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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이 없었다면 중국은 지금 어떤 모습이었을까?

왜 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해 14억 중국인을 괴롭혔다고 하는가

글/ 어우양페이(歐陽非)

[밍후이왕] 장쩌민이 없었다면 중국은 지금 어떤 모습이었을까?

장쩌민은 중국공산당이 안팎으로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죽었다. 대외적으로는 중국과 서방 경제의 세계화 밀월 기간이 끝났기에 무역과 과학기술이 분리되고 공급망이 이동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앞으로 중국 경제에 큰 도전이 될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첨단기술이 중국을 디지털 감옥으로 만들었다. 특히 방역 통제 과정에서 누구나 갖고 있던 휴대전화가 누구나 가진 수갑으로 바뀌면서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불만 속에 항의와 폭력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사실 중국이 수십 년간 급속한 경제성장을 하면서 정치와 제도적 변혁을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력은 강해졌으나 기대한 만큼의 자유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제도가 더 권위적이고 부패해지면서 대중에 대한 감시는 더욱 광범위하게 적용됐다.

왜 경제가 발전했지만, 중국인들은 자유를 얻을 기회를 놓쳤을까? 이는 장쩌민의 파룬궁 박해와 깊은 관련이 있다.

만약 장쩌민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혹은 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중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파룬궁 자체는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지만, 불가(佛家)의 수련법문으로서 중국에서 자유롭게 확산하면 공산당이 고수하는 경직된 무신론 의식 형태를 타파하고 중국의 정치와 문화적 변혁의 길을 열어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1980년대 중국에서는 기공(氣功) 수련 붐이 일었고 기공은 특이공능(特異功能, 초능력)과 인체의 특수한 현상을 논술했다. 많은 중국공산당 원로 간부들은 건강을 위해 기공을 연마하며 지지했다. 당시 국가에는 기공에 대한 ‘논쟁도, 선전도, 비판도 하지 않는다.’라는 ‘삼불(三不) 정책’이 있었다. 기공의 부흥은 확실히 공산당의 사상 통제를 타파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1989년 ‘6.4’ 천안문 대학살을 겪으며 중공은 사상 통제의 끈을 다시 조여왔지만, 기공 유행은 끊기지 않았다.

1992년에 이르러 리훙쯔(李洪志) 대사께서 공개적으로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전하시면서 각종 기공의 난잡한 상태를 근본적으로 바로잡아 주셨고 파룬궁은 불가 수련이라는 개념을 명확히 하셨다. 불가의 수련법문으로서 파룬궁은 ‘진선인(真·善·忍)’을 믿고 반본귀진(返本歸真-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감)을 가르치는 일종 유신론 신앙으로 사회에 급속히 보급됐다. 놀라운 치유 효과와 사람들의 도덕적 승화에 대한 본능적인 추구로 인해 7년간 수천만 명이 수련으로 걸어 들어오게 하였고 사회 각계각층에 확산됐다. 많은 수련생은 여전히 중공 고위 간부들을 포함한 중공 간부였다. 공산당은 경직된 무신론 의식 형태를 가진 조직으로서 파룬궁의 광범위한 확산을 7년간 묵인했다.

장쩌민이 없었다면, 장쩌민이 파룬궁을 탄압하지 않았다면 더 많은 사람이 파룬궁의 혜택을 받았을 것이다. ‘진선인’의 신념을 가진 사람들의 고상한 행위는 수련하지 않는 가족들, 동창과 동료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사회에 ‘진선인’의 신념을 가진 사람이 많을수록 도덕성은 높아진다. 그렇다면 중국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사회적 힘이 도덕을 수호할 것이고 사람들은 무신론의 속박을 뚫고 ‘사람이 하는 일은 신께서 보고 계신다’, ‘인과응보’ 등을 믿었을 것이다. 그럼 경제가 발전하고 사회도덕이 비교적 좋은 상태를 유지해 중국 사회도 ‘가난함을 비웃되 창녀는 비웃지 않는다’, ‘사람이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 등 말이 유행하지 않았을 것이며, 탐오와 부패가 사라졌을 것이고, 공산당은 심지어 버림받았을 것이며, 사람들은 진정으로 자유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럼, 사람들은 이런 경제발전 모델을 동경하게 되지 않았을까?

불행히도 장쩌민은 이번 파룬궁 박해를 일으켰다. 박해를 집행하고 유지하기 위해 장쩌민은 초법기관 ‘6.10’ 사무실을 만들어 법률을 압제해 중국의 법치를 정체시키고 후퇴시켰다. 또 언론을 조작의 최선봉으로 만들어 천지를 뒤엎듯 한 날조로 파룬궁을 모함했고, 심지어 ‘톈안먼 분신자살 사기극’까지 만들어 증오를 부추겼다. 결국 중국 언론은 독재자의 살인 도구로 전락했다. 또 진상의 확산을 막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 인터넷 방화벽을 건설했고 ‘진선인’은 금기어가 되어 중국 사회의 신용 문제를 가속화했다. 정법(정치법률위원회) 계통은 파룬궁 수련생들을 탄압하는 폭력 도구가 되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박해로 집과 가족을 잃었는지 모른다. 곳곳에 강제로 수련생을 ‘전향’(수련포기)하려는 세뇌반을 개설했고, 거짓과 폭행을 일삼는 무법천지의 감옥을 만들었으며, 심지어 이 지구에서 유례없는 악행인 강제 장기적출을 하기도 했다.

장쩌민 일당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체계적인 정책은 장쩌민이 언급한 ‘명예상 실추, 경제적 파탄, 육체적 소멸’을 철저히 따랐다. 장쩌민이 파룬궁 박해를 위해 구축한 이 시스템은 파룬궁 수련생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14억 중국인은 누구나 그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오늘날 방역에서 그 ‘제로화 정책’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수년 전부터 파룬궁에 이미 실시했던 것이다.

장쩌민은 1999년 7월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고 중국도 경제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WTO 가입과 함께 많은 해외 자본과 기술이 유입돼 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20년 넘게 지속된 경제 도약에 나섰다. 하지만 이 경제발전은 파룬궁 집단에 대한 인권 박해를 수반한 것이다.

서방의 인권 비난에 직면하자 장쩌민 일당은 경제적으로 더 빨리 성공하고 지속 불가능한 경제발전을 추구해 불명예를 급히 가리려 했다. 동시에 사회안정 기구들을 무한히 강화해 박해를 은폐하며 진상을 봉쇄하고 감시 통제를 대대적으로 실시했다. 빅데이터, 안면인식, 인공지능 등 첨단기술을 사용해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경계망을 빈틈없이 구축했다. 결국 이 경제 잔치는 인권이 보장되지 않기에 경제발전에 따른 정치적 자유는 없을 수밖에 없다.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경제적 성과는 사상누각일 뿐이기에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장쩌민은 왜 파룬궁을 탄압했을까? 이유는 간단한데 질투심 때문이다. 덩샤오핑 사후 권력욕이 극도로 팽배해진 장쩌민은 리훙쯔 선생을 많은 사람이 공경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많은 사람이 장쩌민을 무시했고 그가 반나절 동안 ‘ 학습을 말한다, 정치를 말한다, 정기(正氣)를 말한다’는 ‘3강(三講) 정신’을 강의해도 그를 존중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는 결국 파룬궁에 칼을 들이댔고, 7명 상무위원 중 6명이 동의하지 않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제멋대로 행동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권력욕에 사로잡힌 이 악귀 독재자는 수십 년간 사람을 다스리는 경험을 축적한 공산당 통치 시스템을 조종해 중화민족이 본래 가질 수 있었던 경제, 도덕, 인권, 자유의 지속 가능한 발전 기회를 날려버렸다.

우연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사실 장쩌민의 질투심 때문이다. 사실 그의 질투심이 악독한 것은 내력이 있다. ‘장쩌민 그 사람(江澤民其人)’이라는 책에 따르면, 장쩌민의 내력은 원래 옛 무덤에 있던 두꺼비로, 천 년간 악인들의 질투심을 한 모금 마시고 환생했기에 질투심이 더없이 간악하다고 한다. 중국 민간에서 장쩌민을 ‘장 두꺼비’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장쩌민 사후 ‘BBC’,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등 서방 언론들도 장쩌민의 별명인 ‘토드(Toad, 두꺼비)’를 빼놓지 않고 언급했다.

장쩌민이 권력을 독차지할 때부터 민간에서 그에 대한 각종 우스갯소리와 소문이 무성했다. 10년 전 장쩌민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을 당시 인터넷에는 “장쩌민은 왜 명절에 죽었나”라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했다. 장쩌민이 고승을 찾아가 자신이 언제 죽느냐고 묻자 고승은 명절에 죽는다고 했다. 그가 어느 명절이냐고 묻자 고승은 죽는 날이 바로 명절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우스갯소리는 장쩌민이 민중 속에서 얼마나 나쁜 이미지인지 알 수 있다.

장쩌민이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것은 중화민족에게 신의 보살핌이 다시 한번 내린 것이다. 중국은 ‘6.4’(천안문사건)도, 장쩌민도 없던 시절로 돌아가 다시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 전에 장쩌민의 죄악이 반드시 결산돼야 한다. 우리는 장쩌민에 대한 국제 재판이 열리는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원문발표: 2022년 12월 3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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