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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소송한 하인 이야기

글/ 방효(方曉), 일언(一言)

[명혜망] 북송 시대의 설화집 《태평광기(太平廣記)》에는 노자(老子)와 그의 하인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노자에게는 서갑(徐甲)이라는 시종이 있었는데 그는 노자를 따라 200년간 중원을 떠돌았다. 서갑의 마음에는 한 가지 응어리가 있었는데 노자가 그에게 임금을 한 번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하루에 백전을 주기로 약속했으나 결국 한 푼도 지불하지 않았다. 200여 년간 밀린 임금은 무려 720만 전에 달했다.

어느 날, 노자와 서갑이 서쪽으로 향하다가 우차(牛車)를 타고 천천히 함곡관에 이르렀다. 함곡관의 여관에는 남의 고소장과 편지를 대필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이 머물고 있었다. 서갑은 그에게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이야기하며 관청에 임금을 청구하는 고소장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대필을 하는 사람은 그토록 큰 금액이라는 말을 듣자 크게 동요하며 즉시 붓을 들어 소장을 써주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집에 혼기가 찬 딸이 있으니, 임금을 받아내면 딸을 서갑에게 시집보내겠노라고 약조했다.

함곡관을 지키는 태수 윤희(尹喜)는 도를 닦은 지 여러 해가 됐으나 진전(眞傳)을 얻지 못해 괴로워했다. 그는 이날 한밤중에 좌선하던 중 자색 기운이 동쪽에서 오는 것을 보고 고인(高人)의 방문을 예감했다. 그는 노자를 만나자마자 고인임을 알아보고 무릎을 꿇고 스승으로 모셨다. 하지만 뜻밖에도 노자를 만난 뒤의 첫 번째 업무가 서갑의 고소장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일이었다.

노자와 서갑이 관청에서 대면했다. 노자가 서갑에게 입을 벌리라고 하자 서갑의 입에서 한 줄기 흰 빛이 날아나왔다. 서갑은 곧바로 쓰러졌고 바닥에는 이미 오래전 죽은 앙상한 백골만이 남아 있었다. 그 한 줄기 흰 빛은 알고 보니 노자가 내린 도가의 태현진부(太玄眞符)였는데, 육신이 죽지 않게 해주는 부적이었다.

노자가 서갑에게 돈을 빚졌을까? 답은 분명 반대다. 서갑이 노자에게 생명의 빚을 진 것이며, 게다가 노자 곁에서 노자의 말씀과 가르침으로 도를 전수받은 것은 황금과도 바꿀 수 없는 기연(機緣, 기회와 인연)이었다.

‘서갑(徐甲, Xū Jiǎ)’은 ‘허위[虛假]’와 발음이 같은데, 서갑은 노자를 200년 동안 따르면서도 오직 돈만 알고 도를 알지 못해 득도할 천고의 기연을 헛되이 하고 말았다. 그가 헛되이 노자를 200년 동안 따른 경험은 오늘날의 무신론자들이 참고할 만하다. 하지만 서갑은 이미 죽은 지 오래됐는데도 오늘날 사람들은 교훈을 전혀 얻지 못하고 여전히 서갑의 전철을 밟으려 하고 있다. 어느 전직 페이톈(飛天) 대학 학생(대만인)이 바로 그렇다.

얼마 전, 그녀는 미국 션윈(神韻)예술단과 페이톈대학 등 기관 및 개인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경제적 손실에 대한 배상을 청구했다. 이후 줄곧 션윈예술단, 페이톈학교와 파룬궁의 이른바 ‘검은 자료’를 파헤치려 했던 ‘뉴욕타임스’ 기자 훙첸첸(洪芊芊)이 또다시 제일 먼저 장문의 글을 발표해 션윈예술단을 공격했다.

‘뉴욕타임스’는 많은 지면을 할애해 션윈 배우들의 고생, 긴 근무시간, 적은 보수를 과장해 보도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조차 학교와 교회는 ‘노동법’ 적용 범위에 있지 않다는 점을 언급하며, 현재도 여전히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션윈 제자들의 증언도 보도했다.

2001년, 당시 ‘뉴욕타임스’ 발행인이었던 아서 설즈버거 주니어(Arthur Sulzberger Jr.)와 신문사의 몇몇 편집자, 기자들이 장쩌민을 만날 기회를 얻었고, 이 독재자와 특별한 관계를 맺었다. 그때부터 ‘뉴욕타임스’는 파룬궁을 언급할 때마다 기본적으로 중공의 파룬궁에 대한 비방과 공격을 되풀이하다가 이번에는 적극적인 공격으로까지 발전했다.

‘뉴욕타임스’ 기자 훙첸첸 등은 어두운 목적을 갖고 취재했지만, 그들이 말한 션윈 배우들의 고생 정도는 사실이다. 실제 상황은 더욱 힘들었으며, 션윈 배우들의 헌신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 더 많은 가정의 지지와 헌신이 오늘의 션윈을 있게 한 이유 중 하나다.

예술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보통 졸업 후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 피라미드 최상층의 소수 성공한 사람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예술 전공자들은 학생을 가르쳐 받는 보잘것없는 수입 외에도 다른 일을 겸업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부유한 집안을 제외하면 일반 가정에서는 예술을 공부하는 아이를 키울 수 없다. 예술 공부는 너무 비싸고 수익은 너무 적어 생계를 꾸리기 어렵기 때문에, 일반 가정에서는 자녀를 대학에 보낼 때 졸업 후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의학, 컴퓨터, 금융 등의 전공을 선택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중공의 박해를 25년이나 받아온 파룬궁, 장기간 사비로 박해에 저항해온 파룬궁수련자들은 왜 션윈을 하려고 할까? 왜 이토록 헌신하려고 할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션윈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입장권을 판매해 일부 비용을 회수하고 이를 통해 운영을 유지하고 기본적인 임금을 지급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션윈의 연례 공연 프로그램이 관객들에게 중국에서 계속 일어나는 진선인(眞·善·忍)에 대한 박해 실상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자신과 수많은 다른 파룬궁수련자들이 돈과 시간, 심혈을 들여서라도 꾸준히 해나가려는 근본적인 이유다.

선량한 사람들은 ‘뉴욕타임스’ 기사에서 우리 청소년 파룬궁수련자들의 헌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션윈에서의 헌신 외에도 수많은 다른 무명의 헌신이 있다. 예를 들어 중국영사관 앞에서 박해 중단을 호소하는 노인들, 주말과 휴일에 지역사회에서 자발적으로 션윈을 알리는 중장년층, 중공 스파이들이 계속해서 션윈 차량을 파손하며 차량과 인명 피해나 장비 파손을 꾀하고 있어서 청장년 파룬궁수련자들이 한겨울 눈바람을 맞으며 밤새 차량을 지켜 공연이 차질을 빚지 않도록 하는 것, 신앙의 힘으로 결성된 명혜망 통신원, 해외 기자, 편집자 그룹이 25년 동안 한결같이 박해를 폭로하고 있으며, 수많은 낯모르는 사람들이 서로 보수도 없이 묵묵히 협력하고 있다. 누가 우리의 근무시간을 계산해야 할까? 누가 우리에게 임금을 지급해야 할까? 수련은 자발적이며, 박해 반대는 내면에서 우러나온 것으로, ‘강요’라는 말은 애초부터 있을 수 없다.

션윈 공연단체는 학교의 일부로서, 학교 교과과정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 학교와 교사들, 학생들 모두가 파룬궁수련자라는 점이다. 진선인이라는 신앙에 대한 박해가 끝나지 않는 한, 그들이 박해를 폭로하는 데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이상할 것이 없다.

‘뉴욕타임스’의 션윈예술단 공격 기사의 제1저자인 훙첸첸의 아버지 훙차오후이(洪朝輝)는 중국 ‘구미동학회(歐美同學會)’의 해외 명예이사를 역임했다. 이 ‘구미동학회’는 중공의 해외 침투와 정보 수집을 담당하는 통일전선공작부의 산하 기관이다. 훙첸첸과 훙차오후이의 부녀 관계가 해외 매체에 의해 폭로된 후, 중공 국내 매체들은 즉시 관련 보도를 삭제했다. 이토록 많은 중국 매체 웹사이트가 적대국인 ‘뉴욕타임스’ 기자를 위해 공동 행동을 취한 것을 보면 훙차오후이의 딸에 대한 사랑이 어떠한지 알 수 있다.

가련한 서갑이여, 그는 대도(大道)와 조석으로 200여 년을 함께하며 신선이 되는 도를 얻을 수 있었으나 눈에는 오직 품삯만 보였다. 가련한 ‘옛 파룬궁수련자’들여, 이들은 한때는 대법(大法)을 얻을 인연이 있었으나 서갑의 전철을 밟았다. 가련한 수많은 훙차오후이들이여, 이들은 자식을 돈의 노예로 만들려 하면서 동시에 자식을 서갑처럼 앞날을 망치도록 이끌었다!

 

원문발표: 2024년 12월 15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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