 해제로 많은 진실이 점차 공개되면서, 소위 《4대 가문》은 풍문을 이용해 더러운 물을 끼얹는 식의 비방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

지난 세기 50년대에 미국으로 간 국민당 원로 천리푸(陳立夫)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쿵샹시(孔祥熙) 등 옛 지인에게 약 2만 달러를 빌려 양계장을 샀다. 도움 없이 혼자서 사료 주기, 달걀 줍기, 사료 구매, 달걀 판매, 닭똥 청소 등 모든 일을 직접 했다. 그는 양식 전문 지식을 독학하여 곧 닭에게 약을 먹이고 주사하는 법을 배웠다. 여가 시간에는 중국 전통문화를 연구하고 프린스턴 대학의 객좌교수를 맡아 며칠마다 대학에서 강의했다. 닭장 청소의 어려움은 상상할 수 있다. 만약 그가 수억의 재산을 가진 부자였다면 대학에서 강의하고 책을 읽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런데 어찌하여 악취 나는 양계장 일까지 해야 했을까?

대만에 남은 형 천궈푸(陳果夫)는 폐결핵에 걸려 거액의 의료비가 필요했다. 이미 고위 관료직을 맡지 않던 천궈푸는 곤경에 처했고, 결국 치료비로 5,000은원을 특별 승인받았다. 그러나 불과 1년 후인 1951년 8월 25일, 천궈푸는 치료 효과가 없어 세상을 떠났다.

중화민국 재정부장을 지낸 쑹쯔원(宋子文)의 가족은 58상자의 문서를 미국 스탠퍼드대학 후버연구소 문서관에 기증했다. 그 안에는 1941년부터 1968년까지, 쑹쯔원이 세상을 떠나기 전 모든 개인 재산 목록이 있었고, 각 재산 보고서에는 미국 회계사의 서명이 있었다.

1971년 4월, 77세의 쑹쯔원이 세상을 떠났다. 그가 거주하던 뉴욕주 정부의 세무 공무원들은 고인의 신분과 거액의 재산에 관한 소문을 듣고 때에 맞지 않는 흥분을 느꼈다. 그들은 즉시 쑹쯔원의 재산을 조사했지만 크게 실망했다. 쑹쯔원의 비고정 재산은 100만 달러 남짓이었고, 20년간 크게 가치가 올라간 부동산을 합쳐도 700~800만 달러에 불과했다. 상속세를 제외하면 아내 장러이(張樂怡)에게 500만 달러만 남겼다. 이런 재산은 부자들이 많은 뉴욕에서는 거의 언급할 가치가 없었다.

2006년 한 국제 회의에서 미국 후버연구소의 궈다이쥔(郭岱君) 박사는 “도널드 조던(Donald Jordan)이라는 미국 학자가 쑹쯔원의 부패 증거를 매우 진지하게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궈 박사는 “지금은 거의 모든 문서가 공개됐지만, 어떤 학자도 쑹쯔원의 부패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중화민국 원수 장제스(蔣介石)는 사망 시 어떤 유산도 남기지 않았다. 부인은 쿵 가문의 아파트에서 세상을 떠났고, 통장에는 12만 달러의 예금만 남았다. 1988년 1월 13일, 장제스의 아들 장징궈(蔣經國)가 사망했을 때, 미망인 장팡량(蔣方良)에게 남긴 것은 장징궈가 사망 전 보충 지급받은 20개월 분 봉급 115.2만 대만 달러뿐이었다. 장팡량은 1992년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의 시장과 부시장을 접견했을 때, 두 시장이 고향인 민스크에 오라고 초대했다.(역주: 장팡량은 원래 벨라루스 출신의 러시아인으로, 그녀의 본명은 파이나 이파노브나 바하레바였다.) 장팡량은 자신이 지금 돈이 없어서 돌아갈 수 없다고 대답했고, 이는 두 벨라루스 시장을 크게 놀라게 했다.

미국 정부 내에서는 한때 ‘누가 대륙을 잃었는가’라는 논쟁이 있었다. 소련은 중공에 대량의 무기를 제공했지만, 미국은 중화민국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다. 일부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당시 재정부장이었던 쿵샹시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국민정부 행정원장 겸 재정부장이었던 쿵샹시는 미국이 장제스에게 제공한 38억 달러 중 7.5억 달러를 차지했다고 여겨졌다. 이것이 미국이 중화민국 원조를 중단한 한 가지 여론이 됐다.

배후의 진실은 무엇일까? 소련 공산당의 동생인 중공이 중국 대륙을 장악하도록 허용하기 위해 ‘명예상 더럽히기’ 마법을 사용한 것은 아닐까? 명예를 손상시키고 도덕적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게 하면, ‘경제적 단절’과 ‘육체적 소멸’은 어렵지 않다.

위험에 직면하여 쿵샹시와 쑹쯔원은 동시에 의회에 편지를 보내 미국 정부가 그들의 모든 재산을 공개하도록 요청했다.

1950년 5월 10일, 의회 기록에는 쿵샹시가 의회에 보낸 편지가 공개됐다. “저는 미국 국무부나 재무부가 제 개인의 미국 내 모든 사유 재산을 공개하는 것에 완전히 동의합니다.” 또한 “공산당의 재앙으로 인해 저는 중국에서의 모든 사업과 재산을 잃었고, 당시 구출한 돈과 재산은 저와 가족의 필요를 간신히 충족시킬 뿐입니다. 저는 이것이 제가 지금 단지 미국의 평범한 거주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고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쑹쯔원 씨의 편지는 이렇게 썼다. “저는 미국 재무부나 정부가 제 모든 재산을 공개하는 것에 절대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는 또한 미국 국무부에 다른 편지를 보냈다. “비록 제가 외국인이고, 이 나라에서 저는 물론 어떤 논쟁에도 휘말리고 싶지 않지만, 저는 단지 부당한 공격 속에서 제 명예를 밝히고 싶을 뿐입니다!”

이후 이 사건에 대해 미국의 대중국정책위원회는 650개 신문사 편집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국무부가 언론이 보도한 위 논쟁에 관한 모든 자세한 자료를 공개하도록 요구했다. 결과적으로 미국 국무부는 어떤 자료도 제출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근본적으로 중공이 만든 루머였고, 사실적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역사적 진실은 시간의 강물 속에서 점차 그 모습을 드러낸다. 중공의 수십 년 선전 공세 아래, ‘인민의 공적’, ‘흡혈귀’로 비방받은 장, 송, 공, 진 4대 가문의 실제 생활 상태는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공도(公道)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 중공 정권 수립 직후, 중공은 50만 군대를 파견해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그중 2만여 명이 포로가 됐는데, 1만 4천여 명은 대륙으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고 고향을 떠나 대만으로 갔다.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한지, 민심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중공이 중국인에게 만든 고통은 셀 수 없다!

2. 파룬궁

파룬궁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 파룬궁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라고도 하며, 진선인(眞·善·忍)을 지도 원칙으로 하는 불가(佛家) 수련법이다. 과거에는 단독 전수하는 비밀 수련법이었으나 1992년부터 세상에 공개됐다.

진선인과 중공의 마르크스-레닌 유전자 및 이데올로기는 ‘풍마우불상급’(風馬牛不相及: 바람, 말, 소는 서로 관련이 없다, 전혀 관계없다는 뜻)이라 할 수 있으며,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사탄의 것은 사탄에게”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공은 ‘파룬궁 소멸’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오랫동안 갈고닦은 정치 투쟁 마법을 ‘명예상 더럽히고, 경제상 단절하며, 육체상 소멸한다’로 요약했으며, 이를 지침으로 가상의 적(파룬궁)에 대해 전방위적 소멸을 실행했다.

중공의 ‘명예상 더럽히기’는 장쩌민이 당내에 보낸 문서부터 시작됐다. 그 표현은 진실과 거짓이 섞여 있고, 사악함으로 가득 차 진실과 거짓 정보를 분리하고 인용하기 어려웠다. 당시(1999년) 중국에서는 평균 10명 중 1명이 파룬궁을 수련했으며, 사람들은 모두 파룬궁이 ‘진선인’을 말하고, 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증진시키며 도덕을 향상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중공의 거짓 기밀 문서는 여러 차례 사회에 폭로됐다. 범죄 행위를 은폐하고 책임 추궁을 피하기 위해, 이후의 탄압 문서는 주로 구두 밀령 형태로 ‘610 사무실’(장쩌민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을 통해 중공 각급 공안, 검찰, 법원에 전달됐다.

‘610 사무실’이 해외 파룬궁수련자들에 의해 여러 차례 폭로된 후, 국제적 압력 아래 중공은 한편으로는 해당 사무실을 폐지했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안정유지(維穩) 사무실’ 등 다른 이름으로 바꿔 중앙에서 지방, 해외 기관까지 각 시스템과 영역에서 계속해서 파룬궁 탄압 전담 인원을 유지했다.

중공은 파룬궁을 탄압하기 위해 각종 루머를 정교하게 만들었다. 혐오스러운 것은 무엇이든 조작하고, 공포스러운 것은 무엇이든 조작했다. ‘자살’, ‘살인’, ‘병있어도 약 먹지 못하게 함’, ‘배를 갈라 파룬(法輪) 찾기’, ‘세계 종말 선전’, ‘정치적 목적’, ‘반(反)과학’, ‘반(反)인류’, ‘엄밀한 조직’, ‘외국 반중세력의 지지’, ‘사이비 종교’ 등등.

중공의 절대적 통제 하에 있는 국내 2000여 개 신문사, 1000여 개 잡지사, 수백 개의 TV와 라디오 방송국, 그리고 인터넷 미디어 모두 과부하로 가동됐다. 1999년 7월 이후 한동안 중앙 TV는 매일 7시간 동안 미리 조작된 각종 프로그램을 방송하며 최선을 다해 파룬궁을 비방했고, 각 지방 방송국들도 중앙 방송국의 프로그램을 다시 방송하여 국내에서 파룬궁을 비방하는 각종 여론의 압도적인 분위기를 형성했다.

다행히도, 중공이 비방 선전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파룬궁은 중공의 잔혹한 탄압이 시작된 20여 년간 세계 100여 개국에 널리 전파됐으며, 파룬궁 저서 《전법륜(轉法輪)》은 50개 언어로 번역됐다. 즉, 중국 대륙이든 세계 각국이든, ‘진선인’을 지침으로 수련하고 심성을 향상시키는 사람들이 있고, 항상 새로운 사람들이 도를 얻고 법을 얻고 있다.

영국 철학자 베이컨은 질투가 질투하는 자에게 위험과 재앙을 가져온다고 말했다. 중국인들도 조상으로부터 전해져 온 교훈이 있다. 선행에는 선의 보답이, 악행에는 악의 보응이 있다는 것이다. 장쩌민부터 시작된 중공 당 지도자들이 파룬궁의 명성을 질투해서든, 중공이라는 사악한 정당을 유지하기 위해서든, 그들의 파룬궁에 대한 27년간의 탄압은 이제 끝에 이르러야 한다. 어느 날 중공이 갑자기 붕괴하고, 탄압이 갑자기 중단되며, 책임자들이 천재지변의 형벌을 받는다고 해도 우리는 조금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현재 도살칼을 내려놓기에는 이미 늦었다. 경천동지할 죄악이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옥의 불에 몇 개의 마른 장작을 덜 수는 있을 것이다.

 

원문발표: 2025년 3월 26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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