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백성의 고통을 해소하리라”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올해 션윈 공연에는 ‘서생의 포부’라는 무용 프로그램이 있었다.

달빛 가득한 바람 맑은 밤, 의기양양한 젊은이들이 부채를 들고 호숫가에 모여 철학과 인생을 토론하며 과거에 급제한 후의 밝은 미래를 꿈꾼다. 그중 한 명이 문득 영감을 얻어 서둘러 큰 바위 앞으로 가서 붓을 들고 시를 짓는다. “십 년간 스승 모시고 배워, 비록 젊지만 점차 유학자 되니, 훗날 공명 이루면…” 그러나 시를 다 쓰기도 전에 영감이 홀연히 사라져 마지막 구절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모르게 된다.

모두가 곰곰이 생각하는 사이, 아무도 깊은 밤하늘에서 흰옷을 입은 신선이 아무도 모르게 구름을 타고 멀리서 가까이 다가온다. 구름 위에서 신선은 자애로운 눈빛으로 미소 지으며 이 사랑스러운 서생들을 바라본다. 곧이어 신선은 모습을 바꿔 서생들과 똑같은 차림새로 그들 사이에 섞여 들어간다. 대화를 나누던 중 신선으로 변한 서생이 바위 앞으로 가서 자연스럽게 마지막 구절을 보탠다. “백성의 고통을 해소하리라”

이를 본 사람들 중 일부는 깨달음을 얻고 일부는 깊은 생각에 잠긴다. 이어서 모두가 이 화룡점정의 마지막 구절을 칭찬한다. 우연히 한 서생이 그 서생의 정체를 알아채고 급히 동료들을 불러 하늘을 가리킨다. 그가 이미 흰 옷을 입은 신선의 모습으로 돌아와 구름을 타고 떠나는 것이 보였고 모두가 놀라워하며 기뻐한다. 이것은 신선이 그들에게 과거 시험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그렇다,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다. 옛사람들은 십 년 한창(寒窗, 난방이 충분하지 않은 방에서 차가운 창문 옆에 앉아 공부하는 모습)을 거쳐 하루아침에 과거에 급제하면 공명과 이록이 따라왔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부수적인 것일 뿐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었다. 그 관복과 관모는 무게가 있는 것으로 백성의 기대와 믿음을 담고 있다. 왜 당시 관리를 ‘부모관(父母官)’이라고 불렀을까? 백성들에게 있어 의식주에서부터 생명과 재산에 이르기까지 관리들에게 통제하고 판단할 권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관리들이 먼저 기본적인 도덕성과 양심을 갖추어야 함을 요구한다. 그래야만 자신의 사명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악을 징벌하고 선을 드높이며, 위험에 처한 이를 돕고 어려운 이를 구제하며, 사회 안정과 화합을 지키는 것이다.

중국 역사상 이렇게 백성을 염려한 청렴한 관리가 많았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를 돌아보며 시선을 현대로, 지난 세기 중반으로 향하면 ‘장카이푸(張開甫)’라는 관리가 있었다. 이 이름은 아마도 여러분에게 낯설 것이다. ‘장카이푸’라는 이름은 낯설지 모르지만, 지난 세기 50년대 말에서 60년대 초에 걸쳐 수천만 명이 굶어 죽은 대기근은 이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다. 그 대기근으로 안후이성에서만 7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안후이성의 이렇게 심각한 재난은 당시 안후이성 당서기였던 쩡시성(曾希聖)이 ‘당을 따르겠다’고 고집한 데서 비롯됐다. 쩡시성은 나중에 1962년 산둥성 당서기를 겸임했다. 그 대기근으로 산둥성에서 9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쩡시성은 ‘당을 따르겠다’며 천만 명 이상을 굶어 죽게 해 민심을 크게 잃었고 총살당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그가 마오쩌둥 노선을 고수했기 때문에 마오는 그를 좋은 사람이라며 보호했다.

쩡시성에게는 장카이푸라는 부하가 있었는데 안후이성 부서기였다. 1959년 농촌에서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조사를 나갔다. 우페이현에 갔는데 그곳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쌀 창고였고 매우 큰 현으로 140만 명의 인구가 있었다. 장카이푸가 조사할 때 이미 90만 명이 굶어 죽었다. 장카이푸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 공공식당을 해산하고 창고를 열어 식량을 나눠주기로 결정했다. 이로 인해 50만 명의 백성들의 목숨을 구했다. 하지만 장카이푸는 쩡시성에 의해 체포돼 쇠고랑을 차게 됐다. 마오쩌둥은 장카이푸를 ‘우경 기회주의자’라고 말하며 20년 형을 선고했다.

옛말에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면 7층 탑을 짓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 창고를 열어 식량을 나눠주어 50만 명의 목숨을 구한 장카이푸는 백성들에게 ‘청천(淸天, 청렴한 관리를 의미)’이라 불렸지만 ‘죄인’이 되어 중공으로부터 살인방화에 버금가는 형량을 받았다. 반면 수백만 명의 무고한 백성들을 굶어 죽게 한 장본인 쩡시성은 오히려 중공이 정의한 ‘좋은 사람’이 되어 어떤 책임추궁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관직이 계속 승진해 두 성의 당서기를 동시에 맡았다. 이렇게 흑백이 전도되고 기본적인 인륜을 위배하는 일이 중공의 통치하에 있는 중국에서 일어났는데, 중공 관리의 생존 법칙은 도대체 무엇일까? 중공 정계는 어떤 운영 체계일까?

사실 많은 사람이 이미 발견했듯이 공산당이 중국을 통치한 지난 수십 년간의 중국 사회를 살펴보면 좋은 사람은 살아남기 힘들고 나쁜 사람은 매우 오만방자하다. 그 배후의 진정한 원인은 중공 통치하의 정계, 나아가 사회의 모든 면에서 줄곧 이런 ‘열등한 자가 우수한 자를 이기고, 역방향으로 도태되며, 악한 자가 승리하는’ 사악한 메커니즘이 작동해 왔기 때문이다. 재능 있고 도덕을 중시하는 사람은 승진하지 못하고 오히려 억압받아 아래로 밀려나고, 중공을 옹호하고 추종하는 사람은 쉽게 승진한다. 이런 예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위에서 언급한 쩡시성과 장카이푸의 사례가 그렇다.

또 다른 예로, 1989년 ‘6.4 천안문 학살’ 당시 총서기 자오쯔양(趙紫陽)은 학생들에게 동정적이었고 무고한 시민들을 진압하기를 꺼려해 실각됐다. 반면 덩샤오핑의 학생 진압에 고의로 영합하고 강경 조치를 요구한 장쩌민은 결국 6.4의 피를 밟고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 당시 정직하고 용감했던 CCTV 뉴스 앵커 쉐페이와 두셴은 6월 3일 방송에서 동시에 검은 옷을 입고 “이 검은 날을 기억합시다!”라고 말하며 당국의 만행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고 학생들의 반부패 운동을 지지했다. 이로 인해 그들은 중공에 의해 퇴출됐고, 쉐페이와 두셴을 대신한 것은 무원칙하게 중공을 위해 거짓말을 보도하고 국민을 기만하는 뤄징이었다.

1999년 4월 25일, 파룬궁수련자들이 중난하이에서 평화롭게 청원하며 자유로운 수련의 합법적 권리를 요구했다. 당시 주룽지 총리가 나와 수련생들을 만나고 대표들과 대화를 나누어 톈진 사건을 해결했고(톈진 공안국에 불법 체포된 파룬궁수련생들을 석방하라고 명령), 정부가 수련의 자유를 간섭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파룬궁수련자들의 평화롭고 이성적인 태도, 올바른 신념에 대한 고수, 그리고 총리의 사건 해결에 대해 국제사회는 높이 평가했으며, 중국 당국과 국민 간의 평화로운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의 선례를 만들었다. 그러나 ‘4.25’ 사건의 평화로운 해결은 권위를 세우고자 했던 당시 중공 당수 장쩌민의 극도의 질투심을 불러일으켰고, 그는 뤄간과 결탁해 ‘4.25’ 평화 청원을 ‘중난하이 포위’로 왜곡했으며, 주룽지 역시 억압받았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은 정치국 상무위원 대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결정을 내려 파룬궁을 탄압했고, 이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여 년간의 불법 탄압 속에서 파룬궁을 적극적으로 탄압하고 장쩌민을 추종한 악당들, 그중에는 후에 감옥에 갇힌 보시라이, 저우융캉, 궈보슝과 목숨을 잃은 쉬차이허우 등을 포함해 중공은 이들을 크게 승진시켰다. 수많은 공안, 검찰, 법원, 610(장쩌민이 파룬궁 탄압을 위해 특별히 설립한 불법 조직) 요원들이 상금과 관직 등을 위해 맹목적으로 탄압 명령을 집행하며,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양심과 도덕의 기준을 저버리고 중공과 장쩌민에 의해 직접 파룬궁수련자들을 박해해 죽이는 살인범이 됐다.

다른 한편으로, 점점 더 많은 정의로운 변호사들이 법률 연구를 통해 파룬궁의 진상을 진지하게 이해하고 중공의 탄압이 불법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며, 법정에서 파룬궁수련자들을 위해 무죄 변론을 해 판사와 경찰의 말문이 막히게 했다. 중공은 수치심과 분노에 찬 나머지 변호사 자격증 취소 등 불법적이고 비열한 수단으로 변호사들에게 보복했고, 심지어 그들을 비밀 장소로 납치해 육체적, 정신적 고문을 가했으며, 가족들은 장기간 그들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점차 알게 됐다. 진실을 말하고, 원칙을 고수하며, 본분을 지키고, 성실하게 일하며, 인간성과 동정심이 풍부한 좋은 사람들이 중공이 제거하고 억압하고 배척하는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양심을 저버리고 중공과 한통속이 되어 선한 사람들을 박해하고 사회도덕을 완전히 무너뜨린 악한 이들에게 중공은 승진과 부, 부패와 향락의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오늘날의 중국 사회에서 인심은 타락하고 사회는 무너져 내렸다. 중공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하룻밤 사이에 부자가 되려는’ 욕망, ‘즐기다 죽자’는 분위기로 인해 경박함과 악독함, 냉담함과 이기심이 사회의 주된 분위기가 되었다. 현재 중국과 중국인의 처지는 이미 매우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2019년 말에 발생한 우한 폐렴으로 지금까지 중국에서 4억 명 이상이 감염돼 사망했다. 많은 사람은 이것이 하늘이 사람들을 도태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중공을 옹호하고 중공이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돕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회개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파룬궁수련자들을 박해하는 사람들 말이다. 대역병과 같은 천재지변 앞에서 발달한 것처럼 보이는 과학과 의학은 속수무책이었다. 중공의 봉쇄와 제로 코로나 정책 같은 극단적인 정책들, 그리고 감염자 수를 은폐하기 위해 확진자 수를 제한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이 확진을 받지 못해 치료받지 못하고 절망 속에서 죽음을 기다렸다. 점점 더 많은 중국인이 돈, 명예와 지위, 권력 같은 외적인 것들이 얼마나 공허하고 무력한지,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소중한 중국 동포들이여, 사실 우리 삶에서 갈망하고, 기다리며,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늘 우리 곁에 있었고 평범해 보이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관념과 편견을 버리고 이성과 평화, 지혜가 자신을 주도하게 한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천기(天機)를 읽을 수 있고 천재지변과 인재(人災)를 안전히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원문발표: 2024년 8월 15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8/15/480857.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4/8/15/48085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